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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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7
김상수(金相竪 / Sang-su Kim)
생년월일1990년 3월 23일
신체175cm, 68kg
출신지서울특별시[1]
학력옥산초[2] - 경복중 - 경북고
가족관계동생 김상우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9년 1차지명 (삼성 라이온즈)
소속팀삼성 라이온즈(2009 ~ 현재)
응원가노라조 - 슈퍼맨[3][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손주인(2008)김상수(2009~2010)김동명(2011~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박진만(2005~2010)김상수(2011~)(현역)
2014년 한국프로야구 도루왕
김종호(NC 다이노스)김상수(삼성 라이온즈)박해민(삼성 라이온즈)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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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초등학교 재학 시절 이 아이는 커서.. 전설의 팀 동료가 됩니다!

대한민국프로야구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

경북고 시절에는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며 안치홍, 이학주, 허경민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 라인[5]을 형성하였고,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2008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의 우승을 합작하였다.[6][7] 공수주에서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언론들은 제 2의 이종범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신인 시절 달았던 등번호 2번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데릭 지터의 등번호를 따온 것. 그런데 2010시즌 후 박진만이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다음에 SK 와이번스로 가는 바람에 등번호 7번을 이어 받았다.

막 데뷔했을 시절엔 타상수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동명의 투수와 구분을 위해 붙은 것이다. 투상수가 넥센으로 이적한 후로는 별다른 별명이 없다가, 류중일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류상수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8] 또 2013 시즌 중 홈런 개수가 김태균보다 더 많았고 이승엽보다 페이스가 더 좋아서 "김거포"라는 별명도 새로 생겼다. 2011년 이대호가 3홈런을 몰아쳤으나 3:3 무승부로 끝났던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생활 평생동안 칠 홈런개수를 하루만에 몰아친다"며 감탄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 수준.

2 선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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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에서 당시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사장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고,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김상수는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로써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언플을 받았는데, 특히 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했던 김응용 전 삼성라이온즈 사장으로부터 (고교 시절의) 이종범보다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여담으로, 김상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엠엘비파크의 한 유저가 박진만 이후의 삼성의 차기 주전 유격수가 김상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허황된 소리라고 일축했었으나[9] 결국 사실이 됐다.

빠른 발과 괜찮은 출루 능력으로 테이블 세터 역할도 할 수 있는 유격수다. [10]

2.1 2009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김상수를 1번 타자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시범경기서 타율 0.348(2위). 안타 16개(공동 1위). 도루 8개(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본 시즌에서는 4월 초반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빠른 발과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2루타 머신, 제 2의 이종범 등의 수식어를 들으며 맹활약하였다. 아마 김상수커리어상 월간기록이 가장좋을때였다고봐도 될정도로 미친듯이 활약했다. 심지어 기아팬일부도 이때당연히 그 이후 지금까지 이런 수식어는 엄두도 못낼 수준이다 제2의 이종범이라는 호칭이 아깝지않을정도라고 말할 정도의 활약을 보였다그리고 선동열은 삼성최고의 1번타자가 될것이라고했다 그러나 2015시즌까지 이정도의 임팩트는 보여주지못한채 큰위압감은 없지만 주전으로 나오는 수비좀하는 유격수가 되었다

하지만 5월 들어서 몸쪽 변화구의 약점이 드러나고 또한 체력 문제까지 겹치는 등 신인의 한계가 드러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김상수 입단 전 원래의 2루수 주전으로, 성적이 영 시원치않아서 영원한 1할타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신명철은 포텐셜이 폭발하며 3할대 타율을 찍기 시작, 시즌 시작 전 김상수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주전 2루수와 1번타자 모두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6월 중순,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자, 신명철도 다시 1할을 찍기 시작.(…) 다행히 7월 김상수가 복귀하자 신명철의 타율은 3할으로 복귀하였고, 김상수는 박진만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 주전 유격수로 그냥저냥 시즌을 마감했다.

최종성적은 타율 0.244 OPS 0.631 59안타 17타점 18도루. 제2의 이종범으로 시작해서 그냥 고졸루키치고는 잘하는정도로 격하

시즌 초반에는 맹활약으로 신인왕이 무난할꺼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A형 간염에 걸린 후 경기감이 떨어지며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신인왕은 세이브타이틀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이용찬이 가져갔다.

일각에선 김상수의 1군 엔트리 등재 여부에 따라 신명철의 활약도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김상수의 팀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명철의 부스터 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명 상수로이드.

또한, 시즌 시작 전 선동열 감독의 인터뷰로 김상수의 주전 등극이 예상되자,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측에서는 만년 쩌리 백업선수(…)강봉규의 응원가를 용도변경하여 김상수의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강봉규도 신명철이랑 함께 포텐이 터졌다!

2.2 2010 시즌

시즌 극초반 대주자로 나와 도루를 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실질적인 1군 합류는 5월 초반부터였다. 하지만 합류하자마자 박진만의 급격한 노쇠와 부상으로 공백이 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수비에 있어서는 민첩함과 센스를 갖춘데다가 어린 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어 삼빠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하지만 배영수만 선발로 나오면 폭풍실책 타격은 기대치에 비해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타격 센스는 나쁘지 않으나, 작은 체구의 문제로 장타력이 떨어져 안타가 될 타구도 땅볼이 되는게 문제. 하지만 2009 시즌에 비해 출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여전히 기복이 심해서 못할 때는 정말 바닥까지 칠정도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잘할 때는 루키시즌에 겪었던 몸쪽 변화구 약점같은 것도 전혀 문제가 안될정도로 잘하는 모습을 보이며 뭇 삼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있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몇몇 타자들에게 특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 일주일간의 김상수의 성적은 끝내기 안타를 포함하여 참 아름다웠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OPS 0.634 69안타 22타점 30도루.

2010 포스트 시즌 들어서 미친 듯한 활약을 펴기 시작했는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임에도, 안정적인 수비[11]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포텐이 터진듯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 팀의 시리즈 3승 2패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MVP는 1, 4차전에서 결승타를 쳐 MVP를 차지한 박한이에게 돌아갔으나, 많은 야구 관계자들 및 팬들이 김상수를 숨은 MVP로 꼽았다.

김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9안타 2볼넷 2사구(死球) 1도루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474, 출루율 .565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대활약으로 벌써부터 삼빠들은 류중일-박진만을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급 삼성 유격수 라인으로 김상수를 올리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레발을 떨었고, 관계자들도 꽤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들어서자, SK 와이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타선의 중심이었던, 김상수와 박한이를 봉쇄하는데 주력하였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077로 완전히 봉쇄당하며 부진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4패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난 뒤, 준우승 트로피 시상을 해야하는데, 갑작스럽게 트로피를 김상수 혼자 나와서 받자 팬들은, 고참들이 지들이 쪽팔리니까 팀 막내한테 모든 걸 다 떠맡긴다면서 분노하기도 하였다.

종합하면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死球) 타율&장타율 .077, 출루율 .200을 기록했고,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10안타 3볼넷 3사구(死球)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313, 출루율 .421를 기록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팀을 떠나자, 등번호 7번을 차지했다.

2.3 2011 시즌

개막 이후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중이다. 수비 능력은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지만(황재균과 함께 실책이 리그 탑급), 타력이 낮아 걱정하는 팬이 많다. 5월 3일 기준으로 .224 .277 .290의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으며 홈런은 0개, 도루는 1개다. 조동찬이 극심한 부진을 겪다가 부상으로 2군에 갔기 때문에 한동안 유격수 자리를 빼앗길 이유는 전혀 없지만, 타격이 적어도 2010 시즌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타자로서의 기대는 포기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경기를 많이 치룬 상황이 아니고 그나마 타율이 1할대에서 오르고 있는 중이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

5월 8일 대구 對LG전에서 선발 박모씨를 상대로 2회말에 데뷔 홈런을 터뜨렸다. 가운데로 몰린 슬라이더를 때려 펜스를 넘겼는데, 통산 228경기 610타수만의(…) 홈런. 채상병의 투런 홈런 직후에 나온 백투백 홈런이었는데, 정작 던진 투수 박모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이 광경을 본 후 삼갤 반응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덤으로 KBO 최초 팀 3,500홈런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재산과 손목을 날리게 된 브콜돼 지못미#

6월 14일 對LG전에서 또다시 선발 박모씨를 상대로 3회말 원아웃, 스코어 0:0 상황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통산 홈런이 단 2개인데 모두가 박모씨를 상대로 쳐낸 것. 그리고 그 투수는 다음에도 수비 실책 등으로 연달아 5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날의 홈런으로 특이한 기록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올해 박모씨에게 홈런을 가장 많이 뽑아낸 선수가 바로 이 김상수(!)라는 것. 박모씨 때문에 알고 보면 정의구현 홈런?

시즌 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5월 말부터 김상수는 타격에 관하여 각성하게 된다.마치 2009년의 강봉규처럼 6월에 들어서는 타격이 일취월장하여 월간 타율이 4할대를 넘어서기에 이르러 7월 1일엔 타율 .288을 기록, 3할을 바라보고 있다.(!)[12]

다만 유격수 치고 7월까지의 실책이 20개로 좀 많은 편인데[13], 안타성인 타구를 처리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에러를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넓은 수비범위를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011년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을 기록하였다. 2010년과는 다르게 공격에서도 충분한 활약을 한 셈.

결국 실책 22개로 2011년을 마감, 실책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성근 감독의 칭찬에 무색하게 삼성팬들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공격 측면에서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4 2012 시즌

항목 참조.

2.5 2013 시즌

항목 참조.

2.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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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도루로 개인 최초 50도루 돌파와 함께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도루를 기록했고[14] 구단 역사상 최초의 도루왕이 되었으며[15], 유격수로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거기에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출전과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까지 확정.

해당 항목 참조.

2.7 2015 시즌

못한다 못한다 했더니 귀신같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시즌.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2.8 2016 시즌

삼성 타선에서 최악의 생산력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16]

전지훈련 동안 다소 가벼운 배트를 바꿔 간결한 스윙과 함께 타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손가락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계속 주전으로 출장하는 영향도 있고, 같은 팀에 더 심하게 부진한 선수도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묻어가는 편.

4월 24일 kt전에서 7회말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이어 이영욱의 안타로 3루까지 내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당일날 검진에서는 인대나 뼈에 이상은 없다고 나왔는데, MRI 촬영 결과 인대 손상을 진단받아 4월 2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복귀까지는 3~4주 정도 걸린다고.

그 후 아롬 발디리스와 함께 재활을 거쳐 2군 훈련에 합류했으나 5월 25일 2군 경기 중 다시 통증이 재발, 다시 휴식을 거친 후 1주 후 다시 훈련에 합류했다. 작년부터 이리저리 아프던게 결국 터진 셈. 6월 5일 대퇴사두근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6월 5일 드디어 1군에 출장. 첫타석 부터 1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삼성 팬들은 드디어 김상수가 돌아왔다며 좋아했지만... 7회 귀신같은 송구실책을 범하면서 팀의 역전패에 일조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신나게 까였다. 사실상 갤주

그러나, 6월 7일 LG전 1사 만루 역전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쳐내며 그날 하루만큼은 삼팬들의 석고대죄를 받아냈다. 참고로, 이 안타가 6월 삼성의 만루 상황에서의 첫 안타다... 그것도 10번째만에...

6월 25일 kt전에서 9회초 2사에 1점차로 리드하는 수비상황에서 이대형의 타구를 실책을 저질렀다. 이후 이대형이 2루 도루하면서 급격히 심창민은 흔들리고 결국 오정복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4점차 리드가 하루아침에 동점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0회초에 kt한테 역전을 당해 팀은 13대8로 패를 당해 9위로 추락하게 되었다.이날 김상수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이날 경기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2할 5푼 4리로 떨어졌다. 삼성 역사상 최초로 헬로키티 아래가 되었다 드디어 헬로키티 삼 (3호기)의 완성

7월 9일 한화전에서 기어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여 타율이 2할 3푼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8월 들어 타격감을 찾았는지 아니면 바빕신의 가호가 내린 것인지 타율을 회복하고 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8일 문학 sk전에서 정말 오랜만에 1번타자로 출장했다. 특히 이 날은 전병두의 은퇴식이 있는 프로통산 마지막 경기인데 이 날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기 때문에 김상수가 전병두의 프로통산 마지막 상대타자가 되었다. 결과는 유격수 땅볼 아웃.

사실 올해 김상수의 부진은 다소 예고된 감이 있다. 다른 야수 포지션에서는 어느 정도 백업 자원을 확보해 놓은 삼성이 유독 유격수 자리에서는 백업을 구하지 못해 김상수가 계속 출장해야 했고, 그로 인해 쌓여온 피로가 이번 시즌에 터져버린 것이다. 왕조 자리를 지키던 시기에는 리빌딩 차원에서 유망주들이 1군에서 경험치를 쌓도록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데다, 류중일 감독 특유의 유격수 자리는 전문 유격수가 맡아야 한다는 야구지론도 있었기 때문. 류중일 감독의 입장에서는 1군 레귤러라 할 만한 유격수가 양아들 류상수김상수밖에 없었고, 김상수는 좋든 싫든 발전하든 말든 받쳐줄 선수가 없으니 계속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왕조 시기의 홈구장이 박진만의 무릎도 갉아먹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었으니...

3 평가

부동의 주전 유격수 vs 연봉값 못하는 먹튀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뒤따르는 선수
그리고 차기 전드 후보[17]

경북고 출신 프랜차이즈에, 1차 지명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기 시작한 2009년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풀 타임을 뛰면서 데뷔 년도인 2009년의 두배에 가까운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타율은 유지하면서 도루와 출루율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2011년에는 비율 스탯이 각각 3푼/2푼/5푼이나 증가한데다 도루 개수는 전년과 별 차이없는 29개를 기록, 또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으며 2012년에는 초반의 부진 탓에 득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18] 2013 시즌에 다시 회복하다 못해 안타 2개차로 3할을 놓치는 좋은 성적을 보여 모든 팬들이 타격포텐이 만개했다고 보았으나, 2014,2015년 극심한 타고투저에도 불구하고 타율과 대부분의 타격스텟이 하락했다. 이러한 타격스텟 하락 중 하나로 타격 스타일이 공을 골라내기보다 쳐서 나가려는 성향이 강해 출루율이 높지 않고, 이러한 스타일이 BABIP빨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19] 그러다보니 테이블세터감이라 보았으나 다른선수의 부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줄곧 하위타선-9번타자에 머문 이유중 하나이다.[20] 도루 역시나 2014년 김평호 코치의 효과와 군대를 면제 받겠다는 불타는의지로 본인의 한 시즌 최다 도루를 경신하고 구단 역사 최초의 도루왕[21]을 거머졌던걸 빼면 커리어내내 20개중반~30개 정도만 기록하며 주루 역시도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몸이 날래고 순발력이 좋아서 수비력은 리그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류중일 감독이 수비만 놓고 보면 강정호보다도 낫다고 평가한 적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김상수의 수비를 자주 칭찬한다.수비코치 9명중 5명이 뽑은 수비로는 최고 유격수 땅볼, 플라이, 다이빙 캐치 모두 상급. 다만 송구는 평범한 편이다. 어깨가 약하지는 않지만 강하다고도 볼 수 없는데, 자신의 어깨를 과신하는 것인지 무리하게 송구하여 도리어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넓은 수비 범위와 유연한 자세 전환으로 부족한 송구를 커버하고 있으나 어이없는 송구 실책이 꽤 자주 보인다. 그 예가 12년 코시 3차전, 희대의 덕아웃 송구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히며 경기를 내줬다. 풋워크도 좋고 어깨도 그리 약한편도 아닌데 왜 자꾸 바운드 송구로 실책이 생기는지는 의문. 도리어 강견이라 빠른 바운드 송구로 1루수를 엿먹인다 그로 인해 주전을 차지한 이후로 매해 두자릿수의 실책을 기록했다. 그리고 잔부상등으로 15년 이후론 수비 역시도 세부스텟이 많이 하락한 상태이다. 그 밖에 부상도 쉽게 안 당하는 금강불괴 속성도 보유하고 있었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유격수임에도 2011~2015년 출장 경기 전체 4위를 기록하였다. 그로 인한 영향인지 15년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더니 결국 16년엔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또한 상술하였듯이 SNS로 인한 거대한 논란을 두 번이나 낳아, 각각의 논란에서 따온 '김짜증'과 '김발렸네'라는 별명까지 생기며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우승프리미엄때문에 성적에 비해 연봉이 계속해서 큰 폭으로 올라가고 그에 바해 저조한 성적을 거두니 더욱더 욕을 먹고있다. 여기에 지명 당시의 기대치가 합쳐지니 마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선수임에도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 비판하는 팬들이 많다. 특히 팬들이나 구단에서나 염려하고 있는 것은 박진만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이후 삼성에 제대로 된 유격수 백업이 없다는 것. 강정호처럼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닌 이상 백업 겸 주전 경쟁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젊은 나이에 주전을 꿰차서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팀과 류중일 감독도 이러한 점을 늘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부임 이후 매년 유격수를 지명하고 있으나, 할애한 지명권에 비해 2015년까지의 소득은 미흡한 상황이다. 2015 드래프트에서 삼성이 지명했던 유격수 최정용도 입단 후 유격수로 미흡하다는 평을 받다가 결국 2차 드래프트로 SK에 끌려갔다.

그 외에, 유격수를 열심히 지명했지만 1군에서 통할 자원이 잘 안 나오다 보니, 실질적으로 김상수가 풀 타임을 뛸 수 밖에 없게 된 문제가 있었다. 즉 성장이 정체된 이유에 내부 요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연속으로 풀타임 출전에 따른 체력 부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5년까지 이용한 홈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인조잔디여서 내야수들의 무릎에 악영향을 주었고... 물론 류중일 감독도 이를 알기에 야마이코 나바로를 2루가 아닌 유격수로 보내보는 등 김상수의 집중도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유격수는 유격수가 백업해야 한다는 게 류중일 감독의 지론인 데다가, 그렇게 나바로를 빼고 나면 2루에 세울 선수가 없어져서[22]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이는 2015 시즌의 폭탄 성적으로 돌아온 원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위 서두서 서술한 통합4연패의 명실상부한 대체불가 핵심 주전유격수와 를 아늑히 뛰어넘는 슈퍼엘리트라 칭송 받았으나 성장이 정체되고 오히려 퇴보하고있다는 엇갈린 평가가 팬들에게서 나온다.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 수비 능력 때문에 선발됐다. 강정호와 달리 공격력은 돋보이지 않는다. 시즌 내내 9번에 배치돼 직구를 많이 상대했다.
  • 변화구가 약점. 아직 22살이고 변화구 대처능력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23][24]
  • 평균 이상의 주자로서 대주자로도 기용될 것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장타율출루율
2009삼성 라이온즈97242.244591900174318.322.308
2010101282.24569730223730.291.344
2011128406.2781131642475329.352.362
2012129419.274115184
(4위)
2366425.351.345
2013115372.2981111737445714.417.354
2014128427.288123208
(4위)
5637453
(1위)
.407.354
2015132449.2781253048636726.416.345
2016105358.27197130338566.332.326
KBO 통산
(8시즌)
9352955.2758121402627330451201[25].367.344

6 기타

  • 아버지인 김영범[26]도 야구 선수였는데, 현역 시절 포지션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유격수였다. 대광고 졸업 직후인 1981년 농협 야구단에 입단해 1990년까지 활동하고 은퇴했다. 1989년 신인 지명 때 태평양 돌핀스가 2차 4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결국 프로 입단은 하지 못했다. 1988년 10월 29일에는 한국화장품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 거의 풀 타임을 소화하는 붙박이 주전 유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미의 별명이 딱히 없다. 심지어 2014년에 1군에 처음 등장한 박해민도 스님 내지는 주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김상수는 흔히 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별명으로 불리진 않는다. 대신 비하적 별명은 순식간에 붙는데, 2012년 SNS 사건 때는 답변에서 '짜증'이란 단어를 쓴 것 때문에 한동안 야갤에선 '아 짜증나'가 유행어가 되었고 김상수 본인의 별명은 김짜증이 되어 버렸으며, 2013년 WBC 이후의 SNS 사건에선 발렸네가 그대로 별명이 되었다. 상단에서 설명했듯 13년 홈런 페이스가 좋아 간만에 김거포라는 좋은 별명을 얻긴 했지만 이후 시즌에서 무리하게 장타를 노리다 뜬 공으로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오히려 욕을 바가지로 먹고(...) 1년도 못가 묻혀버렸다. 그리고 삼갤에서는 X상수, 개상수, 똥상수 등의 별명으로 불리다가 아예 초성체로 변환되어 좄, 갰 등으로 불리고 있다(...) [27] 최근에는 막장 성적과 기본기 미달의 수비의 향연을 펼치자 아예 쭀(좃+좃)으로 불리고 있다.
  • 2012년 한국시리즈, 2013년 WBC의 대부진과 특히 WBC에서의 부적절한 SNS 사용 등으로 인해 신인 정현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정현은 지명 당시부터 프로에서 유격수로는 함량미달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그 예상대로 프로 1년차 말부터 3루수로 전환했다. 그나마도 성장세가 더뎌 류 감독이 이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KT 특별지명에 대한 보호 20인서 제외되면서 정현은 KT로 갔다.
  • 유격수 백업이 부족한 삼성의 특성상 팀 내서 엄청난 수비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은 류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유격수를 뽑아오고 있지만, 김상수의 경쟁 상대는커녕 백업 역할을 해내는 선수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데려온 정병곤이 2013년 백업 유격수 역할을 해 냈으나 2014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5년부터 공익으로 복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백업은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부실한 백업으로 김상수는 DL을 갔던 시즌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많은 경기와 수비이닝을 소화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유격수이면서도 리그 수비이닝 소화 부문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장성우를 탐냈던 삼성 라이온즈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트레이드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김상수가 아니면 안된다고 거부하였다.# 이 후에는 이지영이 장타력은 다소 부족하나 2할 후반-3할 중반의 타율과 리그 톱 클래스급 도루저지를 기록하는 포수로 성장하면서 트레이드도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장성우는 발렸네ㅋㅋ는 애교로 보일 대형사고를 치며 화려하게 자폭했다. 근데 정작 피폭당한건 삼성도 롯데도 아닌 kt와 김경문이라는게 함정(...)
  • 2015년 구자욱과 채수빈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구자욱의 최측근이 이를 인정했고 이를 두고 네티즌들이 이 최측근이 누구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문제는 그 후보로 구자욱과 친하게 지내던 김상수가 지목당하면서, 졸지에 최측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누구는 열애설로 연예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누구는 별명을...
  • 나이는 전반적으로 어린 편이지만 삼성의 팀컬러에 맞게(?) 삼적화된 노안이다. 배영수처럼 이른 나이에 주전을 꿰차 경력이 제법 긴 편이고 유격수 백업이 없어 거의 풀타임을 뛰다보니 피로누적으로 얼굴이 폭삭 늙었다. 게다가 수염이 자주 나는 편인지 코밑이 수염자국으로 거뭇하다. 그러나 반대로 머리는 탈모의 징후까지 벌써 보일 정도. 김상수가 박해민,박찬도,정인욱과 또래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
  • 위의 sns 사건, 경쟁자가 없으면 실력이 정체되는 점 등으로 멘탈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지만 그와 별개로 인성이 좋다는 증언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선수기도 하다. 팬서비스가 안지만, 오승환과 맞먹을 정도로 좋다는 의견이 많으며 프로 데뷔 후 매년마다 모교에 야구용품과 지원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경기가 일찍 끝나거나 쉬는 날에는 부모님의 가게일을 밤 늦게까지 돕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삼갤에서도 김상수 인성은 문제 삼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의혹이 터지면서, 김상수의 취미는 착한 취미였다며 퍼거슨 감독의 1패라는 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클럽 썰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관련 구설수는 한번도 난 적이 없다. 진짜 클럽가면 춤만 추고 오나...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춤출 때 보면 춤도 그닥 잘 추는것 같진 않던데... 클럽의 분위기를 즐기는 듯 하다
  1. 7살 때 경북 구미로 이사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로 이사갔다. 그래서 말투는 경상도 억양보다는 표준어 말투가 더 강하다.(구미사투리가 대구 사투리와도 좀 다른데 김상수가 구미사투리를 쓰는지 확인바람.) 점마 대구 안데 와 서울말 쓰노?라고 기분 나빠하는 대구 아재들이 있다면 반드시 알아두었으면 한다. 김상수는 원래 서울 출신이다.
  2. 야구를 시작한 것은 구미 도산초등학교이며, 위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졸업 전 옥산초등학교로 전학갔다.
  3.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손재홍과 같은 곡을 쓴다.
  4. 상수야~안타를 날려주세요~(김상수!) 상수야~신나게 달려주세요~(김상수!) 오늘도 달리고x4 살리고x4 날려라 삼성의 김상수!x2
  5. 여기에 이학주 대신 오지환을 넣는 이도 있다. 다만 오지환은 고등학교때 투타겸업을 했다.
  6. 다만 이학주는 컵스와 계약했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 선발에서 빠졌다.
  7. 직전 대회인 2006년 대회에 이은 2회 연속 우승이었으며, 현재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이 거둔 마지막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이다. 근 6년간 우승을 못하고 있다.
  8. 여담으로 젊은시절의 류중일과 김상수가 꽤나 닮은걸 확인할 수 있다!
  9. 당시 삼성 라이온즈 내야진에는 만년 기대주 조동찬이 있었다.
  10. 물론 3할 중반대가 하이인 출루율보단 빼어난 주력에 방점을 주는 편이 낫다. 유격수이기 때문에 류중일감독 스타일상 안 시키겠지만.
  11. 덕분에 박진만은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생애 첫 2루수 자리에 서기도 하였다.
  12. 해설가 허구연에 따르면 조성환의 타격 폼을 따라했으나 올 시즌 포기하였다고 한다. 근데 그러고 나서 타율이 올랐다.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에서 이대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타격으로 보나 실책수로 보나 강정호김선빈에게 밀렸지만, 우승 팀 프리미엄이...
  14. 바로 다음 해 박해민에 의해 이 기록은 깨졌지만...
  15. 1996년 김재걸 40도루, 1999년 빌리 홀 47도루가 이전까지 최고기록
  16. 그보다도 생산력이 떨어지는 선수로 김재현이 있지만 그는 주전이 아니다.
  17. 삼갤에서 나온 말. 양아버지류중일 전 감독이 기술고문으로 위촉되고 냉동님김한수 신임 감독이 임명되자마자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NC는 손시헌의 노쇠화 문제가 있는데...
  18. 득점이 올라간 이유는 중간에 류중일이 김상수를 테이블 세터로 기용했고, 이게 제법 성과가 좋았던 덕분이다.
  19. 2013년 .298의 커리어 하이를 찍을 때도 개막전 이후 22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타고투저였던 2014년에는 잠시 3할을 뚫었다가 다시 추락하였다.
  20. 물론 주포지션이 유격수라 체력안배차원도 어느정도 작용한다.
  21. 참고로 김상수는 고교야구 시절에도 도루왕을 받은 적이 있다.
  22. 원래 이 역할은 조동찬이 맡았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나바로가 있던 시기에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나바로와 김상수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백상원은 16년 현재 주전 2루수이지만 당시는 백업에 불과한 선수라 만족할만한 역할도 아니였다. 2016년에는 나바로가 떠났지만 발디리스, 조동찬, 최재원, 김재현, 성의준, 이성규와 비상시에는 구자욱까지 3루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김상수의 부담이 조금 덜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누웠다
  23. 그런데 정작 2010년~2012년에는 직구상대 타율이 2할대 초반이고 슬라이더와 커브 상대 타율이 3할에 육박하거나 넘어섰었다. 즉 사도스키가 잘못 파악한듯하다.
  24. 변화구 상대 타율이 높다는 것만으로 변화구가 약점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해 볼 부분이, 변화구에 대한 약점이 도리어 빠른 볼을 상대로 한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스탯상으로 평가했다고 보면 사도스키가 잘못 평가한 것이 맞기는 하다.
  2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통산 도루 1위.
  26. 金永範.
  27. 삼갤에서의 활약에 따른 변화는 좄 → 갰 → 똤 → 깄 → 킸 → 갔. 순서대로 풀어보면 X상수 → 개상수 → 똥상수 → 김상수 → 킹상수 → 갓상수(...) 대부분 좄으로 불리지만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