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가톨릭 교회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1 개요

eastern-catholic-bishops-620x320.jpg

로마 가톨릭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로마교회와 일치해 있는, 동방 전례를 사용하는 자치교회들의 총칭. 일부 특이 케이스를 빼면 교리 자체는 가톨릭이나, 전례형식 등 외양은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동방 가톨릭 교회법에 의하여 총 23개의 동방 가톨릭 자치교회가 인정되고 있다.


2 목록

대부분이 레반트 부근의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발칸 반도에 몰려 있으나, 시로말란카라와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남인도에, 이탈리아-알바니아 교회는 남부 이탈리아에 있다. 루테니아 교회는 원래 현재의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해당하는 루테니아가 중심지였지만, 해당 지역이 소련에 합병된 이후 동유럽에서는 거의 소멸하고 현재는 미국 피츠버그를 중심지로 하고 있다(...). 아시리아 동방교회도 비슷하게 1940년 미국 시카고로 중심지를 옮겼지만, 85년만인 2015년에 이라크 아르빌로 복귀했다.

2.1 알렉산드리아 전례

  • 콥트 가톨릭 교회 -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 보유
  •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
  • 에리트리아 가톨릭 교회

2.2시리아 전례

  •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회 - 신자수 390만으로 2위이며, 상급대주교좌 보유(에르나쿨람-앙가말리). 인도 남부 케랄라 주가 중심이다. 이 교회 소속의 프란치스코회 수녀인 알폰사 뭇따투빠다투(Alphonsa Muttathupadathu: 1910~1946)가 2008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최초의 인도인 성녀로서 시성된 바 있다.
  • 칼데아 가톨릭 교회 - 바빌론 총대주교좌 보유.

2.3 서 시리아 전례

2.4 아르메니아 전례

  •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밀려서 큰 존재감은 없다. 킬리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2.5 비잔티움(그리스) 전례

  • 알바니아 가톨릭 교회
  • 벨라루스 가톨릭 교회
  • 불가리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비잔틴 가톨릭 교회
  • 그리스 비잔틴 가톨릭 교회
  • 헝가리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 - 이탈리아 남부에 분포하며, 신자들은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이탈리아로 온 알바니아와 그리스계 사람들의 후손이거나 시칠리아에 살던 그리스인의 후손이다.
  • 마케도니아 가톨릭 교회
  •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 - 신자수 160만 가량으로 4위 규모이며,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 보유.
  •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상급대주교좌(퍼거라슈-알바율리아) 보유
  •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교세가 너무나도 작아서 자치 교회는 없고, 러시아 내에 설정된 라틴전례 교구 관하에 몇 개의 공동체가 있는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서는 1905년까지 동방 가톨릭이 불법이었고 소련 시대에도 엄청나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게 없다.(...)
  •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2차 대전 후 소련의 탄압으로 본거지를 미국 피츠버그로 옮겼다.
  • 슬로바키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 동방 가톨릭 교회 중 가장 많은 신자들이 믿는 교파이며, 신도수 430~535만 가량. 리비우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주로 믿으며, 상급대주교좌(키예프-할리치) 보유


3 유래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 가톨릭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교파 중 일부가 다시 분열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게 된 경우, 다시 말해 한 번 분리되었다가 다시 넘어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동서 교회의 분열 이전에 생겨난 마론파와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는 한 번도 로마 교회와 공식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독립된 전례를 유지해 온 것으로 취급된다.


3.1 동서 교회의 대분열 이전에 생겨난 교회들

  • 마론파: 성 마론을 따르는 은둔 수도사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그리스도론이 이단으로 단죄되면서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비칼케돈파 교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레바논 산지로 피신한 사람들이 독립교단화하면서 생겨난 교파이다. 이후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를 정복하면서 고립되었다 십자군들이 들어오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일치하게 되었다.
  • 이탈리아-알바니아 가톨릭 교회: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이래로 동로마의 영토였으며, 11세기의 노르만 정복 이전까지 콘스탄티노플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던 남부 이탈리아의 동방 정교회 소속 교회들이 노르만 정복 이후 로마 교회의 영향하에 놓임으로써 생겨난 동방 정교회의 잔재들이다. 15세기 이후에 유입된 알바니아인들에 의해 교회가 유지되었으며, 1784년에 자치권을 획득했다.


3.2 정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들

대부분의 그리스(비잔티움) 전례 교회들이 여기에 속한다.

  • 1596년 브레스트 연합으로 분리된 교회: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교회. 당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루테니아의 대부분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영토였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이 이 지역에 대한 영향권을 상실하고 러시아가 들어옴으로써 이 지역은 또다시 정교회 영향권에 놓이게 되었고, 당연히 분리를 결정한 이 지역 교회들은 다시 돌아온 정교회 신자들의 박해를 받았고(...),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된 할리치(우크라이나의 리비우 주변 지역)를 뺀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강제로 다시 정교회로 돌아가야 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 루테니아 지역은 완전히 다시 정교회로 돌아섰고, 벨라루스도 강제 재연합의 영향으로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만이 로마 가톨릭의 세력권 안에 남아 큰 피해를 모면했다.
  • 1646년 우즈호로드 연합으로 분리된 교회들: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와, 우크라이나 교회의 일부. 브레스트 연합과 비슷하게, 가톨릭 세력권인 헝가리의 영향하에 놓여있었던 카르파티아 지역의 교회가 콘스탄티노플과 단절한 경우이다. 이곳은 20세기 전반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체코슬로바키아의 영향권에 있어서 박해를 크게 받지 않았지만, 2차 대전 이후 소련이 들어오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결국 루테니아 교회는 박해 때문에 본거지의 세력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고 미국의 교세가 더 클 지경이 되었다.
  • 다른 시기에 분리된 교회들
    •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비잔틴 가톨릭 교회: 1611년 세르비아 정교회로부터 분리. 당시 트로아티아 북부와 슬로베니아 지역은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최전선으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의 정교회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이들 이주민들을 정교회로부터 분리시켜 가톨릭 소속의 자치 교회로 만들었다.
    •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1698년 분리. 오스트리아가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그 지역의 정교회 교구들이 로마와 연합하게 되었다.
    •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 1726년 분리. 멜키트는 시리아와 이집트 등지에서 비칼케돈파 신자 (오리엔트 정교회)들이 칼케돈파 신자들을 왕당파라고 까는데 쓰던 멸칭에서 유래한 말이다. 1724년 선출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키릴루스 6세는 그의 친가톨릭적 성향을 우려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부터 파문당했고, 로마 교황으로부터 정당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임을 인정받음으로써 시리아의 칼케돈파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어졌다.
    • 불가리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마케도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 1861년 최초 분리. 19세기 이후 불가리아 민족주의에 의해 촉발된 일련의 독립운동에 의해 분리되었다. 이후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에 속하게 되어 불가리아와 다른 길을 걷게 됨으로써 두 교단 사이에 분리가 일어났고, 200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마케도니아 교황 직할서리구를 설치하면서 공식적으로 다른 교단이 되었다.
    • 그리스 비잔틴 가톨릭 교회: 1826년 분리.(독립교단화는 1911년) 로마 가톨릭 선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소수 정교회 교도들이 독립하여 설립되었다.
    • 러시아 가톨릭 교회: 1906년 분리. 1905년까지 불법 상태에 있었던 극소수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이 1905년의 종교 자유 칙령에 의해 자유를 얻으면서 조직화되어서 생겨난 교단.


3.3 콥트 정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들

  • 콥트 가톨릭 교회: 공식적으로는 1741년에 콥트 정교회의 예루살렘 주교 안바 아타나시오스가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분리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824년 이집트 총독의 요청에 의해 콥트 가톨릭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가 설치되면서 분리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19세기 이후 이집트 총독의 허가 하에 독립 교회를 세우면서 신자 수가 늘어났다.
  •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 1846년 공식적으로 분리.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지역에서는 15세기부터 포르투갈인의 진출로 로마 교회와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16세기 에티오피아-아달 전쟁에서 에티오피아측이 포르투갈인의 도움으로 아달 술탄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1622년에는 황제가 가톨릭으로 개종 후 국교로 지정하고, 포르투갈 선교사가 총대주교로 임명될 정도로 가까워졌으나, 민중 선교에 실패하고 황제 수세뇨스가 죽은 뒤 1636년에는 포르투갈인 총대주교를 추방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며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후 1839년에야 다시 선교사들의 입국이 허용되면서, 선교받은 신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교단 조직이 형성되었다.
  • 에리트리아 가톨릭 교회 : 2015년 1월 19일자로 설립된 동방 가톨릭 교회로, 위에서 언급한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해서 나왔다.

4 기타 오리엔트 정교회로부터 분리된 교회들

  • 시리아 가톨릭 교회: 시리아 정교회로부터 1781년 분리. 주변의 멜키트-그리스 가톨릭 교도, 마론파 교도들과 교류하며 친 가톨릭적 성향을 가지게 된 미카엘 자르웨가 1781년 시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로 선출되면서 동방 가톨릭의 일원이 되었다. 이때 가톨릭과의 연합에 반대한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새 총대주교를 선출하여 시리아 정교회를 이어갔다.
  •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로부터 1742년 분리.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신자 중 가톨릭과의 연합을 주장한 일부 신자 집단이 1740년 다른 그리스 가톨릭 교단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총대주교를 세우면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4.1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로부터 분리된 교회들

  • 칼데아 가톨릭: 현재의 교단은 1692년 분리. 1553년부터 시작된, 총대주교 자리의 숙질계승 문제를 두고 벌어진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분열 중 몇몇 파벌이 로마 교회와 연합하면서 분리되었다. 처음에는 숙질계승에 반대한 신파 총대주교가 로마와 연합했지만, 1672년에 신파가 다시 둘로 갈라지고 그 중 정통파는 1692년 로마교회와 결별하여 다시 아시리아 동방교회로 돌아갔다. 1780년에는 구파가 로마 교회와 연합하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가톨릭 소속 신파 일부와 연합함으로써 지금의 교회 체제가 완성되었다.
  •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교회: 1665년 분리. 원래 남인도의 말라바르 교회는 칼데아 교회와 교류하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일원이었지만, 중동 지역이 이슬람화되고 15세기 말 이래로 포르투갈인이 도래하면서 로마 교회와의 교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이 교회를 강제로 라틴 전례에 맞추게 하려는 병크를 터뜨리면서 다시 독립화 되었다가, 이후 1655년 교황이 보낸 사절의 설득으로 많은 수의 교회가 다시 가톨릭과 연합했다. 가톨릭으로 돌아온 교회들은 1665년 시리아 정교회 측에서 보낸 대주교[1]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대주교를 선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분리되었다.
  • 시로말란카라 가톨릭 교회: 1930년 분리. 1655년의 말라바르 교회 분열 과정에서 시리아 정교회측 대주교를 받아들인 말란카라 교회 소속 신자들 중 일부가 다시 가톨릭과의 연합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났다.
  1. 공식적으로 이전까지 말라바르 교회의 대주교는 시리아에서 온 대주교가 맡고, 대주교가 없을 때에는 대부제(archdeacon)이라는 성직자가 교회를 다스리는게 일반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