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동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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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동방교회는 네스토리우스파를 계승하는 기독교 교파이다. 네스토리우스파에페소 공의회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파문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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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네스토리우스 교단은 총주교 계승문제로 인하여 둘로 분열되어, 한쪽은 자파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로마 교황청의 우위를 인정하고 교황으로부터 총주교 임명장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교황청과 연맹을 추진하는 신파와 전통적인 교단의 독립성을 고수하는 구파가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과 중반, 구파의 총주교들은 상대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가톨릭 교의를 받아들이고 그들 역시 교황의 임명장을 받게 되자 이번엔 신파가 다시 반가톨릭으로 선회했는데, 이 신파가 바로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다.[1]

1 20세기 이후

그 뒤 총대주교 마르[2] 시몬 23세(숙질계승을 통한 마지막 총대주교이다.)는 망명을 강요받아, 1933년 키프로스로 옮겼다가 1940년시카고로 이주한 뒤 망명 총대주교좌(See in exile)를 설치하여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자수는 4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1976년부터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딩카 4세가 새 총대주교로[3] 착좌한 이후 공식적으로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설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 네스토리우스가 신성과 인성을 아주 엄격하게 분리하려 했나에 대해서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더구나 브리태니커에서 나온 네스토리우스에 관한 서술이나 아시리아 교회의 대신학자였던 '대(大) 바바이' 역시 "그리스도는 두 본성을 가지며 이는 한 인격 안에 섞이지 않고 존재한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2015년 3월 26일 딩카 4세가 안식함으로써 새로운 총대주교 선거가 4월 8일에 행해졌으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9월 18일 게와르기스 3세가 총대주교에 선출되어 9월 27일에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그리고 총대주교좌는 망명상태를 청산하고 82년만에 다시 이라크 아르빌로 돌아왔다.그런데 위험하지 않을까?[4]

1.1 고(古) 동방교회

한편 이라크 영내에 있으면서 신파계통의 전례형식을 고집했던 교도들은, 1968년에 아시리아 동방교회에서 분리되어 고 동방교회(Ancient Church of East)가 되었다. 본부는 바그다드에 있으며, 신자수는 10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교회의 현실 도 볼만하다.

2 관련항목

  1. 구파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인 칼데아 가톨릭이 되었다.
  2. Mar. 아람어로 '주님' 혹은 '성인(聖人)'이란 뜻이다. 여담으로 여성형은 Mart/Mort이다 (Mart/Mort Maryam = 성모 마리아)
  3. 15세기 이후 처음으로 500년만에 세습이 아닌 선출로 착좌한 총대주교이기도 하다.
  4. 아르빌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수도로, 이라크 지역들 가운데선 상대적으로(상대적이다.) 안전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