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어찰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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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正祖 御札牒. 조선의 제 22대 왕이었던 정조가 1796~1800년 사이에 심환지에게 보낸 300통의 비밀 편지들.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1923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정조가 당시 노론 벽파의 지도자로 좌의정 등을 역임했던 심환지에게 1796년 5월부터 1800년 윤4월까지 보낸 300여통의 비밀 간찰들로, 2009년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6년 11월 16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원래 정조가 심환지에게 공식적으로 보냈던 편지들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정조어필(正祖御筆) 2첩&정조신한(正祖宸翰) 셋트가 그것으로 정조어필에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36통이, 정조신한에는 정조의 외삼촌인 홍낙임에게 정조가 보낸 편지 30통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9년에 공개된 300통의 편지들은 정조와 심환지 두 사람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비밀 편지들로 정조는 자신의 편지가 사전에 발각되지 않도록 읽고 나서 바로 찢어버릴 것을 강조하고 당부하고 있다.

정조는 비밀 편지에서 "내가 사류(士流)의 두목이니, 지금 사류의 전형을 구한다면 형편상 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경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은, 서야(徐也)에게보다 열 배가 넘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정조가 자신을 사류의 두목으로, 심환지는 사류의 전형으로서 자신이 정국을 주도하는 감독이 되고, 심환지를 주연 배우로 삼아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단적인 표현으로, 이로 인해 심환지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두렵지만 자신이 그를 늘 잊지 못하고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크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감독인 자신이 의도한 대로 심환지가 움직이도록 그에게 여러 주의해야 할 행동을 각별히 부탁하면서 심환지가 중진(重鎭)으로서 ‘준엄한 기상’으로 위엄을 보이며,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외에 정조 자신의 대소사나 몸의 아픔 등을 여과없이 호소하는 내용 또는 심환지의 잘못된 행동을 통렬히 꼬집으며 꾸짖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가 공개되자 학계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긍정적인 의미로)충격을 받았다. 이전까지 잘 알려졌던 정조와 심환지의 관계 및 각각의 이미지와는 매우 달랐기 때문. 심환지는 평면적인 형태의 정적이 아니라 협력과 대립을 오가는 복잡한 위치에 있었음이 밝혀졌으며, 그러한 심환지와 협력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 정조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의지 강한 개혁 군주/학자 군주로만 알려졌던 정조가, 실제로는 자유자재로 욕설과 막말까지 구사하는 독설가이자 다혈질인 성격을 가졌다는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 내용을 통해 노론 음모론정조 독살설이 완벽하게 논파된다. 정조가 자신의 병환과 증세, 처방법을 편지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고, 이를 심환지에게 직접 언급함으로서 심환지를 비롯한 노론이 정조에게 독살을 시도할 리 없다는게 밝혀졌기 때문.

3 관련 영상







4 바깥고리

5 보물 제1923호

<정조 어찰첩>은 정조가 1796~1800년 사이에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로 300통에 달하는 다양한 내용의 어찰이 6첩으로 장첩되어 있다. 이 어찰의 내용은 대부분 정사(政事)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어찰에 사용된 종이 또한 도침이 잘 된 고급 간지(簡紙) · 태지(苔紙), 심지어 저급의 용지로 취급되는 피지(皮紙)까지 일부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인 서간문의 격식과는 매우 다른 서간문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선시대 서간문의 형식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어찰의 전체 내용이 자세히 구명되면 정조의 통치술이나 학문 세계 등에 대한 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정조 어찰첩>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가치가 있는 유물인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