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FIFA 월드컵 서독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넘어옴)
역대 FIFA 월드컵
9회10회11회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1974 FIFA 월드컵 서독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1 개요


대회 포스터

1974년 개최된 10번째 월드컵. 1974년 6월 13일부터 7월 7일까지 서독에서 열렸다.

대회 방식에 변화가 생겼는데 16강 조별 풀리그를 거치는 것까지는 전 대회와 동일했으나 2라운드가 토너먼트 대신 4팀 2개조로 나뉘어 풀리그를 벌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각 조 1위가 결승전, 2위가 3-4위전을 치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경기 수를 늘려 흥행 확대를 노린 FIFA의 조치였다.

전 대회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면서, FIFA에서 새로운 트로피를 만들었다. 이전 줄리메컵과 달리 어느 한 나라가 영구 소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우승팀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다. 이 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월드컵'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명칭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공식적인 대회 이름이 완전히 굳어진다.

동독이 지역예선 통과를 하여 월드컵에 선보이게 되어, 동서독이 모두 참가한 유일한 월드컵이 되었다. 이후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서베를린에서도 몇 경기가 배정되었는데, 여기서 경기를 치르는 팀은 동독을 잠시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동독 역시 서베를린에서 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중도 일시 귀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불세출의 스타 요한 크루이프가 진두지휘한 네덜란드가 토털사커 광풍을 일으킨 대회이다. 하지만 우승은 개최국 서독의 차지.

2 지역예선

개최국 서독과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자동진출권을 부여받았고, 나머지 14개의 티켓은 다음과 같이 배분되었다.

  • 유럽 : 8.5장
  • 남미 : 2.5장
  • 북중미/카리브, 아시아/오세아니아, 아프리카 각 1장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참가국이 대거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이 대회서부터 티켓 수를 늘리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득권을 지닌 유럽과 남미쪽에서 '아직 제3대륙의 실력이 한참 못 따라온다'는 핑계를 대며 티켓 확장을 거부, 그대로 16개팀으로 대회가 진행된다. 다음 대회까지 16장으로 이어지다 8년 후 스페인 월드컵부터 24개국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2.1 유럽 예선

굵은 글씨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가들이다.

1조 : 스웨덴, 헝가리, 오스트리아, 몰타

- 전 대회에서 아쉽게 예선탈락한 스웨덴, 첫 조별예선탈락의 수모를 씻고 8년만의 재기를 노리는 헝가리, 세대교체 성공으로 서서히 물이 오른 오스트리아의 3파전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도전하는 최악쳬 몰타는 모두의 예상대로 6패 승점타임이 되고, 나머지 세 나라가 물고 물리는 추격전 끝에 승점이 동률이 되었다. 헝가리가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네 경기를 모두 무재배하며 2승 4무 12득점 7실점,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무재배하고 스웨덴과 한번씩 승패를 주고받으며 3승 2무 1패 14득점 7실점, 스웨덴 역시 3승 2무 1패 15득점 8실점이 되었다. 당시는 승리를 2점으로 쳤기 때문에 세 나라가 승점 8점이 되는 미친 스코어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 와중에 골득실이 +5로 밀리는 헝가리는 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골득실까지 +7로 같았기 때문에 다시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진출자를 가렸다(다득점으로는 스웨덴이 한 골씩 앞서지만 이 땐 그런거 없다). 플레이오프 결과는 스웨덴 2-1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가까스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2조 : 이탈리아, 스위스, 터키, 룩셈부르크

- 누가봐도 전 대회 준우승의 위엄을 가진 이탈리아의 독주였다. 나머지 셋 모두 이탈리아에 게임이 되질 않았고 이탈리아가 4승 2무 12득점 0실점으로 무난히 조 1위 달성. 이탈리아조차도 무실점으로 월드컵에 진출한 경우는 이 때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리고 정작 본선 가서는 실컷 두들겨맞고 오는데... 터키와 스위스가 나란히 2승 2무 2패 콩라인을 차지하지만 실점이 하나 적은 터키가 2위, 스위스가 3위. 룩셈부르크는 1승 5패 2득점 14실점으로 또다시 광탈했지만 역시 1승을 챙긴 것에 의의를 둬야 했다.

3조 :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 유로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한 아약스의 대활약과 전설의 요한 크루이프를 선두로 한 네덜란드, 역시 전력이 무섭게 상승세를 타고 있던 벨기에의 2파전이었다. 두 나라 모두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관광태우고 서로간의 맞대결에서 2무를 기록해 4승 2무의 성적을 거뒀지만 골득실에서 네덜란드가 24득점 2실점, 벨기에가 12득점 0실점을 기록해 열 골이 앞서는 네덜란드가 본선에 진출했다. 벨기에는 4승 2무에 무실점을 거두고도 네덜란드에 밀려 본선 진출해 실패했다. 단 한 골도 내주지 않고 한 번도 안 졌는데 본선을 못 밟은 나라는 1974년 벨기에가 유일하다. 단체자살 안한게 용한듯 더욱이 승점 동률을 기록한 네덜란드가 토탈 풋볼을 앞세우며 준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컵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습도 이런 안습이 없다. 이 극강의 두 나라에 밀린 노르웨이는 그나마 월드컵에 첫 신고를 한 아이슬란드를 관광보내고 2승 4패를 기록, 월드컵에 첫 도전한 아이슬란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조 : 루마니아, 동독, 핀란드, 알바니아

- 다른 조처럼 극강의 나라가 없던 조였기에 치열한 개싸움이 예상되었고, 그 중에서도 루마니아와 동독이 티켓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역시 틀린 바 없게 되어 동독이 5승 1패 18득점 3실점, 루마니아가 4승 1무 1패 17득점 4실점을 거두며 가까스로 동독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된다. 동독 루마니아간의 상대전적은 1승 1패로 호각세였지만, 3위 핀란드와의 싸움에서 월드컵의 향방이 결정된 것이었다. 루마니아는 1승 1무를 기록한 반면, 동독은 2연승을 거두어 1점차로 월드컵 티켓을 따낸 것. 더욱이 같은 나라였던 옆동네 서독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으므로 더욱 뜻깊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독일에서 열린 이 월드컵이 동독이 진출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이후 1990년 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월드컵을 밟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진출한 이 대회에서 서독과 만나고 서독을 1:0으로 이김으로서 조 1위로 8강 진출... 통일 전까지 서로에게 많은 의미가 있었던 대회이기도 했다. 실제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비...빌리? 동방정책을 실시하며 폴란드에 사과하고 동베를린 방문했던 것도 이 때였으니. 한창 햇볕정책을 시도할 때쯤 열린 2002 한일월드컵을 생각하면 뭔가 통하면서도 은근히 대비된다.

5조 : 잉글랜드, 폴란드, 웨일스

- 처음에는 잉글랜드의 독주가 너무 당연시되던 조였다.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아깝게 미끄러진 폴란드가 절치부심 세대 교체를 이끌어내며 전력이 급상승하면서, 세대 교체 실패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잉글랜드를 상대로 가둬놓고 패기를 시전했다. 결국 1승 1무로 상대전적에 앞서며 총합 2승 1무 1패 6득점 3실점으로 월드컵 티켓을 따낸다. 잉글랜드는 폴란드에게 밀린 것이 타격이 되어 1승 2무 1패 3득점 4실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광탈한다. 1950년 이후 월드컵 도전사에서 처음으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대회였으며, 다음 대회에서마저 진출에 실패하며 축구종가의 명성을 제대로 구기게 된다. 같은 축구종가인 웨일스 역시 최하위로 광탈. 동구권의 듣보잡 취급하던 나라에 두 축구종가가 무너진 (영국 입장에서) 억세게 재수없는 조였다.

6조 : 불가리아, 포르투갈, 북아일랜드, 키프로스

- 4조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한 방이 없는 고만고만한 조였다. 1970년 조 최하위로 광탈한 포르투갈에겐 명예회복의 기회였지만 에우제비오의 공백과 세대교체 실패로 다시 유럽 중하위권으로 내려앉은지 오래였고, 북아일랜드 역시 이렇다할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으면서 침체기를 겪을 때였다. 결국 승자는 이전 3회 대회를 연속 진출했던 불가리아였다. 총합 4승 2무 13득점 3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손쉽게 월드컵 4회연속 진출 티켓을 따낸다. 2위 포르투갈은 2승 3무 1패, 3위 북아일랜드는 1승 3무 2패. 각각 불가리아에 1무 1패씩 당하고 서로 무재배를 하면서 광탈했다. 만년 꼴찌 키프로스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북아일랜드에 1승을 챙기며 전패의 치욕은 겪지 않았다.

7조 : 유고슬라비아, 스페인, 그리스

- 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유고슬라비아가 또다시 한 조에 묶였으며, 당시에도 두 나라가 경합을 펼쳤지만 예상치 못한 벨기에에 일격을 맞고 사이좋게 광탈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경쟁상대 그리스가 너무 약체였기에 이 둘 중 하나가 99% 이상 높은 확률로 월드컵 무대를 밟을 것이었다. 너무나 뻔하게 그리스는 승점자판기 신세가 되고 사이좋게 무재배를 거둬 두 나라 모두 2승 2무를 기록. 골득실마저도 유고슬라비아가 7득점 4실점, 스페인이 8득점 5실점을 기록해 +3으로 같았다. 다득점에서는 스페인이 앞서지만 당시엔 그런거 없다 였으므로 플레이오프 돌입, 여기서 승리한 유고슬라비아가 12년만에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다.

8조 : 체코슬로바키아, 스코틀랜드, 덴마크

- 사실상 체코와 스코틀랜드의 2파전. 덴마크는 당시만 해도 월드컵 본선을 단 한번도 진출 못했던 승점자판기 신세였기 때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전 대회 본선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3전 3패 탈락이라는 굴욕을 겪었기에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스코틀랜드도 축구 종가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세 번 연속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결과는 스코틀랜드의 승리로 3승 1패 5득점 2실점, 조 1위로 진출. 체코슬로바키아는 2승 1무 1패 9득점 3실점으로 골득실에서 크게 앞섰음에도 승점 자판기 덴마크 원정에서의 무승부가 치명적이었다. 덴마크는 1무 3패 2득점 13실점으로 광탈. 이런 팀이 불과 12년 뒤에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하고 18년 뒤에 유로 우승컵을 따내고 22년 뒤에 8강까지 올라갈 줄 누가 알았을까..

9조 : 소련, 아일랜드, 프랑스

- 이 조는 유일하게 1위를 해도 본선 직행을 못하고 남미와 플레이오프를 치뤄야 했다. 플레이오프행은 소련이 유력했는데, 프랑스가 한창 흑역사를 갱신중일때라 적수는 사실상 없었다. 예상대로 3승 1패 5득점 2실점을 기록, 세대 교체에 실패해 침체를 겪고 있었음에도 가볍게 조 1위를 따낸다. 프랑스는 승점자판기 아일랜드에게도 밀리며 1승 1무 2패 3득점 5실점으로 조 최하위를 찍는 굴욕을 겪는다.

2.2 남미 예선

굵은 글씨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국가들이다.

1조 : 우루과이, 콜롬비아, 에콰도르

- 전 대회 4강에 빛나는 우루과이가 톱시드를 받았고, 역시나 우루과이가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전력이 급하강하면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까스로 1위를 수성했는데, 2위 콜롬비아와 승점이 같아 (우루과이 2승 1무 1패 6득점 2실점, 콜롬비아 1승 3무 3득점 2실점) 골득실에 의해 가까스로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다. 이전의 막강한 화력은 온데간데 없었고 세대 교체에 실패하며 바닥을 드러낸 우루과이는 본선에서 톱시드는 받지만, 톱시드 받은 국가들 중 최악의 성적을 내며 광탈하는 굴욕을 겪는다.

2조 :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 전 대회에서 라이벌 브라질이 줄리메컵을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아르헨티나로서는 어느 때보다 중요한 대회였다. 다음 대회를 자국에서 열기 때문에 전초전의 성격도 강했고, 브라질의 독주를 더 이상 눈 뜨고 지켜볼 수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대국인 파라과이 볼리비아 모두 아르헨티나에 월등히 뒤지는 전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3승 1무 9득점 2실점이라는 호성적으로 가볍게 본선 무대에 안착한다. 다만 본선에서 우루과이 못지 않게 탈탈 털리는건 안자랑

3조 : 칠레, 페루

- 원래는 베네수엘라까지 세 나라가 대결을 펼치도록 배정됐는데 베네수엘라가 중도에 기권하는 바람에 두 나라간의 단두대 매치가 되었다. 여기서 이기는 나라가 유럽과 PO를 겨루기로 했는데 각각 홈에서 2:0으로 이기는 바람에 승점, 골득실 모두 같아져 (지금으로 따져도 다득점, 승자승까지 모두 같다) 플레이오프를 다시 치뤘다. 세 번째 맞대결에서 칠레가 2-1으로 이김으로서 간신히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내고, 지난 대회에서 8강에 오르며 선전했던 페루는 눈물을 삼키며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2.3 북중미 예선

월드컵 참가국이 늘어남에 따라 1, 2차예선으로 나누어 치뤄졌다. 1조와 6조에 각 세나라, 2~5조까지 2개국이 플레이오프 형식으로 가리고 여기서 이긴 6개국이 최종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형식이었다. 1조에선 멕시코가 캐나다, 미국을 압살하며 4전 전승으로 최종예선에 진출했고, 2~5조에서는 각각 과테말라, 온두라스, 네덜란드령 안틸레스, 아이티가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자메이카(기권), 푸에르토리코를 누르고 진출했다. 6조는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수리남과 앤티카 바부다를 제치고 진출했는데......................

최종예선에서 대이변이 일어났다. 전 대회 개최국이자 8강 진출국인 멕시코가 3위로 광탈해버린 것이다! 아이티,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밀리면서 2승 2무 1패, 3위로 미끄러지며 월드컵 연속 진출에 실패한다. 이 때의 탈락은 34년 대회에서 떨어진 이후 두 번째였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역예선에서 미끄러진 것이었다. 게다가 전 대회에서 세계급 강호들을 상대로 분투했었으니 충격은 말이 아니었다. 북중미의 절대강자 멕시코를 누른 팀은 아이티로서 4승 1패 8득점 3실점을 기록하며 사상 첫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2.4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

대륙이 워낙 큰 관계로 A지역과 B지역으로 나눠서 예선을 치루고, 각 지역 1위 국가들끼리 플레이오프를 통해 최종 진출자를 가리는 형식이었다. A지역은 동아시아, B지역은 서아시아/오세아니아였으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서아시아의 이스라엘이 A지역, 동아시아의 북한과 인도네시아가 B지역으로 들어갔다.

A지역 1조에서는 홍콩이 1위, 일본이 2위로 남베트남을 누르고, A지역 2조에서는 이스라엘이 1위, 대한민국이 2위로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누르고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토너먼트에서는 대한민국이 홍콩을, 이스라엘이 일본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해 두 나라가 다시 맞붙게 되었는데,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을 1:0으로 누르고 최종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낸다.

B지역은 A와 다르게 각조 1위만이 올라와 최종 플레이오프 진출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B지역 1조에서는 이란이 시리아, 북한, 쿠웨이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조에서는 호주가 이라크, 인도네시아, 뉴질랜드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B지역 플레이오프에서는 호주와 이란이 3:0 0:2로 1승 1패를 기록했으나 골득실에 앞선 호주가 최종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A지역의 승자 대한민국과 B지역의 승자 호주간의 격돌에서는 각각 0:0과 2:2. 지금이야 원정 다득점 원칙이 있지만 당시엔 없었으므로 중립국에서 한 번 더 치룬다. 3차전에서 0:1로 패함으로서 우리나라는 아쉽게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 했고, 1954년부터 1986년까지 32년간의 월드컵 도전사에서 가장 본선에 근접했던 대회이기도 했다. 호주가 최종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2.5 아프리카 예선

역시 월드컵 신청국이 상당히 늘어나서인지 4라운드까지 경기롤 늘렸는데, 1~3라운드까지는 두 나라가 홈&어웨이 단판승부를 겨루는 형식이었다. 총 22개국이 참여한 1라운드부터 3라운드를 거치며 총 3개국으로 걸러졌는데, 마지막 4차예선에서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가 잠비아, 모로코를 상대로 4전 전승 9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본선행 티켓을 잡는다. 잠비아와 모로코는 나란히 1승 3패를 기록하며 광탈. 다만 아프리카에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도 본선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PO에서는 소련과 칠레가 맞붙기로 했었는데 소련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0:0 무승부를 거뒀다. 문제는 칠레에서 열릴 2차전을 앞두고 칠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집권한 것. 피노체트는 집권과 동시에 경기가 열릴 에스타디오 나시오날에서조차 정치범 수용 및 처형을 자행했다. 소련측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경기 장소를 옮길 것을 FIFA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소련은 경기를 거부하여 몰수패로 칠레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3 조별 라운드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국가 나열, 굵은 글씨는 2라운드 진출.

  • 1조 : 동독, 서독, 칠레, 호주

- 톱시드는 서독. 사상 첫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서독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2년 전 뮌헨올림픽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안전 문제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만 했고, 선수들과 주민들 또한 이번에도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상당히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만 차분했을 뿐 월드컵 우승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는 높았다. 1970년대 들어서며 분데스리가의 위상이 상승하고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등의 특급 선수들이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는 단연 서독이었고 조에서도 무조건 1위를 차지할 거라고들 생각했다. 변수가 있다면 동독의 존재였는데, 사상 첫 월드컵에 출전한게 분단된 서독이었고 설상가상 같은 조에 편성되어 마지막 경기를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당연히 축구팬을 떠나 많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일단 첫 상대는 서독 vs 칠레, 동독 vs 호주. 남미의 강호 칠레를 상대로 1:0의 신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고 동독 또한 후반에 2골을 몰아넣으며 호주를 상대로 사상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 번째 경기인 서독 vs 호주전은 서독의 3:0 승. 이로써 서독은 8강을 일찍 확정지었고, 전력에 큰 차이가 없었던 동독과 칠레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로 무재배를 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는 칠레와 호주의 경기가 먼저 치뤄졌다. 승점 자판기를 상대로 무득점 무재배로 경기를 끝내는 바람에 2무 1패를 기록, 사실상 칠레의 8강 진출은 실패하고 만다. 가장 기대되었던 함부르크에서의 독일 더비에서는 의외로 동독이 후반 32분 슈파바서가 결승골을 터뜨리며 서독을 주저앉히며 1위로 직행, 결승전과 더불어 최고의 이변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대회 직후 헬무트 쇤 감독은 우승을 했음에도 동독전 패배에 대해 사죄하고 해명하는 해프닝까지 겪었을정도.

① 동독 : 2승 1무 0패 4득점 1실점 승점 5
② 서독 : 2승 0무 1패 4득점 1실점 승점 4
③ 칠레 : 0승 2무 1패 1득점 2실점 승점 2
④ 호주 : 0승 1무 2패 0득점 5실점 승점 1

  • 2조 : 유고슬라비아, 브라질, 스코틀랜드, 자이르

- 톱시드는 브라질. 전 대회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줄리메컵을 쥐면서 월드컵의 판도까지 바꾸어놓았었는데, 일단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을 가져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월드컵 개막전까지 개최국에서 전 대회 우승팀으로 바뀌게 했다. 그래서 이 대회부터는 개최국 서독이 아닌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는데(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진다), 확실히 4년 전보다는 전력이 많이 하락한 팀이었다. 일단 펠레가 은퇴했고, 토스탕도 망막박리에 걸려 26세 최절정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그래도 자일지뉴-히벨리노가 아직 건재했고 감독 또한 4년 전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설의 자갈로였다. 펠레와 토스탕의 공백을 얼마나 잘 채워줄건가가 이번 대회의 핵심이었는데........ 이럴 수가!! 개막전부터 무재배를 시전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개막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0으로 끝내버린 것. 유고가 아무리 유럽의 강호라지만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은 아니었고, 브라질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팀이었다. 결과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4년 전의 화려한 플레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려한 개인기와 끈끈한 팀웍으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전과는 달리, 오히려 브라질이 수비에 치중하면서 전과 같은 개인기도 팀워크도 보여주지 않았다. 영원한 우승 후보의 자존심은 벌써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옆동네에서 스코틀랜드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쏘아올리며 조1위를 차지한다. 두 번째 경기, 유고슬라비아 vs 자이르 전에서는 무려 9: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가 나왔다. 여기에도 비화가 있는데 당시 자이르의 '독재자'가 감독이 유고슬라비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기를 앞두고 잘라버리는 병크를 저지른 것이다. 졸지에 감독 없이 경기를 치르게 된 자이르는 예상대로 유고슬라비아에 탈탈 털렸고, 경기 시작 18분만에 세 골이 먹히자 골키퍼까지 교체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수비가 안 되서 골이 먹힌 건데 주전을 빼버리니 오히려 6골이 더 먹혀 9:0이라는 굴욕의 점수차가 나오게 된 것. 개막전에서 브라질과 비기고 아무리 승점자판기라지만 자이르를 9:0으로 떡바른 유고슬라비아는 8강 능선에 거의 다가섰고, 브라질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도 0:0으로 무재배하며 또다시 굴욕을 당한다. 마지막 경기에서야 자일지뉴, 히벨리뉴, 바우두미루의 득점으로 자이르를 3:0으로 눌렀지만, 세계 최강이라던 브라질이 듣도 보도 못한 팀에 겨우 3:0으로 이기고 나머지 경기에서 무득점을 했다. 3득점 무실점, 한 경기당 겨우 한 골로 8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에는 어울리지 않은 결과였고 덩달아 전세계 언론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다. 유고슬라비아 vs 스코틀랜드 전은 1:1 무재배. 자이르를 9:0으로 바른 유고슬라비아가 1위로, 겨우 2:0으로 이긴 스코틀랜드는 1승 2무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5회 연속 월드컵에 올라온 스코틀랜드지만, 갈 때마다 골득실에 밀려 단 한 번도 2라운드 진출을 해보지 못하는 징그러운 징크스 또한 같이 시작되었다.

① 유고슬라비아 : 1승 2무 0패 10득점 1실점 승점 4
② 브라질    : 1승 2무 0패 3득점 0실점 승점 4
③ 스코틀랜드  : 1승 2무 0패 3득점 1실점 승점 4
④ 자이르    : 0승 0무 3패 0득점 14실점 승점 0

  • 3조 : 네덜란드, 스웨덴, 불가리아, 우루과이

- 톱시드는 우루과이. 다만 톱시드를 우루과이가 받았을 뿐 가장 강력한 팀은 네덜란드였다. 우루과이는 전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지만 세대 교체 실패로 전력이 크게 주저앉으며 슬럼프에 빠졌고, 아약스에서 시작된 토탈 풋볼이라는 혁신적인 전술이 대표팀에도 성공적으로 정착되며 지역예선과 평가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네덜란드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역시나 막이 오르자마자 네덜란드의 독주가 시작된다. 요한 크루이프를 주축으로 탄탄한 미드필더를 구축하며 공격과 수비의 구분 없이 왕성한 플레이를 보인 네덜란드에 상대팀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첫 경기부터 톱시드팀 우루과이를 2:0으로 간단히 누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서로 1승 상대로 여겼던 스웨덴과 불가리아는 무재배를 기록함으로서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두 번째 경기 우루과이 vs 불가리아전에선 우루과이가 쉽게 이길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불가리아가 선제골, 우루과이가 종료 직전 동점골로 따라잡으며 1:1 실망스런 무재배를 펼친다. 토탈 풋볼의 네덜란드에게 밀린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조 최하위 전력의 불가리아전마저 무재배를 기록한 우루과이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스웨덴 또한 네덜란드와 0:0으로 비기며 예상 외로 선전한다. 마지막 경기에선 네덜란드가 불가리아를 4:1로 누르며 손쉽게 1위로 직행, 스웨덴은 우루과이를 3:0으로 대파하며 2위로 8강에 오른다. 아무리 하락세라지만 8강엔 어렵지 않게 오를 것이라 봤던 우루과이는 1무 2패의 처참한 성적을 안고 쓸쓸히 귀국했으며 이후 두 대회 연속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완전히 중위권 실력으로 내려앉게 된다. 스토이치코프 이전까지 최고의 선수였던 보네프를 주축으로 한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상대적 꿀조였던 지난번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2무 1패)을 기록,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귀국길에 올랐다. 조예선 3경기에서 크루이프가 터뜨린 골은 단 한 골도 없었지만,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조율하며 페이스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냈던지라 골 없이도 엄청난 찬사를 받아내며 2라운드에서의 대활약을 다시 예고하고 있었다.

① 네덜란드 : 2승 1무 0패 6득점 1실점 승점 6
② 스웨덴  : 1승 2무 0패 3득점 0실점 승점 4
③ 불가리아 : 0승 2무 1패 2득점 5실점 승점 2
④ 우루과이 : 0승 1무 2패 1득점 6실점 승점 0

  • 4조 : 폴란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아이티

- 톱시드는 이탈리아. 카테나치오 전술로 전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부활을 알렸고, 예선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무실점 본선행에 올랐던지라 강력한 우승후보로 발군의 성적을 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남미의 전통 강호 아르헨티나와 36년만에 본선에 오른 폴란드는 여기에 맞설 상대로 보여지지는 않았고, 아이티는 말할 것도 없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위의 세 조와 마찬가지로 예상과는 다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vs 아이티 전에서 이탈리아가 3:1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듣보잡이었던 아이티에게 먼저 한 골을 내주고 역전승한 것이다. 전설의 카테나치오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겼음에도 각종 언론에서는 이탈리아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날려댔다. 폴란드 vs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골잡이 라토의 대활약으로 폴란드가 3:2로 승리를 거둠으로서 무언가 폭발할 조짐이 보였고, 두 번째 경기에서 이에 대한 판가름이 난다.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 전에서 양측이 1:1로 소모전을 펼치는 동안 폴란드가 아이티를 7:0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천하의 이탈리아가 3:1로 역전승하며 졸전했는데 폴란드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골차이를 벌림으로서 2연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해버렸고,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르헨티나는 예상대로 약체 아이티를 상대로 4:1로 승리했지만, 이미 2승으로 8강을 확정지은 폴란드가 이탈리아를 2:1로 잡아버림으로서 골득실에 밀려 이탈리아가 예선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2차대전 이후 월드컵에서 50, 54, 62, 66에서는 졸전 끝에 예선탈락했고 58년도는 아예 본선진출마저 하지 못했던 악몽의 시간이 그대로 되살아난 셈이었다. 더불어 폴란드는 골잡이 라토를 앞세운 72 뮌헨올림픽 우승이 이변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증명하게 되었고, 브라질의 독주를 막자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 골득실 차로 겨우 앞서 8강에 오르긴 했지만 역시 예전의 영광을 찾기에는 많이 역부족이었다.

① 폴란드   : 3승 0무 0패 12득점 3실점 승점 6
② 아르헨티나 : 1승 1무 1패 7득점 5실점 승점 3
③ 이탈리아  : 1승 1무 1패 5득점 4실점 승점 3
④ 아이티   : 0승 0무 3패 2득점 14실점 승점 0

4 2라운드

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조 순위대로 국가 나열. 굵은 글씨는 결승 진출, 이탤릭체는 3-4위전 진출

  • A조 : 네덜란드, 브라질, 동독, 아르헨티나

- 토탈 풋볼을 앞세운 네덜란드의 기세는 매서웠다. 첫 경기에서 크루이프의 두 골을 앞세워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4:0으로 관광보냈고, 두 번째 동독전마저 2:0으로 가볍게 눌러 일찌감치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똑같이 2승을 기록한 브라질과의 마지막 경기마저 2:0으로 승리, 3전 3승 무실점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브라질 또한 동독을 1:0, 아르헨티나를 2:1로 누르며 예선에서의 졸전을 씻는 듯 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0:2로 농락당하며 4강 진출에 만족해야했다. Again1930을 외치며 선전을 바라던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에 0:4로 처참히 깨지면서 다음 경기 브라질전마저 1:2로 패배, 8강에서 그대로 주저앉아야만 했다. 보다시피 당시 네덜란드는 남미 TOP3를 상대로 3전 전승에 단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남미팀에 유독 강했던 이유는, 감독 미첼스가 아약스 시절부터 토탈풋볼로 크게 주목받고 있었는데, 유럽 선수들은 이미 이 전술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남미 선수들은 전혀 보지 못한 생소한 전술과 플레이였기 때문에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국제무대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한 대회에서 3전 전승을 했던 팀은 1974년 네덜란드가 유일하다.

① 네덜란드  : 3승 0무 0패 8득점 0실점 승점 6
② 브라질   : 2승 0무 1패 3득점 3실점 승점 4
③ 동독    : 0승 1무 2패 1득점 4실점 승점 1
④ 아르헨티나 : 0승 1무 2패 2득점 7실점 승점 1

  • B조 : 서독, 폴란드,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 동독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서독은 2라운드에서 전력을 다잡으며 화려한 골 퍼레이드를 펼친다. 네덜란드의 토털풋볼만큼 주목받지는 못 했지만, 서독 역시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앞세워 보다 유기적이고 끈끈한 플레이를 펼침으로서 네덜란드에 맞설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유고전에서 2:0, 스웨덴전 4:2를 기록하며 일찍이 4강 진출을 확정짓고 결승 티켓을 놓고 싸웠던 폴란드전에서도 전 대회 득점왕 게르트 뮐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조예선에서의 네덜란드처럼 서독 역시 2라운드에서 베켄바우어의 골은 한 번도 터지지 않았지만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단연 No.1이었다. 라토와 데이나 콤비의 대활약으로 8강에 오른 폴란드는 이번에도 두 콤비를 앞세워 스웨덴전 1:0, 유고전 2:1로 승리하며 4강 진출을 일찍 확정했다. 네덜란드와 맞서 유일하게 승점을 챙긴 스웨덴은 마지막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실리를 챙겼고, 유고슬라비아는 자이르전 9:0의 대활약에도 정작 8강 2라운드에서는 3전 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무대에서 내려왔다.

① 서독     : 3승 0무 0패 7득점 2실점 승점 6
② 폴란드    : 2승 0무 1패 3득점 2실점 승점 4
③ 스웨덴    : 1승 0무 2패 4득점 6실점 승점 2
④ 유고슬라비아 : 0승 0무 3패 2득점 6실점 승점 0

5 결승/3-4위전

  • 3-4위전
브라질 0 : 1 폴란드

- 38년 대회에서 명승부를 펼친 이후 다시 맞붙은 두 팀간의 대결은 폴란드의 복수로 끝이 났다. 브라질은 일단 4강에는 올랐으므로 결과만 보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7경기 6득점 4실점의 골득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경기 당 한 골도 넣지 못한 유일한 대회였다. 심지어 처참하게 예선탈락한 1966년 잉글랜드에서도 이렇게 저조한 득점력을 보여주진 않았다. 펠레, 토스탕, 제르손 등의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은퇴하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철저한 수비축구로 승부수를 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결국 성적과는 별개로 지루하게 늘어지는 경기력을 대회 내내 보여주었고,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무조건 공격'에 익숙한 브라질 축구팬들의 크나큰 분노를 사고 말았다. 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잘 극복했다는 점에서 자갈루 감독은 충분히 명장이었지만, 자택이 습격받을 정도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평가가 박하게 깎이며 신변에 위협받는 안습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결국 1994년 다시 감독을 맡으며 우승컵을 다시 거머쥐기는 했지만... 폴란드는 3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세계 무대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1972년 뮌헨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라토-레이나 투톱의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모처럼 세계 대회에서 확실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후 네 대회 연속 출전하며 4강-8강-4강-16강이라는 성적을 냄으로서 유럽의 강호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 결승
네덜란드 1 : 2 서독

72197547_p90_33518b.jpg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전.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축구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라이벌 이 격돌했다. 진정한 의미의 정상결전

- 결승전을 앞두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네덜란드의 우승을 예측했다. 워낙 토탈풋볼의 임팩트가 컸고, 포지션을 정확히 지키지 않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선수들을 공격 진영부터 압박하는 플레이는 그 누구도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서독에는 '리베로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었다. 현재 3-5-2 시스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전술로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리베로로 앞세워 역시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롤 역할을 맡아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지휘하는 방식으로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지금의 '전차 군단'이라는 별명을 갖게 해준 전술로서, 어쩌면 네덜란드의 토털풋볼과도 비슷한 점이 많은 전술이었다. 기존의 화려한 개인기 vs 카테나치오로 흘러갔던 축구의 흐름을 완전히 깨부순 두 혁신간의 대결은 전세계의 관심을 낳았고, 유럽의 두 전설 요한 크루이프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맞대결 승자가 누가 될지도 희대의 관심사였다. 결승전은 7월 7일 오후 4시에 시작했고, 휘슬이 울리자마자 네덜란드가 PK를 얻어내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바람대로 네덜란드가 이기나 싶었지만 그 전까지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준 네덜란드는 온데간데없었고 크루이프도 제대로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다.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전두지휘 아래 서독이 경기의 흐름을 쥐었고, 결국 전반 25분 다시 PK로 동점을 만들고 43분 뮐러의 역전골이 터지면서 전반전은 2:1로 종료되었다. 후반전 역시 마찬가지로 서독의 우세 속에 경기가 진행되었고 네덜란드는 동점골을 넣지 못한 채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서독의 두 번째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서독 선수들과 뮌헨 관중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고 안타까운 패배에 네덜란드 선수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콩의 시작 비록 우승은 서독이 가져갔지만, 전술의 혁신성에 있어서는 네덜란드가 앞섰고 월드컵 무대에서 이들이 보여준 단 한 번의 충격은 순식간에 축구 역사를 뒤바꾸었다. 특히 토탈풋볼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개인기의 남미 팀들을 제대로 뭉개버려 이후 남미 팀들은 하나같이 기존의 개인기에 팀웍과 유기성을 강화시킨 방향으로 완전히 흐름이 넘어갔다. 분명히 서독이 우승을 했지만 대회 최고의 화제 팀은 네덜란드였으며, 크루이프는 월드컵을 통해 전세계적인 레전드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크루이프 vs 베켄바우어 떡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역대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두고도 우승팀 이상의 위상을 지닌 팀은 1954 헝가리와 더불어 1974 네덜란드가 유이하다. 안타깝게도 크루이프가 다음 대회에서 가족 납치 협박사건으로 월드컵에 불참해 크루이프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컵 무대이기도 했던 대회였다. 크루이프가 빠지고 아르헨티나의 각종 조작과 편파에도 준우승을 차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당시 네덜란드의 임팩트가 얼마나 컸고 충격적인 전력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음이다. 물론, 자국 월드컵에서 떳떳하게 두 번째 월드컵을 손에 쥔 서독 또한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위대한 팀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1974 FIFA 월드컵 우승

서독
두번째 우승

6 결과

순위국가경기득실승점비고
1서독7601134+912우승
2네덜란드7511153+1211준우승
3폴란드7601165+11113위
4브라질732264+284위
5스웨덴622276+162라운드
6동독622255062라운드
7유고슬라비아6123127+542라운드
8아르헨티나6123912-342라운드
9스코틀랜드312031+241라운드
10이탈리아311154+131라운드
11칠레302112-121라운드
12불가리아302125-321라운드
13우루과이301216-511라운드
14호주301205-511라운드
15아이티3003214-1201라운드
16자이르3003014-1401라운드

골든볼 -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실버볼 - 프란츠 베켄바우어 (서독)
브론즈볼 - 카지미에시 데이나 (폴란드)

득점왕 - 그제소슈 라토 (폴란드)
골든글러브(야신상) - 제프 마이어 (서독)
신인상 - 브와디스와브 즈무다 (폴란드)
페어플레이상 - 서독

7 기타

  • 이 대회가 개최되기 2년 전에 뮌헨 올림픽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서독 정부는 월드컵 개최 1년 전부터 비상 체제로 돌입했는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중 때문에 결국 기관총과 셰퍼드를 몰고 온 특공대원들이 경기장 내에 상주하며 철저히 감시했다.
  • 264.jpg
    이 대회부터는 이 사진의 트로피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으며 쥘 리메컵을 쓰지 않는다. 쥘 리메 컵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자 통산 우승 3회를 달성한 기념으로 FIFA에서 브라질 축구협회에 영구소장하라고 증정했으며 그 뒤에 현재의 트로피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쥘 리메 컵은 도난당해 녹여져서 금괴가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