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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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대한민국 임시정부
탐라국
우산
于山
250px
?? ~ 930년[1]
위치울릉도 일대.
수도울릉도
정치체제군주제(추정)
국가원수(추정)
언어한국어
종교울릉 토종 종교, 불교
주요사건512년 이사부의 침략
930년 고려로 귀속
통화(추가바람)
성립 이전부족 사회
멸망 이후고려 우릉성(羽陵城)

우산과는 다르다. 우산과는!

1 동해에 위치한 고대 섬국가 우산국(于山國)

1.1 개요

울릉도그 부속 도서를 지배했다고 하는 작은 섬나라이다. 구성했던 주민들은 동예/옥저에서 건너온 예맥계 유민이나 진한/변한에서 온 삼한계 주민들이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512년에 신라의 장군 이사부나무로 만든 사자를 나누어 싣고 '따르지 않으면 이들을 풀어놓겠다'고 위협하자 항복했다는 안습한 사실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2] 그래도 신라직할령에는 편입되지 않고 존속되어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으로 존재했었던 모양이다.[3]

그러다가 통일신라가 분열해 후삼국시대의 난세가 시작되자 바다 건너에서 사태를 지켜보다가 고려가 우세해지는 후삼국 후반 930년경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여 완전히 고려의 일부가 되었다. 제주도탐라국이 직접 단절될법한 사건 없이 구성원의 혈통이 대체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현대의 울릉군 주민들은 고려시대에 여진족 해적의 침략을 받아 대부분 본토의 울진군 지역으로 이주했고, 조선시대의 공도 정책으로 거의 물갈이가 되었고 현재 울릉도 주민들은 대부분 19세기~20세기에 주로 경상도 본토에서 새로 이주한 주민들로, 옛 우산국 시절 주민들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다.

1.2 역사

1.3 청동기시대

울릉도에 고인돌,토기,갈돌과 갈판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청동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

1.4 삼국시대~남북국시대

동해 먼 바다에 외따로 떨어진 울릉도가 최초로 한반도 왕조의 영역에 포함된 사건.[4]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하슬라주(현재의 강원도 강릉시) 군주로 임명받은 이사부가 함대를 이끌고 우산국을 정벌했다. 정벌 과정은 삼국시대의 양대 역사책인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모두 실려 있는데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우산국(于山國)이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은 사방 백 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가 되어 말하기를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다루기는 어려우니 계책으로 복종시켜야 한다.”라고 하고, 바로 나무로 사자를 가득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렀다.
이사부는 거짓으로 말하였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즉시 항복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 마립간 13년(서기 512) 여름 6월
아슬라주(阿瑟羅州)[지금의 명주(溟州, 강릉)이다.] 동쪽 바다에 순풍이 불면 이틀만에 이를 수 있는 거리에 우릉도(于陵島)[지금은 우릉(羽陵)이라고 한다.]가 있었는데, 섬 둘레가 26,730보였다. 섬에 사는 오랑캐들은 바닷물이 깊은 것을 믿고 교만하고 오만하여 신하 노릇을 하지 않았다. 왕은 이찬 박이종(朴伊宗)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도록 하였다. 박이종은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에 싣고 가서 그들을 위협하여 말하였다.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겠다.”
그러자 섬 오랑캐들은 두려워서 항복하였다. 왕은 박이종에게 상을 내리고 아슬라주의 장관으로 삼았다.


《삼국유사》 지철로왕

여기에서 착안해 현재 강원도 삼척에는 '이사부 사자공원'이 있고, 지역 축제 때도 나무사자를 깎는 행사를 한다.

신라에게 복속된 뒤에도 직할령이 된 것은 아니고 주기적으로 조공을 하는 형식으로 나라는 유지하였다. 보덕국, 탐라국 등과 함께 신라의 일종의 번국이 된 셈.

1.5 고려시대

고려 때까지 느슨한 조공 관계가 계속되었고 1004년에 우산국 사람들이 일본까지 표류해서 양식을 주고 돌려보낸 사건이 있었는데 이게 일본 기록에서 최초로 울릉도를 언급한 사례다. 여기서도 우산국을 고려의 속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11세기 초에 여진 해적의 공격을 몇 차례 받은 우산국 주민들이 본토로 피난오게 되면서 우산국의 토착호족은 소멸하고 섬이 고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우산도(지금의 울릉도)는 고려 중기까지 독립왕국이었다.

1.6 조선시대

  • 1416년(태종 16년) 태종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섬의 주민들의 피해가 어마어마하자, 섬의 주민을 본토로 이주시켰다.
  • 18세기 후반, 서양 선박들이 동해를 탐사를 하기 시작을 하면서, 지도에 울릉도다줄레(Dagelet)로 지도에 적었다.#

1.7 구한말

1.8 현대

일본이곳에 속한 한 섬에 대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1.9 우산도(于山島) 과연 어디일까?

옛 우산국이었던 울릉군의 섬 중 하나인데 이 섬이 어디냐를 놓고 대한민국과 일본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 얽혀진 상황에서 일본은 우산도를 울릉도 옆의 죽도라고 주장하지만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고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섬은 독도 뿐이다.

1.10 우산국 관련 기록

[[|우산국 관련 기록 ]]
按撫使金麟雨還自于山島 獻土産大竹水牛皮生苧綿子檢樸木等物 且率居人三名以來 其島戶凡十五口男女幷八十六

안무사 김인우가 우산도(于山島)에서 돌아와 토산물인 대죽·수우피·생저·면자·검박목등을 바쳤다.
또, 그곳의 거주민 3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섬의 호수는 15구요, 남녀를 합치면 86명이었다.
ㅡ 《태종실록

于山島鬱陵島一云武陵一云羽陵 二島在縣正東海中 三峯及業掌空 南峯梢卑 風日清明則峯頭樹木 及山根沙渚 歴歴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説于山鬱陵本一島 地方百里

우산도와 울릉도또는 무릉(武陵) 또는 우릉(羽陵) 두 섬이 이 현(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허공에 있는데, 남쪽의 봉우리는 약간 낮다.
바람이 불고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고,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 우산도와 울릉도는 본디 하나의 섬이고 지방은 백 리에 걸쳤다 한다.
ㅡ 《신증동국여지승람》

우산도(牛山島)와 무릉도(茂陵島)의 두 섬에는 읍(邑)을 설치할 만하니, 그 물산(物産)의 풍부함과 재용(財用)의 넉넉함은, 저목(楮木)·저상(苧桑)·대죽(大竹)·해죽(海竹)·어교목(魚膠木)·동백목(冬栢木)·백자목(栢子木)·이목(梨木)·시목(柹木)과, 아골(鴉鶻)·흑색 산구(黑色山鳩)·해의(海衣)·복어(鰒魚)·문어(文魚)·해달(海獺) 등의 물건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토지가 비옥하여 화곡(禾穀)의 생산이 다른 지방보다 10배나 된다. 동·서·남·북이 상거(相距)가 각각 50여 리(里)나 되니 백성이 거주할 수가 있으며 (하략)

ㅡ 《세조실록

1.11 관련문서

2 스타크래프트의 맵(우산국)

파일:H3CZuEM.jpg
Map size : 128x128
Map tile : Jungle
Players : 4

SKY프로리그2005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 사용된 팀플레이 전용맵으로 테저조합을 견제하고자 만든 맵이다.

중앙쪽으로 뚫려있는 입구와 바깥쪽으로 뚫려있는 입구 등 2개의 입구가 존재하고 중앙쪽은 역언덕형으로 이루어진 넓은 평원이며, 멀티 지역이 외곽지역에 있는것이 특징이다.
  1. 고려중기까지 유지하다가 여진해적으로 우산국주민이 피난을하게되면서 고려영토로 편입되었다고한다#
  2. 관련 설화가 울릉도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바로 '우해왕과 풍미녀' 2617272&cid=51936&categoryId=54537 #
  3. 신라는 외왕내제적 성격을 갖고 있었고 보덕국이나 갈문왕 제도 등 신라왕 아래에도 왕(王)과 나라가 존재하기도 했다. 우산국뿐만 아니라 탐라국도 신라의 속국 이었으며, 견훤도 왕을 처음 자처한 이후에도 한동안 신라의 신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4. 울릉도에 대한 언급 자체는 더 이전의 중국 기록에서도 간략하게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