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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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North Whitehead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1861~1947)
북백두

1 개요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교수

2 생애

수학을 전공했으나, 이후 철학으로 전공을 변경하였고, 하버드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3 업적

1910년에는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과 공저한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전3권)[1]의 첫 권이 출간되었다. 난해한 수학공식으로 넘쳐나는 원고를 읽어본 케임브리지 출판부에서는 러셀과 화이트 헤드가 출판비를 대는 조건으로 출간했다. 즉, 작가로서는 최대의 굴욕을 당한 셈이다(...) 잠깐만요 눈물 좀 닦고 가실게요 정확히는 출판부에서 600파운드 정도 손실이 날 것 같은데 자기네들은 300파운드까지만 감당할 것이고 나머지는 왕립학회에다가 문의하라고 했다. 그래서 러셀과 화이트 헤드가 왕립학회에 300파운드를 지원해달라고 하자 왕립학회에서는 200파운드 까지만 손실을 떠안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머지 100파운드는 러셀과 화이트 헤드가 반띵했다. 러셀은 이 상황에 대해 유머를 던졌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10년동안 마이너스 50파운드를 벌었다." 이 저작은 그보다 먼저 출간된 『수학의 원리(Principles of Mathematics)』와 함께 러셀을 그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만들었다. 또한 같은 연도에 저명한 작가 오털라인 모렐과 만났으며 그녀와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수학원리 1권의 경우엔 현대에도 철학자들이 여전히 관심을 가지는 책이라고 한다. 2권과 3권의 경우엔 형식적인 증명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러셀 왈, "2권과 3권을 읽은 사람을 딱 여섯 명 알고 있었는데 그 중 세 명은 폴란드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히틀러에게 제거된 것 같다. 나머지 셋은 텍사스 사람인데 나중에 사회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소위 말하는 과정의 형이상학으로 알려져있지만, 자연과학과 수학, 기존 형이상학을 아우르는 방대한 체계에 기인하는 난해함 때문에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도올 김용옥은 화이트헤드의 난해함에 비하면 칸트와 헤겔은 세발의 피라고 주장했을 정도. 흠좀무. 국내에서는 연세대학교 오영환 교수가 화이트헤드 철학의 권위자. 사실 화이트헤드하면 과정철학 보다는 아래에 나와있는 플라톤에 대한 경구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플라톤에 대하여 표현한 발언이 매우 유명하다. 흔히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문구로 알려진 그 것. 원문은 다음과 같다.

"유럽의 철학 전통의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정의는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4 관련 항목

  1. 원래 4권에서 기하학을 다룰 생각이었는데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