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WA

1 프로레슬링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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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와 National Wrestling Alliance 두 단체를 가리키는 말.

전자의 NWA는 NBA(National Boxing Association)의 레슬링 부문으로, 1930년에 NBA에서 독립하였다. 명목상은 각 주의 체육협회에 의해서 운영되었으며 1960년대 까지 존속하였다. 흔히 프로레슬링 계에서 NWA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킨다.

현재 회장은 브루스 샤프[1]

1.1 역사

1.1.1 1940년대

NWA가 탄생한 1948년 이전까지 미국에는 수 많은 프로모터들과 단체들이 존재했고, 그들은 자기 단체에 각각 "세계" 챔피언을 지정한체 상호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그래도 서로의 지역구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암묵의 룰은 지키는 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속에서 1948년 중서부의 프로모터였던 폴 '핑켈' 조지의 주장과 여러 유명 프로모터들의 동조로 NWA 체제를 출범하고, 유일하게 허용되는 세계 챔피언으로 그 자리에 오늘날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 테즈를 앉힌다.

초대 NWA 월드 챔피언 루 테즈.

새로 태어난 NWA의 규칙은 간단했는데 상호 상업지역을 존중하고, 만약 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모터가 끼어들면 담합을 통해 묻어버리고, 해당 프로모션의 흥행과 방영은 오직 그 지역에서만 한다는 것이었다. 단 월드 챔피언은 약간 다른데 월드 챔피언인 선수는 소속 단체를 넘어서 NWA에 가입된 모든 단체를 돌면서 경기를 갖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또한 단체들간에 상호 선수를 빌려주면서 왕래를 하도록 하였다.

1.1.2 1950~1960년대

새롭게 만들어진 NWA의 중심은 월드 챔피언인 루 테즈가 속해 있는 샘 머치닉의 세인트 루이스 레슬링 클럽이었다. 그의 주도 아래 NWA가 움직였는데 샘 머치닉은 최대한 루 테즈를 장기 집권 시켜 자신의 힘을 더욱 키워나갔다.

하지만 당연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갖게되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지만 루 테즈가 7년 째 장기 집권하는게 큰 불만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불만을 의식해서 잠시 캐나다의 휘퍼 빌리 왓슨이 챔피언에 올랐지만 반년만에 다시 루 테즈가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이런 루 테즈의 장기 집권에 불만을 느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미네소타의 번 가니에였다. 번 가니에는 당시 루 테즈와 함께 당시 전국구 적인 인기를 누리던 선수였고, 그러므로 자신이 월드 챔피언에 오르기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정치 싸움에 패배해 실패하고 만다. 이런 불만 속에서 캐나다의 프로모터인 에디 퀸은 자기 단체의 에이스인 에두아르도 카펜티어가 NWA 월드 챔피언에 오르게 하는데 이를 기회로 NWA 탈퇴 선언을 하게 된다. NWA는 이에 당황해 바로 카펜티어의 기록을 취소하고 루 테즈를 다시 챔피언에 앉혔지만 에디 퀸은 이에 아랑궂하지도 않고, NWA에 불만을 갖고 있던 여러 프로모터들과 챔피언 전을 벌이며 모두 패배해 그들의 단체 에이스를 각각 챔피언에 오르게한다.

이렇게 NWA에 불만을 느낀 프로모터들이 속속 NWA를 탈퇴하게 되는데 AWA번 가니에, WWWF빈센트 J 맥맨등이 존재했다.[2]

1.1.3 1980년대

릭 플레어를 월드 챔피언으로 내세워서 승승장구 해나가던 NWA에게도 몰락이 시작되었는데 80년대 들어서 방송 산업이 더욱 발전하게 되었고, 그만큼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뻗어나가기 시작한게 바로 빈스 맥맨인데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평화가 아닌 헐크 호건을 앞세어 더욱 엔터테인먼트 한 모습으로 확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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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느낀 NWA와 AWA의 프로모터들은 프로레슬링 USA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대항을 시도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고, WWF의 힘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그리고 빈스 맥맨은 당시 TBS에서 방영중이던 GCW를 매입해 방송 영역을 더욱 확장하려 시도했는데 당시 시청자들의 반발과 테드 터너의 견제로 잠시 주춤하게 된다. WWF가 잠시 주춤하던 사이 프로모터들은 노스 캐롤라이나의 짐 크로켓 프로모션을 통해 대항하지만 이 마저도 실패하고 사실상 NWA가 붕괴하기 직전에 다다른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1988년 TBS의 사장인 테드 터너가 직접 나서서 짐 크로켓 프로모션을 인수해 WCW로 개명한 다음 NWA를 흡수해 숨을 돌리게 된다. 한편 이런 WCW의 탄생에 반발하던 프로모터들은 프리츠 폰 에릭의 WCCW로 뭉치게 된다.

1.1.4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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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에 자리잡게 된 NWA는 WCW에서 타이틀의 결정을 다루게 되었고, 당시 WWF에서 발생한 스테로이드 파동과 프로레슬러들의 성추문 스캔들로 대량의 선수들이 유입되면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결국 1993년에 WCW도 NWA에서 탈퇴하면서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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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W에게서 버림 받고 새롭게 눈독을 들이게 된 새로운 프로모션이 있었는데 바로 필라델피아의 ECW였다. ECW는 폴 헤이먼의 주도로 소수지만 충직하고, 열광적인 매니아들에 의한 단체였고, NWA도 이를 높이 사 월드 챔피언전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벌어진 챔피언전에서 쉐인 더글라스가 승리를 했는데 대뜸 NWA 월드 타이틀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NWA는 죽은 조직이며 오직 ECW만이 진정한 월드 챔피언이다."라는 말을 하며 또다시 버림받게 된다.

1.1.5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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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힘을 잃은 NWA가 주목한 것은 제프 제럿의 단체인 TNA였다. 당시 TNA는 기존 WWE에서 보지 못했던 실력자들을 불러모으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결국 새로운 주력 프로모션으로 낙점돼 비록 말이 많았지만 사장인 제프 제럿이 NWA 월드 챔피언으로 장기 집권하며 활약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06년 이후 드디어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TNA도 NWA가 필요가 없어졌고, 크리스챤 케이지를 끝으로 NWA를 탈퇴하게 된다.

1.1.6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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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사실상 신일본 프로레슬링 덕분에 명맥을 이어나가는 중인데 미국의 NWA 가맹 단체는 대부분 몰락했기에 신일본이 사실상 가장 강하고 자금력 있는 단체라서 그 입김이 강한편이다.

1.2 기타

과거에는 미국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메이저 단체였으나 현재는 그저 마이너 단체 중 하나라는 느낌.

시스템 상으로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본부를 정점으로, 각 지역의 프로모터의 개인 가맹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맹을 인정 받으려면 심사를 받아야 하고, 연 1회 총회, 그 외 필요에 따라서 임시 총회나 임원회가 열린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일이 프로모터로서 가맹하고 있었다.

역도산의 일본 프로레슬링은 1960년 후반에 가맹하여 붕괴할 때까지 멤버였다. 자이언트 바바는 미국 원정 때부터 NWA와 관계가 강하여 전일본 프로레슬링 창립 직후에 이미 일본대표로 일본 프로레슬링이 가맹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맹이 인정되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도 가맹은 인정되었지만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실행할 수 없는 등. 전일본에 비해서 대우가 낮았다고 한다. 물론 현재는 그런 거 없고 2010년도에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자주 NWA 챔피언십이 열렸다.

NWA에 가맹하면 NWA에서 인정하는 챔피언을 초빙할 수 있으며, NWA에 가맹한 다른 프로모터로부터 외국인 레슬러를 초빙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본적으로 1지구 1프로모터에 한정되여 1지구에 2명의 프로모터는 가맹할 수 없다.

또한 가맹 프로모터가 소속한 단체의 챔피언 타이틀에 '세계(World)'를 넣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1.3 챔피언 벨트

이름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3]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NWA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NWA 위민스 챔피언[4]

2 미국의 힙합 그룹

N.W.A 참조.

3 델타 항공과 합병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 노스웨스트 항공의 ICAO 코드

  1. 본래 NWA의 변호사였으나 막장 상황인데도 여전히 NWA 내부에서 권력 싸움으로 삽질만 일삼자 자신이 직접 인수해서 회장직을 맡았다. 샤프 회장 체제하에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협력하고, 라이브러리 네트워크도 출범하는 등 나름 예전에 비해서는 좋아진 상태
  2. 다만 이들이 탈퇴했어도 당장에 NWA를 이길 수 없어서 NWA와 관계를 유지하며 선수 왕래를 하고, 자신들의 지역구를 존중 받았다.
  3. 한 때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었던 지위지만 이제는 그 가치가 상당히 하락했다. 그래도 어지간한 인디 타이틀보단 높은 위상을 가진다.
  4. WWE 위민스 챔피언쉽의 원류가 바로 이 벨트이다. 자세한 내용은 페뷸러스 물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