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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y[1]
1 개요
아이러니란, 등신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밴드의 노래에 맞춰 비행기 안에서 춤추고 있는 걸 말하는 거야. - 스티브 부세미, 영화 콘에어 에서.[2]
표현의 뜻과 상반되는 낱말로 역설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어원은 그리스어의 에이로네이아(eironeia:위장)이다. 어원적 의미로 보면 아이러니는 변장의 기술이다. 남을 기만하는 변장의 기술이라는 뜻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는 여기서 세 가지 타입의 인간성을 제시하고 있다. 허풍선이처럼 자기를 실제 이상의 존재인 것처럼 가장하는 인간과 이와 반대로 자신을 실제보다 낮추어 말하는 인간, 곧 자기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진실한 인간이 그것이다. 이런 분류에 나타난 그의 윤리적 가치기준은 '진실성'에 있으므로 앞의 두 인물은 다같이 기만적인 인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자신과 사물을 과장하거나 과소하게 말하는것은 모두 변장의 부도덕한 행위가 된다. 그러나 문학에서 중요시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두 기만적 인물이다.
고대 희극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두 가지 타입의 인물에 각각 에이런(Eiron)과 알라존(Alazon)이란 이름을 부여하여 주인공으로 채택했다. 에이런은 약자이지만 겸손하고 현명하다. 알라존은 강자이지만 자만스럽고 우둔하다. 이 양자의 대결에서 관객의 예상을 뒤엎고 약자인 에이론이 강자인 알라존을 물리쳐 승리한다. 아이러니 시에서 우리는 두 개의 퍼소나, 그러니까 두 개의 시점을 찾아내야 한다. 에이런의 시점과 알라존의 시점이 그것이다. 원칙적으로 알라존은 표면에 나타나고 에이런은 뒤에 숨어 있다.
아이러니가 사용된 시에선 무엇보다 두 개의 시점(알라존, 에이런)이 필수적이다. 아이러니는 "순간 속에서 자아가 이중으로 나타나거나 분열되는", '공시적 구조'(synchronic structure)다. 대립되는 두 개의 퍼소나가 공존하는 동시성을 아이러니는 요규한다. 그리고 이런 이중성과 공시성은 '속임수에 의한 비판'이다. 다시 말하면 표면에 나타난 퍼소나의 시점을 가면으로 하여 이면에 숨은 퍼소나(이것은 시인의 시점과 동일시된다)가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일반적으로 진의(眞意)와 반대되는 표현을 말하는데, 표면으로 칭찬과 동의를 가장하면서(알라존) 오히려 비난이나 부정의 뜻을 신랄하게 나타내려고 하는(에이런)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아이러니는 지적인 날카로움을 갖는 점에서 기지(機知)에 통하고, 간접적인 비난의 뜻을 암시하는 점에서는 풍자와 통하며, 표리(表裏)의 차질에서 생기는 유머를 포함하기도 한다.
19세기 독일낭만파에서는 예술창작상의 지속적인 정신태도의 뜻으로 쓰여 ‘모든 것 위에 떠들면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를 뜻하였으며, 키르케고르는 미적(美的) 존재에서 윤리적 실존으로의 이행(移行)을 부정적으로 매개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유형에 따라 다양한 아이러니들이 존재한다. 언어적 아이러니는 '표현된 것'과 '의미된 것'의 상충에서 오는 시적 긴장을 의미하며, 쉽게 말하면 이면에 숨겨진 참뜻과 대조되는 발언이 언어적 아이러니다.
낭만적 아이러니는 현실과 이상,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유한아와 절대아, 자연과 감성 등 이원론적 대립의식에서 발생한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에서 활발히 논의된 개념으로 문화적 속물주의에 대한 예술적 반항으로서 일어난 낭만적 아이러니는 이 대립적인 존재를 지양해서 고차원적인 종합을 추구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절대아인 신과는 끝내 합일되지 않고 현실세계로부터 이상세계로 초월하거나 승화되지 않는다는 한계의식을 지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페이소스의 어조를 띠게 되며, 이상세계를 무한히 동경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지적 관찰자가 비지적 관찰자의 탈을 쓰고 세계를 비판하는 아이러니를 외적 아이러니라고 한다면, 낭만적 아이러니나 겸손한 아이러니는 화자가 바로 자신을 비판하는 내적 아이러니가 된다. 외적 아이러니에서 어리석음이 외부세계에 있다면 내적 아이러니는 그 어리석음이 자신의 내부에 있다. 즉, 내면적 자아와 외면적 자아의 충돌이 내적 아이러니이다.
한 작품에서 상충하고 대조되는 요소들의 종합과 조화를 통해서도 아이러니가 구축되는데, 이를 구조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연민과 공포의 상반된 감정을 결합한 형식이며 주로 비극 작품을 통해서 발현된다. 극적인 요소가 강한 아이러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들은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술하는 역할인 형이상학적 기능을 담고 있으며, 작자와 독자 사이의 관계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기능 또한 존재한다.
역설과 자주 혼동되곤 한데, 아이러니의 경우 진술 자체에는 모순이 없으나 진술된 언어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이나 숨겨진 의미 사이에 모순이 생기지만, 역설은 진술 자체에 모순이 생긴다. 아이러니의 경계성과 진술 자체의 오류로 역설을 구분하면 어렵지 않다. 아이러니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들은 삼지원에서 출판한 김준오 교수의 '시론'에서 참고하면 된다.
대중매체에서도 아이러니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과거, 그리고 성향이 자신과 반대되는 상황이나 물건을 사용하거나 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이러니라는 자체를 예술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서사 창작 영역에서 '독자 혹은 관객은 인지하고 있으나 극중 인물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을 '극적 아이러니'라고 칭한다. 독자 혹은 관객은 극중 인물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곧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상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극에 몰입하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공의 등 뒤로 칼을 들고 서서히 다가오는 적대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독자나 관객은 위험에 처한 주인공에 대한 걱정과 다음 장면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빠져 극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이는 서스펜스의 핵심이기도 하다.
독자 혹은 관객이 논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결과를 정 반대로 뒤틀어버리는 것도 아이러니의 한 종류다. 이 경우는 '상황적 아이러니' 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