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桂苑筆耕
통일신라 말엽의 문인 최치원이 20대 시절에 저술했던 한시 문집. 한국에서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이다.
후대에도 고려, 조선시대까지 계속 널리 읽혔고 중국에서도 유명한 문집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고변의 문객으로 있을 때 쓴 것이라 그런지 최치원 본인의 느낌과 감상을 적은 글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고변을 위하여 대작(代作)한 것이다. 우리나라와도 별 관련이 없는 중국 얘기가 대부분이다.
황소의 난으로 유명한 황소를 꾸짖은 토황소격문도 여기에 들어있다.
여담으로 최치원의 글은 몹시 어렵다. 계원필경도 마찬가지다. 최치원은 열두살에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가서 한문실력이 엄청났다. 한문은 알다시피 익히기 어려운 만큼 특권 있는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당나라 시대에도 백거이 같이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를 제외하면 글을 어렵게 짓는 것이 인정받는 길이었다. 단적으로 당나라 시대 과거를 준비하는 지식인들은 글을 지을 때 <문부>를 꼭 참고했다. 최치원도 당나라 과거 공부를 하면서 당연히 <문부>를 보았을 것이다. <문부>를 보면 글은 은미하고 오묘할수록 좋다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필력으로는 당연히 신라에서 선두를 달리던 그는, 골품제로 제한받는 신라에서보다 당나라에서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적 풍토 속에서 필력을 갖춘 그가 얼마나 많은 은유와 고사를 썼을지는 알만 하다.
2 편찬 과정
중국 당나라 유학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빈공과 급제 후에도 계속 1만 수 이상의. 글을 쓰다가 신라 귀국 후 간추려 20권의 책으로 만들어 당시 신라 제49대 왕 헌강왕에게 바친 것이다. 당시에 계원필경뿐만 아니라 사시금체부(私試今體賦) 1권과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1권, 잡시부(雜詩賦) 1권, 중산복궤집(中山覆簣集) 5권을 함께 바쳤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계원필경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