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마라토너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마라토너이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1998 방콕 아시안게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별명은 봉달이 리본즈,티모, 국민 마라토너. 손기정, 황영조와 함께 전국민이 아는 마라톤계의 슈퍼스타. 이봉주가 은퇴한, 이후 사실상 명맥이 끊긴 한국 마라톤의 마지막 레전드다.
2 경력
본관은 전주 이씨 덕흥대원군의 후손.[2] 1970년 10월 10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홍성 광천고 1학년 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했다.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 90학번 출신. 1990년 제71회 전국 체전 2위에 이어 1991년 제72회 전국체전 마라톤 종목에서 우승한 후 1993년 제74회 전국체전에서도 2시간 10분 27초으로 정상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1991년 대한민국 마라톤의 대부로 알려진 정봉수 감독(# 인터뷰)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 사단'에 입단한 이봉주는 이듬해 1월 도쿄 국제 하프마라톤 대회에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수립하며 4위로 골인하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3] 1993년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 대회로 나섰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라톤의 슈퍼스타로 우뚝 섰다. 안타깝게도 금메달(조시아 투과니)과는 3초 차이였는데, 이것은 역대 최단 격차였다. 같은 해 후쿠오카 국제 마라톤[4]과 이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4월 19일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시간 7분 44초로, 2000년 2월 13일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7분 20초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세웠다.[5][6] 그러나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24위로 뒤졌다. 이 안타까운 성적은 본인으로서도 가장 아쉬운 때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2001년 제105회 보스턴 마라톤과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마라톤, 2007년 서울 국제 마라톤(동아일보 주관)에서 우승했다. 다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28위로 뒤졌다.
결국 대한민국 나이로 40세가 된 2009년 10월 21일, 제 90회 전국체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15분 25초 만에 완주해 1위로 결승점을 통과하며 우승함과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만 39세의 나이로 그의 은퇴 경기이자 41번째 완주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2009년 12월 8일 역도의 장미란 선수와 함께 체육인으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청룡장을 수상하였다
마라토너로서 서른살 이후 찾아온 슬럼프에서 다시 일어났으며, 44번을 도전해 41번을 완주한 엄청난 끈기[7], 평발+짝발을 극복했다는 점 등이 높게 평가되었다.
3 이모저모
- 현재 천안시에는 그의 이름을 딴 '봉주로’가 있다.
- 스카이라이프 광고를 찍기도 했다. "봉주르 라이프"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와 동갑이다. 경력상 황영조가 앞섰기 때문에 가끔 조언 비스무리한걸 하다가 이봉주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고. 매스컴에서 이 둘을 라이벌 내지는 황영조의 후계자(?)로 만들어 버렸지만,
만악의 악, 매스컴실제로는 절친한 친구사이라고 한다. 또한 이봉주의 부인은 황영조의 중학교 동창이며, 이봉주가 황영조의 고향인 강원도 삼척시로 같이 휴가갔다가 지금 부인과 눈이 맞아서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한다. 사실 은퇴 후 행실 면에서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황영조에 비해, 긍정적이고 겸손한 성격을 가진데다가 몸 관리를 잘하면서 현역 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에 세간의 이미지는 이봉주가 더 좋은 편이다. 언젠가 이봉주는 "황영조의 그 심장이 부러웠다. 미치도록 갖고 싶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재능이나 신체 스펙은 황영조가 훨씬 앞섰으나, [8] 노력에서는 이봉주가 앞선 결과라 하겠다.
- 황영조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중계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안타까운 목소리로 동갑내기 선수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이봉주를 응원하기도 했다.
- 마라톤 영화 페이스메이커에 찬조 출연했다. 김명민이 황영조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고 물어 본다(...)
-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과 KIA 타이거즈 안치홍과는 특이한 연이 있는데, 바로 고려대학교 최고위과정 동기동문이라는 것. 덕분에 안치홍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 대상으로 이봉주를 지목하기도 했다.
- 2013년 11월 1일 나 혼자 산다 방송에서 잠깐 나왔는데, 현재는 치킨 장사를 하고 있다.
이봉주가 뛰어서 배달해준다역시 모든 직업의 끝은 치킨집그 외에는 손기정 기념재단의 감사, 대한육상경기연맹 홍보이사로 활동.
-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심판으로 데뷔했다. 9월 28일 남녀 20km 경보와 10월 1일 남자 50km 경보, 10월 2일 여자마라톤과 10월 3일 남자마라톤에서 심판으로 나선 바 있다.
- 2016년 2월 6일 방영된 무한도전에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시즌 2에 초대받았다(...) 박명수 왈 그의 노안은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 달려서' 그렇다고 하여 큰웃음을 주었다. 페스티벌 당일에 가장 마지막으로 모든 주목을 받으며 입장했으며, 등장과 동시에 모든 패널들을 폭소로 몰아넣으며 못친소 에이스의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예능에서도 금메달우현은 한시름 놓았다(...).다만 그 뒤로 둘이 친해졌는지 백년손님-자기야에서 우현을 처가댁에 초대하였다.
- 자기야 - 백년손님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처가집까지 강제호송차량을 보냈지만 뛰어온다.
처갓집이 강원도 삼척이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동명이인인 어린이가 이봉주 선수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별명이 24등이 되었다면서 저를 위해서라도 1등을 하면 좋겠다고 응원의 글을 올리자 선물과 함께 이봉주 어린이의 별명을 1등으로 바꿔주겠다며 약속하고 2001 보스턴 마라톤에서 1등을 해서 그 어린이의 별명을 1등으로 만든 훈훈한 일화가 있다. #
- ↑ 방콕 아시안 게임 때
- ↑ 덕흥대원군 15세 '주(柱)' 자 항렬로 前 국무총리 이해찬과 전설적 연극배우 이해랑의 조카뻘이고 고종황제의 증손자뻘이며 순종황제의 손자뻘이다.
- ↑ 사실 1992년 자체는 이봉주에게 좋은 해가 못 됐다. 전국체전에서 9위를 기록하는 등. 하지만 당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가 아니다.
- ↑ 이때는 2위로 골인한 스페인 선수를 불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함으로써 애틀랜타에서의 한을 아주 조금이나마 달랬다.
- ↑ 기존에는 신기록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마라톤은 신기록이 없다. 코스의 차이, 날씨 등의 변수에 따라 기록이 천차만별이라 획일화해서 적용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비공인으로 적용되는 최고 기록 개념만 통용된다.
- ↑ 이것은 2024-12-16 08:17:32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을 내고도 당시 대회 8위였다...
- ↑ 매 경기마다 40km 넘게 뛰는데, 대략 연습거리까지 포함하면 200,000km쯤은 된다고 한다.
- ↑ 황영조 선수의 어머니는 해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