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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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 2016년 6월 27일

1 소개

암울한 한국의 근현대사 속 권력에 숨어 죄없는 500명을 죽인 학살자, 사회사업가를 가장한 최악의 연쇄살인마이자 위선자.

1930년 생으로 2016년 6월 27일, 향년 87세의 나이회수되었다.

직업군인 출신이다. 군복무 중 근무지를 이탈한 죄로 영창에 갔다 온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질이 매우 불량한 사람이라는 1987년의 동아일보의 한 보도가 있다. # 될성 부를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더니...

2 막장행각

부산 형제복지원이라는 살인공장을 고의적, 계획적, 체계적으로 만들고 4,300여 명의 일반인 남녀를 납치하여 감금한 후 상해치사와 고문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며, 납치여성의 경우 미성년자 소녀까지 성폭행성고문을 통해 노예로 만들어서 강제노동에 투입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513명을 살해했다. 이중 70%가 노숙자가 아닌 가족과 멀쩡한 직장이 있는 일반인. 정치범수용소와의 차이라면 정치범이 없었을 뿐.[1]

아버지가 사라진 아들을 찾으러 전국을 해메다가 결국 죽었다고 생각해 낙담한 나머지 자살을 선택했지만, 아들은 납치당해 이곳에 붙잡힌 채로 생존해있었다는 비극적인 사례도 있다. 생존자들은 해운대 바닷가에 놀러 왔다가 끌려온 서울대학교 대학생은 물론 끌려온 일본인 2명도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확한 생사는 확인할 수 없다. 집단매장한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기에 정확한 살해 피해자 수는 513명 이상일 수도 있다. [2] 의무과 직원에 의해 남자 어린이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 당사자의 증언이 있으며, 얼굴이 예쁘장한 어린이라면 누구나 성별과 상관없이 성폭행의 대상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복지원 안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계단에서 굴리거나 때려서 낙태를 시켰고, 도중에 임산부가 사망하면 암매장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은 많다. 관련 기사 하지만 박인근의 묵인 하에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닌, 박인근에 의해 직접 성폭행당했다는 증언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직 없는 것 같다. 박인근이 내리갈굼의 형태로 직접 가혹행위를 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은 많다.

3 재판 이후

  • 그 후에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총괄한 박인근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후 피해자들을 폭행하거나 살해해서 뺏은 금품으로 지금은 온천, 헬스장, 부동산임대사업과 한국 야산을 소유하고 있다. 또 해외로 진출하여 호주로 가서는 골프장이 포함된 대형 스포츠센터를 구입하고, 고용된 한국인 직원(교민이 아니라 한국 본토에서 데려옴)의 치아가 남아나지 않는 안면구타와 피해자에게 평생장애로 남은 골프채 폭행을 통해 갑질저비용으로 경영해왔다.
  • 513명 살해가 발각된 이후 형제복지원은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에 이어 2013년 2월에 "느헤미야" 로 법인명을 변경해서 법의 제한사항 없이 박인근과 박인근의 가족에 의해 멀쩡히 경영해왔다. 그러다가 또 다른 비리와 횡령 사건을 일으켜서 당국의 수사를 받는 중이다. 비리와 횡령 사건만 일었을까? 2002년 박인근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중증 지체 청소년장애인 4명이 산사태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해당 시설을 준공할때 부지의 경사가 심해 복지시설이 들어설 장소가 아니라는 이유로 군청이 세 차례나 거부했지만, 삼풍백화점의 이준회장처럼 행정심판까지 벌여 공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준공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중증 장애인 46명을 입주시킨 결과였다.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는, 그 어린 생명들은 죽어가면서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박인근 입장에서는 빨리 공사 끝내고 정부로부터 눈먼 돈 6억원을 매년 지원받아야 하는데, 자꾸 일개 군청 따위가 방해하니까 옛날처럼 반항하는 사람을 아파트 아래 암매장해서 조폭처럼 일처리 하던 때가 몹시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2002년에 이 사건을 보도한 KBS 동영상뉴스의# 1분30초 부분을 보면내가 책임질 문제냐고, 내가 죽였냐!!!고 고함을 지르는 적반하장에 모습을 볼수 있다.적반하장도 유분수지다
  • 말년에는 비록 치매증상이청문회 전용 있지만 호화저택에서 가정부들을 여럿 거느리고 잘 살고 있었다고 한다. 박인근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무기징역 처벌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두번씩이나 방영 했지만, 시사매거진 2580뉴스타파조선일보한겨레등등 대대적인 언론보도후 1년이 지나도록 국회에서는 재산을 환수할 의지가 28년전에 대법원이 박인근에게 징역2년을 고집했을 때처럼 없어 보인다. 해당 인권탄압 사건의 여성 생존자 이혜율씨는 방송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TV에서 화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박 원장 얼굴을 다시 보는데, 정말 밥 먹다가 밥숟가락을 떨어뜨릴 만큼 너무 놀랐었어요. 나는 박 원장이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은 줄 알았어요
피해자 중에는 납치된 아들과 딸을 구출하러 찾아온 아버지마저 감금된 후 강제노동에 투입된 사례도 있다. 그 아버지께서는 친딸에게 행해진 부산 형제복지원성범죄를 알게 된 충격으로 그만 정신을 놓았다고 한다. 그 부녀는 아직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피해자의 아들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은 가족을 힘들게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박인근과 그의 가족은 그런 끔찍한 일 덕분에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매거진 2580, 추적 60분, 뉴스타파, 조선일보, 한겨레에서 보도된 것처럼 1,000억대 재산가이다.
박인근이 2016년 6월 27일 사망함에 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자식들이 가업(?)을 승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이런 놈들이 사람새끼인가 싶다.
  1. 다만 정황상 일부 정치범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2. 단편적으로 지나갔지만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에 나온 아파트 인근 주민들은 역시나 이 일대를 흉흉하게 바라본다. 귀신드립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