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급 전함

제2차 세계대전기의 일본군 군함
전투함
구축함이소카제급, 미네카제급, 카미카제급, 무츠키급, 후부키급, 하츠하루급, 시라츠유급, 아사시오급, 카게로급, 유구모급, 시마카제, 아키즈키급, 마츠급
사쿠라급, 카바급, 모모급, 나라급, 모미급, 와카타케급
잠수함L급, 해중형, 해대 1형, 해대 2형, 해대 3형, 해대 4형 해대 5형, 해대 6형, 해대 7형, 순잠 1형, 순잠 2형, 순잠 3형, 순잠 갑형 순잠 을형, 순잠 병형, 순잠 정형, 센토쿠급, 키라이센급, 갑표적, 삼식잠항수송정
경순양함텐류급, 쿠마급, 나가라급, 센다이급, 유바리, 아가노급, 오요도
중순양함후루타카급, 아오바급, 묘코급, 타카오급, 모가미급, 토네급, 이부키급
순양전함B-40, 공고급, 아마기급, 13호급, B-65
전함카와치급, 후소급, 이세급, 나가토급, 카가급, 키이급, 후지모토 전함 계획안, A-140, 야마토급, 슈퍼 야마토급
경 / 개조 / 호위항공모함호쇼, 류조, 쇼호급(쇼호-즈이호), 류호, 히요급(히요-준요), 치토세급(치토세-지요다), 신요, 다이요급, 카이요, 시마네마루급-야마시오마루
정규항공모함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 쇼카쿠급, 운류급, G18, 다이호, 카이다이호, 시나노
수상기모함노토로, 카모이, 아키츠시마, 미즈호급, 닛신
강습상륙함아키츠마루급, 쿠마노마루
연습함 / 포함카토리급, 하시다테급, 아타다C
어뢰정치도리급, 오오토리급, 제1호형 어뢰정, 갑형 어뢰정, 을형 어뢰정
해방함시무슈형, 에토로후형, 미쿠라형, 히부리형, 우쿠루형, 제1호형, 제2호형
군수지원함
공작함아카시, 아사히
급유/급탄/급병함시레토코급, 온도급, 카자하야, 하야스이, 타카노급, 하리오급, 무로토급(급탄함), 카시노(급병함)
급양함마미야, 이라코
상륙함정신슈마루, 대발동정, 제101호형 수송함
잠수모함진게이급, 타이게이
잡역선아스카C, 아타다C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C: 노획 함선, 윗첨자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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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 태국
독일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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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 제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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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건조시(1941년)최종사양(1945년)
기준배수량65,027t유지
만재배수량71,659t유지
전장263m유지
전폭38.9m유지
흘수선11m유지
추진력150,000shp유지
보일러로호함본식 보일러 12기유지
터빈함본식 증기터빈 4축 4기유지
스크류3엽 프로펠러 방식 스크류 4기 (직경 6m)유지
속도27knots (50㎞/h) (통상시), 29knots (과부하시)유지
항속거리16knot (30㎞/h)로 7,200해리 (13,334㎞)유지
승조원2,500명 (정규인원), 2,800명 (최대수용인원)유지
주포460㎜ 45구경장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유지
부포155㎜ 60구경장 3연장 부포탑 4기 (총 12문)155㎜ 60구경장 3연장 부포탑 2기 (총 6문)
대공포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12기 (총 24문)
대공기관포25㎜ 3연장 기관포좌 8기 (총 24문)25㎜ 3연장 기관포좌 52기,
25㎜ 단장 기관포좌 6기 (총 162문)
대공기관총13.2㎜ 2연장 기관총좌 2기 (총 4문)유지
소나영식수중청음기(패시브 소나)유지
장갑주포탑 전면 660㎜, 측면장갑 410㎜,
갑판장갑 226.5㎜, 함교 500㎜
유지
함재기수상정찰기 7대, 캐터펄트 2기 장착유지
건조비용약 137,802,000엔 [2]

2 개요

실전최강 전투기대전 S1 E06 야마토 전함과 세기의 공중전월드 오브 워쉽 - 해군의 전설 : 일본 야마토 전함

구 일본 해군이 건조한 전함이며, 일본군 해군의 확장을 옥죄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이 기어이 조약의 제한을 무시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다. 크기나 배수량만 봐도 현대의 대형 크루즈선에 필적하다.

초도함 야마토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기 직전부터 건조를 시작해, 전쟁이 일어난지 얼마 후에 진수, 취역했다. 야마토는 그야말로 거함거포주의의 극에 달했다고 할만한 전함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고 이제는 깨질 이유도 없는 공전절후의 46㎝ 함포를 탑재한 전장 263m, 전폭 38m의 거대전함으로 이 거함에 맞먹는 덩치를 지닌건 영국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정도이다

실제로 야마토의 승조원이었던 해군 장교 이시다 나오요시의 증언에 의하면, 함내에서 길을 잃을 때를 고려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를 알려주는 화살표가 함내 곳곳에 있었다고 한다.[3] 게다가 두터운 방어장갑 덕에 기준배수량만 6만5천여톤, 만재 배수량이 7만톤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이 배수량 기록은 1950년대 말 미국이 현대식 대형 항공모함인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을 취역시킬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4]

한자까지 똑같기 때문에 보통 일본의 고대 국가 야마토의 이름을 딴 전함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번국 가운데 하나인 야마토노쿠니(大和国, 지금의 나라 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 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의 어원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따왔다. 참고로 일본해군의 전함 명명법은 옛 일본의 번국에서 따온다.[5] 그 예로 나가토나 무츠도 번국의 이름이었다.[6] 얘들이 하도 야마토혼 타령을 해대니 헷갈릴 만도 하지..

하지만 안습한 함생의 이력에 비추어 여객선이라고도 불렸으며, 실제로 태평양 전쟁 기간중 야마토는 취역 이후 자매함 무사시와 함께 트럭섬에 거의 쳐박혀있어서 일본 해군 장병들은 대화여객 야마토 호텔이라고 부르면서(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호텔체인 이름에서 따온) 조롱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무사시도 무장운수 무사시 료칸(여관)으로 불렸다.

3 동형함과 건조계획

일본이 해군 조약에서 탈퇴한 뒤 구식화된 자국 전함전력의 질 향상을 꾀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 이 야마토급 전함. 당초에는 총 8척의 건조가 계획되었고, 야마토급의 완성에 따라 이전 함급이었던 공고급,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은 모두 스크랩. 나가토급은 연습전함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문제와 전쟁발발 등으로 인해 실제로 군함으로서 완성된 것은 3척[7], 전함으로서의 야마토급은 단 2척에 불과했다.

야마토의 원형인 A-140 디자인의 여러 안들. 공식 설계는 아니고 히라가 유즈루 개인 설계와 해군의 연구 설계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A-140 디자인 중 함수에 주포탑 3기를 집중배치한 안의 가상사진

야마토의 최초 건조 계획은 A140 설계안이라 명명되었으며, 실제 건조된 야마토보다 더 무거웠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A, D[8], G형 디자인에선 화력 집중을 위해 넬슨급 전함 처럼 주포탑 3기를 모두 함수쪽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토네급의 주포배치가 전방집중형이 된 것은 야마토의 이러한 설계안을 실험제작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외에 설계안에 따라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안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계획상에선 출력도 20만 마력에 속도는 30노트로 충분히 고속전함이라 불릴만 한 수준이었고 배수량은 68,000톤으로 계획되었다.

3.1 1~4번함(이름: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111호함(예정함명:키이))

이 설계계획에 따라서 1937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해서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1년 12월 1번함 야마토가 1942년 8월에는 2번함 무사시가 취역했다.

그 덩치에 걸맞게 건조비도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퍼먹었는데 야마토급의 건조비용은 당시 금액 기준으로 1억4287만엔(시나노 기준)으로 이는 당시 일본의 국가예산의 1% 수준이며, 당시 일본의 교사의 월급이 50엔인걸 감안하면 현대기준으로 1척에 적어도 1조엔(10조원)씩 쏟아붓는 엄청난 금액이였고 이것은 야마토 단 한 척으로 일본의 고속철도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전체 구간을 건설가능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다른 일본의 대형함들과 비교해보자면,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당시 금액으로 8500만엔, 다이호가 1억엔, 운류급 항공모함이 9000만엔[9]. 일본군/문제점 폭주하는 군사비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건함경쟁이 있을당시 47%대까지 증가하던 군사비가 워싱턴 해군조약이후 28%대로 급락하는 것만봐도 전함건조가 국가재정에 얼마나 압박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전쟁으로 일본경제가 개판이 되고 더불어 미드웨이에서 일본군 항모들이 용궁으로 강제전입해버리자 1940년부터 만들어 45년에 취역하려던 야마토급의 3번째 전함 110호는 1942년 6월에 제작을 중단하고 함포 대신 비행갑판을 깔아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는데 이것이 항공모함 시나노(信濃)다. 이때 선체는 45%정도 건조 중이었고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항공전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건조에 필요한 인력과 작업공간의 부족 및 예산의 심각한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일본해군 : 지금이라도 건조에 필요한 자원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대장성: 지금 니들 때문에 인플레이션이다.

4번째 야마토급 전함[10]인 111호함은 30% 정도 선체가 건조 중이었는데, 1941년 12월에 건조 취소 명령이 내려졌다. 이쪽도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예산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나마 111호까지는 선대에서 건조중이었고, 부품도 일부 만들어진 상태라서 111호용의 부품과 자재는 야마토급 전함의 수리 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시나노의 건조에 사용되었다.

3.2 5번함 (개 야마토급)

5번째 야마토급 전함인 797호함[11]은, 야마토의 155㎜ 부포를 완전히 없애고 100㎜ 대공포를 다수 장착하는 설계였다. 대공화력을 강화한 전함이었지만 이 전함의 건조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이유는 역시 예산의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선대에서 건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건조를 위해 준비했다가 남은 자재는 역시 시나노 등 다른 함선의 제조에 사용되었다.

현측장갑과 갑판장갑을 각각 400, 190mm로 야마토급에 비해 10mm 줄어들었지만 함저의 방벽은 이중에서 삼중으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주포를 50구경장로 바꾸는 방안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 참조.

3.3 6, 7,8번함 (초 야마토급)

6, 7,8번째 야마토급 전함, 일명 798호함과 799호함은 초 야마토급으로 불리기기도 하며, A-150 전함 설계안에 따라 만들어지려 했으나 예산 낭비로 판단되어 취소되었다.

4 대단한 스펙

거함거포주의의 극한을 추구했으며, 당시 일본의 기술력을 집대성해서 만든 물건인지라 적어도 카탈로그상에서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4.1 구조

기존의 전함들을 운용하면서 생겼던 문제점들을 뒤늦게나마 야마토급의 설계에 적용시켰기 때문에 기존의 일본군 전함과는 달리 의외로 개선점이 몇 보인다.

  • 최대급 전함이지만 성능에 비해서는 작다 -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큰 전함이면서도 18.1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치고는 작게 설계되었다. 애초에 설계 당시에는 모든 성능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야마토의 실제 배수량보다 15,000t ~ 20,000t의 배수량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최대한 최적화 및 신규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과도한 건조비용과 엄청난 자재량을 절감하고, 건조시간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일본내에서는 최대급 전함이면서 동시에 최소화를 지향한 전함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바꿔 말하면 없는 자원을 쥐어짜서 18인치급에 턱걸이를 시도했다고 할 수도 있다.
  • 3연장 주포탑 채택 - 기존의 일본 전함은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12] 2연장 주포탑만 사용이 가능해서 열강의 주요 전함처럼 주포문수를 12문 정도로 유지하려면 후소급처럼 주포탑을 무려 6기나 탑재해야 했고, 야마토가 등장하기 전의 일본군 최대이자 최강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가토급 전함조차도 주포를 8문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4기나 탑재해야 했다. 하지만 야마토를 건조하면서 일본도 마침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됨으로서 주포를 9문이나 탑재하지만 주포탑은 3기만 탑재해도 괜찮았다. 이로 인해 중량절감과 방어력 상승, 여유공간의 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본래 전함 배수량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게 바로 그 특유의 대구경 주포와 중장갑이라는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리하여 결과적으로 다른 함선으로 치자면 최대 주포탑 3기 분량의 배수량이 전부 함체의 여유 배수량으로 흡수되었기에 장갑이나 다른 시설을 여유롭게 강화할 수 있었고 후술할 개량에 필요한 배수량도 넉넉하게 확보됐다.
  • 연돌의 집중화 및 위치선정 최적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연돌이 2-3개라서 항해시 매연으로 인해 함교의 시야가 가리는 등의 부작용이 있는데다가 공간도 많이 차지하므로 개장시마다 연돌을 1개로 정리하는 추가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야마토에서는 아예 연돌을 1개로 집중화하고, 함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후방에 경사형으로 설치함으로서 매연으로 인한 시야감소를 최대한 억제했다.
  • 360도 선회식 부포탑 도입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제1차 세계대전의 유물인 포곽식 부포를 보유했는데, 이런 방식의 부포는 측면장갑에 구멍을 뚫으므로 방어력 하락이 발생하고, 포신의 상하좌우각도 조절에 엄청난 한계가 있으므로 대공사격이나 장거리 사격이 불가능한데다가, 포곽의 특성상 후방부를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부포 포곽중 한개만 포탄이 관통하는 사태가 발생해도 유폭이 퍼지기 때문에 해당 측면의 모든 부포가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어서 전투력이 격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야마토에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부포는 독자적으로 선회및 부양이 가능한 부포탑에 탑재해서 부포의 숫자도 줄이면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게 되었다.
  • 대공무장의 강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주포탑의 과대 적재로 인해 대공무장을 탑재할 공간이 크게 부족해서 적군의 항공세력에 매우 취약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주포탑을 3기로 정리하고 적절한 위치에 탑재함과 동시에 배수량 측면에서도 대공화기의 장착에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200여문에 가까운 대공무장을 탑재해서 일본군 전함중 가장 대공방어능력이 높았다.
  • 함체의 성능향상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구식 구조라 속도 향상을 위해 나중에 함체의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으나, 야마토는 구상함수를 처음부터 채택하고, 함체 구조도 포격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저항이 적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속도인 27노트가 가능했다. 또한 어뢰 공격을 막는 벌지도 최대한 많이 붙이면서도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다른 개장 함선처럼 벌지를 더덕더덕 붙여서 속도가 크게 감소되는 일을 막았다.
  • 각종 시설의 첨단화, 고급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공간부족과 여유 배수량 부족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데다가 그 성능도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승조원이 거주 및 전투하는데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데다가 전함의 전투능력 자체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야마토는 내부 시설을 확충하고, 레이더 등 첨단 시설도 설치하여 전투력 향상과 장병 복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4.2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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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즈키급 구축함 1척(…)과 맞먹는 주포탑 1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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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인 18.1인치 주포탑과 여타 실존/비실존 병기들과의 크기 비교(…)
길이만 해도 2m에 달하는 거대한 포탄.
맨 왼쪽과 가운데의 탄두가 날카로운 형태의 포탄이 각각 91식 철갑탄과 그것의 개량형인 1식 철갑탄이고 오른쪽의 뭉툭한 탄두를 가진 포탄이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 맨 오른쪽의 깡통을 쌓아둔 모양의 물건은 장약이다.
포탑의 작동 모습

그 압도적인 규모에 걸맞게 탑재한 무장도 일본은 물론 열강의 주력 전함과 비교해도 '일단은'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그럼뭐해 맞질않는데

우선 야마토의 주포는 대외적으론 18인치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18.1인치이다. 1인치가 2.54㎝이니 18인치는 457㎜이며, 야마토의 주포는 정확히 460㎜이므로 18.1인치가 맞다. 이는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조약상의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는 물론이고 기존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6인치조차 넘어선 것으로, '함선에 장착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포로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구경과 그리 큰 격차라고는 못하는 것이 2위가 겨우 0.1인치 작은 18인치 포이기 때문이다(...) BL 18인치 Mk 1이라는 영국의 함포인데, 전함에 쓰인 것은 아니고 HMS 제너럴 울프라는 모니터함HMS 퓨리어스라는 순양전함에만 장착되었다. 심지어 실제 탄두의 중량은 더 무거웠다고..

함선으로만 한정하는 이유는 지상 병기중에서는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800㎜)를 비롯하여, 칼 자주박격포(600㎜), 리틀 데이비드(914㎜, 36인치), 차르 대포(890㎜)같이 전함조차 한수 접어주는 흉악한 구경을 가진 괴물 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량에 연연할 필요가 그다지 없는 대구경 열차포나 구식 화포였기 때문이었기에 운송과 발포가 가능했다면 구경은 딱히 상관이 없었다. 당장 열차포는 주로 쓰이는게 보통 중순양함 급인 구경 240㎜ 급이었고 좀 더 화력이 필요하다면 전함 급인 300㎜나 400㎜ 급도 소수나마 제작되어 쓰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의 건조에 있어서 매우 공을 들였기 때문에 미국 등 해군열강이 기존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넘는 전함 건조의 동기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표면상으로 '94식 40㎝ 포'라는 명칭을 붙여서 15.7인치 주포라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40㎝이라고 쓰고 18.1인치라고 읽는다. 덕분에 미군은 이 46㎝포의 존재를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나 깨닫게 되었고[13], 심지어 야마토에 탑승했던 일본군 수병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야마토의 포를 40㎝로 알고 있었다는 모양.

물론 18.1인치 대포라는 당시 해군 조약이고 표준 규격이건 뭐건 다 씹어먹는 괴물같은 물건이 당연히 기성품으로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이 자체적으로 비밀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주포 제작에 새로운 방식의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긴축법(自己緊縮式, Autofrettage)이라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포신 내경을 구경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가공해 포신 내부에 고압의 압축수를 채워 가압을 시키면서 내경을 팽창시킨다. 이렇게 하면 포신에는 내경을 수축시키려는 응력이 발생하여 잔류된다. 이 잔류 응력은 포탄이 발사될 때, 폭압에 의해 팽창하려는 응력과 반대 방향의 응력이며, 결과적으로 포신에 걸리는 응력이 상쇄된다. 이로 인해 같은 재질에서도 포신 두께를 얇게 할 수 있어 제작비용 및 중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초기에는 영국으로부터 습득한 소감식(焼嵌式, shrinkage fit) 방식의 포신 제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포신을 내통과 외통으로 2층 구조로 하여 외통을 가열해 열팽창시킨 상태로 내통을 집어넣어 급냉시키고 외통이 수축시켜 단단히 조인 상태로 고정된다. 이것은 중소형 포신의 제조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구경 함포의 경우는 강선식(鋼線式, gun wire) 포신 제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소감식과 같은 방식이나 내통의 표면에 건와이어(gun wire)로 불리는 강선을 고장력을 걸친 상태로 감아서 외통을 씌우는 타입으로 주로 대구경 포신의 제작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 제작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결합된다. 일단 94식 45구경 46㎝ 포신는 안쪽으로부터, 1A 내통, 2A 강통, 3A 강통, 4A 건와이어, 5A 강통의 5개의 레이어 구조였다. 각각의 강통은, 소감법을 이용해 압축 응력을 갖게 하여 기본적으로는 소감식 포신이지만 강선식(鋼線式)과 자긴식(自緊式)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참조로 건와이어는 두께 1.5875㎜, 폭 6.350㎜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만들기 위해 당시의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란 기술력은 총동원된 것이다.

전함용 3연장 주포탑을 일본제국 최초로 채택한 덕분에, 타국의 전함들도 겪었던 주포의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았다. 실제로 일본군의 다른 전함보다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한다.[14] 이후 초기의 1km에 달하는 산포계는 전쟁 중간의 개선으로 전후 US Naval Technical Mission to Japan report O-45(N) Japanese 18” Gun Mounts에 있는 기록에 따르면 최대 사거리(약 40km) 일제사격에서 500(457미터)~600야드(548미터) 정도로 적절하게 낮은 산포계였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다른 주포들처럼 어느 정도 개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문서 정황상 이 기록은 실제로 문서화된 기록을 참조한 것이 아니라 야마토 침몰당시 포술사관이었던 쿠로다 대좌의 인터뷰를 참조한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가키 마토메의 전중일기인 전초록에는 이 3연장포에 대해 당초에는 엉망이었으나 이후 개량한 결과 괜찮아졌다는 언급이 있다.

건조 도중에는 물론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실제 스펙에 대한 정보를 기밀처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전쟁이 끝날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존재나 스펙을 감추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일본이 신형 전함을 건조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주포 구경이 18.1인치인 줄은 몰랐고, 일본 신형 전함에 맞서 건조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여 "16인치 주포를 탑재할수도 있는 14인치 포격전함"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함대결전사상에 따라 일본군이 생각한 함대결전에서는 미국의 전함중 어떤 전함도 1대 1 승부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다.

부포도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기적이라고 볼 수 있는 155㎜ 60구경 3연장 포탑인데, 해당 포탑과 함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탑재한후 잘 쓰인 물건이며, 나중에 모가미급 순양함이 진정한 중순양함이 되기 위해 8인치 주포탑을 탑재할 때 8인치 주포탑이 발사속도, 사정거리, 명중정도에서 모두 불리하므로 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성능이 우월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60도 선회포탑인데다가, 함체 중심선상에 배치되므로 기존의 다른 전함처럼 적이 한쪽 측면으로 붙으면 다른 쪽 부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를 막고, 적은 부포수량으로 충분한 방어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쓰였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개량을 추가로 해서 장착했고, 나중에 대공포 증설시 철거되지만 함체의 양 측면에 동일한 부포탑이 1기씩 총 2기가 추가 탑재되었으므로 건조 당시의 부포 화력은 어떤 일본군 전함보다 우세했다.

대공포의 경우에도 초기부터 탑재수량이 많았던 데다가 필리핀 해 해전이후 날로 증강되는 미군의 항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을 거듭한 결과 나중에는 200여문에 가까운 수량을 탑재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함에 가장 좋은 대공포를 탑재하므로 대공능력면에서는 함재기를 자신의 엄호에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의 어떤 함선보다도 뛰어났다.

4.3 장갑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구분상세(단위는 ㎜, 장갑판의 종류)
현측 주장갑200 - 410 VH
횡(横)측 방어격벽중갑판 함수부지역 340 MNC, 하갑판 지역 300 MNC, 중갑판 함미부지역 340 VH, 하갑판지역 350 VH
갑판장갑중갑판 200 - 230 MNC, 최상갑판 35 - 50 CNC
어뢰방어격벽50 - 200 NVNC-CNC
주포 탄약고갑판평탄부위 200- 230 MNC, 갑판경사부위 230 MNC, 수직부위 100 - 270 VH, 바닥 50 - 80 CNC
장갑함교측면 380 - 500 VH, 상면 200 MNC, 바닥 75 CNC, 통로 300 MNC
주포탑전면 660 VH, 측면 250 VH, 후면 190 NVNC, 상면 270 VH, 바벳 380 - 560 MNC
부포탑포방패 25 HT, 바벳 25 DS + 50 CNC
조타 기계실상면 200 MNC, 측면 350 - 360 VC
연통380 MNC

야마토급 전함의 또 하나의 장점은 장갑, 그것도 엄청난 떡장갑이다. 기준 배수량만 아이오와급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배수량 답게 주포 포탑의 전면장갑 두께부터가 무려 660㎜(!) 측면장갑은 410㎜, 즉 16.1인치. 그것도 경사장갑이었다. 갑판은 상부 200㎜, 하부 226.5㎜로 8인치급의 더러운 떡장갑을 자랑했다. 그리고 포탑의 전면장갑이나 현측의 측면장갑등 중요부위에는 NVNC(New Vickers Non-Cemented)강이라는 특수강을 적용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전함들이 가장 두꺼운 곳도 13인치 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얇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주포탑 천장에 250kg 급의 폭탄이 떨어져도 관통이 안되었고 외부에서 폭발했지만 전혀 손상이 없었다.정작 최후의 순간엔 주포장갑은 도움이 안되었다. 이뭐병

그리고 이전까지 사용해온 VC강철의 제조 과정은 무쇠 → 용해 → 압연 → 침탄 → 표면 담금질이며, VH강철은 상기의 침탄 작업을 생략한 표면 경화층만의 장갑판인데 반해, NVNC강철은 침탄 이후의 작업을 생략한 균질압연장갑이면서도 특수강이었으므로 생산공정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시간절약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방어력을 증대하는 데 성공하였다.

어뢰에 대한 대응면에서도 벌지를 처음 건조시부터 장착해서 나중에 벌지를 추가한 전함처럼 덕지덕지 붙은 벌지가 함선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현상을 겪지 않았으며, 그 양과 질도 스펙상으로는 높은 편이었다. 일본의 제철 기술이 연합군에게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카탈로그 상으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일본이 야마토급 3번함 시나노항공모함으로 개장시키면서 시나노의 포탑 전면 장갑판이 잉여로 남았는데, 2차대전 종전후에 U.S. NAVAL PROVING GROUND(미해군실험장)에서 이 포탑으로 1947년 11월에 관통실험을 벌였는데 그 실험결과는 아래와 같다

* 철강의 재질(PLATE MATERIAL)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 철강의 품질(STEEL QUALITY)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후의 VH강과 동일하지는 않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carbon)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덴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 얇은 표면층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디자인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 결론(CONCLUSIONS)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이 특성은 피탄이 튕겨 날아가면서 생기는 내부의 균열(cracking)로 인해 문제를 일으키겠지만, 어쨌든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실험용 강판 중에는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이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기술자료를 공유하여)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 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미 해군이 실험해본 모든 15.2~20.3㎝ 두께의 강판 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기한 품질이 떨어지는 VH강으로 제작된 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험자들이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7.21"(183㎜) VH 강판은 우리의 표면경화 강판 관련 지식에 의하면 이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일본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t about 40,000 yards, the U.S. Navy 16"/50 firing a 16" Mark 8 Mod 6 AP projectile (the later Mod 7 and Mod 8 designs were post-WWII, so I usually do not count them and they were no better ballistically, to my knowledge) will hit at about 45° downward angle and 1607 feet/second (489.8 m/sec). Just as with a point blank hit at 2500 feet/second (762 m/sec) and 45° obliquity, this hit too will barely hole the plate as the projectile is hitting at 0° (normal) obliquity, though not completely penetrate it. Any slight barrel wear will lower the muzzle and striking velocities and no holing will occur at THESE OR ANY OTHER ranges, as mentioned. However, this is so far above any real fighting range (even with radar it is hard to see the target due to the earth's curvature interfering, especially in any kind of imperfect seeing conditions) that I do not even consider it in my computations, while putting the gun barrel up to almost touching the enemy turret is also a pipe dream in real life! Thus, no holing or complete penetrations, ever, though possibly some cracking of the plate and possible jamming of the turret if the crack-off plate piece is dislodged badly enough.

약 4만야드의 거리에서 미 해군의 16"/50 주포가 Mark 8 Mod 6 AP탄을 발사할 경우 (Mod 7과 Mod8은 대전 이후이며 탄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음) 1607피트/초의 속도로 45도로 떨어진다. 이 경우 0도의 입사각을 가지므로 영거리에서 2500피트/초와 45도 입사각과 마찬가지로 강판에 구멍을 낼 수 있지만 완전히 관통할 수는 없다. 약간이라도 주포에 마모현상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거리에서라도 구멍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만 야드는 실제 교전거리를 아득히 상회하므로 비현실적이며 영거리 사격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에서 구멍이 나거나 완전 관통될 가능성은 없으며 강판에 균열이 가거나, 그 균열로 인해 포탑이 고정될 가능성은 있다.

Therefore, these plates are the only warship armor plates that could not be completely penetrated by ANY gun ever put on a warship when installed leaning back at 45°, as they were in the actual turrets!!! Even to completely hole the plate all the way through at that inclination requires a brand new 16"/50 Mark 7 or German 38cm SK C/34 gun at point-blank range firing the latest versions of their respective AP projectiles; it might be cracked at a lower striking velocity, but no hole put entirely through it! AND THEY SAID GUNS HAD COMPLETELY OVERMATCHED ALL ARMOR--*NOT SO*!!!

결론적으로 이 강판은 실제 탑재된 대로 45도 경사로 설치될 경우, 실존 전함에 탑재되었던 그 어떤 주포로도 관통이 불가능하다. 45도 입사각으로 이 강판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최신 주포인 미국의 16"/50 Mark 7 나 독일의 German 38cm SK C/34를 영거리에서 최신형 철갑탄을 장착하고 쏠 필요가 있다. 더 낮은 속도로도 균열은 갈 수 있지만 구멍일 날 일은 없다. 주포가 장갑을 완전히 능가했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파일:Attachment/650mm-SD-P.jpg
16인치 45구경장 Mark 6[15]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시나노 주포탑의 660mm 전면장갑

4.4 속도

야마토의 속도는 27노트까지 가능하고, 과부하를 걸면 29노트까지 가능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의 최신예 고속전함에는 못미치는 속도지만, 일본은 이미 30노트를 내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이나 있으며, 나머지 전함들의 속도는 개장해서 25노트로 맞췄기 때문에 그 이상 속도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방어력 향상과 손상시 전체 출력이 모두 나가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일러와 기관을 분산해서 보일러 - 기관 - 보일러 - 기관 식의 교차배치를 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최신예 전함들이 하나같이 채용했던 방식이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4.5 시설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전함답게 각종 전투용 장비도 최신예였으며 사통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일단 광학측거의 자체가 15m 측거의로 불리는 물건인데, 렌즈간의 거리가 15.5m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종류의 마이크로미터는 렌즈간의 거리가 멀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일반적인 일본의 전함도 고작 5m급의 물건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의 고급 물건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성품은 있을리가 없어서 일본광학(日本光學)에서 특별히 연구해서 제작한 특제품이며, 이 일본광학이 나중에 니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기준으로 일본에서 광학관련기술을 집대성한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의 개량에서는 레이더까지 탑재했다. 이 개량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의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서 경고를 알려주는 전파탐신기(電波探信機)는 1호3형(1号3型)이 2기가 장착되었고, 대공레이더로는 2호 1형 레이더가 2기, 수상용 레이더로는 2호 2형이 2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항공기면 편대로 비행시 100㎞, 단기로 비행시는 50㎞이었으며, 수상목표물의 경우 전함은 마스트 높은 곳에 레이더를 장착하므로 동급의 레이더로도 35㎞까지 탐지가 가능했다.

공/방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덩치에 걸맞게 승조원들 특히 수병들의 생활 시설 등도 그때까지의 일본은 물론 타국 해군의 열악했던 수준을 벗어나 '해상 호텔'이라 불릴 정도의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당시의 함상 생활은 미국 해군을 제외하면 장교CPO급 되는 상급 부사관이 아닌 하급 부사관과 수병들은 '아무데나 해먹걸고 자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야마토급에는 일본 해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승선하는 모든 수병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주방에는 전쟁 전에 세계의 주요 항로를 오가던 일본의 해운사들이 운용하는 호화 여객선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징용되어 함내의 요리를 책임졌다. 거기다 함장 전용 취사 담당 및 준사관 이상 취사실에는 전기 냉장고가 있었고, 하사관과 수병용 부식들을 위해서 식료품 보관용 대형 냉장고가 있었다고 한다. 냉장고의 용량도 커서 야마토의 식료품 냉장고의 동력은 8만 킬로 칼로리, 50 마력의 터보식 냉동기 4대의 일부였으며 거기에다 식료용 냉장고의 터보식 냉동기는 히타치제였다고 말하는 증언도 있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일본군 육군보다 평균적으로 식사가 좋았다는 일본군 해군에서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식사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에 트럭섬에 해군과 연락차 방문한 대본영 파견참모 츠지 마사노부 중좌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의 면담 후 야마토에서 도미 소금구이와 도미회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대접받아 매우 감격했다는 등 당시 야마토를 방문한 육군 장교들이 야마토호의 식사에 놀랐다는 일화가 많았다고 한다. 전쟁이 말기에 이르른 상황에서도 야마토호의 수병[16]이 "카레라이스가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걸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회고했으니... 카레라이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수병이 먹은 식사는 매운 카레라이스바나나,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사라다였다! 그것도 1944년에!!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하러 갔다 미 해군 항공기들에 격침당하기 전에, 정확히는 점심식사 이전에 전투태세에 들어가면서 전투배식으로 나온 주먹밥 2개를 먹은 승조원도 있고 못 먹은 승조원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침몰한 날의 저녁식사 메뉴로 찰밥 통조림쇠고기 통조림이, 야식으로는 단팥죽이라는 제법 푸짐한 메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야마토호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 당시의 일본은 상황이 악화돼서 기시 노부스케(당시엔 군수차관) 같은 고위 정치인이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자주 먹지 못하는 별미로 손꼽을 정도였고, 일반 국민은 물론, 일본군 중 대부분이 굶주리는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17] 진짜 대단한 일이었다.[18] 그런 호화식단의 결정체가 바로 아이스크림라무네.[19]

당시 일본 해군 내에서 야마토급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던건 마찬가지로 기밀 엄수를 강요받았고 수상함보다 시설이 열악하기에 그만큼 대우는 더욱 후하게 해줬던 잠수 항모 센토쿠급의 승조원들이나 군 병원의 부상자들[20] 정도였으니 사실상 일본 내에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민간 여객선 출신 요리사 말고도 민간인 출신 군속들(이발사 3인, 재봉사 1명, 세탁공 1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출처[21]

또한 야마토는 연합함대의 총기함 역을 수행하다 보니 각종 고관들이 함을 방문할 때가 많았고, 이를 위한 만찬도 빈번했다. 이를 위해 담당 장교는 호텔급 정식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만찬 때는 함의 군악대가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해 줬다고 한다(...) 이는 야마토 이전에 총기함 역할을 하던 나가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연출되었다.

5 문제점

5.1 취약한 부포탑 방어

부포의 경우에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부포탑의 장갑이 너무 약했다. 고작 25㎜라는 엄청나게 얇은 장갑을 자랑했는데, 이 수치는 악명높은 97식 전차의 전면장갑과 수치가 같다. 그러니까 명색이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주적인 전함이나 순양함은 둘째치고 심지어는 구축함의 포탄에도 바로 관통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구축함이라도 최소한 5인치(127mm) 주포 정도는 달고있었으므로 그 압도적인 함체 장갑에는 어쩔수 없지만 꼴랑 25mm 장갑판으로 무장한 부포 따윈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는 소리다. 더 큰 문제는 부포 탄약고와 주포 탄약고가 인접했다는 것으로, 재수없으면 부포탑에 인화된 불길이 주포 탄약고에 옮겨붙어서 걸레짝이 되는 사태가 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도 당연히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염처리를 하고 부포 바벳을 강화했지만 그렇게 한 강화책은 고작 50㎜ CNC +25㎜ DS 정도며, 그나마 포탑부분은 포방패를 포함해서 그냥 25㎜로 유지했으므로 그 정도로는 완전한 대책이 되지 못했다. 참고로 6인치 3연장부포탑을 운용한 리슐리외급은 부포탑정면기준 각각 130mm 45도 경사장갑, 리토리오급은 아예 280mm라는 순양전함 주포탑전면급의 떡장을 둘렀다.

애초에 부포탑의 피탄이 탄약고 유폭등을 불러와 함선의 침몰로 쉽게 이어지는 문제로 인해 타국의 전함들은 일본처럼 운용하는게 화력 집중과 운용에 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포탑을 함체 중심선이나 주포탑 인근에 놓지 않고 일부러 함체의 양 측면에 놓은 것이다. 그렇게 배치하면 동일한 화력을 내려면 부포탑과 부포의 문수가 2배로 필요하지만, 피탄당하더라도 해당 부포탑만의 국부적인 손상으로 끝나며 최악의 경우인 부포탑 연쇄폭발이 발생하더라도 전함의 한쪽 측면 상부만 파손되므로 당장 침몰하지는 않는다. 리슐리외급처럼 한쪽에 주포 한쪽에 부포를 놓는 특이한 경우나 야마토처럼 중심선에 부포를 두는 리토리오급은 최소한 앞에서 말한 장갑대책정도는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측면장갑의 보호를 받고 외부로 노출된 부위는 포탑밖에 없는 측면 부포탑은 대공화력의 증대를 위해 제거하면서, 주포탑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바람에 포탑과 바벳은 물론 탄약고의 일부도 갑판장갑 위에 있어서 측면장갑의 보호를 못받는 선체 중심선상의 부포탑을 남겼다는 문제점까지 있었다. 물론 해당 부포탑도 상부구조물 안에 있지만, 갑판장갑 위에 위치한 상부구조물은 장갑함교같은 일부 특수부위를 제외하고는 장갑이 없다. 적의 공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건 측면으로 날아오건 간에 이를 막아낼 장갑은 부포탑이 가진 얇은 장갑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처참한 경우다.

부포탑과 바벳, 탄약고는 장갑으로 방어된 바이탈파트의 외곽에 위치되어 있는데[22], 이로 인하여 부포탑 및 바벳의 관통에 따른 부포탄약 유폭이 주 탄약고를 인화시켜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부포탑이 폭발해도 탄약고를 방호하는 장갑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실제의 탄약고 폭발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력이 더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이 발생할 경우, 상하좌우의 모든 영역에 큰 압력이 가해지게 되며 선체 전체에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알량한 탄편방어용 내부 장갑판 가지고는 쉽게 막기 어렵다. 영국의 전함은 전함의 주포탄 1발이 장갑을 뚫고 내부에서 작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측면장갑을 엄청나게 강화했는데, 해당 주포탄 1발의 작약량은 잘 쳐주어도 몇십kg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포탑의 작약량은 포탄이 많은 관계로 최소 수백kg 이상이며, 여기에 장약까지 들어가므로 유폭시 위력이 그냥 주포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그리고 야마토의 15.5㎝ 대수상부포는 부포 탄약고로서는 지나치게 대규모였고 이것의 폭발은 장갑영역 외부에 지나치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오후 12시 41분에 베닝턴을 떠난 6대의 헬다이버가 투하한 450kg짜리 철갑탄 6발 중 2발이 야마토의 우현에 명중했다.

<중략>

159번 프레임에 떨어진 1발은 후방 155㎜ 부포탑 천장에 명중하여 자체 탄약고를 폭발시킴으로써 치명적인 유폭과 화재가 발생했다.
포탑 내부의 인원 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했고, 이 폭발로 레이더실과 최후미의 127㎜ 대공포좌도 파괴되었다.
이때 급강하폭격을 마치고 빠져나가던 헬다이버 1대가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었다.

즉, 야마토 후방 부포탑이 급강하 폭격기에서 폭탄을 맞아 포탑에서 1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포탑 탄약고가 유폭하는 일 없이 야마토는 2시간 동안 싸우다가 어뢰를 두들겨 맞아 2시 12분에 통신이 두절되고, 17분에 기울기가 22도까지 늘어난 다음, 23분에 전복되었으므로 주포탑 유폭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위의 문장은 부포탑 지역에 동시에 떨어진 폭탄 2발중 1발의 피해를 고의로 삭제하는 등 상황의 일부만 제멋대로 편집한 물건이다. 실제로는 1번2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은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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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에서 야마토가 받은 공격과 피해
  • 후방 사격관제실과 부포관제실 파손. 이 과정에서 측거기를 포함한 광학조준장비가 몽땅 파손된다.
  • 레이더실 완파. 덕분에 레이더는 그냥 고철로 전락한다.
  • 127㎜ 대공포탑 2기 완파. 그나마 가장 쓸만했으며, 대공화력의 주력을 담당한 127㎜ 대공포탑 12기중 2기가 한번에 고철이 되었다.
  • 후방 부포탑 탄약고 폭발. 엄청난 수준의 화재가 발생했다.
  • 후방 보수반원 전멸. 불을 끌 사람들이 전멸해버렸다.

당장 입은 피해만 추산해도 엄청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후방 부포탑에서 발생한 화재는 보수인원이 전멸하여 아예 손도 못 댔기 때문에 야마토가 침몰할 때까지 소화되기는 커녕 더 크게 번졌으며, 결국에는 3번 주포탑의 탄약고 유폭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해당 보고는 야마토의 지휘부가 퇴함명령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말해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더라도 주포 탄약고 유폭으로 인해 알아서 침몰할 운명이었다. 종합하자면 애초에 해당 위치에 부포탑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측에서는 실제로는 부포 탄약고의 유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야마토의 전투 보고서 상으로는 미군의 1차 공격 당시 떨어진 폭탄이 후방 사격지휘소 부근의 상갑판을 뚫고 들어가 터졌고, 이때 일어난 화재가 후방 부포탑에까지 이르렀지만 부포탑의 탄약고 자체는 무사했던 것으로 돼있다. 애초에 부포탑 탄약고가 폭발했더라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주포탑 탄약고도 무사하지는 못햇을 것이다. (당시 야마토의 피해보고서. 후방 부포탑의 직격은 없는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건 일본만의 기록이라서 교차검증이 안된다. 야마토의 피해를 기록한 『軍艦大和戦闘詳報』는「大和被害経過資料不足ニテ詳細不明」이라는 주석을 달아서 피해 및 경과에 대해 자료부족 및 상세불명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데다가, 최후의 전투 당시 동행했던 제2수뢰전대(第二水雷戦)의 전투상보와도 어뢰명중등에서 차이가 나서 교차검증이 안되는 등 매우 부적합한 자료이다.## 게다가 이 자료에서는 부포탑 날아간 것은 교묘하게 숨기고 있고 폭탄 2발이 낸 피해가 너무 크며, 침몰 직전까지 꺼지지 않은 화재를 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데다가 피해 표시에 대한 도면도 자세하게 표현한 미국의 물건과는 달리 진짜로 대충 그린 물건이다. 따라서 신빙성에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

5.2 부족한 대공능력

대공포의 경우도 숫자에 비해 위력이 약하고 공격에 취약했다. 애초에 일본군의 대공포가 발사속도, 포탑선회능력, 포신부양능력, 명중률, 유효사거리 등 모든 성능이 타국의 대공포보다 떨어진다. 일례로 미국의 함선들은 20mm 욀리콘 기관포로 60발짜리 드럼 탄창을 사용해 별다른 운용 인원 없이 퍼부어대었고 심지어 대전 초기를 벗어나 후기부터는 훨씬 더 고화력의 보포스 40mm 기관포로 VT 신관까지 사용했는데 그러는 동안 일본의 96식 25mm 고각기총은 겨우 15발 들이 탄창으로 탄창이 빠지지 않게 운용인원이 탄창을 붙잡고서 쏘아야 했다. 설계 문제로 진동이 심해 명중률이 떨어진건 덤. 그걸로도 모자라 대공화기를 통합 운용해서 적기에게 일제사격을 한다는 개념이 부족했다. 사격명령이 대충 내려지면 실제 목표 표착과 사격은 사실상 각 포탑과 포좌별로 사수가 알아서 담당하는 구식방식을 채택했으며, 비장갑 노천배치 방식의 대공포가 너무나도 많아서 적 전투기가 기총소사만 해도 대공포가 개박살이 나고 포 조작원이 다수 죽거나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도 비장갑 노천배치식 대공포가 많지만, 대공포의 기본 구조적, 화력성능이 좋은데다가 기본적인 포방패등의 방호수단도 있고, 대공화기를 통합해서 질서있게 운용하므로 가뜩이나 장갑도 얇은 일본군 전투기가 동일한 짓을 하려고 하다가는 먼저 항공모함 함재기들에게 도륙당하며 어떻게든 함재기들을 뚫고 함선의 방공망에 접근해도 일본기의 장갑으로는 대공포에 격추당하는데다 미군의 함재방어 대공포는 기본적인 장갑도 든든하게 구비됐기에 기총소사를 긁어대도 효과가 매우 덜하다.

여기에 더해서 건조 당시에 설치된 대공포좌에는 선체 내부에 통로가 연결되므로 탄약과 부품, 인원보급과 보충을 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행이 가능했지만, 나중에 설치된 대공포좌는 전함의 장갑이 너무 두꺼웠다는 등의 이유로 그런 방식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일단 포좌에 배치된 탄약을 다 써버리면 아무런 엄폐물 없이 인력에 의존해서 포탄을 공급받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적함의 주포탄 포격과 적기의 기총소사가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런 섬세한 작업은 불가능했으므로 전투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탄약부족과 인명 손실로 인해 상당수의 대공포좌가 멈춰버리므로 대공화력이 더 격감된다.

  • 미해군은 지금 기준으로는 초보적이라도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의 도움을 받아 전기식 마운트에 연동된 다연장 대공포좌를 대소 함정에 달아 썼고 대전 후반으로 가면서 호버홀되는 함정마다 개량해 기술과 전술 모두 발전했는데, 일본해군은 그러지 못했고 레이더 개량과 대공무장 보강, 함대방어전술 모두 열악했다. 여기에, 전반적으로 미해군의 중소구경 대공화기 성능이 일본해군의 그것을 압도한 데다 함정당 달아준 수로도 압도적이었다. 대전 말기로 가면 미해군 구축함은 멀쩡한 주포마운트와 어뢰마운트를 대공포좌로 개조했고, 구축함부터 전함까지 5"/38구경장 양용포가 기본이 되었다.

주포의 경우 너무 강력한 나머지 주포가 대공목적으로 3식탄을 발사하는 등의 행동을 하면 섬세한 대공포좌의 조준장비가 망가지는 일이 발생했다. 18.1인치 주포 발사시의 포구에서 폭발풍 압력은 1평방미터 근처 약 8톤 정도로 노출 상태의 인간이나 계측장비는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다고 당시의 일본에서도 위험성을 인식했다.[23] 그래서 주포 사격시 후폭풍으로 인해 비장갑 대공포좌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위험해지므로 발사전에 대피신호가 울리게 되는데, 안그래도 날쌘 비행기를 맞추려고 하다보면 이런 과정이 싹 무시되니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주포의 후폭풍을 맞아서 대공포 조작요원이 개박살나게 된다. 덕분에 무사시가 신나게 공습을 두들겨맞을 때 이런 문제가 현실화되었고, 표류하기 시작할 때 주포 조작요원과 대공포 조작요원간에 충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면 타국은 어떤가 하면... 애초에 주포에 3식탄 같은 포탄으로 대공사격을 한다는 이상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 물론 광학장비의 내구성도 좋아서 주포 사격으로 인한 후폭풍등으로 망가지는 일은 적은데다가 수리 및 보충도 쉬웠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대공용 양용포좌는 모두 기후와 파편을 방어하기 위해서 밀폐된 포탑이었으므로 주포발사의 폭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야마토급 역시 원래의 12.7㎝ 포좌들은 대개 밀폐포탑식이었으나, 나중에 대공화력의 증강을 위해 대규모로 증설된 12.7㎝ 포좌들은 노천개방된 상태였다. [24]

5.3 장갑의 한계

1 야마토급을 비롯한 일본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MNC와 NVNC 강재는 미국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B class장갑에 비해 97%,95% 강도를 지녔다. 또한 측면장갑에 사용된 VH강은 고작 84%수준의 강도를 보인다.2 MNC와 NVNC, CNC등의 강재는 2차대전수준의 고수준의 야금술을 써서 품질상으로 선전했으나 VH같은 경우 1차대전당시의 야금술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균질압연장갑으로는 영 좋지 않은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현측 장갑의 실질적인 방호력은 345mm대로, 16 Inch Mk.7로 현측장갑을 34000야드 부근에서 관통가능할것으로 예측된다.아래로 내리면 관통력 테이블을 살필 수 있다. 36000야드정도에서 갑판장갑의 관통이 예상되는 점에서, IZ(안전지대)가 굉장히 좁음을 알 수 있다. 야마토포에 대한 아이오와의 방호력도 비슷비슷하기떄문에, 결국 둘은 관통대축제속에 누가 먼저 터지나 내기를 하게될 것이다. 야마토의 포탄이 구경이 차이가 나는만큼 충진량이 더 많지만, 분당 발사속도는 아이오와쪽이 우위일것이 분명하기때문에(야마토가 포신을 3도로 내린 후 '장전 완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0초+포신 부앙시간 2~3초*2(10Deg/S)면 한 사이클에 34~6초정도 소모하는 셈이고 아이오와포 규격의 16인치의 '교범상' 발사속도는 분당 2발이며 훈련정도에 따라 더 빠르게 사격하는것도 가능했다.) 둘의 공격력은 비슷하겠지만 레이더와 상대를 압도하는 기관으로 무장한 아이오와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또한 어뢰명중을 예상하고 달아놓은 벌지의 문제가 컸다.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에 명중하여 구멍이 뚫리고 침수가 시작되었다. 일단 피격 지점은 벌지(bulge)뿐이라 정상적인 경우에는 벌지만 손상되고 끝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어뢰의 충격으로 현측장갑의 하단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상부장갑 브라켓이 무너지면서 안쪽으로 구멍을 내는 송곳으로 작용해서 구멍은 더욱 커져 총 3,000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게다가 브라켓이 송곳으로 변하면서 탄편 방어용 세로벽이 찢어져서 3번 주포탑의 상부 탄약고와 기계실에 침수가 일어났지만 탄약폭발은 없었고 야마토는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트룩으로 향했다.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해당 부위에 포탄이라도 맞는 즉시 침수가 시작된다는 이론이 성립돼버린다. 당연하게도 구레항에서 배를 수리하는동안 5천톤 이상의 대어뢰장갑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더 이상 무게증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이래서야 야마토가 만약에 미국 잠수함들이랑 한번 더 마주쳤다면 극적이고 장렬한 대공전투고 뭐고 없이 포 한발 못쏴보고, 후술할 시나노의 허망한 최후를 그대로 따라갔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동형함이었지만 항모로 개장된 시나노의 사례에서 설계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해군 기술 임무 분석가들은 시나노에는 설계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도 선체의 대포탄용 장갑과 수선 아래의 대어뢰 방뢰구역(bulge) 사이의 연결 설계가 문제있었다. 잠수함의 어뢰는 모두 이 연결부위를 따라서 폭발하였다. 게다가 어뢰의 폭발력은 기관실 중 하나의 H형 들보를 밀어냈는데, 밀려난 들보는 두 기관실 사이의 구멍을 내는 초대형 망치가 되어버렸다. 방수격벽 문제도 침몰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는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침수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선하장갑과 벌지의 부적절한 리벳접합 본 링크를 들어가보면 수선하장갑과 벌지를 충격시 지탱해주는 리벳이 실질적으로 겨우 두세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2차대전당시 리벳접합을 사용한 전함이 대부분이므로(아이오와급이나 KGV도 리벳 접합을 사용했다. 당시까지만해도 리벳접합 방법 자체가 잘못된것은 아니다. 야마토급에서 문제가 된것은 그 리벳접합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5.4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의 속도에 대해 일본 해군이 요청한 수치는 항공모함과 함께 발을 맞출 수 있는 30노트였다. 이를 위해 최신 디젤 기관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이 디젤 기관을 실험장착했던 류호가 시도 때도 없이 기관 트러블을 일으키는 통에 디젤 기관 계획은 취소. 엔진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쳐도, 집중방어구획 설계로 제작된 야마토의 경우 트러블을 일으킨 기관을 들어내고 정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정비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디젤 기관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증기 기관을 추가로 장착하는 안이 있었지만, 디젤 기관을 비슷한 규모의 증기 기관으로 변경한 것만으로도 이미 3000톤의 배수량 상승이 일어났는데 여기에 추가까지 할 경우 배수량이 1만톤 가까이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왔고, 당시 함정본부는 천문학적인 건조비의 절약을 위해 기관을 늘리는 선택지를 포기.

그 외에도 함의 길이를 늘리는 설계변경을 통해 30노트는 가능했으나, 이것 역시 집중방어구획이 넓어져 추가 예산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의 대형군함용 엔진인 함본식 로(ロ)호 중유보일러(艦本式ロ号重油専焼罐)와 함본식 스팀터빈(艦本式高中低圧蒸気タービン)은 유럽이나 미국의 1920년대 기술을 답습해서 모방한 수준이었다. 물론 신뢰성이나 작동성능은 다른 일본의 엔진보다 매우 우수하였지만, 아이오와급의 신형 대형 고출력 스텀터빈 및 아이오와급의 보일러가 섭씨 468도에서 증기압력 42kgf/㎠ 를 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같은 다른 미국의 신형전함에 비해서도 이들이 쓰던 보일러는 섭씨 454도에서 증기압력 39.7kgf/㎠ 이므로 엔진성능면에서 열세였다. 그래서 최신기술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안그래도 떨어지는 출력이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마토와 같은 15만 마력을 채용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에 탑재된 보일러는 6기, 그것도 일본해군 구축함용 보일러의 온도 및 압력과 동일한 물건인 섭씨 350도에서 증기압력 30kgf/㎠ 이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보일러가 12기를 사용하면서 섭씨 300도에서 증기압력 20kgf/㎠ 라는 점과 비교하면 안 까일래야 안 까일 수 없다. 이는 일본내 팬덤에서도 야마토급을 까는 데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출력에 비해서 기관부 중량이 과대하게 많다는 것이 주요 비판점이다.

그래도 야마토의 속도인 27노트는 건조 당시에는 괜찮은 속도이긴 했다. 하지만 취역하고 나니 주적인 미국의 전함과 구식전함은 아예 상륙작전용 및 비상대응용으로 전환해버리고 신형전함은 모두 똑같이 27노트의 속도를 내며, 영국의 전함도 신형전함이 29~30노트를 내므로 따라잡기도 벅찼다. 특히 아이오와급 전함은 전쟁 후반부에 나오긴 했으나 30노트가 가능하며 과부하를 걸면 33~35노트까지 가능했다. 게다가 야마토의 과부하 지속능력부터 아이오와급보다 크게 떨어지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거리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사실 이렇게 상대방 전함의 속도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 일본군의 중순양함과 같이 다니면서 화력지원을 해주거나,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파견보냈다가 적의 항공권 밖으로 탈출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결론이 이미 일본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과달카날 전투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인 히에이가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당해버리고, 키리시마가 급수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막강한 16인치 주포 탑재 신형전함인 워싱턴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야마토를 전장에 파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일본 해군의 상징을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할 수 없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가 붙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속도가 느린 것도 문제가 큰데, 항속거리를 일부러 축소시키는 실책을 추가로 저질렀다. 원래 자력이동이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비는 항속거리가 길수록 좋다. 항속거리가 길면 공격과 방어시에도 도움이 되는데다가 도주나 후퇴, 우회시 경로를 여러가지로 잡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보급기지를 덜 만들어도 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유용하다. 일본군도 그걸 인식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해당 함재기에 탑승할 조종사의 불편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억지로 A6M의 항속거리를 크게 늘리고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오히려 항속거리를 줄여버린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초도함인 야마토가 시험 항해시 측정된 데이터로는 1만 해리 이상의 항속거리가 나오는 것으로 판정이 나왔다. 그래서 군령부는 "기름이 너무 많이 먹힌다!"면서 설계진들의 반발을 깔아뭉개고 3번함 이후의 야마토급은 함내의 연료 용량을 삭감해서 7,200해리가 나오도록 조치했다. 그 바람에 설계 변경[25] 등을 하느라고 3,4번함은 기공만 하고 공사가 중단된 기간이 3개월 이상 나왔다고 한다[26][27]

이렇게 억지로 일본군이 연료탱크를 줄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 기름소모량이 그렇게까지 눈에 걸린다면 큰 연료탱크에 기름을 적게 넣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가능했을 것이다. 굳이 설계변경과 건조시간 증가까지 불러오면서 억지로 연료탱크를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유사시 연료탱크가 적은 구축함의 연료가 부족할 때, 미국 해군이나 바로 일본군 스스로가 했던 것처럼 아직 여유가 있는 전함의 연료탱크에서 연료를 빼내서 구축함에게 보급하면 호위세력을 유지하면서 보급기지까지 함께 돌아갈 수 있는데, 야마토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니 해당 사태가 발생하면 호위세력을 내버리고 홀로 항해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함재기나 잠수함등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이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 해군의 연료사정이 안좋아지자, 출동하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연료를 항구에 있는 야마토같은 전함에게서 뽑아내서 보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말 그대로 항행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고 항구에 묶여있던 기간도 있었다.

5.5 불충분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 이로 인해 제한되는 협차가능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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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Type 22 수상레이더SG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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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22 수상레이더의 화면SG레이더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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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13 FC레이더FC레이더 B스코프 화면 그림

레이더를 달았다고 하긴 하지만 미국의 SG레이더처럼 각도, 방위, 거리를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이동속도를 연속으로 PPI, A스코프에 표시해줘서 함선이 대형인지 소형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거나 출력 개선과 B스코프가 도입된 마크8, 마크13 FC레이더처럼 포탄이 바다에 낙하해서 떨어지는 물기둥 탐지가 이전 보다 수월해진 물건과는 같은 시대 물건인지 비교하는게 실례되는 물건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군/무기체계에서 보듯이 기술력이 딸리기도 했는데다, 관료주의적인 문제와 구세대적 사상으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군도 레이더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아 개발에 착수했으나, 연합군이라면 CIC용으로는 쓰지도 않을 수준의 물건을 대형함에 간신히 달아주는 정도로 격차가 나버리고 만다.

이로 인해 실전에서 협차가능한 사거리는 특히 야간전이라면 안드로메다급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22호전탐은 이론상 15km정도 거리의 부포 물기둥을 탐지가 가능하긴 하나 방위각 오차가 꽤 크고 미국의 화기관제레이더처럼 탄착확인이 가능한 수준은 전혀 아니기때문에 야간전에서 사용하는건 무리이다. 그러니 목측으로 탄착확인을 해야하는데 될리가 있나. 숙련견시원이 10km밖의 '함정'을 겨우 발견하는 수준이다.

반면 1차대전직후에 취역하여 CIC능력(다시말해 레이더 정보취합력)이 신형전함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가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3만야드에서 사격을 시작해 22800야드에서 명중탄을 냈다.

그렇다면 야간전이 아닌 주간전에서는 비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럴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우선 야마토급 전함의 포술지휘소 높이가 50미터이니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구해보면 약 25km이다. 이는 이론상 수중탄의 탄착점 확인이 가능한 최대 사거리로, 구름이나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그 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물론 수평선보다 밖에서도 물기둥 확인이야 가능하겠지만 협차를 확인하기는 힘들것이다. 24시간 365일중 기상상황등의 이유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때는 그다지 많지 않기때문에, 또한 적 함대의 방해로 인해 그 사야가 제한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바, 주간전에서도 협차가능할 사거리가 비등할 확률조차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마크8 사격통제장치의 사거리는 4만야드이며 실전에서 3만8천야드거리의 물기둥을 확인한 적이 있다.(전술하였듯 스코프에 친절하게 띄워준다.)


요약된 16인치 50구경장의 mark 8철갑탄의 구간별 살포계 전함간의 전투거리를 3만야드(27km)로 할지 그 이상으로 할지를 차치하더라도 아이오와급이 야마토급을 협차가능사거리로 압도가능하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아이오와급의 사거리에 제압당한 야마토급의 운신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6노트나 차이나는 아이오와급에 근접하는건 불가능에 가깝고 추축국에서는 자함방공이 제일 충실하기는 하나 미국군함들처럼 군용기들을 다 갈아버릴정도는 전혀 아니니까.

물론, 일본측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상기를 통한 탄착수정사격을 통해 협차가능 사거리를 늘리려고 시도한적은 있었다. 그러나 탄착수정사격을 하는동안 수상기는 무방비상태가 되며, 대상함선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해야하는 점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는 무리라고 보았다. 원래는 제로센같은 함상전투기가 아군 관측기를 호위하고 적 공격기/관측기를 저지해야 했지만, 시대가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넘어가며, 그리고 항공전에서 밀리며 항공모함과 함재기 전력이 개발살나는 와중에 일본 전함이 역량을 발휘할 함대결전은 찾아오지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협차 문서 참조.

5.6 부족한 부품과 장비

야마토급 전함은 그 자체가 기존의 전함들의 공통 규격을 싸그리 무시한 초월 규격의 전함이었고 당연히 기존의 부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부품 하나마다 기술자의 손재주가 들어가는 특제로 제작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취역한 시기가 일본의 전함중 가장 나중인데다 태평양 개전 직후에 취역했기 때문에 미리 전쟁 전에 예비 부품을 제조할 시간도 자원도 없었고 일단 적에게 선빵을 후려치며 전쟁에 돌입한 이상 다른 함선들처럼 한가하게 그런 예비 부품 따위를 만들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예비 부품이나 장비의 수량이 매우 부족하거나 아예 없어서 손상시 수리를 위해서는 건조가 취소된 다른 자매함들의 부품과 자원을 유용하여 수복하거나 그마저도 안되면 부품이 제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추가되므로 한번 손상되면 장기간 도크 내부에서 놀고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그렇게 자랑하는 18.1인치 주포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과정으로 제조된다.

1강괴를 가열하여 2,000톤 프레스로 단조를 실시한다.
2강괴의 머리부분 30% 와 하단부 15%를 절단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강괴의 머리부분 및 하단부는 성능을 저하시키는 불순물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31250℃까지 강괴를 가열한후, 그 온도로 2시간 정도 보관유지한다.
4소둔처리를 실시한다. 소둔처리는 열처리한 후, 강철을 적정온도에서 가열해서 보관유지 과정을 거친 다음, 천천히 냉각하는 과정이다.
5절삭가공을 한다.
6담금질을 한다. 담금질은 열처리한 후, 급냉하는 것이다.
7재가열한다.
8시험편 채취 및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면 강괴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9자기긴축처리를 한다.
10마무리 절삭가공을 한다.
11강선을 가공한다.

한눈에 봐도 복잡하고 시간 및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인데, 덕분에 일본이 종전시까지 제작한 18.1인치 주포의 포신숫자는 고작27문이었다. 1938년 3월에 첫번째로 완성된 주포는 카메가쿠비 포격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18문의 주포는 야마토와 무사시에 장착되었다. 따라서 남은 주포수는 고작 8문이며, 이걸로는 야마토나 무사시중 한척의 포신을 전부 교체하지도 못할 수준에 불과했다. 참고로 남은 주포의 행방은 1945년 종전후 2문은 카메가쿠비 시험장에서 폐기되었으며 나머지 7문의 일부는 미완성 단계였으나 상태가 양호한 2문은 버지니아에 있는 Dahlgren 포격시험장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5문은 폐기되어 1950년대 고철로 처리되었다.

당시에 미군은 야마토급의 18.1인치 주포에 대하여 정밀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이 주포는 보기 드물 정도로 정교한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어쩌면 그런 류의 대구경포를 제조하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A라 명명된 A 튜브는 약실부터 전체 길이의 절반 정도쯤 되는 부분을 압착하여 에워싸는 3A 튜브가 있다. 이렇게 조립하고 나서 와이어 와운드(wire-wound)[28] 공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부분에 걸쳐 조여주는 2개의 튜브층과, 2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약실부 끝의 마개가 추가된다. 포신 중앙부의 여러 튜브들은 접시 스프링 와셔로 꽉 조여져 있는데, 아마도 포신에 쌓이는 피로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고, 혹시라도 모를 "포신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steel choke)”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영국의 빅커스(Vickers)社에서 탄피 홈을 만든 방식과 유사하다.

1A로 알려진 내부의 A튜브는 유압을 이용해서 독립된 3단계의 과정을 걸쳐 방사형으로 팽창되어 고정된다. 내부의 A 튜브가 자리를 잡으면 강신을 새겼다. 또한 3A 튜브에는 짧은 멈춤쇠(breech ring)가 달려있고, breech bush[29]가 파여져있다. 약실은 일본판 애즈버리(Asbury) 식 약실에 웰린(Welin) 폐쇄기를 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설치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를 재생(relining)하려면 내부의 A 튜브를 전부 파내야한다(Boring)는 점이다. 이건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므로, 두 전함 모두 전쟁 내내 포열을 교환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단순히 사용한 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이 전함들의 짧은 생애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약 : 여러개의 튜브로 포신을 만들면서 밖에 있는 포신이 안에 있는 포신을 꽉 조이도록 만든 것인데, 재생하려면 안에 있는 튜브를 뽑아야 하므로, 차라리 새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1940년 11월 1일 진수된 2번함 무사시를 끝으로 항공모함의 위력이 강력히 입증된 진주만 공습 이후엔 항공기및 항공모함이 아니라 중요성이 떨어지는 야마토급 3번전함 시나노는 물론 이와 연관된 전함 포신과 같은 부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로인해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가 포신의 수명이 다 되어도 예비가 없으니 교체할 수가 없다라는 것으로, 대략 300발을 다 쏘면 그냥 장갑덩어리가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다.

또한 겨우 포신당 300발로 연습에서 실전까지 충분히 쓸만한 내구도냐고 말하자면 그럴리가 없다는게 문제다. 이전에 이 내용이 근거부족이라며 삭제되었으나 상식적으로 300발로 연습이나 제대로 되겠는가? 이로 인해 포신 내구도를 아껴야해서 대지상지원은 커녕 연습조차 제대로 못하는게 사실이다. 포신내구도 막장으로 유명한 리토리오급조차도 포신은 재깍재깍 갈아주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야마토급 전함들이 함대결전에만 맞춘 1회용 전함이란 말도 있었다.

6 실전

6.1 미드웨이 해전

1번함 야마토는 취역한 이후에 나가토로부터 연합함대기함 역할을 물려받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지만, 알다시피 전장에서 삼만팔천리 떨어진 곳에서 연합함대의 기함 역할만 하다가 끝나서 실제로 전투하는 일은 없었다.

6.2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여관

그 후로 오랫동안 해군의 상징으로 아껴진다(…) 당연히 전투에 참가할 일도 없으니 그 잘난 18.1인치포로 공을 세울 일도 없고 진짜 해상호텔 노릇만 톡톡히 했다. 그러다 전함 무사시가 취역하자 1943년 말 총기함 임무를 교대해 이제서야 태평양으로 나서게 된다. 무사시 역시 무사시 여관으로서 호화숙박시설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6.3 어뢰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발라오급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 벌지(Bulge)에 명중했다. 벌지라는 물건은 어뢰를 막으라고 달아놓은 것이기에 원래대로라면 탈이 안 나야 하겠지만, 이놈의 벌지가 어뢰에게서 받은 충격을 미처 흡수하지 못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요상한 설계가 적용된 부분을 타격하면서 야마토의 장갑 이음부가 벌어져 버렸고, 야마토는 일본인들이 주장한것 처럼 모르고 간게 아니라 3000톤의 바닷물을 먹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트림조절을 해서 함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구레로 돌아가서 수리하느라고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너 세계 최강의 초전함 맞냐 선빵의 나라가 허약카더라

겨우 수리를 끝내고 다시 전쟁터에 나가려다 보니 이미 태평양은 미군의 전함만이 아니라, 분노의 쇼미더머니를 갈겨댄[30] 미 해군의 항모와 함재기들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바다와 하늘을 메우고 있는 광경을 목도할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또 딱히 전투에 참가해보지도 못하고 전력보존이란 명목 하에 계속 후방으로만 돌려졌다.

6.4 레이테 만 해전

6.4.1 시부얀 해전

일본 해군이 총력을 기울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는 구리다 부대의 일원으로서 야마토급 전함 2번함이자 자매함인 무사시와 함께 출격한다. 무사시는 다른 배보다 조금 밝은 색상으로 도색하고 출격했는데, "우리는 미끼다"라는 소문이 함내에 퍼지면서 승조원들이 불안해했다고 한다. 미끼 맞아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던 도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가 침몰했고, 구리다 제독은 구조된 후 야마토를 구리다 함대의 기함으로 정한다.

시부얀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는 미군 함재기의 공습을 받았고, 색상이 밝아서 눈에 확 띈 무사시는 집중공격을 받는다. 무사시는 미군의 공습에 대응하고자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했지만 미군 함재기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고, 무사시의 대공포반만 개발살났다(...) 개수를 통해 추가된 대공포가 바깥에 노출되어 있어서 주포 발사의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고. 대공포반은 주포를 쏘지 말라고 했지만 주포가 말을 듣지 않았고, 이 일로 대공포 반원들과 주포 사수들은 나중에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다. 어쨌든 무사시는 주포로 열심히 대공사격을 계속했고, 미군은 신나게 무사시를 두들겨팼다. 이 주포는 해로운 주포다

이 와중에 무사시의 1번 주포탑에 달린 주포 3개 중 하나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3식탄의 폭발 시간을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포탄이 폭발한 게 원인이었고, 방해자가 없어진 대공포반은 전력을 다해 싸웠지만 미군이 너무 세서 망했어요. 결국 무사시는 침몰하게 되었고, 포술장은 자기가 주포 통제를 잘못해서 무사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며 사과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만 무사시가 어글을 끌어서 중순양함 묘코가 피해를 입은것 외에는 함대에 큰 피해는 없었고, 구조된 승조원들 중 절반은 일본으로, 나머지 반은 필리핀 방어전에 동원된다. 무사시의 함장은 거함거포주의를 주장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편지를 남긴 후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1] 일본다큐 무사시의 최후.
[2] 일본 드라마 무사시의 최후, 마지막 전투장면이 그레픽으로 재연된다.

영문 위키 무사시

6.4.2 사마르 해전

무사시를 잃은 구리다 함대는 곧바로 퇴각을 시작한다. 구리다 함대를 쫓아낸 윌리엄 홀시오자와 지사부로가 이끄는 일본군 항모전단을 발견하고, 3함대를 이끌고 진격해서 엔가노 곶 해전을 벌인 끝에 오자와의 항모 전부를 수장시킨다. 이 해전에서 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철천지 원수 즈이카쿠를 갈아버린다.

그러나 3함대가 진격하면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의 감시망이 사라지고, 이 틈을 타서 구리다 함대는 해협을 돌파,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다가 스프레이그의 호위항모전단 '태피 3'와 마주친다.

하지만 플레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DD-557)의 함장인 '추장' 어니스트 에반스가 7시 10분쯤에 일본함대를 향해 돌격하였고 이후 이에 응해서 나머지 알만한 플레처급 구축함 호엘(DD-533), 히어만(DD-532)과 존 C 버틀러급 호위 구축함 사무엘 B. 로버츠(DE-413)도 어뢰와 주포를 쏘며 덤벼들었고, 호위항모들과 나머지 호위 구축함들도 도망가면서도 대공포를 대함용으로 쏘면서 지상 공격용 무장들만 일부 단 함재기들을 날리며 반격했다.[31] 첫 번째로 돌격한 존스턴은 신 들린 회피기동으로 포격을 피한 것도 모자라 일본군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의 함교를 함포사격으로 불태우며 어뢰로 함수를 박살내고 이 공격으로 스즈야함의 속도를 늦춰 함재기들의 밥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성공했지만 얼마 안 가 7시 30분쯤에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의 포격과 야마토의 부포탄 3발을 맞아 대파당했지만, 야마토 세방에도 안죽은존스턴은 스콜에 숨어 수리한 후 다시 전투에 참여하였고 일본 함대에 맞서다가 해전 후반에 격침당했다.

미군의 또 다른 플레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함에게 덤벼들어 어뢰를 발사했다. 하루나는 이 어뢰를 피했지만, 이 어뢰는 바로 뒤에 있던 야마토를 향해 돌진했다. 야마토는 이 어뢰를 피하려다가 진로를 잘못 잡아 어뢰 사이에 끼었고, 몇 분간 어뢰 회피한 뒤 다시 복귀한 야마토는 치쿠마, 노시로에게 포격 당하고 있던 USS 갬비어 베이에 접근하면서 주포포격을 하였고 명중을 확인하였다.[32][33] 상당한 포격을 당한 갬비어 베이는 야마토가 근접할 시점 거의 침몰된 상태에 준하였다.[34] 갬비어 베이는 이후 침몰했다.

단 야마토의 포격이 갬비어 베이에게 명중했는가는 이설도 있어, 8시 15분경 갬비어 베이의 최초 명중탄은 하구로와 토네의 20.3cm 포탄이었고[35] 토네의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는 저서에서 '전함부대의 포탄은 적 항모에 화재를 일으킨 일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미국의 전사연구가 Robert Lundgren은 야마토의 포격은 존스턴에 46cm포 3발, 15cm포 3발 피탄, 호위항모 화이트 플레인즈에 지근탄으로 기관실을 파손시킨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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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전투 상황도

결국 구리다 함대는 태피 3에 큰 피해를 입혔지만, 구리다 제독은 레이테 만으로의 진격을 포기하고 회항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구리다 턴이라고 하며, 오자와 함대가 피흘리며 얻어낸 귀중한 기회를 날렸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름 그대로 정말 구리다. 물론 구리다 턴이 된 원인은 통신 문제도 있었다. 오자와 함대는 미끼 작전이 성공하면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건 안 날아오고 구리다 함대의 후방에 적이 매복해 있다는, 전혀 엉뚱한 정보가 구리다 함대는 물론, 멀리 떨어진 도쿄의 해군사령부까지 전파됐기 때문.

6.4.3 이설

일본에서는 이설도 있는데, 야마토와 나가토가 구축함대의 어뢰 회피를 위해 변침하다 조타 실수로 어뢰 항주가 끝날 동안 같은 방향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계속 되는 미함재기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뢰를 회피한 방향과 같은 방향에 형성된 스콜속으로 대피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변침에 소요한 시간은 8분(영문 위키와 일본어 위키에선 10분)으로, 긴 시간이라 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전함 콩고 또한 미함재기의 공격을 받아 측거의가 파손되어 스콜속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이 주장에 대해 "야마토는 다른 군함들이 공습을 무릅쓰고 진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군 군함 중 가장 대공화력이 강력하고, 가장 튼튼한 군함이면서 기함으로서의 임무를 방기하고 도망친 셈이다." 라는 의견이 있으나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순 없다. 기함 선두가 일본 해군의 전통이라곤 하지만 반드시 지켜졌던것은 아니며, 그 예를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찾을 수 있다. 다나카 소장은 기함 나가나미로 전투에서도 선두에 서지 않았고, 전투가 끝난후 유일하게 어뢰가 남아있는 함이었지만 적과 조우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쿠로시오를 생존자 구조에 파견했다. 이에 대해 당시엔 쿠로시오의 함장을 포함해 비겁하다며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재는 함대를 지휘해야하는 기함의 역할을 생각하면 다나카 소장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는것이 미일양국의 공통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은 야마토를 기함으로나 쓸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며, 다른 배가 공습을 당하면서도 남쪽으로 진격하는데, 혼자서만 공습을 피한다며 북쪽으로 도망간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어찌되는가?" 라는 의견이 있는데, 일본 함대도 야마토를 단순히 기함으로만 사용한것은 아니다. 사마르 돌입 당시 일본함대는 대수상전 진형이 아닌 대공원형진을 채택하고, 야마토는 특히 주포중 6문을 대공용 삼식탄을 이용한 대공포로 썼던 점에서 대공전투에 무게가 쏠려있다는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돌입 직전에 항공격을 받아 무사시가 침몰하는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무사시가 집중공격을 받아 이탈하자 그 뒤엔 공격이 야마토와 나가토에 집중되어 잠시 동안 무사시는 피해를 입지 않기도 했고(야마토와 나가토는 뛰어난 조함으로 어뢰를 모두 회피하긴 했지만, 양함 모두 폭탄이 명중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엔터프라이즈나 즈이카쿠도 스콜속으로 대피해 피해를 막기도 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것이, 목표가 스콜등에 대피했을 경우 그 함선을 공격하던 공격대가 곧바로 다른 함선으로 목표를 바꿔 공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호해 해전에서 즈이카쿠를 공격하던 요크타운 공격대는 즈이카쿠가 스콜속으로 대피하자, 그 주변을 멤돌거나 길을 잃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은 편대도 다시 편대를 재정비하고 공격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 했다. 거기다 이미 태평양 초기에 미일양국 모두 비장갑함을 격침 시키는데 전함이 비효율적이라는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피 3에 전함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상태서 공격이 집중되는 야마토를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탈 시키거나 스콜속으로 대피시키는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토는 당시 스콜속에서도 연달아 기총소사를 받아 적지 않은 갑판인원이 피해를 입었고, 야마토의 수상기 파일럿이었던 야스다 치카후미 비조장은 기총소사를 받는 와중에 출격하여 4기의 적 함재기와 홀로 교전한 후 돌아오기도 하는등 매우 격렬한 상황이었다. 사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 또한 확인할 수 없었으며, 야마토급 전함이 아무리 뛰어난 방뢰능력을 실증한 함이라고는 하나, 어뢰가 한발이라도 명중하면 심각한 피해를 입을 확률 또한 있으며 오히려 그로인한 낙오 또는 침몰로 인해 발생하는 사기하락과 전력저하를 걱정해야 할것이다.

어쨌든 위에 있는 참고링크가 모두 "야마토가 구축함의 어뢰에 쫓겨서 달아났다"고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쪽은 그냥 참고만 하자.

6.5 시나노 격침

3번함 시나노는 일단 개전시에 건조가 중지되었으나,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항공모함 부족을 타개하고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성능이야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이었다.

1944년 12월 29일, 마무리 공정을 위해 구레 항으로 향하던 시나노는 미 해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 (Archerfish)의 매복에 걸려들어 어뢰 4발을 맞는다. 아무리 항모로 개조되었다고 해도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니 정상적이라면 격침될 수가 없지만, 8시간도 못 버티고 침몰해버렸다. 그리고 시나노는 미 해군에게 단 1척의 잠수함이 잡은 역대 최대의 군함경험치 조공이라는 위업만 헌납한다. 부실공사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대재난이었다.

6.6 야마토 격침

미군의 공격을 받는 야마토. 어뢰로 인해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결국 1945년에 들어서며 일본의 전황이 막장 악화일로를 달리자, 야마토는 '천1호 작전'의 일환으로 편도 연료와 1170발의 주포탄[37]을 싣고 오키나와로 상륙해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키쿠스이 작전菊水作戦'에 나선다. 뭔말인고 하니 편도연료로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그 상태로 해안 모래밭에 올라타(좌초)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작전이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고정포대 노릇을 한 전함이 있긴 하지만, 마라는 그나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인민의 적에게 1톤짜리 폭탄을 얻어맞은 거고, 전함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그럭저럭 제 할 몫을 해냈으며 각종 시설과 대공포대가 있는 자국의 군항 내부에서 고정포대가 된 것이라 야마토가 맡은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과는 3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 마라는 함체의 3분의 1이 박살난 상태로도 오로지 조국을 수호한다는 근성으로 레닌그라드를 수호하며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 칭송받기까지 했으니 야마토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세운 이유는 당시 일본의 해군 함정용 중유의 비축분이 바닥을 드러냈던 것도 있지만, 출격 자체가 '제국해군의 상징답게 장렬히 죽어라'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난 뒤, 높으신 분들에게 '우리 해군은 이렇게 열심히 싸웠음에도 지고 말았습니다'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는 해군의 최대전력이었던 야마토가 살아남아있어서는 안됐기 때문. 한마디로 작전 자체가 미군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닌 야마토를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었고, 아무도 야마토가 미군을 막아내리라는 기대 따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작전에 구멍이 엄청난데, 미 해군의 대함대의 방해를 뚫고 오키나와까지 가는 것 자체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라도 오키나와 해안에 좌초하면 오키나와 전투를 수행중인 일본군 수비대의 도움 없이는 그냥 고정표적 1호가 돼버린다. 재수없으면 미군에게 육박공격이나 당해서 점령당하는 막장 상황USS YAMATO(BB-6X)이 벌어지며, 그런 일이 없더라도 좌초된 군함의 연료와 탄약이 떨어지면 그냥 거대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하는데다 앞서 말했듯이 이동능력이 전무하므로 공중에서 폭격하는 비행기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따라서 애초에 이 작전의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데다가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것은 설령 야마토가 작전지역에 멀쩡하게 도착했더라도 불가능하다.

거기에 출격시기 자체도 일기예보상 2~3일 뒤에 미 항공기 운용에 지장을 주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지라 그나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날이 흐려 시야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을 골랐다. 결국 구름과 안개속에서 갑툭튀하는 미 항공기들을 상대로 대공사격은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당시 유류탱크 담당 장교가 윗선과는 다르게 생각이 있어서인지 유류 탱크 펌프가 닿지 않는 아랫쪽까지 인력(!)으로 퍼내서 '적어도 멍청하게 꼬라박느니' 중간에 회항할 것을 어느정도 가정하고 왕복연료로 메꿔서 줬다고 한다. 물론 상부에 보고한 것은 편도분 연료만 넣은 걸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류 탱크 바닥에 남아있는 연료는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분량이기 때문이다. [38]

당시 참모들도 알면서 눈감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상 자살임무에 가까운 작전이었으므로 만일 배가 격침될 경우 살아남은 승조원이 주변 섬에 표류할 것을 생각해서 약간의 돈과 비상용 물자를 승조원에게 배급하기도 했으며[39] 출격 전에 술잔치를 벌여서 최대한 사기의 저하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출항 직전에는 B-29를 개조한 장거리 정찰기에, 출항해서는 일본 근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잠수함에게 들켰으니 이미 그 상황에서 미국은 야마토의 출항을 알아차렸고, 채 오키나와에 도달하기도 전에 미군 함재기 부대에 포착되었다. 일본 함대가 출항했다는 것을 포착했다는 보고를 들은 레이몬드 스프루언스 제독은 미처 제독 휘하의 항모들에게 처리를 맡겼다.[40]

이 때 같은 급인 무사시가 양현에 골고루 어뢰를 맞아서 침수 구획이 균등하게 침수되는 바람에 오히려 격침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무사시는 잠수함에게 최후를 맞았다는 낭설까지 돌았기 때문에, 해당 전투의 전훈을 살려 미군의 조종사들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야마토를 공격할때 좌현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래서 야마토는 이 해전에서 좌현에 9발의 어뢰를 맞은 반면 우현에는 단 한 발의 어뢰만 피격당했다.[41] "좌현의 탄막이 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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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야마토와 함께 거함거포주의가 끝나는 순간

약 117대의 항공기에게 다수의 어뢰와 폭탄에 피격 당하고 배가 기울어지면서 주포 탄약고에 있던 주포탄이 바닥으로 쏟아지면서 충돌, 결국 탄약고에 유폭을 일으켜 대폭발하며 버섯구름을 피워올리며 폭침, 순식간에 해저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만다. 폭발이 위력이 너무 커서 폭음은 100㎞나 떨어진 규슈 남부까지 들렸고, 폭발연기는 160㎞ 거리에서도 관측되었으며, 퇴함한 승조원중 상당수가 폭발에 휘말려서 죽었다. 일단 버섯구름 옆에 있는 함선의 크기와 비교해도 엄청난 폭발인게 보인다. 버섯구름은 6km(!) 고도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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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잔해

폭발의 여파로 함체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난 채 각각 멀리 뒹굴고 있다는 것이 근래의 수중탐사로 밝혀졌다. 이로서 우주전함 야마토는 힘들어졌다. 하지만 위장건조라면 어떨까? 위! 장! 건! 조!

이 전투에서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인명손실은? 비교하지 말자. 미군은 F6F 헬캣 3대, SB2C 헬다이버 4대, 어벤저 3대가 격추됐고 조종사 4명, 항공승조원 8명이 사망했다.# # # 총 12명. 일본군은 야마토에서 3055명, 야하기를 포함한 제2수뢰전대에서 1187명이 사망했다. 따라서 둘을 합친 일본군의 총 전사자 숫자는 4242명. 미군 한 명이 전사할 때 일본군은 353.5명이 전사(...)하는 더없이 초라하고 굴욕적인 전과를 기록하며 연합함대의 이름뿐인 자존심은 그렇게 태평양에 가라앉았다.[42] 거기에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소중한 피와 목숨을 값비싼 수업료로 지불해 가며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온 항공모함에게 주도권을 상실당한 전함은 마침내 초거함 야마토급의 격침과 함께 거함거포주의의 종말을 맞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43]

군함계의 타이타닉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호화로운 스펙으로 만들어지더니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도 진짜로 타이타닉과 닮았다. 그리고 침몰된 야마토를 조사한 것도 타이타닉을 조사한 그 탐사선이었다.

야마토의 침몰 과정에서 일본 해군은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함선이자, 연합함대의 자랑이었던 함선을 본토 진격을 늦추려고 아예 갖다 바쳤다. 이를 본 미국은 카미카제에 이어 자신들의 전함까지 자살공격에 쏟아붓는 일본을 정상적 공격으로 굴복시키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원자폭탄의 실전 투입 의견이 강해졌다.

6.7 격침의 의미

6.7.1 일본

실제로 일어났었던 역사적으로서의 일본침몰

사실 야마토의 최후의 출격은 군국주의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야마토가 오키나와로 출격하는 것은 당시 전황으로는 성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자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군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군 수뇌부에서 그런 반대 의견을 누르기 위해 한 말이 "병력을 남긴 채 패전한다면 연합함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였고, 그 말에 모든 반대의견이 쑥 들어갔다고 한다. 설득된 것이 아니라 설득을 포기했기 때문이지만. 하지만 그 자살공격을 결정한 회의에 참석한 자들 중에, 전후에 자살한 자의 수는?

즉 출격작전 자체가 체면과 '남자다움'을 우선시하고 죽음을 미화하며 찬양하는 일본 군국주의 특유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남자다움' 따위나 챙기다 다 죽으라고? 거기다 히로히토도 "해군이 항공작전 말고 수상함 작전은 안 하느냐"며 은근히 부추겼다. 덴노께서 이러시는데 누가 감히 반대하겠느냐 말이다. 진짜로 반대란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반역자로 인생끝장 크리. 라지만 그런 덴노의 책임을 물으려 들면 "덴노는 허수아비" 타령을 하며 책임소재를 돌리다 증발시키는 구일본군.

그래도 제대로 된 작전이라도 세웠다면 좀 나았을 것이지만 하필 사용자가 일본군이라서 그저 닥치고 적이 진을 치고 있는 오키나와로 반자이 어택을 해버린 것. 도대체 무슨 마약을 얼마나 퍼드셨길래 이런 정신나간 발상을 하셨나요?

그리고 해전 결과는 미군 12명 전사에 일본군 4242명 전사. 겨우 비행기 10대와 12명의 적군을 4242명의 군인과 세계 최대의 전함(과 호위함들)하고 바꿔먹은 거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미군의 공격을 얻어맞기만 하다가 죽었으니 연합함대의 체면은 완전히 망가진 셈. 일본의 높으신 분들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특히 미군)이 보기에는 그냥 선물 보따리에 불과했다.

어차피 살아 남았어도 구레 군항 공습 등 공습으로 격침당했거나, 미군에게 노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높으신 분들로선 USS 야마토를 보고 싶진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작전도 안 세우고 야마토를 사지로 내보낸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다.

6.7.2 미국

일본 해군의 상징을 격침시켰다!
적장 물리쳤다!
이겼다! 전쟁 끝!
전함은 죽고 항공모함이 태어났도다!!

미국 해군 입장에서 야마토는 무조건 격침시켜야 할 적이었다. 세계 최대의 전함이자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 해군 항공대의 사정도 한몫을 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항공모함 전단을 유지하려면 항공모함이 전함보다 세다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사시의 경우도 잠수함에게 격침되었다는 설이 나돌 정도였으므로, 항모의 가치를 보여주려면 일본군의 1급 전함을 함재기로 격침시켜야 했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끝나면 국방예산이 축소될 것이므로 이런 어필은 꼭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야마토가 출격하자, 미 해군 항공대는 야마토를 침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국 야마토를 격침시켰다. 세계 최대의 전함도 격침시키고 항모전단의 가치 어필도 했으며 피해도 매우 적었으니 미 해군에게 야마토는 엄청난 선물 보따리였다.

6.8 야마토급의 전과

1944년의 레이테 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 야마토는 7시 30분쯤에 공고와 함께 USS 존스턴에 대해 부포 사격을 하여 3발을 명중시켜 대파시켰고 존스턴은 해전 후반에 침몰했다. 그리고 USS 갬비어 베이에 치쿠마,노시로와 함께 접근하며 주포사격을 하여 명중시키고 공동격침하였다.[44][45][46], 이전에는 야마토가 어뢰에 후퇴한 시점에 갬비어베이가 공격받아 침몰했다는 듯이 서술 되었지만, 야마토가 주포로 명중시킨후 침몰직전 상당히 근접했을 정도며#8시 50분 상황도, 7시 30분쯤에 공고의 주포와 야마토의 부포탄을 맞아 대파당했고 해전 후반 10시 10분에 침몰한 존스턴보다도 1시간 더 빠르게 침몰한 갬비어 베이는 사마르 해전 중 이른 시점에 포격을 당한 뒤 침몰했다.[47][48][49] 중순양함 치쿠마가 일본 함대의 선두에 서 있었고, 영문위키 갬비어 베이 항목에서도 8시 20분에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의 포탄으로 전방 기관실이 날아가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명시되어 있어 치쿠마의 공이 가장 크지만 명중탄이 존재하므로 공동격침으로 간주된다.

무사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일부러 타 함선과 조금 다른 색을 도색해서 미군의 화력을 끌어오는 탱킹 역할을 수행하다가 탱킹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집중공격을 맞이해서 폭탄과 어뢰를 신나게 얻어먹고는 포격전에 참가하기 한참 전에 격침당한 상태였다. 그래도 무사시가 입은 피해는 어뢰 11발, 폭탄 10발 혹은 어뢰 20발, 폭탄 17발 또는 어뢰 10발, 폭탄 16발 명중으로 추정되어 단일함에게 이정도의 맹공이 퍼부어진 경우는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탱커로서의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 시나노는 야마토, 무사시보다 안습했다. 항공모함 부족으로 인해 항공모함으로 개장했는데, 마무리 공정과 함재기의 인수를 위해 구레항으로 가던 중 상황 오판과 불운이 겹쳐 울프팩도 아닌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어뢰 단 네 발을 맞고 꼬르륵.

그래도 대공포로 적기를 격추한 전과는 약간 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가 수량 미상의 적기를 격추했고, 야마토의 최후 전투에서도 비행기 10대를 격추했다고 한다.이 중에서도 함재기 1대는 자신이 야마토에 떨군 폭탄이 폭발하는 과정에서 휩쓸렸으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비행기 9대 격추라고 볼 수 있으나, 일단 야마토 공격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10대라고 인정된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은 12명.

6.9 번외편: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


카도쿠라 소우지 중장 : 연합함대에는 아직 무츠도 있고 나가토도 있고 세계 제일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 야마토도 있다. 거함거포를 지금 쓰지 않고 언제 쓰겠는가?
우가키 마토메 중장 : 하지만, 카도쿠라...
카도쿠라 : 지금이야말로 총공격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구로시마 가메토 대좌 : 카도쿠라 사령관, 죄송합니다만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카도쿠라 : 왜 안 하는가?
구로시마 : 하지만...
카도쿠라 : 하지만 뭔가!
우가키 : 사실은... 아부라가 나인다기름이 없다...
카도쿠라 :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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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 나오는 대사.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전에 참가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트럭 섬까지 내려와서 대기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함 히에이가 미국 구축함들(…)에게 기관포로 두들겨맞거나 기리시마가 전함 워싱턴에게 격침당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부족 등을 핑계로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의 영상이나 일본군의 핑계와는 달리 실제로는 미드웨이 등지에서 큰 손실을 입기는 했으나 무츠가 굉침하기 이전의 과달카날 해전의 이전시점에서는 아직 일본이 확보한 유정들과 연결되는 수송라인은 무사히 가동되고 있는데다 비축 물자들도 남아있던 상황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물자가 부족하다고 전함을 전선에 내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야마토를 그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면 연합함대 체면이 깎인다는 게 이유.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독일 해군은 최신예 전함인 비스마르크를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하여 순양전함 후드를 격침시키고, 신예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중파시키며 영국 해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물론 그 뒤에 뭇매맞고 가라앉았지만 적어도 용감하게 전투한 끝의 일이므로 야마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50]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저렇게 댄 핑계인 연료가 부족했던 원인 중 하나가 해군과 육군 사이의 알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산업체를 통제해서, 혹은 직접) 석유를 뽑아올려서 정제한 뒤 육군과 해군에 분배하겠지만, 일본군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해군과 육군은 견원지간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는 불가능했다. 덕분에 일본군에서는 해군과 육군이 각각 따로따로 유전을 배분받아서 제각기 직접 석유를 정유해서 쓰고 있었으며, 원유나 정유소를 공유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도 심각했을 석유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 과달카날 해전 당시에도 일본 해군이 배정받은 인도네시아의 유전들은 정유시설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고 육군의 정유시설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기껏 배정받은 유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51]

거기에 출격도 안했는대 기름이 없는 이유가 그래도 덩치가 덩치다 보니 많은 양의 기름을 적재하고 있어서 과달카날에서 작전하는 다른 함들에게 일단 연료를 보급 해주고 자기는 지금 나갈 것도 아니니 나중에 보급 받으려고 했는데 위의 이유로....

또 다른 문제는 야마토의 정규 최고속도는 27노트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과달카날 해역으로 출동하는 일본 전투함대의 속도는 라바울에서 과달카날 섬까지 평균 30노트였으니, 만약 야마토가 과달카날로 진출했다면 그 3노트나 느린 속도 때문에 항해 도중에 함대 자체가 미군 항공부대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과달카날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라바울이나 트럭 섬으로 회항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 1930년대 초반에 야마토 급의 제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20만 마력/30노트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다가 그만한 속도는 앞서 설명했듯이 배수량 폭증과 과도한 비용문제로 기각당했다는 점에서 만약 20만 마력/30노트가 야마토의 기관과 속력으로 채용되었다면,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역에서 보다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사실 속도가 3노트 정도 늦어진다는 문제는 야마토 없이도 수송함대들이 어느정도 목표를 잘 달성하고 있는 경우에나 의미가 있지, 미군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이 일본 함대를 실시간으로 털어먹는 상황에서 야마토가 놀고 있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즉 체면 때문에 야마토를 출동시키지 않은 상황에서는 야마토의 속도가 빠르건 늦건간에 어차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워싱턴의 속도는 고작 28노트였고, 워싱턴과 동행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다도 27.5노트에 불과했으며,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활약한 일본군의 항공모함 준요는 겨우 25노트다.

연료나 속도보다도 심각한 문제로 야마토가 함대결전사상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서 운용되고 있었다는 점이 있다. 함대결전사상에서는 한 번의 중요한 결전으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수리해 가면서 계속 운용하기 위한 예비부품을 준비할 필요가 별로 없다. 게다가 야마토의 경우에는 최대급의 전함이라는 특성상 부품 제조 자체가 상당한 난이도와 시간 및 정성이 필요한 문제점까지 있다. 그 결과 주포와 같은 일부 중요한 부품은 전투중 소모 혹은 파손시 즉시 교체할 예비부품량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52] 즉, 함부로 해전에서 굴리다가 약간의 파손이 발생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품 수급문제로 상당기간 전력에서 이탈해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마토는 1회용 전함이란 말도 있다.

7 평가

아무리 강력한 병기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운영이 졸렬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

카탈로그상 전투력은 나름대로 우수했고 일부는 선진적이라 볼만한 영역도 있었지만, 야마토급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 국가예산의 1%를 사용해 한 척당 현대 기준으로 1조엔이나 들어간 전함이면서 실적이 없다. 야마토가 구축함과 호위항공모함을 각각 공동격침하고 무사시와 더불어 대공포로 미군 함재기들을 격추한 정도의 전과는 있으나 전력으로써 유의미한 활약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상적으로는 구일본군 하면 해군, 그리고 야마토 하면 그 해군의 상징이었던 만큼, 당시 피해를 입었던 동아시아 주변국들은 야마토란 이름 자체와 그를 이용하는 행위를 일본 극우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근데 정작 당시 일 해군에서 가장 유명한 전함은 나가토라는게 함정[53]

7.1 자국 군함들과의 비교

7.1.1 일본군 전함

전과 제로로 혹평을 받지만, 포격전을 치를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성능이 뒤떨어진 데다 함령도 오래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함령 자체가 오래된데다가 항공전함으로 개조되면서 함재기를 지급받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래도 레이테 만 해전에서 오자와 함대에 소속되어 미끼 노릇을 하기도 했고, 북호 작전에서 물자 수송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함의 전과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하지만, 야마토에 비하면 변명거리는 있다.
솜방망이 화력과 종이장갑이라고 놀림받았지만 애초에 공고급의 태생이 순양전함이라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고, 일본 전함 중 가장 오래된 배이므로 변명거리는 있다. 게다가 아낄 필요가 없는 구식이라 전함이 필요한 수많은 전장에 호위함 겸 전투함으로 부름받았고 전함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적과 싸우다 최후를 맞이했다. 격침 전과는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덕에 일본 해군 전함 중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건 1번함 공고이며, 구레 군항 공습까지 살아남은 하루나, 과달카날에서 미군과 포격전 끝에 가라앉은 히에이와 기리시마도 나름대로 전공은 있다.
위의 구식전함들과 달리 일본군 내부 기준으로는 당시에도 쓸만한 물건이었다는 이유로 야마토급과 흡사하게 함대결전 교리에 의해 아껴지기만 하다가 전쟁이 끝났다.

7.1.2 항공모함

일본군 항공모함 중에서도 전과 제로의 안습한 함들이 많이 있기는 해도, 최소한 주력 항공모함들은 야마토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공을 올렸다.

설계 오류는 많았지만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엔터프라이즈와 전장에서 몇번이고 맞붙었고 미국의 수호신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고 평가받을정도로 맹활약하며 미국 해군의 제1급 공격목표가 되기까지 했던 일본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일본에서는 아카기와 카가를 더 높이 치고 있지만, 미국에선 쇼카쿠급을 일본 해군 최고의 수훈함으로 본다.
카가와 함께 일본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으로 여겨지는 항공모함으로, 선전포고를 안해서 문제인 진주만 공습의 주역이자 전쟁 초기에 무적이었던 나구모 함대의 기함이다. 전간기에는 예산을 엄청나게 퍼먹는 걸로 유명했지만, 돈 값은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나구모 함대의 수반함인 카가, 소류, 히류도 나름대로 수훈함 반열에 들어간다.
  • 히요급 항공모함 준요
원래 귀빈용 호화여객선으로 건조된 진짜 해상 호텔이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개장항공모함으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그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키고 자매함 호넷을 격침시키는 대활약을 펼쳤으며 수많은 작전에 참가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야마토는 호텔보다 약했다
제대로 된 함교도 세울 수 없는 결함품이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격침될 때까지 쉬지 않고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올렸다. 야마토는 가분수 결함품보다도 약했다
경항공모함에 불과했지만, 과달카날에서 레이테 만 해전까지 쇼카쿠급과 동행하며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레이테 만 해전에서 즈이카쿠와 함께 미끼임무를 성공시키고 침몰했다. 야마토는 경항모보다 약했다

7.2 타국 전함과의 전과 비교

이 문단에선 같은 2차대전 기간에 활동했던 야마토가 속했던 일본이 상대했던 적국인 미국과 영국의 전함, 동맹국인 독일의 전함, 그리고 소련의 전함들의 활동과 전과를 비교 해 보도록 한다.

7.2.1 영국 해군

영국 해군의 전함들은 전쟁 기간 내내 쉴 시간도 없이 활약했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대서양, 태평양을 오가며 여기 저기서 활약을 했으며, 특히 워스파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넬슨급 전함도 기대치보단 못하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전장에 참가했다. 너무 부려먹어서 전쟁이 끝났을 때는 기관부가 파열 직전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나마 리벤지급 전함이 별 활약은 없었지만 리벤지급은 1917년에 나온 전함(공고급 과 몇년차이안남)늦었지만 인지라 2차대전때는 이미 노인. 비교를 한다면 리벤지급보다 더 오래됐지만 활약을 펼친 퀸 엘리자베스급과 비교를 해야 할 것이다.

순양전함으로 가면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리나운은 샤른 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기습에 수송선단을 지켜낸 바 있다.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은 두말 할 것 없이, 모두가 잘 아는 그 순양전함 HMS 후드다.

그나마 야마토급과 비슷한 함생을 살다 간 배가 뱅가드로, 뱅가드는 취역하고 나니 이미 전쟁은 끝났고, 경제는 엉망인지라 실전에 나서지도 못한 채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성능은 구형 15인치 포라는 부족한 공격력과 KGV보다 1인치 줄은 장갑, 길어진 선체로 인해 방어력이 뛰어나다 보긴 어려운 등 좋다고 보긴 어려웠으며, 함생은 앞서 서술되다 시피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좋다보긴 어려운 별명이 붙고 어영부영 살다가 1959년에 매각 후 해체되는 함선이라... 그저 함재기들에 두들겨 맞아 침몰했느냐, 매각 후 해체되냐의 차이에 불과했다.

사실 영국 전함들의 활약은 야마토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노르웨이에서 독일 수상함대 절반 가까이를 박살내고 추축국 해군의 악몽으로 군림한 워스파이트를 제쳐두고라도, 다른 전함들도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성실하게 전공을 쌓았으니 구축함에게 쫓겨난 야마토와는 수준이 다르다.

그나마 일본군의 삽질과 비교될 만한 사례는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결정타가 함재기의 뇌격이었음에도 말레이 해전에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를 항공호위없이 파견했다가 말아먹은 것 정도. [54]

7.2.2 미국 해군

7.2.2.1 구형 전함 및 표준형 전함

와이오밍급 전함 아칸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화력지원을 하는 등 활발한 활약을 펼쳤고, 태평양에선 오키나와 전투 등에도 활동을 했다. 뉴욕급 전함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며 화력지원을 했고, 네바다급 전함은 진주만 공습에 대파하는 피해를 입어 네바다만 살아남았지만, 마찬가지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화력지원으로 할일을 했고,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펜실베이니아는 태평양에서 일본군의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를 다른 전함들과 함께 격침시키며 자매의 복수를 했다.

뉴멕시코급 전함은 속도 문제로 호위항모와 함께 다니며 섬에 짱박힌 일본군들을 포격하는 활동을 했으며 테네시급 전함 테네시, 캘리포니아는 펜실베이니아등 다른 전함들과 함께 야마시로를 격침시키고 이오지마, 오키나와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콜로라도급 전함도 야마시로 격침에 함께 했으며, 이오지마 등지에서 활동했다.

7.2.2.2 고속전함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워싱턴이 대서양에서 티르피츠 잡겠다고 나섰다가 호위해야 했던 PQ-17 선단이 탈탈 털린 추태를 보이긴 했지만,[55] 태평양에서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격침시키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유독 사고가 잦아 전함X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엄청난 떡장으로 최소 26발은 넘는 포격을 받았음에도 14인치 포탄 1발만이 피해를 줄 수 있었고 그나마도 16인치 대응장갑을 지닌 사우스다코타에겐 큰 영향은 없었으며, 미국 전함 중 최초로 일본 본토 포격을 한 전함이기도 하는 등 활약을 보여줬다. 전쟁 후반기에 참여한 아이오와급 전함은 크게 눈에 띄는 전과가 없지만[56] 다른 전함과 함께 긴 공백기 없이 종전까지 여러 전장에 참가하여 지상 포격, 호위 같은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7.2.3 독일 해군

해군력이 취약한 독일군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성능 면에서 문제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연합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57] 게다가 1번함 비스마르크는 어쨌든 적인 영국 해군과 제대로 전투를 벌여서 운빨이지만영국의 자존심을 격침시키고, 신예전함을 중파로 두들겨패서 패퇴시키는 괜찮은 전과를 세우며 영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바다에 침몰시켰고 결국 자존심이 박살나서 분노가 극에 달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비스마르크가 성능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적 전함을 1척을 격침시키고 신예 전함 1척을 두들겨 팼던 공적도 세웠으니, 적 전함 격침은 고사하고 구축함에게 도망친 야마토보다는 높이 쳐줄만 하다.

다른 자매함 티르피츠는 전적도 없었고 더 이상 전함을 잃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노르웨이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스마르크급 전함 1척이 북해인근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영국과 소련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다. 특히 소련입장에서는 독소전쟁 때문에 미국의 랜드리스 물자가 절실했는데. 북해로 물자를 나를때 이 티르피츠 때문에 호위함대가 빈약해져서 수송대가 유보트의 먹이가 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PQ-17 선단 사건으로, 티르피츠가 노르웨이의 정박지를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호위함대가 이를 잡으려고 수송선단을 버리고 몰려갔고 이 틈을 노린 유보트와 독일공군의 공격에 선단은 매우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결국 미국과 영국은 대부분의 물자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이란이나 일본의 눈치가 보이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날라야 했고. 그리고 침몰시킬때도 항공모함과 폭격기 등 온갖 방법으로 반년넘게레이드 공격을 시도하고 결국 육상의 벙커파괴용인 톨보이까지 투하한 끝에 겨우 겨우 격침시킬 정도로 티르피츠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반면 야마토는 비록 일본 해군의 상징인 만큼 적극적으로 격침에 나선 최우선 타겟이었긴 했지만 티르피츠 같은 전략적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미 해군 항모전대의 전후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제물로서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결국 비스마르크급은 전공을 세우거나, 연합군의 보급을 방해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녔지만 야마토급은 그런게 하나도 없어서 평가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성능으로 치면 문제가 많았고 상대도 상대였던 만큼 상황이 열악했기도 했지만, 노르웨이 침공때도 참여했고, 이때 항공모함 글로리어스를 격침 시킴으로서 전함으로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첫 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하는 등[58] 나름대로 할수 있는 한의 활동을 한 편이다.

독일해군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 이상 아는 이가 드문편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도이칠란트급 전함(동명의 장갑함과는 별개)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1차대전때의 노인이던 만큼 비스마르크급이나 샤른호르스트급 같은 활약은 없었지만, 1939년, 폴란드 단치히 항의 요새를 포격함으로서 2차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포성을 터트린 전함이기도 했다.

7.2.4 소련 해군

해군력이 취약하기로 유명한 소련군의 구식 전함인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나름대로 전과를 올렸다. 마라의 경우 러시아 발틱함대의 모항인 크론슈타트 내부에 정박한 상태에서 자매함과 함께 포격 지원에 참여했다. 이전에도 폭탄 몇발을 맞긴 했으나 전함의 맷집에 그정도는 끄떡없는 수준이었고 결국 독일군은 슈투카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을 호출했다. 루델의 활약으로 기어이 항공폭탄이 1번 주포탑에 명중, 탄약고 유폭으로 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함수부터 전방 함교에 달하는 부분이 통째로 박살나는 큰 피해를 받으며 사실상 폐함이 됐지만, 항구 내부라 수심이 낮은 지역인 덕분에 어떻게든 다 가라앉지는 않고 착저. 보통 군함이라면 이 시점에서 함생을 끝마쳤겠지만 마라는 심지어 3분의 1이 박살난 그 상태로도 응급복구를 실시해 더 이상의 침수를 막고 살아있는 주포탑들을 근성으로 가동시켜 육군 포병 관측반의 좌표에 따라 포격지원을 해주며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그렇기에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라인데 야마토 따위랑은 비교할 수 조차 없다. 가성비나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바닥도 없이 비참해진다. 항목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강구트급은 슈퍼 드레드노트급도 아니라 카이저마리네카이저급 전함 같은 초기형 드레드노트급으로,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같은 정신나간 파란을 겪으며 해군을 새로 만들 여력이 없었던 소련 당국이 어쩔 수 없이 당시 기준으로도 노인 학대를 한 셈인데 이를 운용한 붉은 함대 장병들의 근성 덕분에 뽕을 뽑으며 분투를 한 것이다.

크게 조명되지는 않지만, 다른 소련군 군함들도 나름대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라와 동형함인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마라와 함께 크론슈타트에서 포격을 날려댔고, 마찬가지로 동형함인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세바스토폴을 방어하는 임무에 투입되어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을 향해 포격을 했었으며, 이후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에도 지원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앞서 서술된 것 처럼, 강구트급 전함 자매들은 일본 해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들 보다 몇배는 더 강력한 야마토 따위와 비교하는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성공했다.

7.2.5 그 외에

이탈리아군의 리토리오급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는 활약은 못했어도 여기 저기 영국 해군을 방해하는 작전에 돌아다녔고, 리토리오는 타란토 공습에서 소드피시의 항공어뢰 3발에 착저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함대를 이끌고 약간의 손상만 입고 아군 함대의 사상자가 하나도 없이 적 순양함과 구축함 여럿을 손상 입히기도 했다. 그 외에 전쟁 초기에 독일에게 단숨에 털려서 안습화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이 있다.

물론 야마토급 전함의 전과의 부실은 야마토급 전함의 능력 자체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강구트급보다 전함으로써의 스펙은 훨씬 좋았음에도 당시 세계 최강 미 해군과 상대 해야했다는 점과 사용자가 멍청한일본군이라는 점이 더 문제였다. 위의 비스마르크 급 전함이나 강구트 급 전함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연합함대의 소속 전함이었으면 똑같이 비참한 꼴을 당했을 것이며 반대로 야마토급 전함들이 저 위의 사례에 해당되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결국 무기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쓰는 놈이 누구였냐가 가장 큰 문제였던 셈.

7.3 과연 세계 최대의 삽질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군의 흔한 삽질 사례 중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이는 철저히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야마토가 기획되고 취역할 때까지만 해도 전함 대신 항공모함이 함대결전의 주역이 될 거라고는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 야마토가 건조될 당시 동시대 여러 해군국들도 막 전간기 '해군의 휴일'이 끝나면서 신형전함을 다수 건조하고 있었다.참조 일본군이 무언가 신형전함을 건조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만 입수한 미국의 대응 역시 똑같은 거함거포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었다는 걸 볼 때 최소한 당시로서는 결코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총톤수와 건함능력에서 미국에게 압도적 열세를 보이는 일본이, 개함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개별 함정의 전투력을 극대화하자는 선택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59]. 또한 결과론적으로도 7척의 정규항모와 4척의 경항모가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 2시간 가까이 어뢰와 폭탄을 쏟아부은 끝에 가라앉힐 수 있었던 6만 톤짜리 철덩어리이었다.[60] 즉 상대가 미국, 그리고 운용하는 측이 일본만 아니었다면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은 있던 함이었다.

물론 미국의 전쟁수행 역량이 고작 초대형 전함 몇 척 갖고 어떻게 해 볼 수준을 한참 넘는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부터 상당한 과실임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물론 아주 인식이 없는것은 아니어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고노에 수상에게 말한 것과 같이, 개전 전에는 '1년이나 1년 반은 백중지세일 수 있으나 2년이나 3년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준비가 너무 안 된 연합군 상대로 초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가 그걸 잊어버린 게 문제.

이에 더해서 정작 거함거포주의 시대를 끝장내고 함대결전의 양상을 항공모함 중심의 항공전으로 뒤바꿔버린 계기를 마련한 주역은 다름아닌 일본 해군 자신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얼마 안 가서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에서 그들이 재미를 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드웨이 해전부터 지옥을 맛보기 시작했고[61], 야마토 자매들 또한 그 와중에 1척씩 용궁행 관광버스를 타게 된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야마토급 전함이 강력하다고 해도 일본군 수뇌부가 야마토급을 5성급 호텔로만 쓰고 있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위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한 사실이지만, 만일 일본군 수뇌부가 야마토급을 진정한 주력함으로서 계속 전면에 내세워 싸우게 만들었다면 비록 완벽한 설계의 전함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위력과 장갑이 어디가는건 아니었기 때문에 야마토의 평가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포신의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면 삼식탄을 통해, 연합군이 그리하였듯 대지상지원을 통해 적 기지에 피해를 강요할 수도 있었을것이다.[62] 운만 좋았다면 계속 수훈을 쌓아갔을 일본 해군 최고성능의 함선을 무능한 운용으로 말아먹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야마토 본함조차도 일본군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7.4 야마토의 설계도면

설계도면이 그대로 남아서 연구자들과 애호가들에게 다대한 참고를 제공하는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야마토급은 일본이 패전후 관계된 일체의 자료를 완전히 폐기하는 바람에 설계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자료를 복구해야만 했다는 낭설이 떠도는데, 그럴리가 있나? 야마토급의 설계도는 꽤 많은 양이 남아있다. 물론 군의 것은 폐기되었지만 건조업체 것은 대부분 남아있었고, 특히 무사시를 건조한 미쯔비시와 시나노 하청 건조를 맡은 카와사키는 미군 조사관이 오자 마자 줬다. 당연히 전범 면죄 거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맥아더가 준건 자이바츠(재벌) 해체였다. 이미 때가 늦은 격. 설계도 다 줄테니 봐주세요. 개전할땐 마음대로지만 패전할땐 아니란다.

이를 통해 분석이 많이 되어 있다. 야마토 자신의 것 뿐만 아니라 무사시 및 시나노급의 설계도는 더 많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구조 분석 또한 많이 진행되었다.

야마토의 장갑구조 (출처 : WARSHIP MAGAZINE 1987)

도면상 나타나는 장갑 구조 등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함(超戰艦)"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다만, 위에 언급된 카탈로그에 나타나지 않는 각종 문제점과 안습 활약상 때문에 주로 까이는 것... 그러므로 제대로 된 국가에서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고, 상식적인 지휘부가 이 배를 운용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로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 상식적으로 운용했다면 그건 이미 야마토가 아니잖아 어찌 보면 일본군 전투기 에이스들 같은 억울한 처지. --차라리 반자이어택 안하고 나가토같이 항구에 가만있었으면 그래도 나름 초전함이니 미군이 잘 써줬을수도 있지[63]

7.5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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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동남쪽에 있는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大和ミュージアム)이 있다.[64] 여기에 위에 언급된 1/10 야마토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갑판의 경우 실제 나무를 가공하여 제작하는 등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야마토 모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1/10 크기가 저 정도면, 진짜는 도대체 얼마나 컸다는 걸까...

그리고 레고블럭으로 만든 구조물 중 세계최대의 구조물도 야마토급 전함의 스케일 모형이다.

지금으로선 야마토가 일본 해군의 상징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구 일본군 해군 기지가 있었던 지방의 해양박물관에는 1/10 사이즈의 거대 모형이 당당히 만들어져 있고, 전함 야마토란 이름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위시한 온갖 문화/오락 상품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고, 흥행하고, 또 나오고 있다. 일단 외관이 굉장히 특징적이기도 하고. 이것이 단순히 한때 '세계최대의 군함'을 굴렸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현재 일본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것인지는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65] 하여튼 여기까지만 보면 야마토라는 군함이 일본 국민들에게 체제 선전의 일환일지언정 여러모로 사랑 받고 관심을 받았던 군함인 것처럼 보이고, 각종 일본의 가상매체에서 일본 전함의 대표격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 군부는 종전까지 야마토라는 세계 최대 전함의 존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야마토의 정식 배치는 진주만 공습 이후이며, 단 한 번도 관함식 등의 행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야마토에 대한 사진도 영상도 관련 보도도 일절 없었다. 이는 (일본 해군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일본인들이 종전까지 자국에 이런 전함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야마토가 알려진 것은 전함이 침몰하고 일본이 패전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해 이런 저런 자료가 공개된 후의 일이고, 어디까지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언론플레이였던 야마토 신성화 작업의 결과였다. 이로서 미국이 야마토급의 대항마로 몬태나급 전함을 건조하려 했다는 설[66]도 이걸로 간단하게 논파된다. 자국민들조차 전쟁이 끝난 후에야 존재를 안건 둘째치고 상술했다시피 해당 함에 탑승한 승조원들조차도 제대로 된 스펙을 몰랐던 야마토급이건만 대체 미국이 무슨 수로 자료를 입수한단 말인가?[67]

이 점을 생각하면 야마토가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다거나, 일본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거나,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거나 하는 지금의 인식은 완전히 허황된 것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전함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긍정이든 부정이든 인식이 있을리가 있나. 결국 야마토는 전쟁관련 저술가들이나 각종 매체의 재포장에 의해 마치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듯 묘사되었을 뿐, 현실에선 있는지도 모르고 사라져갔던 전함에 불과하다. 위에서도 여러번 언급된 바 있지만, 이것은 그 당시의 일본 내의 군함들 중에서 전함들에 대한 인지도만 봐도 나가토급 전함의 자매함들의 인지도가 야마토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나가토와 무츠는 나라의 자랑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야마토에 비해 넘사벽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실제 전쟁에선 야라레메카로 떨궈지기 바빴던 칠면조인 제로센도 전후문학에서 일당백이었던 무적의 전투기로 기술되고 있는데 이는 전후 패배감과 열등감에 휩싸여있던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정신승리적인 작품이었다. 야마토도 이의 일환으로 극우들에 의해 끄집어내져 일본 사회에 대대적으로 선전해졌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즉 야마토가 지금처럼 유명해진건 어디까지나 전쟁 끝나고도 한참 이후의 일이고, 제로센과 마찬가지로 얄팍한 여론 선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실제로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전함, 국내외적으로 일본 해군을 상징했던 전함, 일본 해군의 가장 잘 알려진 전함은 아끼려다 망해버린 야마토가 아니라 일본 해군 최초의 16인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야마토급이 취역할 때까지 오래도록 연합함대 기함 노릇을 했던 나가토이다.

8 기타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만주,북중국 지역에 세운 호텔 체인 이름이 바로 야마토 호텔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전쟁 이후 압수된 호텔 건물들은 중국에 의해 개명된 후 호텔 영업을 재개했고, 마오쩌뚱 같은 중국 정치인들도 묵을 정도의 고급 호텔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이 당시 건물을 기반으로 영업하고 있다. 운영 시기로 보아 호텔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야마토 최후의 함장을 지낸 아루가 코사쿠는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 제4구축대 사령관을 지냈다. 참고로, 그 당시에 운명의 5분을 만들어낸 전설의 구축함 아라시가 바로 이 부대 소속이었다.

일본 나라현 텐리시(天理市)에 있는 오야마토 신사(大和神社)와 관계가 있었다. 오야마토 신사는 격으로는 이세신궁에 버금가는 곳이며, 야마토번에서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신사였다. 야마토번의 이름을 따 야마토가 진수하자, 이름도 똑같은 오야마토 신사에서 분령을 받아 전함 안에 소형 신사를 설치했다. 야마토가 가라앉은 뒤 오야마토 신사에는 사망자 2736명을 조령사(祖靈社)에 모시고 2015년에는 전후 60년을 기려 '전함 야마토 유카리의 신사'(戦艦大和ゆかりの神社)라고 새긴 석비를 건립하였다. 크기도 일부러 2736명을 기리는 의미로 1300 x 2736 mm로 맞추었다

수중에 있는 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9 가상 매체에서의 야마토

일단 현실의 최후가 어쨌든 간에 일본 해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함이긴 했었고 동시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으니만큼 다양한 매체에서 야마토 자신, 혹은 야마토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군함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적으로든, 아군으로든 구일본 해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적으로는 최종보스로서, 아군에게는 최종병기로서 등장하며 일본 해군이 등장하지 않는 매체에서도 제로센 처럼 자주 등장한다.

9.1 애니메이션 & 코믹스

  • 우주전함 야마토에 등장하는 주력함이자 주인공(?). 이미 이름부터가... 왠지 사람들에겐 야마토의 잔해를 건져다가 그걸 우주전함으로 개조했다는 설정이 퍼져있는데, 실제로는 야마토의 잔해는 두 동강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부품으로 못 써먹을 수준으로 썩어있어 야마토의 잔해로 위장하여 그 아래에서 건조중이었다. 상세는 야마토(우주전함 야마토) 참조.
  •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람보에서 등장한다. 남미 가상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부 장군이 야마토를 건져올려 현대기술로 수리하여 이걸 가지고 그 나라로 쳐들어오는데, 정부군 해군들이 아무리 펑펑 쏴도 끄덕도 안한다…. 그러나! 역시 람보 홀로 이 배 안으로 들어와 안에서부터 그야말로 먼치킨 위력을 보여주면서 차례로 때려부수고 주포 탄약을 탄약고로 집어 던져 폭발시켜 결국은 바다로 허무하게 가라앉는다. 이걸 멀리서 본 반란군 장군이 "형편없는 고물덩어리 같으니라구!" 마구 화를 내자 부관이 말하길 "그러기에 차라리 비스마르크를 꺼내오는 게 나았다니까요."(…)[68]
물론 람보가 나타나는 시기에,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미국이 위급할 때마다 무덤에서 부활하는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보통 "Katie" 라고 부르는 16인치 핵 포탄 Mk.23이라는 아이오와급 전함의 전용 핵포탄을 보유할 수 있다. 참고로 이 핵 포탄은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고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다. 그 다음은 안봐도 비디오일 수준, 일단 2번 포탑만 핵 포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아이오와급 1척당 핵포탄 3발 일제사격하면 야마토건 비스마르크건 일격필살할 수 있으니 굳이 람보에게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쉽겠지만 애니에선 이 나라에선 미군의 지원이나 여러가지로 반대하여[69] 람보도 미국인임을 숨기고 비밀리에 활약해야했기에 아이오와급을 미군이 지원할 수도 없었다. 해당 에피소드
  • 지팡구에서는 쿠사카와 그 부하들에 의해 탈취되어 두꺼운 장갑으로 미 함대의 포격을 받아내며 미 함대 한가운대에 파고들어 함내의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계획에 사용. 원폭의 폭발을 저지하려는 이지스함 미라이와 근거리 전투를 벌이며 측거의 같은 소소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한다. 본디 미라이는 당시 세계관 기술력으로 보면 완벽한 오버 테크놀러지인 이지스 함이라는 특성상 미해군 항모 와스프를 격침시킬 때처럼 장거리에서 하푼, 토마호크등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야마토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여 격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무고한 야마토의 승조원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순 없다는 그럼 와스프 승무원들은 무고하지 않아서 토마호크랑 하푼을 쓴건가 카도마츠 이등해좌의 판단과, 미라이의 승조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미라이에 대해 잘 알고있는 쿠사카의 지휘가 겹쳐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으로 미라이의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70]하고 승조원들을 여럿 부상시키는 등 선전. 최종적으로 내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이의 미사일에 격침당했으며, 수중에서 함선 내부의 원폭이 폭발하여 잔해조차 남기지 못했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에서는 워록의 참패와 교훈을 잊은 높으신 분들이 네우로이 코어를 박아넣어 야마토[71]네우로이로 만들었다. 다만 강제적으로 네우로이화로 만들어서 그런지 10분 정도가 한계인듯. 만재 7만톤이 넘는 야마토가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에서 밀덕들은 경악했다. 다른 네우로이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약간씩 손상을 입는 것은 네우로이의 재생력으로 보완하는 상태에서 네우로이 둥지까지 진격하여 주포 포격으로 둥지의 코어를 파괴하려 했으나, 포격 직전 네우로이에게 컨트롤을 탈취당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10분이 지나도 네우로이화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미야후지 요시카가 열풍환으로 코어를 파괴한 이후 네우로이화가 해제되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극장판에서는 어떻게된건지 라인강에서 포격지원을 해준다. 아무래도 어느 외딴섬에 고철덩이로 떠내려온 걸 끌고와서 복구시켰던가[72] 아니면 2번함 무사시를 투입했던 듯. 특히 야마토는 네우로이화가 풀리면서 그대로 바다에 입수되었기 때문에 2번함 무사시가 더 확률이 높다.
  •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에서는 인류의 적인 미지의 적, 안개의 함대의 총기함으로 등장한다. 멘탈 모델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공주님 스타일.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한 건 작품이 더 연재돼야 알 수 있을 듯.
  • 달려라 부메랑에서는 합숙에서 이탈하여 귀당원 팀과 승부를 내다 번개에 부메랑을 반파시키고 온 강차돌과 돌진군단+토쿠다 사우르스가 버려진 구 일본군의 방공호 내부를 탐사하던중 지하로 떨어졌을때 발견했으며 이 버려진 야마토급 전함에서 유일한 감독의 DASH 01(이후 슈퍼 부메랑)과 레이스를 펼쳤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버려진 중국군 기지와 중국 전함으로 소개된다.
  • 일본의 가공전기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야마토가 야마구치 다몬의 기함으로 등장. 미군의 사우스다코타와 아이오와랑 포격전을 벌여 서로 중파된다. 또한 과달카날의 헤리슨 기지를 포격한다. 그리고 이게 야마토의 활약 전부다. 이후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려는 에놀라게이를 막으려다 시나노와 함께 원폭을 맞는다. 무사시는 별 활약없이 역사대로 레이테 해전에서 미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됐고, 시나노는 역사와 달리 야마토와 함께 오키나와에서 에놀라게이의 원폭을 맞는다. 명색이 항모인데 함재기를 날리는 장면이 없다.

9.2 게임

  • 다라이어스 2에서는 태양계를 침공한 베르서 제국의 지구 분견대중 일부가 이 전함의 폐허를 활용해서 병기로 개조하는듯 한데, 지구 스테이지에서 상대하게 되는 보스중 하나다.
  • 스트라이커즈 1945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일본 오카야마 스테이지 보스 KII(紀伊. 워싱턴조약 때문에 실제로 건조되지 못한 전함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이름을 빌어서 등장. 키이급이 실제로 건축되지 못했던걸 감안해서인지 포탑배치는 딱 야마토급 전함과 판박이다. 그런데 아래의 함대 컬렉션의 차후 업데이트 예정에 이 키이급 전함이 등장한다고 해서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 함대 컬렉션에서도 의인화되어서 등장. 고증을 살려서 연비, 수리비용, 수리시간, 자원소모량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위엄을 증명하듯 처음부터 강력한 46㎝ 3연장포를 사용 가능한 것이 특징. 자세한 것은 각 항목 참고.
  • 중국 게임 전함소녀에서는 미드웨이 이벤트에서 심해함선 버전으로 등장. 머리에 달린 뿔을 잘려서 전리품으로 제독의 방에 전시크리.
  • 월드 오브 워쉽에서 일본 전함 트리 10티어 최종테크로 등장한다. 항목 참조. 그리고 프로토타입중 J형 모델이 이즈모(A-140)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동티어 전함인 몬태나에 비해 막강한 성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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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더불어 추축국 진영의 대형 중장갑 타겟으로 등장한다. 파괴 시 전술점수 32점을 획득하며, 상대방은 제공권의 최대 32%를 잃는다.
  • Naval Front-Line의 일본해군 최종 종착점이다.미해군 아이오와급과 같이 레벨60급의 전함이다.
  • 네이비필드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 1편에서는 느린 속도와 짧은팔 때문에 슈퍼야마토를 향한 마지막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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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비필드2에서는 11티어 전함으로 구현되었는데. 산탄이 심한데다 내구력도 동급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강력한 공격력과 대공능력, 정찰기 7기 탑재로 커버 가능하다.
  • 스타크래프트에서 그 유명한 전투순양함들의 주포인 야마토포(Yamato Cannon)[73]의 어원이 된다. 정확히는 우주전함 야마토를 패러디한거지만 . 명색이 인류 역대 최대구경의 함포였던 만큼 테란이 사용하는 무기들중 핵공격만이 범접할 수 있을정도로 강력한 무기로 등장하는데, 설정상 베헤모스 반응로 내부에서 핵폭발을 한번 일으킨 뒤 그 에너지를 통째로 에너지 덩어리로 전환하여 발포하는 무기다왜 야마토포를 야마토포라 부르는지 알겠다. 추진기에서 만든 에너지를 냅다 꽂아버린다는게 완벽히 똑같다. 심지어 테란 연합때는 모든 전투순양함이 야마토포를 탑재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병기.
  • 판타시 스타 온라인 2에서는 업데이트된 행성 지구의 거대 레이드 보스로 등장했는데, 넷우익들이 난리를 폈고, 개발자가 해명을 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끝내 함수부분의 국화문양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여지껏 잘만 부수고 굴려먹더니 야마토 발표 라이브 때 유튜브 중계 라이브를 본 외국인들도 디렉터가 마약 한 사발 쳐드셨냐면서 욕을 바가지로 했다. 물론 넷우익들이 발광한거랑 다른 의미로.

9.3 영화

  1. http://tr4br.deviantart.com/art/Battleship-Yamato-colored-282490415
  2. 자매함까지하면 2억 5천만엔이었다고 한다.
  3. 이건 야마토만의 특징은 아니고, 좀 크다 싶은 배는 대부분 이런 표식이 있다. 건물 안에 붙어있는 안내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 2차대전 시기로만 한정해보면, 페이퍼 플랜상으로는 이보다 배수량이 더한 나치 독일 해군(Kriegsmarine)의 H-4X시리즈가 있었다. 워낙 독일 해군이 죽을 쑨데다가(유보트는 논외) 페이퍼 플랜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중 하나인 H-44의 경우 본함의 2배에 근접하는 14.15만톤이 배수량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이에 질세라 일본군도 100만톤급 페이퍼 플랜이 존재했었다.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배는 로열 더치 쉘이 주문해서 삼성중공업이 제작중인 60만톤짜리 해상 LNG 저장 선박이다.
  5. 다만 후소의 경우는 예외다. 후소(扶桑)는 애초에 일본의 번국같은 게 아닌 일본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6. 항공모함인 카가 역시 원래 전함 출신이었기 때문에 번국명을 함명으로 쓰는 것이다. 카가급 전함 문서를 참고하자.
  7. 여기서 세 척중 한 척인 시나노는 건조 도중에 급하게 항공모함으로 개장을 하다 보니 부실시공이었다. 그래서 어뢰 단 네 발 맞고 꼬르륵...
  8. 참고로 이 형태가 월드 오브 워쉽 일본 전함 트리의 핵기뢰로 유명한 이즈모급 되시겠다.
  9. 코스트 절감 양산형인 운류급의 건조비용이 쇼카쿠급보다 비싼 이유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나노도 1억 4천만엔도 이 영향을 받은 금액이고, 전쟁 이전에 건조된 야마토와 무사시의 건조비용은 그보다 적은 1억 1천만엔 정도. 참고로 존재 자체가 극비였던 함인지라 사용내역은 4만톤급 전함 1척과 구축함 1척의 건조비용 등으로 위장되었다.
  10. 이 배의 이름에 대해선 구 번국명 중 오와리, 미카와, 사누키 등 여러 가지 설이 오가고 있으나 전후 공개된 해군 자료 내용 중 이 111호함에 대해 당초 88함대 계획 5번째 전함에 붙여질 예정이었던 키이라는 이름을 따서 본함을 지칭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예정함명은 키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11. 전후 해군학자들이 거론하는 함명예측에 따르면 개 야마토급 및 초 야마토급에는 옛 키이급에 예정된 함명에 따라 4번함의 키이에 이은 오와리, 스루가, 오미 등의 함명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당시 일본해군의 전통상 함명은 함선의 진수식에서 덴노가 직접 명명하는 것으로 정식화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야마토급 4번함 이후의 함명은 어디까지나 예정안일 뿐 정식 함명이라고는 볼 수 없다.
  12. 사실 막 후소급 전함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던 영일동맹 기간에 영국은 3연장 주포탑 제조 기술도 넘겨준다고 했지만 일본은 단점이 많으니 필요없다며 거절하는 무시무시한 실책을 저질렀다. 물론 일본도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으나 이후 태평양 전쟁이 개전된 이후에는 당연히 돈을 아무리 쥐어준다고 해도 적국에게 귀중한 주포탑 다연장화 제조 기술을 줄 턱이 없으니 일본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13. 전쟁중에 포로를 통해서 18인치 주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런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라는 정도였지만 레이테 만 해전에서 무사시와 야마토를 근접거리에서 목격한 후에 18인치라는걸 확실시 했다고 한다 출처(영어)
  14. 단 막 다연장 주포를 단 전함들에게선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조준장비의 개선이나 주포 및 구조물 개선으로 해결했다.
  15.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주포다.
  16. 야마토 격침 당시 전사.
  17. 이 당시를 다룬 자전적 소설 '창가의 토토' 중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시중에 기호품이 거의 나돌지 않아 캐러멜 자판기가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든가, 궁핍한 상황에서 음악을 했던 저자의 아버지로 하여금 전선으로 위문공연을 가면 가족에게 많은 식량이 배급 나올 거라는 제안이 온다든가, 전선으로 나가는 학교 용무원 아저씨를 송별하며 '대단한 음식' 인 구운 오징어로 연회를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나온다.
  18. 사실, 이건 당시 일본의 정책 방향의 하나였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미군의 기뢰밭과 폭격기밭을 무사히 뚫고 돌아온 불멸의 보급선에서 가져온 물자를 일반 국민보다는 군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19.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덩치 큰 함선에 탄 경우 함내 소화전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아이스크림탄산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20. 인명경시 풍조를 가진 일본군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일단 부상당해 본토 및 주요 거점의 어느 정도 규모있는 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은 전방의 장병들보다 더 후한 대우를 받았다.
  21. 당시 영국 해군도 함내 PX 운영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군무원으로 고용해 해결했다.
  22. 이는 타국의 모든 전함도 마찬가지이다.
  23. 잘 이해가 안간다면 언더 시즈를 보자. 언더 시즈에서 스티븐 시걸이 잠수함을 박살내기 위해서 16인치 3연장포중에서 하나만 사용해서 사격했지만 토미 리 존스옹이 쭈우욱 날아가고 맨정신이 아닌데# 이거도 영화 전개를 위해서 좀 약하게 표현한거다
  24. 물론 연합군 전함들도 40㎜ 보포스 중구경 대공포좌들은 노천개방 포좌이다. 그러나 127mm 포좌들은 밀폐식 포탑인데다가 결정적으로 개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대공전투중에 주포의 발사폭풍으로 맛이 가버리지는 않았다.
  25. 연료 보유량만 줄인 것이 아니라 장갑판의 두께까지 줄여 버렸다! 현측 주장갑은 400mm, 갑판 장갑은 190mm로 삭감한 것.
  26. 만약 공사 중단 없이 건조가 진행되었을 경우 야마토 건조 경험이 피드백되면서 작업이 효율화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시나노는 진주만 공격 직후에 진수 직후 단계까지 공정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111호 함은 45%까지 공정이 진척되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설계 변경을 하지 않았다면 야마토급의 3, 4번함은 전함으로 완공되거나 아니면 항모로 전환되든 간에 전쟁 중 완성될 가능성이 컸다는 이야기.
  27. 이거 비단 야마토급같은 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군의 중형폭격기인 G4M 1식육상공격기도 초기형에 비해 후기형은 항속거리가 심각하게 줄었다.
  28. 열팽창을 줄이기 위해, 강선(총열 내부에 새기는 강선이 아니라, 금속으로 된 와이어를 말한다.)을 두르는 것)
  29. 소총의 총강경에 해당한다.
  30. 이거 농담이 아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미 해군의 태평양 함대 모항인 진주만에 기습적인 공습을 가한 후 FDR이 의회에서 한 연설, 이른바 치욕의 날 연설만 봐도 알 수 있다.
  31. 단순히 지상 기지 공격용 무장만 장착하고 있던 태피3 호위항모들은 너무 급박해서 함재기에 지상 공격용 무장만 일부 다는데만 성공했지 나머지는 유폭을 우려해 무장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함재기들을 페이크 공격 및 진짜 공격을 병행해가며 없는 어뢰도 있는 척, 없는 급강하 폭탄도 있는 척, 진짜 지상공격용 폭탄을 떨어뜨리며 싸웠다. 할 수 있었다면 문고리도 던졌을 것이라는 스프레이그의 어록도 있을 정도로 급박했다.
  32. Aircraft Carriers: A History of Carrier Aviation and Its Influence on World Events: 1909-1945. Potomac Books, p.434
  33. Yamato (Battleship, 1941–1945) in the Battle of Leyte Gulf
  34. Aircraft Carriers: A History of Carrier Aviation and Its Influence on World Events: 1909-1945. Potomac Books, p.434
  35. 原勝洋 '日米全調査 決戦戦艦大和の全貌' 203항
  36. ' The World Wonder'd: What Really Happened Off Samar' Robert Lundgren
  37. 뒤에 나올 거대한 버섯구름의 주인공 되시겠다(...)
  38. 현재의 상선 역시도 펌프가 닿지 않는 바닥의 잔류 유량은 연료량으로 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는 쓸 수 없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다만 몇%, 몇톤이 못쓰는 연료인지에 대해 정확한 기준이 있는건 아니라서, 해상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선장이 서류외로 임의 보유하는 예비 연료의 의미도 있다. 한창 고유가가 천장을 치던 2011~2012년도에는 이렇게 관행적으로 없는 셈 치는 연료량까지도 박박 긁어서 선박 용선/반선시 유량을 계산하는 전문 서베이 업체들이 성행한 적도 있었다.
  39. 근데 워낙 승조원이 많다보니 야마토에 실어 놓은 배급할 돈과 물자 구입비가 자그마치 51만 805엔, 지금 가치로 10억 엔이었다! 관련 4컷만화
  40. 이 때 미처 제독의 참모장였던 알레이 버크 제독(당시 대령)이 상관인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보낸 전문과 그 회신이 아주 유명하다. 알레이 버크 항목 참고.
  41. 이 한발도 야마토 쪽에서 일부터 몸을 틀어 의도적으로 맞은 것이었다. 한쪽만 침수되어 배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대쪽도 침수를 진행시키려는 의도였는데, 정작 이 한발은 야마토의 선체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던지라 침수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오후 2시 7분 미해군의 모루 전술에 의해 우현에 명중한 유일한 어뢰로 3번 기관실을 침수시켰다. 야마토의 침몰 막바지인 3차 공격당시 이미 야마토는 역침수의 한계에 다달아 있었으며, 더 이상의 역침수를 했을 경우 회피 기동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42. 아무리 배와 비행기의 싸움이라고 해도 상당히 터무니가 없는 교환비인데, 태평양 전쟁 육상전 중에서 최대의 교환비를 자랑하는 필리핀 탈환전에서는 미군:일본군 교환비가 1:24였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평가받는 독소전쟁의 전차전에서도 독일군:소련군 교환비는 최대 7.9:1이었다.
  43. 키로프급은 거함이긴 해도 거포는 아니기 때문에 거함거포주의의 산물로 보기는 어렵다. 130mm 2연장 함포로 무장하긴 했지만 5인치보다 조금 더 큰 수준으로 거포를 논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키로프급의 주 무장은 오히려 거포의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미사일이다.
  44. Aircraft Carriers: A History of Carrier Aviation and Its Influence on World Events: 1909-1945. Potomac Books, p.434
  45. Reynolds, Clark G (1982). The Carrier War. Time-Life Books
  46. Yamato (Battleship, 1941–1945) in the Battle of Leyte Gulf
  47. Aircraft Carriers: A History of Carrier Aviation and Its Influence on World Events: 1909-1945. Potomac Books, p.434
  48. Reynolds, Clark G (1982). The Carrier War. Time-Life Books
  49. Garzke and Dulin (1985), p. 57.
  50. 사실 독일 해군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독일 해군 재건 프로젝트인 Z계획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말아먹었고, 그나마 있는 해군은 노르웨이 침공작전 당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장갑함 그라프 쉬페는 남대서양에서 침몰당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당시 히틀러가 소련을 노리고 있으니 자칫하다간 지금 건조중인 함선들도 히틀러의 변덕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독일 해군이 보유한 최대의 전함인 비스마르크가 만약 전공을 세우고 귀환한다면 그나마 약한 독일 해군의 입지도 나아지진 않을까 하여 출격한 것. 뭐 결과는 안습하지만..
  51. 그나마 바로 쓸 수 있는 질좋은 원유를 넣고 다니다가 화를 당한 배가 다이호.
  52. 게다가 야마토의 주포는 위의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제작 과정이 너무 복잡한데다 포신 내구 수명도 짧았기 때문에 실사격 훈련으로도 써먹을 게 못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보통 함포로 실사격훈련을 하는데 쓰는 포탄의 수가 100발 정도는 거뜬히 넘어가는 것을 생각할 때 포신 내구 수명이 200발 정도 밖에 안 되는 건 치명적이다.
  53. 실제로 야마토는 당시 일본 내에서는 해군의 일부 고위층 인사들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존재가 감춰졌으며, 본토에서 가장 유명했던 전함들은 나가토급 전함의 두 자매함 나가토, 무츠였다.
  54. 실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리펄스와 같이 파견 예정이었던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이 훈련중 좌초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 걸 수리하느리 지연된 동안에 말레이 해전이 벌어저서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가 침몰했다.
  55. 이는 워싱턴의 잘못이 아니라 영국 해군 지휘관의 판단 미스의 문제였다.
  56. 아이오와급 중 유일하게 아이오와와 뉴저지가 대함전과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함선과 함께한 공동 격침이며 직접적인 파괴를 확인한 뉴저지와 달리 아이오와는 그것 조차 불명확한 상황이다.
  57. 성능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전함의 화력과 장갑은 순양함정도로 상대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게다가 영국의 전함들은 비스마르크보다 전부 느리다는점 때문에 비스마르크가 대양으로 나와서 설치기 시작하면 영국입장에서는 대단히 곤란해질 수 있다.
  58. 그렇다, 야마토가 위에 서술된 사마르 해전에서 할 뻔 했다가 태피3의 구축함들의 용맹한 항전에 꽁지 빠지게 내빼는 통에 실현하지 못한 그것이다.
  59. 어떻게 보면 현재의 한국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이 타국의 이지스함들보다 크고 과무장을 한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수 있다. 충분한 숫자를 갖추긴 힘드니 소수의 강력한 함정을 보유하자는 식.
  60. 구체적인 함재기 수를 말하자면 11척의 항모에 적재 된 함재기 숫자는 대략 800기 이상이었고, 작전 당시 공격에 참가한 함재기 수는 367기 정도 였다. 그 중 야마토를 노린 함재기는 총 117기로 전투기 15기, 전폭기 5기, 급강하 폭격기 37기 뇌격기 60기였다.
  61. 이거 정확히는 둘리틀 특공대 부터다.
  62. 다만 일본군이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한 전함을 통한 대지상지원을 한 적은 없기때문에 그저 가정일 뿐이긴 하다
  63. 물론 핵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긴하다만..
  64. 정식명칭은 "쿠레시 해사역사과학관"(呉市海事歴史科学館). 참고로 이곳에서 맞은편에는 퇴역한 '유우시오급 잠수함이 간판이면서 옥외전시한 "해상자위대 쿠레 사료관"(海上自衛隊呉史料館. 애칭: 철고래관(てつくじら館))이 있다. 이곳 야마토 뮤지엄에는 입장료(일반: 500엔(약 6000원), 고등학생: 300엔(약 4000원), 초•중학생: 200엔(약 3000원))를 내야 하는 반면, 그쪽은 무료이다.
  65. 실제로 야마토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1/10 야마토함을 보게 되면 선미와 선교 부분에 욱일기가 장식되어있으며, 기프트샵에서도 욱일기가 그려진 텀블러나 지갑 등을 볼 수 있다.
  66. 일본에선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다.
  67. 게다가 야마토가 전장에서 경험을 쌓으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미 해군의 목표는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항공모함만 골라서 격침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야마토가 끼어들려 하던 때의 미 해군은 이미 연합함대의 항공모함을 죄다 탈탈 털어먹고 퇴각하던 시점이었다.
  68. 재밌게도 실제로 야마토는 대폭발로 선체가 조각조각났으나 비스마르크는 포격전으로 치명타를 입은 뒤 영국군의 어뢰로 처분(또는 비스마르크 승조원에 의한 자침)된지라 선체 자체는 원형을 유지한 채 얌전하게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수백발의 주포탄이 맞은지라 원형은 유지했으나 구멍투성이에 내부가 엉망이니 야마토 수준의 난이도는 아니지만 수리가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69. 극중 미국이 이전에 이 군부장군을 도와서 깽판을 돕던 일이 있어서 미국에대 하여 증오감이 크다.정부군 장군이 되려 람보 멱살을 잡고 이 놈이 적군과 한패일지 누가 압니까? 이럴 정도였다ㅡ
  70. 대공포탄인 3식 탄의 특성상 내부에 많은 자탄(子彈)이 장탄되기 때문에 이를 일종의 산탄으로 써서 미라이의 함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고 그와중에 부수적으로 외부에 노출된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했다.
  71. 근데 잘 보면 함수 문양이 실제 야마토와 다르다. 국화문양이 아니라 벚꽃문양. 애초에 이 작품의 후소 황국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을 닮은 다른 나라니까.
  72. 2기 마지막에 신덴 유닛과 함께 정체불명의 섬에 떠내려와있었다.
  73. 1때는 Yamato Gun이었으나 2에서 Yamato Cannon으로 변경되었다. 이나저나 대포라는 의미는 같지만.
  74. 깨알같은 점으로 위 영상에서 격추된 미군 함재기의 숫자는 야마토의 실제 격추수와 동일한 1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