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 일반 개요

2002년 11월 6일 실시되었다. 2002학년도의 고등학교 3학년인 1991학년도에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연령대(1984년 3월생~1985년 2월생) 기준으로 응시했다.[1] 총 응시인원 65만 5384명

난이도는 전년도와 전혀 다를바가 없이 매우 어려웠으므로 전영역 만점자는 전년도에 이어서 이해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도시전설이 있다. 김치국 항목 참조.

2 시험의 상세

시험은 다음과 같이 총 5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시영역계열 구분문항배점시간(분)
1언어 영역공통6012090
2수리 영역인문, 자연, 예체능3080100
3사회탐구 영역인문, 예체능4872120
자연3248
과학탐구 영역인문, 예체능3248
자연4872
4외국어 영역공통508070
합계220400380

+ 제2외국어 영역(선택)

언어영역은 매우 어려웠으며 만점자가 1명(문과 여자 수험생)밖에 나오지 않았다. 1개 틀린 수험생이 30명(인문계 22명, 자연계 8명)이었다. 1등급 컷은 인문계는 102점 정도였고 자연계는 104점 정도였다. 인문계, 자연계 다 110점까지의 누적 인원이 각각 1604명(0.452%), 1367명(0.688%)였고 115점 이상은 인문계 86명(0.024%), 자연계 61명(0.031%)정도 나왔다. 문이과 모두 4문제 틀린 것까지는 백분위 100이 확실했고 경우에 따라 5문제도 가능했다.
참고로 언어영역에선 한국 국문학의 최종보스인 이상의 오감도가 출제되었다. 다행히 문제 자체는 오감도가 국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당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에 대해 묻는 평이한 수준이었다. 반면 고전문학에서 [창선감의록]이라는 엄청나게 마이너한 작품이 나왔다.

수리영역은 자연계는 74점이 1등급 컷으로 72점이었던 02수능보다 약간 평이해졌지만 전체적인 분포에 있어서는 02년과 대동소이했다. 만점자는 1411명(0.711%)이 만점을 받아 만점을 받아도 백분위 99가 나왔다.[2] 인문계는 만점자가 작년보다 늘긴 했으나 285명(0.08%)밖에 되지 않았고 65점 이상 누적인원이 3.5%정도, 70점 이상이 5000명 정도로 백분위 99를 받을 수 있었으며 75점 이상이 1400명대(0.41%)로 난이도가 여전히 높았다. 참고로 예체능계는 만점자 8명(0.008%)

외국어영역은 2002수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만점자 인문계 1767명(0.499%), 자연계 1826명(0.923%), 예체능계 33명(0.033%).

사회탐구는 인문계는 72점 만점에 만점이 67명(0.019%), 70점 이상이 287명(0.081%)으로 작년과 비교하면 상위권 기준으로 까다로워진 편이었다. 65점 맞아도 1700명 이내로 1퍼센트 이내였다. 자연계도 48점 만점에 만점이 67명(0.034%), 45점 이상 1331명(0.669%)으로 45점까지의 누적 인원이 5000명 정도였던 작년 수능보다 어려웠다.

반대로 과학탐구는 꽤 쉬워졌는데 자연계 기준으로 72점 만점에 만점 1962명(0.991%), 70점 이상이 6467명 정도(3.27%)로 70점 이상이 539명(0.278%)밖에 안되었던 작년 수능보다 많이 쉬웠다. 인문계도 48점 만점에 만점이 1521명(0.430%), 45점 이상이 9968명(2.82%)으로 45점까지 2159명(1.11%)이었던 작년 수능보다 쉬웠던 편이다.

21세기에 치러진 수능 중 평균점수(원점수 기준)가 가장 낮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2002학년도 수능의 난이도가 높아 약간 난이도가 낮아질거라 예상했지만 대부분이 멘붕을 경험했다. 그런데 어짜피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려운 법 일부는 2002학년도 수능이 더 어려웠다고 하지만, 그 해에 2002 한일월드컵이 치뤄지는 등 학생들의 실력 저하도 점수하락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만점자 비율이나 1등급컷은 2002 수능보다는 높은 편이었고, 이후에 2002 수능보다는 약간 쉬운 시험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수능을 끝으로 소수점 배점이 폐지되었다. 소수전 배점 반올림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 이로 인해 소송까지 번졌으며, 그 다음해부터는 정수 배점으로만 표기한다.
  1. 이들이 바로 초등학교의 첫 졸업세대였다. 물론 재수생과 같은 N수생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2. 당시 백분위 산정은 7차 교육과정과 조금 달라 이런 결과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