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올랑드에서 넘어옴)
프랑스 대통령
23대24대25대
니콜라 사르코지프랑수아 올랑드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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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Gérard Georges Nicolas Hollande
프랑수아 제라르 조르주 니콜라 올랑드

1 개요

프랑스 공화국의 제24대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영주. 루앙 출신으로 프랑스 사회당 제1서기 출신.

2 출생부터 정계진출까지

이름(Hollande)[1]에서 알수 있듯이 먼 조상이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한다.

1954년 프랑스 센마리팀 주 루앙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이비인후과 의사였지만 동시에 극우 성향의 인물로 루앙시 의회 의원선거에 국민전선의 후보로도 출마한 경력이 있었다. 반면 어머니는 생활환경조사원으로 가톨릭 좌파 성향의 인물이었다. 재미있게도 그녀는 2008년사회당 후보로 시의회 선거에 출마한바도 있다. 극우성향 아버지와 좌파성향 어머니 밑에서 자란 때문인지 올랑드는 좌파적인 성향이지만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지는 않은 성향을 띠게 되었다.

14살때 가족이 루앙에서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으로 이사를 간 후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그랑제콜 국립행정학교(ENA)을 졸업했을 정도의 수재였다. 원래는 학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정계에 입문했다.

3 대통령으로

이후 사회당에서 나름대로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가며 사회당 당수까지 되었으나 정치인임에도 인기가 없는 정치인, 존재감 없는 정치인이라는 평을 들어야 했다. 본래 학자 타입의 인물인 탓인지 정치인 다운 맛이 그리 없었던 것도 사실.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은 밋밋하고 존재감 없던 올랑드 대신 당시 동거인이었던 세골렌 루아얄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주었다.

2012년 대선에서도 이런 상황은 계속되어서 사회당은 올랑드를 아예 제쳐두고 사르코지를 이길 후보를 찾는데 고심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세계은행총재가 거론되었으나 색욕을 주체 못한[2] 스트로스칸의 스캔들로 결국 사회당은 스트로스칸을 포기했다. 일각에선 2007년 대선에 나섰던 세골렌 루아얄의 재등판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이때 올랑드는 거의 트랜스포머급의 변신을 감행했다. 우선 다이어트를 통해 14kg을 빼고, 평소 즐겨쓰던 둥근 안경테 대신 각진 테로 바꾸었다. 이런 외양의 변화는 먹물 스타일에 후덕해 보이던 이미지를 날카롭고 세련되게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전에는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말을 하던 스타일에서 날선 공방도 주고받을 정도의 스타일로 변신했다. 어쨌든 사회당은 올랑드를 후보로 내세웠다. 그리고 결선투표에서 니콜라 사르코지를 꺾고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5년 만에 사회당집권에 성공하게 된다.

4 집권


봉주르, 앙겔라? TIME지의 당선 직후 표지.

독일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메르코지" 소리까지 들으면서 좌파-우파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유로존 위기 해법으로 긴축정책을 추진하던 사르코지와는 달리 올랑드는 긴축보다는 경기부양성장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4.1 짧은 밀월기간

100일의 신혼 여행

올랑드의 첫 방침은 재산이 100만 유로 이상인 부유층에게 75%의 최고세율을 부과하는 것. 이에 부유층들 가운데 국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벨기에에 귀화신청을 한 게 대표적. 근데 베르나르 아르노가 세금 때문에 국외도피를 시도하는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프랑스의 반응은 돈만 넘쳐나고 애국심은 없는 얼간이 정도. 결국 2013년 4월, 결국 베르나르 아르노는 여론에 밀려 귀화 신청을 전면 철회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세금을 안 낼 목적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소득자의 과세 비율을 대폭 늘린 것도 망명 열풍에 한몫. 물론 대다수의 반응은 '프랑스에서 실컷 돈벌고 잘살더니 세금 많이 걷는다고 도망쳐?' 지만[3], 쓸데없이 새는 정부예산부터 줄여봐라는 비판과 더불어 세금 부과가 너무 지나치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랑드의 허니문은 여기까지.

5 하락 행진

부모가 아이와 어떤 약속을 했다면 꼭 지켜라. 만약에 약속을 어기면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 탈무드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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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보다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나쁘고 국가부채가 GDP의 90%에 달하는 등 성장을 위한 재원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멘붕하여 대선 당시 공약과는 달리 그리스스페인같은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올랑드 본인은 물론 프랑스 사회당의 지지율도 추락했다.기사 아니나다를까, 취임 100일이 지나자 올랑드 대통령한테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한다. 그 덕분에 사회당 고정지지층까지 떨어져서 지지율이 20~30%대에 머물렀다. 이때가 2012년.

취임 1년이 넘은 2013년 5월, 11월에는 올랑드의 지지율이 24%를 거쳐 일부 조사에서는 15%까지 추락했다.기사 대통령, 하원의원 임기는 2017년까지인데 차기 총, 대선까지 4년이나 남겨놓고 벌써 레임덕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런 추락은 지지율이 13% 이상 빠진 드골알제리 독립 발표와 자크 시라크유럽 연합 헌법 부결보다도 훨씬 더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말리 내전에 개입하는 등 나름 이거저거 해보고 있지만 걸프전 직후 부시가 왜 박살났는가를 생각해 보면 큰 의미는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3년 6월에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돌직구를 던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방문 당시 일본중국을 헷갈려 욕도 엄청 먹었다. #

2013년 이후 선거마다 참패하고 있다. 올랑드의 집권 여당인 사회당2013년 프랑스 하원 재보궐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UMP)에 털렸고, 2014년 지방선거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각각 대중운동연합과 국민전선(Front national, FN)에게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로 멘붕 선거결과가 나올 정도였으며 심지어 이해 9월 28일에 열린 상원의원 선거마저도 역시 대중운동연합과 민주독립연합(Union des démocrates et indépendants, UDI)을 비롯한 중도우파에게 패하고 심지어 국민전선에게까지 의석을 내주는 등, 그야말로 무려 선거전에서 4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2017년 5월 17일에 하는 대선에서 사실상 낙선할 것이라는 평이 프랑스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현재 지지율은 20%를 밑돌고 있다. 재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프랑스 현지의 관측. 2016년 10월말로 4%라는 충공깽(...) 지지율을 뽐내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자기 당에서조차도 소외당하는 신세인 듯.(영어)

5.1 틀어진 러-불 관계

샤를 드 골이 무덤에서 현재의 러불관계를 보면 뭐라고 할까?[4]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에 인도하기로 돼 있던 2척의 미스트랄급(Mistral-class) 상륙함을 공급하기로 한 계약을 파기하고, 러시아 측에 피해 배상을 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링크 ‘장 이브 르 드리앙(Jean-Yves Le Drian)’ 프랑스 국방부장관은 피해 배상 금액에 대한 정확은 액수는 밝히지 않고 계약에 따른 지불 선금 전액을 러시아에 돌려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취약한 성장, 높은 재정적자와 실업률을 겪고 있는 와중에 수십억 유로의 손해배상을 하게 된 것. 당연히 야당들(UMP, UDI, FN)로부터 3중 극딜을 당하고 있는 중.

프랑스가 러시아에 자신들이 제조한 선박을 인도하지 않기로 한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올랑드(Francois Hollande) 프랑스 대통령은 상륙함 인도 문제에 대해 지난 5일 전화 대화에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 2010년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을 러시아로부터 수주, 지난해와 올해에 각각 1척씩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지난 11월 보낼 예정이었던 첫 번째 상륙함을 인도하지 않았고 이번에 1척도 계약을 파기했다.

미스트랄급 상륙함은 헬리콥터 16대와 장갑차 50대, 병력 700명이 탐승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다. 이 상륙함 제조사인 DCNS는 방산 그룹인 탈레스(Thales)가 지분의 35%를 가지고 있으며, 프랑스 정부가 64%의 지분을 가진 기업이다. DCNS측은 상륙한 1척을 1개월 유지하는데 11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때가 되었다고 미국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안 먹히고 있고 미국과 러시아 양측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이제는 프랑스 내부에서도 원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 그야말로 안팎으로 사면초가. 이 때문에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임기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5년 7월. 결국 러시아의 식품 맞제재로 인해 프랑스의 농업이 좀(...) 아픈듯. 프랑스 농부들의 분개, 프랑스 농업, 오그라들다 야당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랄하게 올랑드를 까고 있다. 아울러 농부들은 대거 파업에 들어간듯.
프랑스의 위원단이 7월 23~26일 동안 크림 반도를 방문한다. 프랑스 외교부는 항의하지만 씹었다. 친러시아 성향 프랑스 의원들, 크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야

프랑스의 석유, 자동차, 식료품 업계 기업들은 러시아 제재와 러시아의 금수조치로 타격을 입어 러시아 제재 해제를 위해 로비전을 계속 펼치고 있다.

5.2 위기? 혹은 호재?

주어진 기회도 활용 못하는 인물.[5]

스티븐 F. 코헨(Stephen F. Cohen), 전직 외교관에 미러관계 전문 학자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발생 1시간 만에 선혈이 낭자한 현장에 바로 나타나는 등 위기를 대응하는 리더십이 믿을만 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이 19%에서 34~40%로 치솟았다. 사상 최초로 경찰특공대(RAID)와 대테러 헌병특수부대(GIGN)를 동시에 투입하고 경찰병력도 8만 명 이상 동원하는 초강수를 띄워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인질범들을 사살했다.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전 세계 국가정상 45명과 정적들을 포함한 다양한 정치세력을 엘리제궁으로 불러들여 ‘국가단합(Union Nationale)’을 내세우기도 했다. 사회당에서 가장 우파적인 성향의 마뉘엘 발스 총리 지지율은 무려 55∼60%를 기록. 반면 발스 총리의 테러 대책을 비판하고 나선 사르코지과 마린 르펜의 지지율은 급락. 그러나 테러가 끝나자 다시 30%로 보합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반짝 인기였는지 15년 3월 22일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물론 국민전선한테도 개털렸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발생 후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단호한 조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많지만 너무 과한 대처가 아니느냐 라는 주장들이 속속들이 나오는터라 지지율은 다시한번 요동치고 있다.

결국 아시발꿈으로 끝나고 2015년 12월 7일 프랑스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여당인 사회당은 고작 20% 초반의 득표율로 3위로 내려앉아 폭망했고 국민전선이 31.5%로 압승했다. 파리 테러의 진앙지인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광역구에서는 국민전선이 36%로 전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해버렸다.(프랑스 지방선거는 비례대표가 없이 전석 지역구다) 그나마 12월 13일 2차 투표에서는 올랑드가 사회당 지지자들에게 차라리 공화당에 표를 던지라고 연설하였고, 결선 투표에 올라간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들이 모두 단일화하는 등 좌우가 결집하여 국민전선에게 자치단체장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득표율을 좌우로 분류하면 좌파인 사회당은 고작 30%인데, 우파인 공화당과 국민전선은 68%가 된다. 즉 사회당 단독으로는 국민전선조차도 상대하기 버겁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지면서 올랑드와 사회당은 상처뿐인 승리를 안게 되었다. 패배한 르펜조차도 기세등등한데다가, 전임 대통령이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영향력마저 극대화되어 버렸다.

게다가 미러에게 "다같이 힘을 합쳐서 다에시를 박멸하자"라고 호소했지만 이번에도 예외없이 양측으로부터 무시당했다...

5.3 삐그덕삐그덕

Approval rating for the President of France hits a new all-time-low of just 4%. Still much too high, to be honest.

불란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작 4%뿐이라는 역대 최저의 기록을 새웠다. 솔까말, 그래도 과분해.
- 바랴기(Varyagi), 노르웨이 트위터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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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행보
2012년: 고체 상태
2014년: 액체 상태
2016년: 기체 상태

2016년 1월 프랑스 초등학생 모두가 라 마르세예즈를 잘 부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 프랑스가 테러를 당하고 있는 영향도 있고, 재선을 염두에 두고 한 계산이라는 평. [6] 게다가 이 사람은 좌파 성향의 대통령인데 이 부분에선 정작 국가주의적인 우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노동자들과 대학생들, 공무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고 있다. 지지율은 20% 미만으로 폭락했다. 개정된 노동법은 다음과 같다.

  • 현재 주 35시간으로 규정되어 있는 현행 근무시간을 노사합의를 통해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초과근무 수당도 깎을 수 있도록 허용.
  • 경영이 어려워졌을 때 좀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함.

취임 초와 달리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들을 우선시 하는 정책에 무려 7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파리시 공무원들도 파업에 동참함에 따라 시청서비스와 에펠탑도 문을 닫은 상황이다. 거기에 프랑스 전국 900여개 중고등학교와 대학이 학생, 교사들의 수업거부로 사실상 휴교했고, 10대 중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섰다.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던 의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당황해하고, 올랑드도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 파리 시장은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총이라도 쏘냐?"라고 비아냥거리며 시위를 방관하고 있을 정도.

TTIP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 "표 얻으려고 또 쇼 하네"라는 식의 조소를 듣고 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재출마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으나, 국민들로부터 "왜 그 때까지 가? 지금 때려 치워."라는 식의 야유를 듣고 있다.

7월 들어서는 전속 이발사에게 매달 9,900유로에 달하는 봉급을 준 것으로 확인되어 또다시 욕을 먹었다. 이미 현지에서는 이발사 게이트라 불리며 조롱받는 분위기.

얼마 후 니스에서 또 일이 터졌고,[7] 올랑드는 "그 어떤 것도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킬 수 없다"라고 발표했지만 평론가들은 "똑같은 소리만 계속 해대고 뭐가 달라진 게 있냐?"라고 디스했다. 아울러 예비군들을 풀어 국경 통제에 들어갔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9월 24일, 칼레에 소재한 난민촌 '정글'을 완전히 폐쇄하고 난민을 전국에 분산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

6 스캔들

취임 후 올랑드와 사실혼(동거) 관계였던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르가 사실상 영부인 역할을 맡았다. 발레리는 언론인 출신의 이혼녀다.

2014년 1월, 프랑스의 가십 주간지인 "클로저"는 올랑드가 밤마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나와 여배우 줄리 가예트(41)와 밀회를 즐긴다는 폭로보도를 했다. 눈에 띌까봐 경호원 한명만 대동하고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간다는 것. 줄리 가예트 역시 아이 둘을 둔 이혼녀. 올랑드 대통령은 폭로 보도 이후 개인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으나 폭로 내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전임 니콜라 사르코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세금만 축내지 않으면 남이사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반대파도 딱히 물고 늘어지지 않았으며, 유권자 여론조사만 해도 70% 넘는 수가 "별 문제 없다", 나머지 대부분은 "모르겠다"의 반응. 실제로 프랑스 정치인들은 대부분 애인을 두고 있으며,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전인 1974년 혼외 딸을 낳았다는 사실이 재임중에 알려졌지만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국정과 관련도 없는 보도로 대통령을 흔들려는 치졸한 수작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프랑스는 사생활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해서 불륜이란 소재로 함부로 기사를 쓰기가 어렵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데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은 그런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올랑드가 전임자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욕을 먹게 된 이유는, 바로 다름아닌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니가 바람을 피우든 말든 상관 없는데 프랑스의 대통령이란 놈이 국산(프랑스제)을 안쓰고 감히 외국산(이탈리아제)을 써?라고 엄청 까였다.

이 스캔들[8]이 폭로되자 퍼스트 레이디였던 발레리는 충격을 받고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발레리는 올랑드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올랑드는 발레리와 결별하고 당분간 퍼스트레이디 없이 싱글로 지낸다고 한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도 회자되었는데, 2014년 2월 7일 방송분(42회)에서, 자국 출신으로 대한민국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이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무지개 회원 '파비앙'(Fabien Yves Jerome Corbineau)이, 아침식사 도중, 이 사건을 언급한 뉴스[9]를 보다가 기겁하면서, 이 사건을 두고 그를 "바람둥이"라 논평하여 화제가 되었다.

7 망언

  • 2014년 9월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가 가난한 사람을 '이 빠진 사람'으로 희화화 하면서 경멸했다고 폭로하면서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 사실 이 사람도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단 동네 알제리에 대해 망언을 한 적이 있다. 프랑스의 내무장관이 알제리를 방문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 13년 12월 16일에 프랑스 유대인 단체 대표자 회의에서 이를 두고 "무사히 돌아온 게 다행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빼도박도 못하는 알제리 비하 발언으로, 알제리 대통령은 매우 불쾌해했고 알제리에서도 분노했다. 또 "130여년간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지배가 잘못된 것은 인정하지만 사과하지 않겠다."라는 발언도 했다. 아베 신조에게 한 과거사 발언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모순된 상황. 사실 프랑스가 배째라 할 수 있어도 알제리에 대하여 무시할 수도 없는데도 이렇게 굴어봐야 알제리 내 반프랑스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으니 프랑스 기업이나 경제계로부터도 욕을 처먹었다.[10]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자원개발에서 여러모로 알제리 측은 프랑스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8 평가

훗날 추가바람.

8.1 긍정

8.2 부정

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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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남인 토마스 올랑드(Thomas Hollande)는 프랑스의 여가수 조이스 조나탕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동거하다가 헤어졌다.
  1. 네덜란드의 한 지방이자 다른 이름이기도 한 홀란트의 프랑스어식 읽기.
  2. 사르코지 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애시당초 사르코지는 판만 깔아줬을 뿐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스트로스칸의 성중독에 있었다.
  3. 특히 배우인 제라르 드 파르디외가 러시아로 도망치면서 푸틴 찬양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는 중.
  4. 드 골은 프랑스가 두 강대국들인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중재국 역할을 하는 걸 항상 강조했다.
  5. 코헨 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마찬가지로 깠다.
  6. 안그래도 가사 내용과 오용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국가를 개인의 신념에 따라 거부할 권리를 무시하고 부르도록 강제화한다면, 특히나 이민자와 해외영토 주민의 자녀들에게는 세뇌식 강요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기미가요와 비슷한 맥락이다.
  7. 그것도 국가 비상사태 와중에 이 참사가 터졌다.
  8. 사실 정식 결혼이 아니므로 불륜이라고 보기도 그렇다. 프랑스에는 간통죄가 없을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실혼 관계일 경우 결별할 경우에도 전혀 위자료를 받을 수 없다.
  9. 정확히는 프랑스2TV(France 2) 8시 저녁종합뉴스 'Journal 20 Heures'의 인터넷 다시보기. 참고로 대한민국과 프랑스의 시차는 8시간(프랑스에서 저녁 8시=다음날 한국시간 새벽 4시) 으로서, 한국시간으로 아침 한가운데 쯤이면 전날의 뉴스가 업로드되기에, 파비앙처럼 아침식사를 먹으며 전날 뉴스를 시청할 수 있다.
  10. 알제리 항목을 보면 엄청난 자원이라든지 여러가지로 프랑스가 알제리에 때론 굽혀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