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호 | 계양군(桂陽君) | |
시호 | 충소(忠昭) | |
성 | 이(李) | |
휘 | 증(璔) | |
부왕 | 조선 세종대왕 | |
모친 | 신빈 김씨(愼嬪 金氏) | |
자 | 현지(顯之) | |
생몰기간 | 1427 ~ 1464 |
조선 세종의 서 2남. 배우자는 좌의정 한확의 딸인 한씨이다. 세종대왕의 총애가 지극했다고 하며, 학문을 즐기고 글씨에 능하였다. 조선 단종 재위기간 때인 한명회와 한확 등과 함께 세조의 일파가 되어 안평대군을 지지기반을 잃고 힘이 약하진 틈을 타 그를 무고로 유배보냈다. 안평대군은 교동도로 유배당하고 그곳에서 쓸쓸히 사사당하였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계양군 이증은 그 공으로 1456년(세조 2년) 좌익공신 1등에 책록된 뒤부터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庶務)의 출납을 맡아 크게 신임을 얻었으며, 1460년 세자가 결혼할 때 가례도감 제조를 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