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曄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문림(文林). 무제기 주석으로 달린 조만전에는 환소(桓邵)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수양하는 뜻이 강직해 환엄(桓嚴)이라고도 불렀으며, 고모가 난(鸞)이 죽은 것에 대해 조문하면서 친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그릇되었다고 여겼고 양사가 관리를 보내 제사지내게 했지만 환엽은 이를 거절하면서 받지 않았다. 이후 고모의 집에서 머무르는 일이 없었고 지조와 고집이 이와 같았다고 하며, 빈객과 종자들이 그 지조와 행함을 공경했지만 밥 한 끼도 남에게 받지 않았다.
군의 공조를 역임하다가 효렴, 유도, 방정, 무재 등에 천거되고 삼공에서도 그를 등용하고자 했지만 응하지 않았으며, 초평 연간에 천하가 어지러워 회계로 피신했다가 교지까지 가게 되었다. 월 지방의 사람들이 그 절개에 감화해 마을 안에서 다투거나 소송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누군가에게 무고를 입어 합포에서 옥에 갇혔다가 사망했다.
조만전에는 패국 사람으로 조조를 업신여겼다가 조조가 변양을 죽이고 그 집안을 멸족시키자 원충과 함께 교주로 피난갔지만 조조가 사자를 파견해 사섭에게 멸족시키도록 했는데, 이 때 환소는 자수해 뜰 안에서 절하면서 사죄했지만 조조가 죽였다고 한다.
삼국지집해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후강은 장보의 명사우열론에서 공문거, 환문림 등이 오랜 원한으로 살해당했다면서 문림은 환엽의 자이므로 후한서 환엽전의 기록을 설명하면서 장보가 환소를 환엽으로 잘못 썼으므로 조만전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황산은 교지에 의탁했어도 그들의 일가가 모두 갈 수 있었다고 할 수 없는데, 조조가 어떻게 다 멸족시켰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과 동시에 환영전에 근거해 초평 연간에 교지에 의탁한 이는 환엽으로 애초부터 이름이 소가 아니면서 환엽이 무고로 합포의 옥에서 죽었지만 멸문당한 일이 없으니 조만전에서 전해 들은 것이 잘못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