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현대전자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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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변경 후 로고.
정식명칭에스케이하이닉스 주식회사
영문명칭SK hynix Inc.
설립일1949년 10월 15일 [1]
업종명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및 유사반도체 제조업
상장여부상장기업
기업규모대기업
상장시장유가증권시장 (1996년 ~ 현재)
편입지수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종목코드000660
홈페이지

파일:Attachment/29173151315 61400020.jpg
사명변경 전.
Иииix(...)
러시아인이 회사 로고를 보고 영어인지 러시아어인지 몰라 순간 당황해했다
이이이...이흐? 이치..이흐인가? 아니..i는 뭐야...우크라이나어? 아닌데...? 이치이이흐..?!
하락닉스였는데 어?? 어??

1 개요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제조회사. 1949년 국도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건설업체로 영업을 하다가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와 역합병하였다. 존속법인을 국도건설로 하고 현대전자를 해산한 뒤 국도건설 이름을 현대전자가 되었다. 물론 우회상장을 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국도건설이 경기도 이천시에 30만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물론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과의 관계는 끊어졌으나, SK 인수 이전까지 현대전자의 후신으로서 범현대가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었다. 본사는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 2091(지번 주소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에 위치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 중에서는 매출액 세계 5위회사[2], 반도체 중 메모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기준으로는 매출액 세계 2위 회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독점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이닉스의 매출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시장에서 1위이기 때문. 애플과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주요 고객사이다. 화이트박스 태블릿 안을 열어보면 매우 자주 등장한다. 또한 보드에 납땜되지 않고 메모리 모듈을 쓰던 시절의 맥북들의 경우 뒤뚜껑을 열면 하이닉스 스티커가 붙어있는 메모리 모듈을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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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출발은 현대전자였다. 사실 중공업 쪽에 치중하던 현대그룹이 계열을 확장하는 쪽에서 나온 그룹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종의 문어발 확장이라고 하는 바로 그것. 지금의 Hynix라는 이름도 Hyundai Electronix(nics)에서 따왔다는 걸 알 수 있다.

2 설립부터 IMF 전까지

1988년 현대전자 기업 PR 광고 황금 거북선편. 우주 거북선?

설립을 하기는 했지만 당시 전자제품 시장 상황은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의 3강 체제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순수하게 전자제품으로 파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 때문에 현대전자에서 채택한 길은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현대 멀티캡) 및 반도체 산업으로, 삼성전자가 이미 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신생 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쪽으로 진출하기로 한 듯 하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빈약한 현대전자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그나마 간단한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 1995년에는 CRT로 HD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ADSL 사업이나 LCD모니터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당시 돈이 될 것 같고 좀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업에 과감하게 배팅투자 하면서 진출했다. 의외로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93년에는 유명 하드 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하는 등 초창기부터 반도체 부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나중에 이어져 하이닉스가 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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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대전자에서 만들었던 CD플레이어)

(무려 서태지를 기용했던 광고)

1995년 현대전자 연수단 26명이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테러범에게 버스가 점거되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있었으나,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테러부대 알파 그룹을 투입해 9시간만에 범인을 사살해 버렸다. 스페츠나츠 위엄 ㄷㄷ 버스에 타고 있었던 28명 중 연수단 단장인 박연주 부장과 여직원 1명은 혼란을 틈타 탈출했다.

이런 투자 결정은 호경기가 계속되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1997년 하반기에 IMF가 터지는 바람에 망했어요. 이미 반도체 산업이라는 돈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분야를 시작한 데다 여기저기 벌려 놓은 사업이 너무 많아 그룹이 휘청대기 시작했다.

3 IMF 이후

이후에 흔히 말하는 '빅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시장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5위였던 현대전자가 4위였던 LG반도체 사업부를 합병했다. 당시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사업에 매우 협조적인 현대그룹에 준 특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를 두고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쓰인 표현은 “반도체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욕심을 부려서 빼앗아갔어요. 자기 욕심 때문에 우리 반도체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더니…. 우린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뒤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빅딜 평가기관이었던 ADL에서 현대에게 고평가를 하면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한다. 1996년 DRAM 시장 점유율은 근소한 차이로 현대전자 4위, LG반도체 6위였다. # 그것보다도 당시 LG반도체는 역사가 삼성과 현대에 비해 역사가 짧아 3위였던 히타치 팹을 그대로 들여와 생산하고 있어서 두 회사에 비해 저용량 DRAM이 주였다. 자료에 보면 당시 고용량이던 128Mbit DRAM 이상의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것이 심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듯. IMF가 몇 년만 늦게 왔어도 당시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LG반도체가 현대전자를 기술에서 따라 잡았을 수 있었을 수도 있다. 그 당시 ADL 부사장의 이름은 다름아닌 이장석. 우리가 아는 빌리장석 맞다.

LG반도체를 강제로 매각해 버린 덕분에 LG전경련에서 거의 탈퇴하다시피 했다. 당시 LG그룹 회장이었던 구본무는 빅딜 안을 낸 전경련에 반발하여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무려 14년 가까이를 그룹 사옥과 5분밖에 안 떨어진 전경련에 발길 한 번 안 딛었었다. 그러다가 2013년 말에 박근혜 대통령이 전경련 신축 회관에 방문하자 그때서야 전경련에 방문, 사진 촬영을 했었다. 이후 하이닉스는 SK가 인수하기 전까지 거대부채기업이 된다.

2001년에는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면서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를 전부 분사 시켰다. 이 때 독립한 자회사의 수만 35개이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 카오디오 사업부: 현대오토넷
  • 모니터 사업부: 이미지퀘스트
  • ADSL 사업부: 현대네트웍스
  • 통신 단말기 사업부: 현대큐리텔 (나중에 팬택에 인수됨)
  • 통신시스템 사업부: 현대시스콤
  • 컴퓨터 사업부: 현대컴퓨터
  • TFT-LCD 사업부: BOE하이디스. 모니터 사업부와 별개로 중국계 BOE에 매각되었다. BOE는 중국 정부의 지원하에 국내 기업을 위협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천 하이닉스 본사 내부에 사업장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이 시기의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증권 시장의 핵폭탄이었다!! 위기 이전 4만원대였던 주가가 최저 135원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특히 투기 세력이 하이닉스 주식을 갖고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 2002년 7월 23일에는 하루 거래량이 무려 18억 주를 넘었으며 유가증권시장 거래량(코스닥 제외)만 해도 23억 주를 넘었다. 기사 "18억 3,279만 주로 단일 종목 하루 거래량 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이 기록은 2013년 현재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거래량 분석이나 주식 관련 학술 논문에서도 2003년 3월 21대 1 감자 이전의 거래량에서는 하이닉스를 뺀 통계를 사용할 정도로, 하이닉스의 증권 시장 왜곡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어떤 논문에서 밝힌 내용 중에는, 하이닉스 거래량을 뺐더니 기존 알려진 결과와 잘 일치한다는 흠좀무한 문장도 있었다. 이런 거래량은 나스닥, 런던, 홍콩 등 세계 유수의 증권 시장에서도 없던 기록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마저 매그나칩 반도체로 분사 시키고 메모리 생산에만 주력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은 메모리 제조회사의 이미지를 달고 있다. 메모리계의 AMD

2003년쯤 사내외적으로 자금이 너무 모자라 엄청난 위기가 있었다. 자금이 모자라 신형 메모리 생산기계도 구입 하기도 힘든 실정이고, 수주 따내 오기도 힘든 실정에 생산주기율도 제대로 못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하이닉스는 불량품, 수율에 항상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금기 중의 금기였던 기존에 팔거나 버리려고 했던 반도체 생산 기계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 수율을 올린다는 판도를 뒤엎는 전략을 세웠다. 전세계 반도체 관련 물리학자와 산업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비상한 관심조롱을 받았고,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면서 결국 이를 이루어냈고, 2005년도에는 사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다만 D램 시장에 집중한 덕에 D램 시장 가격 상승과 다른 차세대 메모리 시장 투자 및 개발에 약간 소홀한 점이 문제로 2008년 이후 실적이 감소하고 있는 상태. 2009년부터 해외 인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동일하게 D램을 주력으로 하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대표적 인수 후보자였다.

HBM 메모리를 전세계 최초로 개발, 양산한 업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AMD에 이어 엔비디아도 파스칼에 HBM2세대 메모리를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래픽 메모리 부분을 SK하이닉스가 독식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문제는 가격 때문에 하이엔드 제품군에만 적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4 SK그룹 편입

2011년 6월 즈음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나선다는 애기가 나왔고 현대차를 비롯한 범 현대가에서도 지원한다고 했었다. 사실상 하이닉스는 현대그룹 재건의 마지막 단추고 고 정주영 회장의 10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인수 가능성은 비교적 높아 보였다.

하지만 2011년 7월 6일 조회공시를 통해 현대중공업이 하이닉스 인수 의사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또 다른 모기업이었던 LG는 인수 의향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사업 연관성을 따진다면 전자 제품을 만드는 LG그룹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게 훨씬 더 어울리지만, 남용 부회장이 LG전자를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 오물들을 치우기 위하 LG전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를 썼기 때문에 자금, 경영권 방어적인 면에서 여유가 없었다. 대한민국 상법 상 비금융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주식의 최소 30%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LG그룹, 특히 지주회사 LG와 LG전자, LG화학에 현금이 충분했다면 그룹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설욕한다는 명분과 전후방사업 상승효과라는 실리를 위해 기를 쓰고 인수전에 나섰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SKSTX가 인수 경쟁에 참여하였다. 이 중 STX는 인수 의사를 철회하였고 SK텔레콤이 3조4267억원에 단독 입찰했다. SK텔레콤은 돈이 어디서 났냐고? 통신 산업은 주파수만 잘 갖고 있으면 매월 현금이 수천억씩 들어오는 알짜배기 산업 중 하나다. LG도 U+ (당시 LG텔레콤)가 있었던 것 같지만 넘어가자 지금까지 쌓아둔 사내유보현금에 사업 특성 상 현금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걸 이용하여 융통한 금융권 융자까지 부어서 인수한 것이다. 2012년 3월 23일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SK그룹에 편입되었으며, 정관 변경을 통해 사명까지 SK하이닉스로 바꿨다.

SK 그룹에서는 SKT와의 시너지는 적을지 몰라도 10년동안 완만한 하락세인 SKT 주가를 보면서 성장동력에 대하여 나름 고심한 듯. 시너지 또한 벌 땐 화끈하게 버는 하이닉스 vs 안정적인 SKT, 넓게 보면 수출의 하이닉스 vs 수입의 SK에너지의 상보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반도체 대량 생산 기술을 응용하여 태양전지를 찍어내서 SK에너지에 납품한다거나... 게다가 SK 그룹은 재계 3위의 서열에 어울리지 않게 내수 산업으로 인식되는 통신과 석유 산업에 의존한다는 안 좋은 이미지까지 불식시켰다. SK 그룹 석유산업 부분은 수출이 53퍼센트 이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수출 역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50퍼센트에 가까운 독과점 업체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은 'SK 석유사업=내수 산업'인 게 일반적이다. SK 그룹으로서는 하이닉스 인수가 신의 한 수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던 셈이다. 그래도 롯데 그룹보다는 나은 게 SK 그룹은 양질의 서비스를 나름대로 제공하고 수출도 많이 하지만 롯데 그룹은 오로지 대한민국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사업군을 경영하면서도 그에 걸맞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SK그룹에 편입된 이후에는 뭔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SK 날개 단 하이닉스, 2분기 매출·영업이익 사상 최대 그리고 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 이익률을 추월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삼성 반도체 '빨간불'…SK하이닉스에 영업이익률 추월당하나 2013년 연간 매출액이 사상 최대인 14조에 영업이익률 24%를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다. SK그룹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성과도 있지만, 2013년에 일본의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한 걸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경쟁자가 줄어들어 공급자 중심으로 변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걸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수천억 단위의 배당이 가능해지면서 이 돈으로 차입금을 갚거나, SK텔레콤에서 먼저 지출하는 융자 상환비용을 메우면 SK그룹은 사실상 1조 7천억이라는 SK텔레콤 보유현금으로 14~15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4조원을 넘는 하이닉스를 인수한 게 되니 엄청나게 수지맞는 배팅을 한 셈이다. 이걸 바라보는 LG그룹, 특히 전자계열사 고위 임원, 특히 IMF 당시부터 근무했던 임원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원래 자신들이 일궈낸 사업이었는데 완전히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챙긴다는 속담에서 자신들이 재주를 넘은 곰이 됐으니 얼마나 원통할까.

2014년 연간매출 17조1천억, 영업이익 5조1천억으로 약 30%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여 작년 기록을 갱신하였다.

이후 SK그룹 차원에서 2014년에 이런 기업광고를 내놨다. 내레이션은 지성.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한참 이전인 1997년부터의 일을 광고에 포함시켰다. 구씨 집안이 싫어합니다

2015년 밀고 있는 광고. 하이닉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보통 "우리 회사 견실한 회사입니다!!" 하는 회사 이미지 관리 광고를 내놓을 때는 실적이 좋지 않아 유상증자회사채 찍을 때 하는데 광고 내용과는 별개로 연간 매출 18조 7천억, 영업이익 5조 3천억으로 3년 연속으로 최대 실적을 갱신하였다. 다만 4분기 들어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실적이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16년에는 청주테크노폴리스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서청주IC근처에 SK하이닉스가 있다.

5 기타

5.1 현대 컴퓨터

개그맨 김국진을 광고모델로 써서 "밤새지 마란 말이야~!"이란 말을 하게하던 방송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5.2 게임 사업

현대전자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북미판 패미컴(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 후,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닌텐도 64(현대전자 발매명은 각각 미니컴보이, 슈퍼컴보이, 컴보이64)까지 닌텐도의 하드웨어를 정식 수입했다. 패미컴은 북미판 베이스, 슈퍼패미컴은 일본판(정확하게는 일본판과 모양이 동일한 유럽판), 닌텐도 64는 확인바람. 게임소프트웨어는 패미컴부터 닌텐도 64까지 나온 시절에 나온 게임소프트인데, 슈퍼 마리오닌자 거북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을 수입했다. 드래곤볼Z 초무투전은 한글화까지 해 주었다! 오오 현대전자 오오

게임보이용 게임 중 포켓몬스터 적·녹은 현대전자가 닌텐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던 시절인 1996년(북미판은 1998년)에 나왔는데, 정식발매는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닌텐도 관련 상품 판매가 부진해지고, IMF가 터진 이후 게임사업을 철수했는데, 현대전자가 게임 사업 철수를 몇 년 더 늦게 했다면 포켓몬 게임도 현대전자에서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포켓몬 게임이 일찍 발매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도 괜찮을 듯. 그 이전에 외환위기만 없었더라도 우리는 포켓몬스터 적·녹, 포켓몬스터 청, 포켓몬스터 피카츄를 게임보이에서부터 한글판으로 즐겼겠지. 아니 그 전에 별의 커비 시리즈를 정발해주지 않은 걸로 봐서 포켓몬스터도 애초에 정발할 생각이 없었나보다.

5.3 휴대폰

삼성, LG와 더불어 휴대폰 생산, 판매에도 뛰어들었던 전력이 있었는데 90년대 중반에 '시티맨'이란 휴대폰을 내놓았다가 얼마후 '걸리버'[3]란 이름의 휴대폰을 내놓았다. 이후 현대큐리텔로 분리되었다가 훗날 팬텍에 인수.

5.4 국산 CPU 개발

1990년대즈음에 국산 CPU 개발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당시에 K-DOS라는 것도 나왔을 무렵인데다가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나서 삼성전자는 시장성이 없을 것이라 예언하여 빠지고 DEC Alpha 생산 계약을 맺었다. 혼자 남은 현대전자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다가 결국 CPU 개발은 포기하고 그냥 메모리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x86 호환 CPU이며 연구 중단 전까진 500MHz급 CPU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모양.

5.5 인터넷 사업

PC통신이 대중화되던 시절인 1995년에 대기업으로써 처음으로 '아미넷'이라는 이름으로 PC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인터넷조차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시절에 최초로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를 개발했다. 당시 개발팀장이 바로 김택진이었다. 이 서비스는 1996년 3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여 5월 27일부터 전국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그해 8월부터 현대정보기술(주)로 넘어가면서 1997년부터 신비로로 이어지게 된다.

5.6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5년에 현대그룹 차원에서 프로야구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여 야구단의 지분 76% 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었다. IMF 사태로 현대그룹에 위기가 오자 현대전자는 점점 휘청대기 시작했고, SK 와이번스로부터 받았던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입성금 54억을 회사 지원금으로 사용하였고 운영비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에 인수하려 했지만 900억 드립을 치며 해태 타이거즈 인수로 방향을 돌리게 했다.

소유만 했지 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고, 당시 2군 경기장이었던 원당야구장(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 야구장)마저 하이닉스의 소유임에도 전혀 수리하지 않았었다. 설립 당시에는 최신식 시설이었지만 보수를 전혀 하지 않아 실내 연습장 지붕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와중에 경기장 임대료는 매년 꼬박꼬박 걷어갔다. 이로 인해 현대 팬들에겐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다. 현대전자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자금난으로 워크아웃 중'이며 인수기업을 찾아야 하는 상태인 모기업의 입장에서 보유 당시 만성적자 분야인데다가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던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인기가 적은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려고 했던 이유도 구단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삼청태 항목을 참조 바람. 또한 당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도 계속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에 쓰라고 있던 돈을 제멋대로 가져간 것은 까임을 피하기 어렵다. 당시 재무재표 상에서는 야구단 운영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을 만큼의 순이익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워크아웃 중인 기업에서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순이익을 야구단에 대기에는 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웠다 해도 야구단의 자금을 멋대로 사용한 것은 모기업으로써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이다.

당시 천덕꾸러기이던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되어 결과적으로는 사필귀정이 됐지만,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SK 인수 이후 SK하이닉스의 광고가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 걸리게 된다.

5.7 핸드볼

2016년 2월 남자 핸드볼팀을 창단했다. SK 호크스 참고.

5.8 주식

파일:D352c47e82f0119daf962a0892f86af7.jpg
회사 별명을 나타내는 짤방(...)

주식시장에서는 손꼽히는 개잡주 취급을 받으며, 이를 대표하는 것은 1997년부터의 주식동향. 16년동안의 평균 기울기가 마이너스다. 대기업중에서는 말도 안되는 경우인 것. 심지어 중간에 있었던 감자비율은 계산도 안 했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그래서 공인된 별명하락닉스. 못 믿겠으면 하락닉스라고 검색 창에 쳐 보자.

그러나 2012년 SK그룹 편입 이후부턴 쭉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도체 호황에 따른 반사 이익일 듯. 2014년 6월 5일 장종료가가 46450원이다. 2014년 6월 19일에는 장중 최고가인 5만700원으로 마감하였다. 관련 기사 2014년 11월 4일 현대차를 꺾고 시가총액 2위에 등극하였다. 관련기사 그리고 대망의 2015년 SK하이닉스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뽑아내고 있으나 중국발 반도체 리스크로 인해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2016년 8월 현재 36000원 근처로 별명 대로 다시...

  1. 실제 현대전자가 창립된 건 1983년이다, 주식시장 상장을 위해서 1949년에 설립된 국도건설과 합병했다.
  2. 2013년 매출액 기준.
  3. 당시 CF에서 하일이 걸리버로 분장하여 출연을 했다.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란 대사로 유명했다. 훗날 한 뚝배기 하실래예의 임팩트로 인해 CF가 재발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