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力道山(りきどうざん)
본명: 金信洛(출생당시)/百田光浩(모모타 미츠히로, 일본내의 공식 본명)
"프로레슬링은 하나의 레슬링 경기를 위해 신체를 단련하고 상대와 합을 맞추며 연습하고 링에 올라서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아낌없이 발휘해야하는 '스포츠'이다."
목차
1 소개
역도산(力道山, 1924년 11월 14일[1] ~ 1963년 12월 15일)은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은 인물.
2 생애
2.1 출생
본명은 김신락으로,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 김신락은 씨름 대회에 나갔다 하면 이기고 돌아오는 괴력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의 큰 형과 둘째 형도 씨름 장사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김신락이 스모 수련을 받고 잠깐 돌아오기 전에는 김신락도 둘째 형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본으로 건너갈 때는 10대였지만 이미 결혼도 해서 아이도 하나 있었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약할 때는 공식적으로는 큐슈 나가사키의 모모타 가문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이 설정(…)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다.
2.2 스모 활동
1940년에 그의 씨름 실력을 본 일본인 프로모터가 김신락을 일본으로 데려갔으며, 모모타 가문에 입양되면서 스모계에 입문하게 된다. 역도산이라는 이름은 그 때에 붙여진 예명. 이 당시에 스모계에서는 역도산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모 동료들은 호적상의 이름에 관계없이 그를 '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출신임을 밝히고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던 스모 선수도 있었다. 치이노야마 쇼이치로(智異ノ山正一[2], 통칭 치이노야마)는 1940년에 1월에 데뷔하여 쥬료 3번째(十?3枚目)까지 승진, 1945년 11월에 자진폐업.)
1949년 5월 세키와케(関脇)[3] 자리까지 올랐지만 폐디스토마 감염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져 1950년 9월에 자진폐업. 출신을 알게 된 스모협회 측이 그를 서군에 배치한 것이 원인이라는 설이 있다.
역도산의 폐업은 스모 선수의 정규 절차를 무시하고, 부엌에서 스스로 부엌칼로 상투를 잘라버린 것이었다고 한다. 역도산은 평생동안 화려하고 독특한 생활 방식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이때부터 이미 그 끼가 보여서 스모 선수인데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자유분방한 패션을 자랑했다고 한다. 일본 패망 이전에는 상당히 얌전한 성격이었으나, 패망 이후에 급격히 자유분방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도산은 이 무렵에 나가사키를 출생지로 하고 있는 일본 호적을 얻게 된다. 역도산의 호적이 어떻게 처리된 것인지는 의문이 많은데, 일본 패망 전에 일본에 살던 조선인이라도 호적은 바꿀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역도산이 일본인 모모타 가의 양자로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양자라고는 해도 '출생지'가 아예 다른 호적이 있는 것은 절차상 불가능하다. 전후 혼란기를 틈타 편법적인 수단을 써서 호적을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스모를 그만둔 다음에는 아는 사업가였던 닛타[4]의 건설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역도산은 이 때 생활이 무척 어려웠는데, 평생동안 다른 조선인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역도산도 이 때는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러 갈 정도로 의지했다고 한다.
닛타의 건설회사에서 보디가드 노릇을 하다 술집에서 우연히 일본계 미국인 프로레슬러인 해롤드 사카타[5]를 만나게 된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서 싸웠는데(…) 둘다 서로의 힘에 감탄한 것이 계기라고 한다.[6]
해롤드 사카타와의 인연으로 역도산은 프로레슬링 세계에 뛰어들었고, 일본에서 몇 차례 경기를 하여 가능성을 본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서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게 된다. 이전까지 스모 선수 특유의 펑퍼짐한 체격이었던 역도산은 하루에 1000번씩 복근 운동을 하는 맹렬한 훈련을 거쳐서 철저하게 프로레슬러 다운 몸매로 자신의 신체를 바꾸게 된다.
하와이와 미국에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가지면서 인맥을 쌓아 NWA 프로모터 자격을 얻게 된다.
2.3 프로레슬러 활동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는 일본 프로레슬링 협회(日本プロレス協会)를 창설해 여러 차례 프로레슬링 흥행을 성공시겼다[7].
역도산은 프로레슬링 흥행을 위해 거구의 서양인 프로레슬러들을 초청하여 대결했다. 서양인 프로레슬러를 일본인(으로 알려진)[8] 역도산이 쓰러뜨리는 것을 보면서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서양인에 대한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은 열광했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역도산의 마케팅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당시 막 꽃피기 시작한 TV방송과 맞물려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프로레슬링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역도산은 당대 일본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되었다. 역도산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편지나 엽서의 받는사람 주소 란에 그냥 "日本 力道山" 이라고 적어서 우체통에 넣으면 그대로 역도산 앞에 갔다고 하니...[9]
그렇게 프로레슬링의 거물이 된 역도산의 제자들 역시 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현 일본의 2대 메이저 단체인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창설한 자이언트 바바,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창설한 안토니오 이노키, 그리고 한국 프로레슬링의 아버지이자 독립한 두 제자대신 일본 프로레슬링을 물려받은 김일까지.[10] 이런 관계로 현재 한일 프로레슬러들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대부분이 역도산에 도달하게 된다. 무협소설로 치면 대사조(大師祖) 격(…) 북미 프로레슬링에 루 테즈가 있다면 한일 프로레슬링에는 역도산이 있는 것.
엄청난 돈을 동원해 자신의 이름을 붙인 리키(力) 스포츠 팰리스 라는 상설 프로레슬링 경기장 겸 복합 레포츠 빌딩을 건설했다.
2.4 사망
1963년 12월 도쿄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와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다. 물론 일개 폭력배가 격투를 본업으로 하던 역도산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당연한 절차로 두들겨 맞던 야쿠자는 작은 주머니칼로 역도산의 복부를 찌른 후 도망친다. 그리고 복부에 칼을 찔리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에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약간 황당한 이야기인데, 칼에 찔린 부상 자체는 얕아서 간단한 수술 후 의사의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 지시만 따르면 나을 수 있었으나 역도산이 그 말을 가볍게 씹어먹고 제자에게 몰래 사이다를 갖고 오라고 한 다음 마셨다가 상처가 벌어져서 죽었다(....)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긴 하다.[11][12] 사망 당시 일본 국장(!)에 가까운 수준의 추모 인파와 함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이후 역도산의 팬들은 "역도산 사망 원인 규명하라!"고 다수 의문 제기를 과격하게 하기도 했다.
도일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었는데, 지금 북한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정치쪽으로의 입문을 계속 염두에 둔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북한의 김일성과 친분을 만들기도 했다. 역도산이 김일성에게 롤스로이스 승용차 1대를 선물한 적도 있는데, 그덕에 김일성의 귀여움을 받아(...) 북한 주민들도 알아서 영웅대접을 해주었다. 이 덕분에 의외로 북한에서 전기 영화가 나온적도 있다. 야쿠자에 의해 살해당한 이면에는 정치쪽으로 진출하려는 그를 우익쪽에서 안좋게 봐서 수를 쓴거다는 음모론도 있다. 한편, 평상시에도 성격이 안하무인적인 면이 좀 있던관계로 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도산 사후에 일본 프로레슬링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무너져 내렸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겉으로는 매우 화려한 기업이었고 역도산도 여기저기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지만 자금 사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으며, 사업의 거의 모든 것을 역도산이 혼자 관리하고 있다보니 역도산이 사망하자 일을 처리할 사람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3 숨겨진 정체성
역도산은 일본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겼으며,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김일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을 지도할 때나 사석에서나 우리말을 한번도 쓰지 않는 독한 면모를 보여줬다고 한다.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화장실에서 단 둘이 있을 때 잡담하던 중 역도산이 기쿄(ききょう, 桔梗(길경))라는 단어를 꺼냈는데, 김일이 기쿄의 뜻을 몰라 머뭇거리자 역도산이 "기쿄는 도라지란 뜻이다" 라며 도라지를 우리말로 했다고 한다. 그 '도라지' 라는 말이 김일이 역도산에게서 들은 유일한 우리말이었다고...
그러나 그도 먹거리에 대해선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부정할 수 없었는지 평소 불고기에 마늘을 듬뿍 얹어서 먹는걸 가장 좋아했다. 친구[13]가 운영하는 불고기집에 남들 모르게 새벽 또는 밤 늦게 찾아가 불고기에 마늘과 소주를 양껏 먹고 마신 후 돌아갈 때엔 입냄새를 지우려고 껌을 한웅큼씩 씹으며 갔다고 한다.
집 안에는 한국 노래 레코드를 쌓아둔 방이 있었고, 남몰래 한국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재일교포 야구선수 장훈과는 막역한 사이였고, 당시 야구선수가 배트보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을 금기시 하던 시기에 역도산은 비시즌 중의 장훈을 자신의 체육관으로 불러 "운동선수는 종목을 막론하고 체력을 키우는게 최고" 라면서 장훈에게 아령과 바벨을 들리는 등 강하게 트레이닝 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친한 형동생 사이가 된 장훈은 역도산의 집에 초대받은 후에야 역도산이 재일교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역도산에게 자신이 한국인 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어떠냐고 했는데 역도산은 노발대발 하면서 "넌 내가 한국인이란 것 때문에 그동안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라면서 호통쳤다고 한다.
3.1 무자비한 구타전설(...)
역도산은 성격이 매우 급하고 거칠어서 자신의 체육관에서는 제자들을 일상적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구타는 딱히 이유가 있건없건 그냥 막 벌어진듯 하다(...). 게다가 수련 과정에서도 거의 학대에 가까운 대접을 했는데 예를 들어 김일 선수의 경우 역도산이 박치기를 하려면 머리가 단단해야 된다면서 갑자기 신고있던 게다(나무나 쇠로 만들어진 일본 나막신)를 벗어다가 김일선수의 머리를 마구 내리치기 시작(...) 했다거나, 자이언트 바바가 기술에 대해서 물어보자, 갑자기 앞뒤 안가리고 막 두들겨 패더니만 한참 뒤에 설명을 하기 시작한 에피소드(자이언트 바바 항목의 노텐(腦天)챱 참조)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선 대부분의 프로레슬러들이 그의 밑에서 연습을 했었다 보니, 이것이 대물림되어 일본 프로레슬링 전반에 걸쳐서 구타문화가 심각한 편. 지금도 가끔 일본 프로레슬러들의 무자비한 구타영상이 돌아다니곤 한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마에다 아키라는 심지어 TV생방송 중에 선수들을 두들겨 패는 경우도 몇번 있었다. 그런가 하면 초대 타이거 마스크 사야마 사토루가 자기 체육관에서 제자들을 가리키면서 폭력을 가하는게 촬영되어서 인터넷에 돈 적이 있는데 군기잡기나 체벌의 레벨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레벨... 게다가 트레이닝 지도중에 그냥 아무나 보이는 대로 마구 때린다(...).
사실 이것은 역도산만의 문제는 아니며, 현재까지도 진행형인 일본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런 악습을 한국의 일부 스포츠계에서도 이어받기도 했다.
이 급하고 난폭한 성격은 다른 곳에서도 바뀌지 않았는데, "역도산이 사람을 팼다"는 식의 기사는 거의 스포츠 신문의 단골로 등장할 정도였다. 역도산 본인의 해명으로는 자신이 유명하다보니까 워낙 시비를 걸어오는 인간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 난폭함은 자신이 조선인 임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울분과 억압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역도산은 말기에 경기력을 위해서 흥분제 등의 약물을 남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더욱 성격이 난폭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어릴 때 이미 둘째 형에게 솥뚜껑을 집어던져서 목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로 봐서는 그냥 본성(…)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스모 선수 활동을 하다가 오랜만에 잠시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 역도산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딸 영숙이 자꾸 울어대자 '이런 애는 내 딸이 아냐!'라고 화를 내며 마당에 집어던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듯..
참고로 이삿짐 배달에도 레슬러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고급술(당연히 선물받은술)이 많은데, 사후 제자 레슬러들이 그 술들을 진탕 마시고 돈을 어떻게 벌것인가 의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2 가족
역도산의 가족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 자신의 복잡한 인생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 편력(…)이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아버지 김석태(金錫泰) : 직업은 지관이었다고 한다.
- 어머니 전기(田器)
- 장녀 인녀(因女) : 호적을 담당하는 동사무소의 일본인 직원이 잘못 알아들어서 호적에는 '기인녀'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 장남 항락(恒洛) : 역도산 보다 16살 연상. 역도산과 마찬가지로 힘이 세고 체력이 좋은 씨름 장사였다고 한다. 형제가 같은 씨름 대회에 나가서 항락은 1위, 신락은 3위를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차녀 구임(久任)
- 차남 공락(公洛) : 서울로 고용살이를 하러 갔었다고 한다.
- 삼녀 을복(乙福)
- 삼남 신락(信洛)
- 처 박신봉
- 딸 영숙(英淑) : 역도산이 15세에 낳은 딸이다. 이 딸의 딸, 즉 외손녀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역도 감독으로 나왔다.
- 양부 모모타 미노스케(百田已之助)
- 양모 타츠 [14]
- 양자 모모타 미츠히로(百田光浩) : 1924년 11월 14일 나가사키 출생으로 되어 있다.
4 미디어의 역도산
- 이타가키 케이스케 만화에서는 영 좋지 않게 그려진다. 바키에서는 역강산이란 이름으로 마운트 도바의 회상에 잠깐 등장하는데, 아랑전처럼 안습한 모습은 안보이고 오히려 지하 격투장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언급된다. 다만 지하격투 대회는 대중에게 알려져선 안되는거다보니 죽은 후에는 깡패따위에게 당하다니 역시 레슬러는 아무리 강해도 결국 광대일 뿐이다 같은 비이냥은 피할 수 없었고 이것이 마운트 도바가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근데 바키 외전 켄진에서 보면 지하격투장 초출인 돗포에게 3방만에 맞아죽은 것으로 나온다. 역시 안습.
-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또 다른 만화인 아랑전에서는 취급이 더욱 나쁘다. 극중 역왕산(力王山)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여 제자인 그레이트 타츠미(안토니오 이노키가 모델)를 온갖 구타와 기합으로 괴롭히다 타츠미의 원한을 사게된다. 그러던 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틈을 타 타츠미에게 기습을 당하고 고환이 쥐어 터지며 실신을 당하게 된다. 깨어난 역왕산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할복하여 자결을 한다.[16] 여러모로 역도산에 대한 이타가키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인 듯.
- 고교철권전 터프에서는 아이언 키바라는 안토니오 이노키를 오마쥬한 인물의 아버지로 나온다. 그 뭣같은 성깔에도 불구하고 그 강함에 매료되어 인생을 바쳤던 친어머니와 양어머니의 모습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으로 묘사된다.
- 영화 역도산에서 설경구가 연기했다.
5 기타
- 그의 세계 챔피온 경력은 단 한번이다. WWA 세계 챔피온. 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 계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역도산의 N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이 사실상 '세계 챔피언과 동등'했기 때문에 '세계 챔피언은 단 1번 밖에 없다'는 주장은 애매하다.
- 그의 레슬링 스타일은 현대 프로레슬링의 팬들이 보기에는 심심한 스타일이다. 50년전 프로레슬링은 바디슬램같은 현대 프로레슬링의 기본기술들이 경기를 끝낼정도의 위력을 가진 기술이었기 때문에 지금와서 보기에는 경기 초반에 나올법한 기술이 경기내내 나오다가 경기가 끝난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도산의 전매특허이자 루 테즈의 936연승을 끊은 가라데 챱만큼은 정말 무시무시할정도로 강렬하다.
- 위에서 언급했듯이 평생 적을 여럿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유명한게 유도가 기무라 마사히코(木村政彦)[17]와의'간류지마 혈투'가 있다. 사건 자체만 요약하자면, 유도의 신이나 마찬가지이던 기무라 마사히코가 생활고 탓에[18] 프로레슬링 무대에 뛰어들었다가, 한동안 역도산과 한팀으로 활동했으나 이후 자기 프로레슬링 단체를 창설하고 독립하여 역도산과의 대결구도로 시합을 하게된다. 원래 정해진 워크는 처음 시합을 무승부, 이후로는 둘이 합의하에 그때그때 이기고 지기를 번복하는 것이었는데...
실제 시합중에 역도산은 기무라에게 로블로를 맞은뒤 격분하여 프로레슬링 기술을 그만두고 발길질과 주먹질을 통해 그를 일방적으로 구타하기 시작했고, 기무라는 영문을 알수 없이 맞다가 쓰러지고 만다. 이것을 쇼와의 간류지마(昭和の?流島)사건이라고 한다[19].
2분 10초부터 구타가 시작된다.
- 지금와서보면 상당히 잔인한 방식의 공격인데, 언뜻 보면 휙휙 날리는 따귀 같은데 자세히 보자. 저게 전부 귀를 노리고 있다(...). 기무라가 어안이 벙벙해져서인지 몰라도 따귀처럼 들어오는 고막치기를 막아내질 못했고, 크게 동요된 상태에서 다시 고막을 가격하는 모습. 사실 진짜, 진짜 잔인한 공격이다. 이미 구타가 가속될 때 고막치기는 제대로 여러 번 들어간 상태다. 고막을 손바닥으로 맞은 상태에선 천하의 누구도 서 있질 못하는 법이다(...) 사실상 아는사람이 보면 낭심가격해 놓고 행동불가인 상대를 패는거랑 정말 다를바가 없다.[20] 기무라가 서 있질 못하고 기어가면서 테이크 다운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미 서 있을 만한 레벨이 아닌 거다. 그마저도 실패하고 짓밟히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 사건 이후, 기무라는 '역도산이 돈과 명예욕을 위해 나를 배신했다'라며 워크를 폭로했고, 뒤늦게 전후사정을 알게된[21] 최영의[22]는 그야말로 격분하여 기무라는 무도가 답지 못하다고 인연을 끊고, 역도산은 직접 만나서 패죽이겠다고 추적하게 된다.[23] 이 이야기는 본인의 회고록과 공수도 교본에도 등장하는 일화로, 공수도 바보 일대나 바람의 파이터에도 등장한 에피소드라 만화에서의 창작으로만 믿은 사람도 있는 듯 하다.
- 기무라 본인의 인터뷰가 나오는 다큐.
- 그러나 전후사정과는 다르게, 이 시합 때문에 역도산은 오히려 '강자'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굳히고 프로레슬링 계에서 기무라를 완벽하게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매우 불명예스러운 시합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역도산이 기무라를 조져놓는 모습'을 전 일본 국민이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열광하는 일본인들은 기무라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해도 역도산의 강함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 여담으로 그의 둘째 아들인 모모타 미쓰오가 62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레슬링을 하고 있다. 흠좀무.. 아들 모모타 미쓰오는 아버지랑 달리 여태까지 문제일으킨 적이 없이 조용히 살고 있다.
- 2000년대 중반에는 설경구가 주인공이 되어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실패하는데... 한겨레21에 의하면,영화가 그를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그리지 않아서 흥행에 실패했다고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가 '나 역도산,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다. 난 세계인이다' 였으니 그럴만도.. 일본 프로 레슬러들도 엄청나와서 일본 프로 레슬러 팬들은 볼만 할것이다. 무토 케이지, 故 하시모토 신야, 아키야마 준 등등.
- 내용은 음모론이 절정을 이루고 황당하다. 참고로 이 만화는 한국에서도 나왔는데 감수를 맡은 전직 프로레슬러 김남훈씨가 곳곳에 왜곡이 많다고 당시 실화 이야기를 썼다.(이 만화 마지막을 보면 역도산이 병원에서 죽는데 당당하게 나오며, 죽을 때도 아주 거룩한 분위기로 죽기까지 한다...(주변 사람들이 조용하게 슬퍼하고 무슨 성자가 죽는 분위기로 그렸다.)감수를 맡던 이가 "세상에 이런 왜곡을. 그가 죽을 당시에는 기자들에 지인들, 팬, 내연녀나 자기가 생모라고 주장하는 여성, VIP나 야쿠자들이 몰려와서 주변은 엉망이었다"는 글귀를 써 붙일 정도...)
북한 찬양부분은 삭제되었는데, 특히 한국 번역판에서 유언은 나는 위대한 조선사람이라지만 원본(과 그걸 직역한 일본판)에 의하면 김일성 찬양유언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프로파간다식 내용도 그렇지만, 북한 찬양이 문제가 될까봐 그런 부분은 삭제한것도 좀...(억지스러운 내용전개와 아스트랄한 프로파간다는 이 만화의 컬트성과 병맛을 더해준다. 그게 역으로 코미디로 작용하지만)
줄거리는 역도산이 일본으로 가서 일본 레슬러들을 이기고, 특히 미국의 강한 레슬러들을 거꾸러뜨린다. 그리고 걸핏하면 미국인들이나 미군들과 시비가 붙어서 그들을 흠씬 두들겨패준다는 것이다.(진짜 많이도 나온다. 북한에서 그린거니...) 북한 찬양과 김일성 찬양이 곳곳이 나온다.(김일성에게 고급승용차 준건 미화가 철철 넘친다. 역도산이 실향민, 특히 함경도 출신이니) 내용은 수묵화(참신하다!)인데, 그린이는 김태권(남한의 만화가와 동명이인)이다. 이 만화는 "영웅 역도산"이라는 한국 서적에도 수록되어 있다.
- 외국 프로레슬링 선수들을 불러오면 개런티를 주어야 했는데, 이들은 개런티를 미국 달러로 지불받기를 바랬다. 당시 못 살던 일본에서는 달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엔은 너무 가치가 없어서 외국 선수들은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역도산은 달러를 구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교묘한 수단을 사용했다. 미국 치하에 놓여 있던 오키나와에 가서 프로레슬링 미군 위문 공연을 열고 달러를 얻어오거나, 심지어 재일교포 인맥을 통해 한국에서 달러를 끌어오기도 했다.
- 성우 겸 배우인 코야마 리키야의 이름의 어원이 된 사람이기도 하다. 코야마 리키야의 아버지가 그의 팬으로, 역도산이 사망한 달에 코야마가 태어났는데[24] 역도산의 '역도'만 따서 지으려고 했다가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힘 력(力)만 따와서 지었다고.
- ↑ 역도산은 출생연도나 나이를 속인 의혹이 있어서 생년월일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고향 친구인 진명근은 1923년 생이었는데, 역도산의 나이를 자신보다 한살 위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1922년 생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 智異(ノ)山는 바로 지리산의 한자이다.
- ↑ 천하장사 격인 요코즈나(横綱)와 오오제키(大関) 다음 등급
- ↑ 일본군 출신으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온정적으로 대했고 그 때문에 나중에 미군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으며, 그 인맥으로 GHQ에서 발주받고 GHQ의 뒷빽으로 자금을 빌려 건설회사를 경영해서 큰 부를 쌓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역도산의 스폰서였으며 일본 프로레스링의 대주주였고, 역도산의 두번째 결혼에 중매를 서기도 했다. 사후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역도산에 넘긴다.
- ↑ 일본계 미국인으로 007영화 골드핑거에서 중절모를 던져 사람을 잡는(...) 오드잡 이라는 프로레슬러로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참고로 1948년 런던 올림픽 82kg급 역도 은메달 출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었다
- ↑ 참고로 영화 역도산에서는 해롤드 사카타의 역할로 무토 케이지가 분하는데, 덕분에 이 장면이 이 영화 프로레슬링 장면중 최고로 박진감 넘친다.
- ↑ 1920년대에 이미 '대일본 프로레슬링 보급회'라는 단체가 있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것은 역도산이 처음.
- ↑ 모모타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면서 일본 호적으로 옮겼으니 조선인 출신이기는 해도 국적은 일본인이 맞다.
- ↑ 김일이 일본행 밀항선을 탔다가 체포되어 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는데, 역도산의 집 주소를 몰랐음에도 편지는 무사히 도착했고 풀려나서 역도산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 ↑ 김일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그가 물려받은 일본 프로레슬링은 신일본,전일본에 밀려 결국 문을 닫는다.
- ↑ 아래에서 설명 되겠지만, 성격과 행보 탓에 평소에도 적이 많았다. 사인도 직접적으로 칼에 찔린때문에 죽은게 아니라, 수술후에 마취를 풀다가 마취 후유증으로,(정확히는 복막염이라는 얘기가...) 사망. 한편, 그를 찌른 야쿠자는 감옥에서 오래 복역후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상당한 거물이 됐다. 2013년 4월 노환으로 죽을때까지 당시 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꺼렸다....
- ↑ 방학기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에선 술집에서 우연히 시비에 휘말려 애송이 야쿠자의 칼에 찔렸으나 별거아니라면서 병원에 가자는 주위 사람들을 무시하고 술에 식사까지 거하게 하다가 나중에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가서 죽었다고 나온 바 있다.
- ↑ 설경구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역도산에서 역도산의 친구인 불고기집 주인 역을 박철민이 맡은 바 있다.
- ↑ 친자식처럼 길렀다
- ↑ 원래는 일본기자의 연인이었으나 역도산이 NTR해서 결혼했으나 역도산이 전처(다나카 케이코)하고 불륜(말이 불륜이지 강간하고 비슷하다)을 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역도산 관련서적참고.
- ↑ 실제로 안토니오 이노키는 역도산의 문하에 있을 당시 역도산의 구타가 너무 심해 스승이지만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고 밝힌바가 있었다.
- ↑ 이 사람도 유도계에서 전설적인 인물.
- ↑ 부인의 약값을 대기 힘들정도였다고 한다.
- ↑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가 간류지마에서 벌인 결투를 연상시킨다고 붙여진 이름.
- ↑ 절대 과장이 아니다!!
- ↑ 경기장에서도 직접 보기도 했고.
- ↑ 최영의가 기무라를 형이라 불렀다.
- ↑ 지인으로부터 최영의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역도산이 항상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다녔기 때문에 1:1 대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 ↑ 역도산이 사망한 날과 코야마 리키야가 태어난 날이 겨우 3일밖에 차이가 안 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