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 불륜 방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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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野OL不倫放火殺人事件. '히노 OL 불륜 방화 사건'이라고 한다.
1993년 일본에서 일어난 불륜녀에 의해 불륜남의 두 아이가 희생된 사건.

1 개요

도쿄 히노시에 살던 당시 31세의 하라다 유키히로(原田幸広)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당시 27세인 부하 직원 키타무라 유키에(北村有紀恵)와 불륜을 하고있던 사이로, 여성이 남성의 부인에게 관계가 발각되어 원한을 품은 나머지 부부의 두 아이를 살해하고 자택에 불을 피워 방화를 저질렀다.

2 사건 일지

1993년 12월 14일 오전 6시께 하라다 유키히로는 출근을 위해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고 집에는 6살 딸과 1살 아들이 남아있었다. 사건의 범인인 키타무라 유키에는 두 부부가 외출한 타이밍을 미리 알고있었으며 그들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소유하고 있던 열쇠로 5층에 위치한 아파트에 침입, 가솔린이 가득찬 물통 5개를 바닥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피웠다. 그 순간 폭풍이 일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나 현관까지 날아간 범인은 정신을 잃었으나 의식을 되찾고 곧장 도망나왔다. 불은 삽시간에 번져 집 전체가 전소되었고 두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6살인 딸은 두개골이 깨져 대뇌가 보일 정도였고 양 팔이 불타 없어졌으며 1살인 아들은 양 팔과 하반신이 모두 불타 사라졌다.

범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폭발로 인해 입은 상처를 스스로 치료한 뒤 카와사키시의 병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이 병원 기록을 토대로 그녀가 범인이란 증거를 붙잡을 수 있었다. 결국 수사가 좁혀오게 되어 초조해진 그녀는 경찰에 자수하여 체포될 수 있었다.

3 불륜의 경위

용의자 키타무라 유키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전기 회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직속 상사인 하라다 유키히로를 만났는데, 최초엔 부하와 상사의 관계였지만 그의 부인이 유산하여 힘들어하는 걸 용의자가 위로해준 걸로 두 사람의 사이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그는 유부남이며 자식이 있었고 그 사실을 서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개의치않고 잦은 데이트를 하고 성관계까지 갖는 불륜 관계를 지속했다. 하라다는 키타무라에게 "원래 지금 부인같은 타입과 결혼할 생각은 없었어. 사실 도쿄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어.", "부인이 죽지않을까, 교통사고로 어떻게 되면 좋지않을까 많이 생각해", "부인과 헤어지고 혼자가 되면 아이는 기를 수 없으니까말야"라는 얘기를 했다고하며 그때부터 키타무라는 그와의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이 임신을 하게되고 육체관계만 갖는 자신에 비해 임신을 한 부인에게 강한 질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피임을 거부, 이윽고 키타무라도 임신을 하게된다. 임신 사실을 그에게 알리자 그는 "머지않아 부인과 이혼하고 너와 결혼할 생각이야"라고 답했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똑같은 천하의 개쌍놈

하라다는 얼마되지않아 바로 시기가 안좋으니 임신중절을 해달라고 요구하여 낙태를 하게된다.

1년뒤 또 다시 두번째 임신낙태. 부인은 첫째와 둘째를 출산할 때 요양을 위해 친가에서 머무른 사이 하라다가 키타무라를 집으로 데려와 동거 생활을 했는데, "내년엔 아내와 이혼하고 꼭 결혼하겠다"고 말했으나 이것도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는 내년이 되어도 이혼에 대한 뉘앙스만 풍기며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하라다는 처음부터 이혼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키타무라는 자신을 성적 도구로만 보는 그에 대한 실망과 원한이 커져만 갔지만 불륜은 쉽사리 청산할 수 없었다. 회사의 소프트볼 대회에서 임신하여 배가 불러있는 부인과 대면하게 되었는데 그녀의 모습을 본 키타무라는 더더욱 패배감과 충격에 휩싸여 돌아오는 길에 몇번이고 구토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불륜이 부인에게 발각이 되고 부인은 격렬하게 분노하며 위자료를 내고 이혼할지, 불륜을 정리하고 부부 생활을 지속지할지 선택권을 요구했는데 하라다는 후자를 택했다. 부인은 그 사실을 용의자에게 전함과 동시에 강하게 비난. 키타무라는 사죄를 했지만 점점 아이를 낳은 부인과 아이를 뗀 자신을 비교하며 악감정이 끝까지 치닫기 시작했고 '아이를 잃은 아픔을 부인에게도 느끼게 해주겠다'는 보복감에 휩싸였다.

결국 키타무라는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헤치는 돌이킬 수 없는 를 저질렀다.

4 용의자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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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키타무라 유키에.

키타무라 유키에는 1966년생이며 도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때부터 성적은 우수하여 도쿄도립대 이과부 수학과에 합격했다. 어릴적부터는 두뇌명석하고 밝은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왔고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고하나,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도 연애 경험은 한번도 없었다. 1989년 일본 전기(NEC)에 입사한 그녀는 연수를 거쳐 도쿄에 있는 소프트웨어 사업부 네트워크 개발부서로 배정되어 일해오다 상사였던 하라다 유키히로를 만나 금방 사랑에 빠졌다.서로를 '스승', '캐시'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드러났는지 동료는 불륜을 부정하며 충고했지만 임신 중절을 두번이나 하면서까지 그녀는 관계를 끊지못했다.

불륜이 부인에게 발각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부모님에게도 상담하고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소송을 걸려고 했지만 오히려 부인에게 위자료를 줘야하는 가해자 입장이라는 걸 그때가서야 깨달았다.(...) 그 후 일주일간 체중이 격감하고 원한이 폭발하여 살인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다. 사건을 일으키고 자수하기 전날까지도 아무 일 없듯 회사에 출근했다.

5 미디어의 반응

수많은 매스컴들은 사건의 경위가 밝혀지자 용의자와 불륜을 저지른 하라다 요시유키에게 커다란 비난을 보내고 용의자를 피해자라고 두둔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또한 부인이 용의자를 정신적으로 몰아갔기때문에 원인과 책임이 있다는 편파적인 보도까지 줄창 내보내며 용의자를 동정했기에 아무 잘못없이 집이 불태워지고 아이 둘까지 잃은 부인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사스가 불륜국

6 경찰의 대응

사건이 발생한 뒤 경찰은 키타무라를 용의자로 추정하면서도 유죄 판결을 받을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해 체포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병원 기록이 증거가 되어 조사가 좁혀오고 자신의 부모에게 자수를 설득받아 사건이 두달 지난 2월 6일 오후 스스로 자수했다.

키타무라의 변호인은 '범죄, 폭력, 파괴적인 성격, 감수성과 생각의 편향이 전혀 없었던 용의자가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하라다 유키히로에게 속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사건의 원인'이라 주장하며 정상참작에 따른 감형을 요구했다.

지법과 고등법원, 최고 지법도 그 뜻을 인정하고 하라다 유키히로를 도덕적으로 비난했지만 그의 책임은 묻지않았다. 1995년 11월 부인인 하라다 쿄코씨는 키타무라에게 1억 1300만엔의 민사 소송을 냈으며 "그녀에게 지불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그녀를 불쌍한 여자라고 말해도 나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용의자의 부모는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아파트 주민 9세대에 200만엔을 보상하고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하라다 쿄코씨에게 1500만엔을 배상하게 되었다.

2001년 7월 17일 최고 지법은 키타무라 유키에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7 그 밖에

2010년에 방영된 이노우에 마오나가사쿠 히로미 주연의 드라마 '8일간의 매미(八日目の蝉)'의 내용이 현 사건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있다.
같은 회사에 다니던 남녀가 불륜으로 아이를 가지자 낙태, 남자의 부인은 아이를 낳고 원한으로 불륜남의 집에 불을 낸다는 내용이 일치한다. 실제 사건의 인물들과 연령도 비슷하며 드라마의 배경이 된 타마가와시는 사건 배경인 히노시와 아주 가깝다는 점이 있다. 다른 점은 드라마의 여성은 아이들을 유괴했지만 살해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8년 극작가 노다 히데키가 THE DIVER에서 사건을 극화하여 일본영국에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