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키(구축함)

아카츠키급 구축함
아카츠키히비키이카즈치이나즈마

600px-Hibiki_II.jpg

1 함생

1.1 태평양 전쟁

제6구축대의 기함으로서 남방작전에 참가, 필리핀 침공 등에서 병력수송선을 호위했으며, 이후에도 호위임무를 자주 맡게 된다.

카스가섬 침공 작전 중에 미군의 카탈리나 비행정의 공격을 받아 직격탄 1발과 지근탄 3발을 맞아 침몰위기를 맞았고, 응급수리를 끝낸 후 귀환하다가 파도에 맞아 함수가 부러졌다(...) 겨우 귀환한 후에는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가느라 과달카날 전투에 불참했고, 수리가 끝난 후에는 기무라 마사토미가 지휘하는 카스가섬 철수작전에 참가했다. 이 작전은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1943년 8월, 훈련중에 아군의 어뢰 1발을 맞는 사고를 당했지만 수리한다. 이후에는 수송함대 호위에 종사하지만, 1944년 5월 14일에 이나즈마가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격침되었고, 히비키는 생존자 125명을 구조한다. 이후 제6구축대는 해체.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제1수송함대에 소속되었으나, 미군의 공습으로 전사자 2명(일본측 주장은 4명)을 기록한다.

1944년 9월 6일, 수송선 호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아군 수송선이 기뢰에 접촉, 침몰한다. 히비키는 생존자 구조를 위해 피해현장에 접근하지만, 수송선 함수가 폭발하면서 히비키도 좌현이 대파되는 손실을 입는다(...) 역시 악운함 히비키의 피해 원인은 미군 잠수함과 기뢰 등이 거론되고 있다. 피해를 수리하던 중 11월에 배에 이질환자가 발생했고, 미군의 공습으로 또 피해를 입고, 수송함의 호위를 맡아 요코스카로 돌아오지만 이질환자가 대거 발생했기에 호위임무를 포기하고 단독으로 귀항한다. 혼자 남겨진 수송선은 단독으로 항해하다 미군에게 걸려 격침.

1945년, 히비키는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의 오키나와 특공작전에 참가하지만 기뢰에 충돌해서 대파, 작전에서 제외된다. 이후에는 경비함으로 지정되어 니가타항을 지키다가 종전을 맞이한다.

전공보다는 얻어터지는 이야기만 자꾸 나오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다

1.2 전후

무장을 철거하고 비무장함으로서 잠시 귀국선으로 활동하다가 1947년 7월 5일 소련의 나홋카 항에서 소련에 배상함으로 넘겨졌으며, 동월 7일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함대 제 5함대에 편입되었다. 소련 해군에 편입됨에 따라 함명을 베르니(Верный)- 신뢰 할 수 있는 -[1]로 바꿨다.
동월 22일, 130mm 주포 6문, 25mm 기관포 7정, 12.7mm 기관총 4~6정, 533mm 어뢰 발사관 6기의 소련제 무장로 재무장하고 현역함으로 활동하다가 소련에 넘어온지 1년만인 1948년 7월 5일에 데카브리스트(Декабрист)로 재명명되면서 무장을 철거,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근대화 개수 계획이 잡혔으나 폐기되었고 1953년 2월 20일 노후화로 퇴역했다.독일 순양함 뉘른베르크는 53년에 연습함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독일배가 좀더 튼튼했나 보다.
퇴역 후에도 선체는 바로 스크랩하지 않았는지 1970년대 소련 해군 항공대의 표적함으로 사용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카람진 섬 근해에 가라앉았다. 이는 대만으로 넘어간 유키카제가 1966년 퇴역하여 일본으로 반환하려다가 69년 태풍으로 인해 침수되어 71년에 최종적으로 스크랩된 것보다 이후의 일로, 함체의 수명 자체만을 보면 훨씬 더 오래 살았다.

더 자세한 정보는 영문위키 히비키일본어위키 히비키 참조.

2 매체에서의 등장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히비키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자세하게 말하면 신뢰보다 좀더 높은 표현이다. 거의 충성스러운이라고 번역해도 될 정도
  2. 다만 전투함으로써의 퇴역 자체는 히비키가 훨씬 빠르다. 히비키는 1948년에 퇴역, 유키카제는 1966년 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