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 개요

NWA에서 인증한 챔피언벨트 중 하나.

2 역사

2.1 타이틀의 탄생

1958년 6월에 탄생했다. 탄생 경위가 좀 애매한데, 당시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던 루 테즈가 방어전을 계속함으로서, 루 테즈의 실적을 인정하여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과는 별도로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인정함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1958년 8월 27일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역도산이 루 테즈에게 승리하였는데, 이 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동하지 않고 대신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동하는 조치를 했다. 이 시점까지 벨트조차 존재하지 않았고, 귀국 시점에서 역도산이 벨트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경위를 보면 알지만, 사실상 루 테즈의 세계 챔피언으로서의 위상을 실추시키지 않고 역도산에게 권위있는 타이틀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타이틀에 가깝다.

2.2 일본 프로레슬링 : 역도산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일본 프로레슬링 역도산의 상징적인 벨트가 된다. 탄생과정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아무튼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시조인 역도산이 가지고 있었던 타이틀이며, 실질적으로는 좀 그렇지만(...) 명목상으로는 '세계 챔피언'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으므로 일본에서는 전설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고, NWA에서도 세계(World) 타이틀과 동등한 위치로 인정해주었다고 한다.

역도산은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타이틀 방어를 계속한다. 역도산은 단 1번도 타이틀을 내주지 않고, 19회 연속으로 방어하였다. 1963년 12월에 역도산이 급사하면서 이 타이틀은 역도산의 일대로 일시 봉인되었다.

2.3 일본 프로레슬링 : 자이언트 바바

자이언트 바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바바를 역도산의 후계자로 하여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을 이어받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났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NWA의 승락을 얻어 봉인을 풀고, NWA 인증, 일본 프로레슬링 커미션 인증 이라는타이틀로서 부활하였다. 챔피언 벨트는 역도산이 사용했던 것을 쓰지 않고, 별개의 것을 사용했는데 체격이 큰 자이언트 바바에게는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바바는 보보 브라질, 진 키니스키와 타이틀을 주고 받는다. 대략 1972년 9월에 일본 프로레슬링을 탈퇴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설립할 때까지 타이틀을 유지했다. 이 때 많은 강적을 물리치면서 인터 타이틀의 가치는 더욱 높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도리 펑크 주니어 등이 방일 했을 때도 바바가 NWA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NWA 세계 챔피언이 NWA 국제 챔피언인 바바에게 도전하는 형식으로 되었다.

2.4 일본 프로레슬링 : 김일

바바가 일본 프로레슬링을 떠나며 타이틀을 반납한 다음, 김일과 보보 브라질 사이에서 새로운 챔피언 결정전이 벌어졌다. 보보 브라질이 첫 경기를 이기고 타이틀에 복귀, 2차전에서는 김일이 승리하여 인터내셔널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이 나간 뒤 일본 프로레슬링은 경영 약화로 흥행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단체 활동이 중지되었다.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 자체는 김일이 소지하고, 한국에서 방어전을 실시했다. 1975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을 때, 1975년 3월 27일 서울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의 도전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안토니오 이노키가 했던 유일한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 전이다.

1980년 김일은 국제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였고, 일본에서도 방어전을 실시했다.

1981년 4월 13일, NWA 본부로부터의 권고 형태로 김일은 타이틀을 반납하게 되었다. 그 사유는 김일이 바바의 추천으로 한국의 발기인으로 NWA에 가입하고 있었으나, NWA 비회원 단체인 국제 프로레슬링에서 NWA 타이틀 전을 실시한 것은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타이틀을 반납하는 대신 김일은 바바가 김일에게 탈취하여 봉인하고 있떤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을 전달했다.

2.5 전일본 프로레슬링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소유가 되었다. 1981년 4월 30일 토너먼트 형식으로 결정전이 열렸는데, 바바의 부상과 기권 등으로 도리 펑크 주니어가 챔피언이 되었다. 이후 브루저 브로디가 도리 펑크 주니어에게 타이틀을 획득하여 1년 이상 장기집권 한다.

이해 8월, 푸에르토 리코 산 후안에서 열린 NWA 총회에서 NWA는 동양 점유율 실적과 신용을 평가하여,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인터내셔널 태그 챔피언,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3개의 인터 타이틀을 PWF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반영구적으로 관리와 운영을 일임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때부터 실질적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타이틀이 되었지만, 'NWA 인정'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있었다.

1983년 8월 31일, 점보 츠루타가 브루디에게 승리하고 타이틀을 얻는다. 츠루타는 스턴 한센, 브루저 브루디에게 단기간 타이틀을 탈취당하기도 했지만 5년 7개월 동안 타이틀을 유지했다.

2.6 통합

1989년 4월 18 일, 점보 츠루타가 스턴 한센을 꺾고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PWF 챔피언, UN 챔피언의 삼관왕이 되면서, '삼관 챔피언'으로 통합되었다.

통합이라지만 각각의 벨트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3개를 하나로 친다(...).

그러므로 전일본의 최고 타이틀은 3개지만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