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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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LG 트윈스의 에이스로 우뚝 섰던 시절.


LG팬들... 아니, 모든 야구팬들의 혐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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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네이터에 올라가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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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판매원으로 지내고있는 근황. (PD수첩 인터뷰중)

두 얼굴의 사나이

이름박현준(朴顯俊 / Hyeon-Jun Park)
생년월일1986년 9월 22일
국적대한민국
체격185cm, 83kg
출신지전라북도 전주
출신학교금평초-전주동중-전주고-경희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9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8번)
소속팀SK 와이번스(2009~2010.7)
LG 트윈스(2010.7~2012.3)

1 개요

차기 KBO의 우완 에이스였지만, 500만원 때문에 50억을 날린 자[3]

대한민국범죄자, 김모씨의 뒤를 이은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의 두 번째 주자.


2 프로 선수 시절

2009년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문하였다. 대학시절에는 추계대회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적도 있다. 2009 야구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참가하였다.

사이드암이면서도 150km/h에 육박하는 속구[4]와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공을 가지고 있어 제 2의 임창용이 될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제구력이 문제였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큰 데다가, 원할 때 존에 집어넣지 못한다면 구속과 무브먼트는 둘째 문제일 뿐. 그리고 그와 연결되어 나타난 것은 위기상황 때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서 볼넷을 남발하는 것.[5] 그리고 하체 이용을 잘못하는 투구폼을 가져서 내구성에 의심이 간다는 지적도 있었다.

SK에 2차 1번(계약금 1억 2천만 원)으로 지명받았을 때 그에 관련한 기쁨보다는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을 미니홈피를 통해 토로하여 주목받았다. 또한 '용의 심장이 되고 싶다.'는 표현으로 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제 2의 임창용이 되고 싶다 등 발언도 있었다. 캠프 중에는 2년 뒤에 (열심히 한다면)국가대표급 선수가 될수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멘트도 있었다.

샤프한 얼굴 때문에 말라보이지만 체구도 알고보면 상당히 좋은 선수였다. 상당히 살갑고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기아의 안치홍과 비슷하게 많은 선후배들과 친했다. [송신영에게도 접근했는데 송신영이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겨우 악수했다].(…) 저 뻘쭘함의 극치를 보라 마운드에선 싸움닭 기질도 있고 배짱도 두둑해서 미완의 시기 때부터 야구팬들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특히 천하의 김성근 감독을 당황시킨[일화]가 유명.PO사이코 패스WER 그리고 후술할 '김성근 감독 로진 항의 사건' 에서도 김성근 감독을 도발하는 등 김성근 감독과의 일화가 많다.[6] 그 배짱으로 조작을 했나?


2.1 2009 시즌

2009시즌 시범경기에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범경기 막바지에 오른쪽 다리의 이상을 느꼈다.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었으나 개막전에서 중간계투로 등판에 . 첫 타자 김태균에게 안타, 다음 타자 이범호에게 홈런을 맞는 등, 0⅓이닝만을 소화하며 2실점하였다

이후 꾸준히 부진하여 2군에 있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5월 29일 삼성전에서 3이닝을 깔끔하게 틀어막아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바로 다음날 쳐맞고 0⅓이닝 2실점으로 블론세이브를 시전했다.

투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2009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나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복귀한 송은범에 밀려 빠졌다. 애초에 2009년 시즌 중에 등판한 대부분의 경기가 패전 상황인 선수가 이런 큰 경기에 활약할 여지는 없었다. 2군에서는 페드로놀이를 하지만 1군에서는 부진한, 전형적인 AAAA급 선수의 모습을 보였다.


2.2 2010 시즌

2010시즌 00대비 캠프에서 다시 또 희망적으로 신인인 박종훈과 묶여, 김성근 감독의 2년 뒤에 SK의 1, 2선발 재목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역시나 여기에는 '열심히 한다면'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09시즌 마무리캠프에서도 가장 실력이 향상된 선수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즌 첫 등판인 4월 2일 두산전에서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로 나와 홈런 1개와 볼넷 2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깔끔하게 내주면서 SK 팬들에게 실망감을 한다발 선사했다. 그리고 이어진 아름다운 2군행.
1군에 다시 복귀한 후 4월 16일 삼성전에 7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나와서 산뜻하게 볼질을 하면서 다시 또 아름다운 2군행. 호성적을 보였던 LG의 신인 신정락과 비교되어 더더욱 돋보였다.

캠프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 높아졌던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감과, 야구보다는 싸이질을 더 좋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싸이지엥이라는 말을 들었다. 초반에 보여준 미니홈피에서의 글들은 싸이용 허세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또한 악플러에 대한 대처에서 '동네 개도 들어오는 박현준 홈피'로 메인을 바꾸는 일이 생기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과거의 일화[7]와 애견성향을 묶어서 '개장수'라는 맛깔나는 별명으로 불렀다.

5월 12일 시즌 첫 연장이며, 12회 막바지까지 전혀 승부를 알 수 없는 롯데와의 대접전에서 승리를 거둔 SK팬들에게 난데없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당연히 게리 글로버로 예상했던 13일 선발에 박현준이 뜬금없이 선발로 예고된 것으로 이는 박현준 커리어 사상 첫 1군 선발 등판이었다.
이는 두산전에 대비하여 글로버를 아끼는 포석으로 이뤄진 것으로, 박현준이 2군에서 지난 등판에 두산 2군과의 경에서 9회초 첫 타자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이 연계되어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SK 팬들은 대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이어진 5월 13일 경기. SK 팬들은 끝나지 않을 1회말이라고 잔뜩 불안해했지만, 의외로 박현준의 제구가 되면서 리그 최강인 롯데의 클린업을 셧아웃 시켰다. 그리고 60구를 넘어가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5회에 2실점 1자책점을 하긴 했지만, 4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 1자책점으로 기대도 하지 않던 호투를 보여줬다. 따라서 다음 등판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드 직전인 2010년 중반까지 그에 대한 SK팬들이 보인 기대감과 실망감은, 당시 김광현이 경력 4년차면서도 그때까지 1군 엔트리의 막내였던 상황과 결부된다. 다시 말해 기대치가 조금이라도 되는 신인이란 게 거의 없었다. 스카우터의 알 수 없는 지명[8]으로 신인지명된 선수들은 어딘가 아프거나[9] 사라졌고[10], 2군구장의 부재[11]로 2군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사실 2군에서 쓸만한 선수들은 이미 다 뽑아서 1군에서 쓰고 있는 상황[12]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팀 내 최고 투수 유망주로 꼽히던 그에게 쏠리던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SK에 신인지명으로 들어온 선수 중에 그나마 기대할 만한 선수는 둘 밖에 없었다. 포텐셜이 높다고 여겨지며, 대학야구의 최고 선수들이었던 두 선수가 당시 보여줬던 모습에 SK팬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10년 7월 28일 4:3 트레이드로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LG에서 내야수 최동수권용관, 외야수 안치용, 투수 이재영이 SK로, SK에선 포수 윤상균, 투수 김선규, 그리고 박현준이 같이 LG로 옮겼다.

상위픽 유망주를 겨우 2년만에 트레이드 시켰으니 사실상 실패를 자인한 셈. LG팬들은 야신도 포기한 놈을 유망주의 무덤인 LG에서 어떻게 키우느냐며 불안해 했다. 당장 LG에 옆구리 투수가 많기도 했고.

그래도 우려와는 달리 LG로 이적한 이후에는 비교적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8월 13일 넥센전에서 드디어 데뷔 첫 선발승을 거뒀고, 8월 25일 KIA전에서는 승리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5이닝동안 무려 10삼진을 잡는 활약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LG팬들은 급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성근 감독은 박현준이 꿈에서도 튀어나왔다고 할 정도로 아쉬워했다.

2010 시즌은 (트레이드 이후 성적) 2승 3패 평균자책점 5.76을 기록했으며, 특히 두달 사이 45⅓이닝을 던져 삼진을 35개나 잡아냈으며, 팀내에서 봉중근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탈삼진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가 어느 팀보다 절실한 LG 입장에서는 2011 시즌 기대해볼만한 선수라 할 수 있었다.

2010년 대륙간컵 일본전에서 스코어 8:1 완투승을 거뒀다.


2.3 2011 시즌

박현준/2011 참고.


2.4 2012 시즌

시즌 전 우규민, 유원상, 김태군 등과 함께 팀내 체력 테스트에서 탈락,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하며 우려를 샀다.

김기태 감독이 탈락자들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고는 했으나, 팀의 에이스 투수가 체력측정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LG의 2012년 시즌에 먹구름이 아닐 수 없었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이유 때문에 박현준은 LG의 2012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말았다.

[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시즌 중의 사진과 비교에 봤을때 한 눈에도 몸이 엄청 불었다는걸 알 수 있다. 비시즌 기간동안 실컷 놀고 먹은 모양.(...) 덕분에 김기태 감독의 질책에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잔류군에 합류해서 몸을 만들었고, 결국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체중을 7kg 감량하며 1월 29일 실시된 체력테스트에서 거뜬히 상위권으로 합격점을 얻어 2월 3일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다. 탈락 동기생(?)이던 우규민, 유원상, 김태군 등도 사이 좋게 합격했다.

2012년 2월 중순, 야구계를 발칵 뒤집은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 본인은 승부조작과는 절대 무관하며 아예 이야기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력 부인하였지만,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브로커 A씨는 박 모 선수와 구체적인 합의를 봤다며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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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의 모습. 어째 표정이 편치 않다 싶었다

계속 의혹이 제기되자 박현준은 백순길 단장과의 면담에서도 강하게 부인을 했고 언론을 통해서도 부인했다.[13] 그러나 2012년 2월 28일, 검찰이 김성현을 긴급체포하면서 승부조작이 사실로 드러났고, 다음날 박현준은 대구지방검찰청의 소환에 따라 귀국했다. 3월 2일, 대구지검에서 9시간 동안 수사를 받은 후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언론을 통해 알려진 8월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이라고 밝혀졌고,[14] 그 이전인 5월 24일 두산전과 6월 9일 한화전에서 행했다고 한다. [기사]

참으로 뻔뻔하게도 철저하게 범죄를 은폐했어도 모자랄 판에 승부조작을 했다는 증거로 검찰이 제시한 것이 바로 [통장출입금내역]이었다(…). 그야말로 돌대가리 인증.

3월 12일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히길 조폭에게 협박받던 김성현을 돕기 위해 승부조작을 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훼이크다.[#]
그 와중에 아버지 수술은 2009년인데 돈이 없어 2011년에 조작한 김모씨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으며, 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박현준과 김성현을 영구제명 시켰다.[#]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영구제명 이후에는 과거 자신을 가르쳤던 감독 밑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승부조작 가르치는 거 아냐? 저딴 천하의 개쌍놈에게 교육시키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


2.5 근황

이후 1~2년 허송세월하다[15] 군에 입대하고 병역을 마친뒤 얼마 후 2015년 10월부터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링크] KBO와 협정을 맺은 MLB, NPB, CPBL 에서 영구제명 선수는 뛸 수 없지만 도미니카를 비롯한 그 밖에 다른 나라 야구 리그는 KBO와 협정 미체결 관계이기 때문에 박현준이 도미니카 리그에서 뛰는 데 제약은 없다고 한다.

도미니카 리그의 에스트랄레스 오리엔탈레스에 진출해 시범경기 등판,2이닝 무실점으로 합격점을 받은 걸로 알려졌다. 현지 에이전트인 라울이라는 사람은 "우리도 그가 도박혐의로 한국에서 징계를 받은것을 알고 있으나 그게 우리나라에서 뛰는데 문제될것 없다."라는 발언으로 실력만 된다면 받겠다는 말을 전했다. 에스트렐라스 오리엔탈레스라는 팀은 2015년 윈터리그 당시 최지만이 소속된 팀이기도 하다.

허나 실제로 에스트렐라스 오리엔탈레스의 팀로스터에 포함되지는 않았고 영입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으로 원래 한번만 더 던지고 싶어서 도미니카에 갔다고 말하며, 한국에서 다시 말이 나오자 부담감에 귀국했다고 한다.

2016년 9월 5일 자신의 페북에 근황을 알렸다. 고향인 전주에서 LG U+ 대리점 점장이 됐으며, 부모님이 운영하는 호프집을 도와주며 산다고.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했기도 했다고 그리고 위에 설명과 같이 협상을 위해 도미니카로 갔으나 이내 마운드에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 귀국 후 상술한 대로 살고 있다. 휴대폰 관련 상담을 봐주기 위해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그리고 LG U+ 유니폼 입고 휴대폰 매장에서 일하는 그가 과거를 참회하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기자에게 하고싶은말이 있어서 인터뷰를 하고싶다고 했는데 팬들에게 제대로 사과한적이 없어서 사과를 하고싶다고 했다.[[대화 박현준의 참회 "그때,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다."]] 다소 평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부분은 프로선수로서 절대로 해선 안될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이고 앞으로 새로운 제2의 삶을 잘 살길 바란다는 평이다. 개중엔 욕하기도 지쳤다는 반응도... 비슷한 시기 같은 범죄를 저지른 최성국이 여전히 축구계 주변에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낫긴 낫다.

2016년 10월 18일 PD수첩에 승부조작 관련 기획에서 인터뷰로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매장에 있는 TV에 야구중계를 틀어놓은게 포인트였다.

위의 근황인터뷰나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히기를 자기사건 후에 다시 같은일이 벌어질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며 그 이후 내가 어떻게 됐는지 다 봐놓고도 후배들이 또 승부조작을 했다는 사실에 답답했다고.


3 기타

위에서 언급했듯이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개장수이나 본인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별명공모전(…)을 실시했는데 당첨된 별명은 인크레더블. 그런데 공식 석상을 제외하고선 인크레더블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구력 난조로 마구 볼질을 할 땐 인크레더볼이라고 불리며 까이긴 하였다. 그리고 승부조작에 연루됨에 따라 정말로 인크레더블이 되었다. 그리고 개장수라는 별명이 싫다던 그의 소원대로 별명이 바뀌어 승부조작이 드러난 후부터 그의 별명은 조작甲이 되었다.

2011 시즌에 기량이 만개하였으나 여전히 고쳐야 할 점이 많이 보였다. 특히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슬로우 스타터 기질. 1~3이닝까지 심각한 제구력 난조로 고전하는 경기가 잦았는데, 1회의 제구력 난조는 제구력 난조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가지는 상당히 많은 피홈런. 매 경기마다 뜬금포를 맞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치도 못한 미미한 타자(...)한테만 맞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은 대부분이 솔로홈런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승부조작에 연루됨에 따라 단점들을 안 고쳐도 되게 생겼다.

TV중계시 관중들이 찍켠이라는 별명의 포스터를 들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외에 싸포(사이드 포크)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물론 승부조작이 드러난 후에는 그런 거 없고 박조작, 박레기, 개X끼로 불렸다.

여담으로 승부조작 의혹 이후, 검찰에 소환될 때 위의 사진과 같이 실실 웃으면서 입국했는데, 한줄기 희망을 놓지 않은 팬들은 조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최후의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저 미소는 훼이크로 밝혀졌고, 왜 실실 쪼개면서 들어왔냐며 되려 욕을 먹었다. 이때 통장으로 버젓이 그돈을 거래해서 빼도박도 못하게 된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사실 이제 야구인생은 끝났고 멘붕해서 정신줄 놓고 실성해서 웃었다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2년 3월 29일 패치를 통해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본명에서 신현수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게이머들은 신흥정으로 했어야 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카드명의 이름과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다른 종목에서 정지당한 사람이라는 점이 아이러니.

2012년 6월 13일 마구마구에서는 장수겸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슬러거에서는 기존에 뽑아둔 사람이 아니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마구마구 2013에는 최재한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참고로 최모씨와 함께 마프리카TV에서 금칙어로 지정되었다. 승부조작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금칙어로 지정되었다.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인데, 컴투스 프로야구 2011에서는 아직도 이 선수가 실명으로 존재해 있다. 그런데 업데이트 이후에서도 선수명이 가명처리되지 않았다(...).

넥슨 프로야구 마스터와 프로야구 for 카카오에서는 마현수로 선수명이 변경되었다.[16]

프로야구 2K에는 '기영철'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2014년 3월 14일 SBS에서 "[승부조작 사건, 그 후…지금은?]" 기사에서 박현준의 지인에게 근황을 물어봤는데, 현역으로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2013년 가을 즈음에 그가 훈련소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입대한 것으로 보인다. 야구판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 열심히 자숙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박현준은 승부조작이 스포츠에서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프로의식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었는지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이사만루 2014에서는 가명이 '박흥진'인데, 이 가명은 마구마구 2014에서는 '송진우'의 가명이다.(...)
이사만루 2015에서도 역시 가명이 '박흥진'인데, 박현준의 사진이 붙어있어 가명을 몰라도 알아볼수 있다.

박현준이 영구제명된 2012년부터 시작된 FA 야구선수의 현상에 디씨 야갤러에게 "500만 원 벌려고 50억 날림ㅋㅋ" 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최진행의 약물 복용 사건 이후 이럴거면 얘도 속죄투시키지 그러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도는 알겠으나 하지 않는것이 옳겠다. 애초에 둘의 급 자체가 다르고[17] 전혀 이일과 별개의 일이기도 하고, 또한 괜히 꺼내봤자 득될거 없다.
  1. 프로야구 매니저MVP 베이스볼 온라인에선 신현수로 가명처리되었고 신현수로는 한 단계 건너서 들어올 수 있다.
  2. 2016년, 박동희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이때 웃는 표정은 멘붕한 상황에서 믿고 의지하던 형(당시 LG구단 홍보팀 직원)을 공항 입국장에서 보고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본인도 나중에 웃는 얼굴의 사진을 보고 그 자리에서 나와선 안될 표정이었다고...
  3. 바로 몇년 뒤에 FA 시장이 폭등.. 박현준 정도면 못해도 수십억은 그냥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말이 50억이지 FA 시장이 급격하게 폭등해버린 15년, 16년에 들어 80~90억대의 고가의 FA 계약에 성공 선수들과 비교해도 동격으로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제명 전 박현준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투수였다. 물론 그 기회를 날린 사람은 오롯이 박현준 본인이다.
  4. 강속구를 던질 때는 임창용과 마찬가지로 팔 각도가 쓰리쿼터식으로 살짝 올라갔다.
  5. 혹시모른다. 주작때문에 사구를 남발한것인지 그냥 맨탈의 문제인지는..
  6. SK시절 카드라에 의하면 선발 투수 안 시켜준다고 태업까지 했다는 말이 있었다. 김성근과는 이래저래 신경전을 벌이던 사이였지만, 그래도 영구제명된 후 첫 인터뷰에서 김성근을 '스승의 날에 떠오르던 두 감독님 중 한 분'이라고 밝혔다.
  7. 2008년 방영된 OBS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본인이 직접 증언한 바에 따르면 "강아지 한 마리 가져오면 배트를 준대서 할머니 몰래 강아지를 가져 갔더니 (계형철) 코치님이 강아지는 가져가고 경기 중에 부러진 배트 조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방송에서 박현준 본인이 계형철 코치에게 그 일화를 말해주자 계형철은 기억도 못했다. 본인이 "혹시 기억나세요?"라고 묻자 "당연히 잘 생겼으니 기억나지."라며 얼버무렸다.
  8. 그 시초는 2001년 신인지명에서 우선 지명 3장에 이대호를 넣지 않은 데에서 시작된다. 당시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9. 2009년 1차지명 김태훈은 팔꿈치 수술 후 2011년 시즌을 앞두고서야 1군 진입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김광현을 대신해 투수조 막내가 되었으며, 2010년 드래프트 1번 문광은의 경우 즉전감이라면서 2군에서도 못나오다가 대형 트레이드 후 1군 투수진이 붕괴될 상황에 이르고 나서야 1군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2011년 드래프트 1번인 서진용은 피로골절 부상 후 신고선수로 전환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보여줬다.
  10. 06 1차지명 김성훈, 08 1차지명 황건주 등등 별과 같이 많다.
  11. 드림파크 철거 후 2군연습장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문학구장에 어린이용으로 조성해놓은 새싹야구장에서 재활선수들이 훈련하는 게 자주 목격될 정도였다.
  12. 박재상, 김강민, 조동화, 박정권, 고효준
  13. 이 때 MBC뉴스에서 방송된 백순길 코치의 "그래 열심히 하자"라는 대사가 명대사(?)로 취급받으며 씁쓸한 추억이 되고 있다. 당시 그 대사 이후 많은 이들이 박현준은 결백하다가 확신했기 때문.
  14. 부모가 보는 앞에서도 승부 조작을 한 형편없는 인간 취급을 한 기사가 나왔으며, LG 포스트 시즌 탈락 후에 승부조작을 했다는 추측성 기사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15. 본인 말로는 매일마다 술에 절어 지냈고, 근처 지인의 얘기에 의하면 전주시내서 박현준을 호프집이나 당구장에서 쉽게 볼수있었다고 한다.
  16. 초기 버전에서는 선수의 사진이 있었으나 지금은 삭제되었다.
  17. 승부조작은 이기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스포츠의 근간을 부정하는 빼도박도 못할 범법행위다. 당장 다음을 위해 불필요한 경기는 버린다는 이유가 있는 져주기 게임도 그렇게 좋은 소리를 못 듣는데, 그런 이유조차 없이 당장 돈 좀 받자고 승부조작을 하는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반면 약물복용에 대한 처리에 대해 말이 많아도 이것은 이기려고 편법을 쓰는 것이지, 근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약물복용 1회 정도로 영구제명하는 국가는 없다. 사회통념상으로나 처벌의 단계 등에서 대우가 다른 걸 인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메이저리그만 봐도 약물은 그래도 출장정지 선에서 끝나지만 승부조작은 얄짤없이 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