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야스히라

1 실존인물

藤原泰衡
1155(1165)[1]~1189.10.14.

오슈 후지와라 4대 당주. 통칭 코지로.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차남. 차남이지만 형 쿠니히라(國衡)가 서자였기 때문에 후계자가 되었다.

일본사에 있어 그의 위상은 딱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팬들의 공적.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 쫓긴 요시츠네는 연고가 있는 히라이즈미에 몸을 의지했는데, 히데히라 사후 당주를 계승한 야스히라가 가마쿠라의 압력을 이기지 못 하고 코로모 강에서 요시츠네를 기습해 목을 쳤다. 가마쿠라의 침공으로부터 히라이즈미를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동생을 죽이면서까지 둔 무리수였지만 결국 가마쿠라의 대군 앞에 히라이즈미는 무너지고 본인은 사망. 오슈 후지와라는 멸망한다.

사실 야스히라는 생전 가마쿠라의 대군과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한 적이 없다. 가마쿠라의 대군이 온다는 소식에 쿠니히라를 보내 2만 남짓의 군사로 아쓰카시 산에 3중 방루를 치고 맞서 싸우게 했지만 이게 그만 패했고(쿠니히라도 전사), 패전 소식에 놀라 넋을 잃고 어쩔 줄 모르다가 히라이즈미가 함락되기도 전에 히라이즈미에 불을 지르고 북쪽으로 달아나버린 것. 덕분에 가마쿠라군이 히라이즈미에 들어왔을 때는 별로 남은 것이 없었다. 이래놓고 요리토모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요시쓰네는 아버지가 보호하신 거지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거든요?패드립[2] 대대로 살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신세라 제 꼴이 말이 아닌데 늦게라도 요시쓰네를 잡아 보낸 공을 생각하셔서[3] 고케닌으로 받아주시던지, 그것도 안 되면 죽음만이라도 면하게 해주세요."답이 없다 당연하게도 요리토모는 야스히라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북쪽으로 달아난 야스히라는 히나이 군의 니에 요새에서 가신 가와타 지로(河田次郎)의 배반으로 피살되었다.[4]

다만 이러한 못난 야스히라의 모습은 《아즈마카가미》의 왜곡 서술로 볼 여지가 없지도 않은 것이, 야스히라 본인이 요리토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리토모 공의 답을 히나이 군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야스히라가 가신에게 배신당해 죽은 니에 요새가 있는 곳도 히나이 군이었다. 히라이즈미가 거느린 17만 기의 군사는 대부분 반농반사(半農半事)의 형태였고, 수확기라서 농촌으로 돌아가 있던 상태에서 공격을 당해 제대로 군사를 모을 준비가 되지 못했으며, 요시쓰네를 죽인 척 하고 실제로는 숨어서 요시쓰네와 함께 가마쿠라군에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는 무턱대고 용렬한 지도자로만 몰기는 곤란한 부분도 있다.

또한 야스히라가 죽은 뒤에 히라이즈미 잔당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야스히라를 섬기던 유리 하치로(由利八郞)라는 무사가 포로로 잡혔는데, 요리토모가 "야스히라는 오슈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어서 만만한 상대가 아닐 줄 알았는데, 변변한 노토가 없어서 가와타 지로 한 사람에게 죽었다. 두 구니(國)를 다스리며 17만 기(騎)를 거느리고도 20일 만에 일족이 모두 망해버렸으니, 말할 것도 없다."며 놀리듯이 말했는데고인드립, 유리 하치로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사마노카미(左馬頭)[5]께서는 가이도(海道)의 15개 구니를 거느리셨지만 헤이지(平治)의 난에서 겨우 하루 만에 몰락했고, 수십만 기의 우두머리셨지만 오사다 다다무네(長田忠致) 한 사람에게 죽었는데[6]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야스히라는 두 구니의 용사들만 데리고도 (수십 개 구니를 동원했던) 요리토모 공을 며칠은 괴롭혔는데, 이 정도면 마냥 무능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며 받아쳤고역관광 말문이 막힌 요리토모는 그를 가신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에게 보내 죄를 사면하게 했다.

이와테 현의 주손지 곤지키도(金色堂)에 그의 목이 안치되어 있다. 기존에는 동생 타다히라[7]의 목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50년 조사를 통해 야스히라의 목으로 밝혀졌다.[8] 추정 나이는 20~30세. 이를 통해 1165년생 설이 유력해졌다. 당시 백여 개의 연꽃 씨앗이 함께 발견되었는데, 연못에 심자 8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개화. 2의 야스히라의 캐릭터송에서도 언급된다.

징기스칸 4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 군주로 나오지만, 상당한 고난이도. 일단 본인의 능력치가 쓰레기이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가까이 있다! 물론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무사시보 벤케이가 있어서 생각보다 쉬워보이지만, 고증을 반영(?)하여 요시츠네와 벤케이의 충성도가 매우 낮다. 특히 요시츠네가 배신을 한다면 더욱 문제인데, 요리토모와 형제관계에 있어서 요시츠네는 요리토모에게 붙잡힌다면, 바로 투항하고, 벤케이는 요시츠네에게 배반 권유을 받으면, 바로 요시츠네에게 등용당한다. 가능한다면 연회를 열어서 요시츠네의 충성도을 올리자. 위치도 별로 좋은편이 아니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고려, 남송, (플레이어)한테는 그저 요시츠네, 벤케이 셔틀. 단, 플레이어라면 요시츠네와 벤케이의 압도적 능력치를 이용해, 시작하자마자 연회로 둘의 충성도를 올린 뒤 바로 가마쿠라에 침공해서 1~2군단이 출격할 뿐인 적을 격퇴하고 마구 약탈을 해대는 방법으로 가마쿠라의 씨를 말리고 시작하는 방법이 있어서 생각보다 막장 플레이는 아니다. 시작위치가 히말라야 산속인 토번같은 나라에 비하면야...

2 머나먼 시공 속에서3 등장인물

1이 모델인 머나먼 시공 속에서 3의 등장인물. 22세. 신장 180cm, 혈액형은 B형. 속성은 수. 상징물은 사가리후지[9]. 이미지 컬러는 금/흑. 담당 성우는 토리우미 코우스케.

본편에는 등장하지 않았만 이자요이키에서 히라이즈가 추가되면서 추가되었다. 후지와라노 히데히라의 아들로, 미나모토노 쿠로 요시츠네의 친우. 시로가네의 주인으로, 기억을 잃은 그를 주워 '시로가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또한 옛날 쿠로가 주워온 개를 쿠가네라는 이름을 붙이고 키우고 있다.[10]

냉정하고 이성적인 청년. 눈매도 날카롭고 항상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며, 무녀(카스가 노조미)에게는 일단 정중하게 대하고는 있지만 딱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 알게 되는 그의 실상은 츤데레. 그가 조금만 더 솔직했으면 히라이즈미 루트의 양상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음양술에 조예가 깊다. 입고 있는 의상은 시로가네와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디자인인데, 커플룩(...)이 아니라 히라이즈미 군의 유니폼이라고 한다.

공략 불가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루트가 없는거지 관련 엔딩처럼 보이는 엔딩은 존재. 시로가네 루트에서 시로가네를 차버리고(...) 야스히라를 선택하면 된다.

비중도 적고 악역이지만 얼굴, 그리고 히라이즈미 귀환 엔딩 덕분에 인기가 좋다. 항상 신작이 나오면 야스히라 공략이 탄원된다. 니코니코 동화에서 올라온 '야스히라를 공략할 수 없어'('에어맨을 쓰러뜨릴 수 없어'를 패러디)라는 동영상에 '야스히라를 공략하기 위해 코에이 주식을 사고 있다'는 발언이 나오자 동참하겠다는 코멘트 내지는 이미 동참했다는 코멘트가 속출해 '코에이 주주총회'라는 태그가 붙었을 정도. 그 인기에 편승해 캐릭터송도 4개 나왔으며, CD도 하나 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CG가 한 장씩 추가되고 있다. 운명의 미궁 애장판 트레져 박스 특전에서는 은근슬적 공략 캐릭터들 속에 끼어있을 정도. 프로모션 무비가 니코에 올라오자 야스히라 때문에 트레져 박스를 지른다는 코멘트가 속출했다.

아리카와 마사오미 루트가 중심인 OVA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TVA에서는 등장 예정.

여담이지만 같은 회사에서 나온 진삼국무쌍 시리즈조비와 성격이나 외모가 꽤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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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죽이고 무녀의 역린을 빼앗고 시로가네를 베어버리는 등 악역을 도맡지만 원한 것은 히라이즈미의 안녕.

히라이즈미 귀환 엔딩에서는 무녀가 돌아간다며 배웅하러 오라는 쿠로의 말에 츤츤 거리다가 무녀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 아버지의 가신들에게 살해당한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의 눈물을 뺀 명장면으로, 캐릭터 송 중 하나인 '하얀 죽음의 잔상'은 이 엔딩을 소재로 한 노래.

원래는 CG 없이 타치에로 이루어진 엔딩이었지만 운명의 미궁에서 '시간의 결정'이라 하여 본편 및 이자요이키의 이벤트를 회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서 CG가 추가된다. 본편 및 이자요이키 이벤트에서의 CG 추가는 이게 유일.

  1. 당시의 사서인 아즈마카가미의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2. 패드립일 수밖에 없는게, 애초에 히데히라는 헤이케를 멸망시킨 요리토모가 틀림없이 오슈를 노릴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고, 앞서 헤이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우고 전술과 전략이 뛰어났던 요시쓰네의 군사적 재능을 요리토모와의 대결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요리토모와의 관계 악화도 무릅쓰고 받아주었으며, 죽기 직전까지 아들들에게 "요시쓰네를 절대 요리토모에게 내주지 마라. 그를 장군으로 추대하고, 형제가 단결해 요리토모와 맞서라"는 유언까지 남겼기 때문.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책임을 아버지에게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모습이다.
  3. 요시쓰네의 목을 받은 요리토모는 "난 잡아오랬지 죽이라고 한 적은 없거든?"라며 바로 히라이즈미로 쳐들어갔다. 요시쓰네는 일단 요리토모의 동생이면서 동시에 휘하 가신이기도 했기 때문.
  4. 야스히라의 목을 가져간 가와타 지로에 대해서도 요리토모는 "자기 주인을 배신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처형하게 했다.
  5. 요리토모의 아버지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를 가리킨다.
  6. 오사다 다다무네는 요시토모의 가신이었는데, 실제로 요시토모는 헤이지의 난에 가담했다가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전술에 걸려 하루만에 교토를 나와 동쪽으로 도망치듯 떠났고, 가신 오사다 다다무네의 집에서 묵다가 다다무네의 배신을 당해 살해됐다. 목욕 중에 갑옷도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당한 기습이라 손쓸 겨를도 없어, "나한테 목검 한 자루만 있었어도..."라고 절규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현재 남아있는 요시토모의 무덤 위에는 많은 수의 목검들이(...) 쌓여 있다). 다다무네는 요시토모의 목을 베어 바친 공으로 기요모리에게 포상을 받았지만 요리토모가 거병하고 헤이케가 망한 뒤에는 다시 잡혀 죽었다.
  7. 히라이즈미 내에서 요시쓰네를 지지했으며 요시쓰네 사후 형 야스히라에게 살해되었다.
  8. 양미간과 후두부 쪽에 지름 약 1.5cm 되는 작은 구멍이 18cm의 길이로 두개골을 관통한 상처 자국이 확인되었는데, 《아즈마카가미》에서 야스히라의 수급에 길이 여덟 치 되는 대못을 박아서 효수했다고 기록한 것과 일치한다.
  9. 오슈 후지와라 가의 문장이다
  10. 시로가네는 은, 쿠가네는 금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