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 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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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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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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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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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이름Allan James Burnett
생년월일1977년 1월 3일
국적미국
출신지아칸소 주 노스 리틀 록시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5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217순위
소속팀플로리다 말린스 (1999~2005)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6~2008)
뉴욕 양키스 (2009~2011)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2~2013)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4)
피츠버그 파이리츠 (2015)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2015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164승, 157패, 3.99 ERA, 2731.1이닝, 2513삼진, 1100볼넷, K/BB 2.28, K/9 8.28, BB/9 3.62, HR/9 0.87, 24완투, 10완봉, FIP 3.86, fWAR 42.8을 기록했다.

2 커리어

1995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지명되어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던 중, 1997년 월드 시리즈를 제패하고 폭풍 파이어세일(...)을 시작한 플로리다 말린스가 내야수 랄프 밀리어드와 팀의 첫 노히트 노런을 선물한 좌완투수 알 라이터를 뉴욕 메츠로 넘기면서 2명의 마이너리거와 함께 플로리다 말린스로 넘어갔다.

그리고 1999년부터 본격적인 등판을 했다. 버넷은 마이너리그에서도 고만고만한 성적이였고 2000년대 들어서도 평범한성적을 거두는 그저그런 유망주 투수였으나 2001년 10승 이상과 노히트 노런을 작성하며[1] 자신은 더 이상 그저 '유망한' 수준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2003년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게되며 선수생활의 고비가 오는듯 했으나 이는 그저 기우였다. 이후 10승을 꾸준히 기록하며 에이스 투수 정도는 아니지만 자기 몫은 묵묵히 담당하는 선발투수로 거듭났다.

FA 자격을 이용해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이적하여 토론토의 에이스 투수인 로이 할러데이와 더불어 가공할만한 원투펀치를 이루었으며 2008년에는 18승과 탈삼진 타이틀(231)까지 차지할 정도로 위력적인 투구를 자랑했다.

2008년 시즌오프 후 FA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하여 뉴욕 양키스로 5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다. 지난해보다 조금 부진했지만 꾸준한 이닝 소화와 위력적인 탈삼진 능력으로 같은해 이적한 CC 사바시아와 함께 팀의 페넌트 레이스와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했다.[2]

2010 시즌 5월까진 괜찮았는데 6월에만 5패를 기록하며 양키스 선발의 유일한 구멍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버레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롸레기 티레기 버레기 착착 감기는 양키스의 레기들[3] 버레기 말고도 이름에서 따온 애자볼넷도 까는 별명.

너무나 부진한 나머지 디비전 시리즈 로스터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나 겨우 들어갔다. 놀랍게도(?!) 4차전 선발로 예고되었는데 6이닝 5실점으로 털리면서 패전투수가 됐다. 그리고 이건 2011년에 반복되어 디비전 시리즈 4차전 선발로 예고되어 양키팬들의 가슴을 쫄깃하게 했지만...5.2이닝 1실점으로 선방했다!

2011년 6월 24일 경기에서 펠릭스 에르난데스 이후 1년여만에 1이닝 4K를 달성했다. #

그런데 2011-2012 오프시즌엔 양키스가 구로다 히로키마이클 피네다를 영입하고 프레디 가르시아와 재계약하면서 선발진이 포화상태가 되어버렸고 이에 버넷의 자리가 없어지면서 양키스는 지속적으로 버넷의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당초 LA 에인절스바비 어브레이유와 트레이드될뻔 했으나 버넷이 트레이드 거부권을 사용해 결렬되었다.[4] 하지만 결국 양키스가 잔여연봉 $33M 중 $20M을 보조하고 마이너리그 유망주 2명을 받아오는 조건으로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지옥같은 AL 동부를 벗어났고 구위 자체는 아직 괜찮으니 바운스백이 기대된다는 평. 게다가 푸홀스도 없고 필더도 없다! 다만 양키스 시절에 대한 인터뷰 중 감정이 격해졌는지 양키스 디스성 발언을 하면서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피츠버그로 트레이드 이후 스프링캠프에서 번트 연습을 하던 도중에 눈에 타구를 맞아 초반 한 달간 결장이 유력했다. 하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4월 21일에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뤘고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5월 2일 세인트루이스에게 2.2이닝 12실점으로 난타당하기는 했지만 꾸준히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전반기를 10승 2패 3.68로 마무리했다. 탈알동부효과? 또한, 고참 투수나 파이장수 역할을 클럽하우스에서 잘 수행하면서 피츠버그가 다시 한 번 돌풍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

꾸준히 자기 몫을 해주며 2012 시즌을 16승 10패 ERA 3.51로 마감했다. 후반기에 패전이 많아지기는 했는데 이는 피츠버그가 8월 중순 이후로 급격히 하향세를 타면서 호투한 경기에서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9월 28일에는 8이닝 1실점으로 버넷 자신은 호투했지만 타선이 호머 베일리에게 노히트게임을 당했다. 어쨌든 버넷은 초반 2-3주를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202.1이닝을 던지며 3년만에 200이닝을 넘게 소화해줬다. AL 동부지구를 벗어나면서 리바운딩을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이런 그의 호투에는 볼넷이 21개나 줄어든 것이 가장 컸다. 아무래도 뉴욕에서는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었던 듯. 올해의 재기상 후보로 꼽히기도 했지만 큰 부상을 극복하고 맹활약을 보여준 버스터 포지가 수상하면서 약간 아쉬움을 남겼다.

2013 시즌 성적은 10승 11패 3.30.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승수쌓기에는 실패했지만 방어율은 더욱 끌어내려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2002년 성적을 근소하게 앞선다.) 77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 경험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선발진 안에서 2년 동안 듬직한 기둥이 된 그가 피츠버그의 부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선발로 나서서 카디널스 상대로 2이닝 7실점으로 처참하게 발렸다는 게 옥의 티.

2013 시즌 종료 후 FA를 맞이했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은퇴할지 여부를 고민하느라 2014년 1월 말이야 겨우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여러 팀들이 관심을 보였고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16M 계약을 맺게 되었다.

2014년은 약간은 부진한 시즌을 보냈지만[5] 그걸 감안해도 장난 아니게 패를 쌓은 덕분에 18패를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최다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고 2014년 정규 시즌 종료 후 선수 생활을 계속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결국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계약 규모는 1년 $8.5M으로, 필리스에서 받은 연봉이 더 컸지만 버넷 본인이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협상때 에이전트에게 무조건 피츠버그와 협상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이 마지막 시즌이며, 시즌 종료 후에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던지는지, 모든 성적이 커리어 최고치를 향하고 있다.

파일:FchtOI3.jpg 성적은 7월 12일 기준.

5월 23일에는 1.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최고의 성적을 내는 덕분인지, 2015년 올스타전에 뽑히면서, 데뷔한지 17년만에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7월 1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는 10년만에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 이대로 은퇴한다면 자신의 최고 성적을 찍고 은퇴하게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평도 있다. 나이 지긋하신 투수를 굴려야 하는 스몰마켓 피츠버그의 설움이 들린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폼이 많이 떨어졌으며 부상까지 겹쳐 시즌 종료 직전에야 복귀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9승 7패 3.18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피칭 스타일

버넷의 주무기는 90마일 중후반대의 묵직한 패스트볼과 커브이며 커브 또한 일반적으로 던지는 오버핸드 폼 커브와 스리쿼터 폼으로 던지는 커브 두가지를 연마했으며 패스트볼 또한 볼끝이 살아있어 90마일 대의 구속이라도 타자에게는 마치 100마일 이상의 체감속도를 느낀다고 한다. 일반적인 커브그립을 사용하여 공을 던지기도 하지만 보통 버넷이 즐겨던지는 커브는 너클커브다. 다만 제구력이 문제인지라 볼넷도 만만찮게 많다. 그래서 국내에서 별명은 애자볼넷(...) 토론토 시절에도 제구력 문제가 여전해서 Pitcher가 아닌 Thrower라고 불리웠을 정도였다. 여전히 못 던질때는 진짜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피칭을 보일 때가 있어 문제.

4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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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즌 도루 송구를 낚아채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다. 체고의 포수? 포수도 웃고 주자도 웃고

2014년 4월 22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원정에서 류현진을 상대로 타석에서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현진이도 웃고 버넷도 웃고
  1. 볼넷을 9개나 내주고도 노히트를 달성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볼넷 허용 노히트게임(정규경기 9이닝) 타이 기록이다.
  2. 본래 사바시아는 과거 요한 산타나의 영입 실패로 인한 다음 선택이었으며, 버넷의 경우 마이크 무시나의 은퇴 공백을 메꿀 카드였다. 당시 버넷이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극강의 모습을 보인 것도 영입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정작 양키스에 와서는 레드삭스전에서 매우 부진했다.
  3. 사람들이(+특히 주로 양키스 팬들이!)이 먹튀짓하고 있는 A-ROD, 티렉, 버넷을 깔 때 쓰는 용어들.
  4. 이는 처음엔 버넷의 부인이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서부지구를 기피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아이들의 교육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5. 방어율 4.58로 좀 많이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FIP은 4점대 초반으로 비교적 못한거지 망한거까진 아니다. 그리고 던진 이닝도 200이닝이 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