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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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역사상 두 번째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1]

1 소개

손기정 이후 올림픽을 제패한 대한민국 마라톤을 상징하는 인물. 1970년 3월 22일 강원도 삼척시 출신이다. 후임으로 동갑내기 마라토너 이봉주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이봉주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현재 대한민국 마라톤계는 이봉주 이후의 후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마라톤 관련 그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뛰어난 폐활량으로 인한 어마어마한 심폐지구력. 물론 훈련을 해서 얻었겠으나, 훈련을 해도 늘릴 수 있는 양은 사람마다 선천적인 한계가 있는데 그는 일반적인 선수들 범위보다 훨씬 뛰어났다. 해외 탑급 마라토너들에 비해서도 약간 더 큰 폐활량[2]을 가진 선수로 심폐지구력이 세계 최고급이라는 것은 마라톤에 매우 유리한 재능이기에, 올림픽 전에도 원래부터 마라톤계에서 세계적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었다. 이봉주조차 황영조의 엄청난 폐활량에 부러움을 느꼈다고 할 정도.

2 몬주익의 영웅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한국인 마라톤 선수로서는 1936년의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대한민국 국적을 내걸고 획득한 사상 첫 금메달이자 앞으로도 두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올림픽 육상에서의 '대한민국' 소속으로 딴 유일한 금메달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주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난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통하여 2·3위로 뒤쫓아오던 일본 선수 모리시타 고이치와 독일 선수 프라이강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고 1위로 골인한 뒤 쓰러진 일화로 인해 '몬주익의 영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당시 경기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손기정은 말없이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었다.

3 은퇴와 루머

흔히들 황영조를 바르셀로나 금메달과 히로시마 금메달 이후 빠르게 은퇴한 한량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후술할 자기관리 부재로 인한 추문이 있었기 때문에 게으른 천재유리멘탈 취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평을 듣는 이유가 후술할 은퇴 이후의 사건사고 때문인데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거기에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이봉주의 성실함과 긴 커리어에 더욱 대비되기도 하고. 허나, 황영조가 이른 은퇴를 한건 그의 멘탈이나 성실성과는 다른 문제인 고질적인 발 부상 때문이었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올림픽때도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었다. 황영조는 경기당일 아침 기상을 했을때도 통증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소속팀의 회사인 코오롱 스포츠에서 거액을 들여 개발한 마라톤화와 아식스에서 만든 마라톤화를 두고 고민했는데 결국 아식스 제품을 신고 경기에 나갔는데 상당수가 코오롱제품을 신고 금메달을 딴것으로 잘못알고 있다. 족저근막염이라는게 심각하지 않을 때는 자고 일어나면 통증이 심하다가 운동을하다보면 통증이 가라앉는데 황영조도 그러했다고 한다.

족저근막염때문에 올림픽이 끝나고 휴식과 회복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육상연맹이나 언론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고 결국 족저근이 찢어지는 사달이 나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서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도 제패했는데 정말로 황영조가 음주가무에 찌들어 나태한 상태였다면 발바닥 수술을 받고 나서 다시 재활에 성공하고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1996년 족저근막염 재발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여러문제로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이봉주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해서 꾸준히 선수생활을 했지만 황영조는 그러지 못했다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족저근막염은 애초에 사람이 두발로 걸어다니는 이상 그리고 재활기간 동안 휠체어신세를 지지 않는 이상 반드시 재발할 수 밖에 없는 평생 병이며, 한번 찢어져서 수술받은 부위가 또 심각하게 손상돼서 재수술을 받게 된다면 평생 제대로 걷는게 힘들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은퇴를 결심한 황영조에게 비난할 수 없다.

4 흑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등장한 공식적인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로서 많은 영예를 누렸으나 사생활과 음주운전 등 자기 관리 문제로 인해 숱한 질타를 받았고, 이로 인해 상술했 듯 평가가 나빠졌을 뿐 더러 육상 영웅으로서의 위상도 많이 실추되었다.

2014년 초에는 서울시에서 무상으로 임대받은 잠실주경기장 내의 사무실을 불법으로 재임대한 사실이 적발되는 바람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구설수가 잦은 편이다.

5 기타

황영조의 모교인 강릉명륜고등학교에서 황영조의 이름을 따서 체육관을 지었다.

고등학생 시절 구간마라톤 대회때 학교 홍보를 위해 1주자로 내세워 1구간 내내 방송에 나갔다고 한다. 물론 다음주자부터...

2014년 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고, 2015년 11월 1일에는 JTBC의 중앙서울마라톤 대회 중계방송 해설로 참여했으며, 2016년 3월 20일 채널A의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중계방송 해설로 참여했다.
  1. 첫 번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故 손기정 선수다.
  2. 혹자는 황영조의 모친이 해녀 출신이었던게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