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물
이 아니고 큰 수소. Big Hydrogen 발음 때문에 '숫소'로 헷갈리기 쉬우나 '수소'가 표준어이다. 수컷을 뜻하는 접두어로 앞에 '숫-'을 사용하는 것은 숫양, 숫염소, 숫쥐 셋뿐이다.
한우를 보통 누런 소, 즉 황소로 연상하는 게 많지만 색깔과는 상관 없다.
어원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황소의 황黃은 누를 황인데, 누를 황은 "누렇다 또는 노랗다"라는 의미 이전에 "넓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에, 또는 크다라는 뜻을 가진 토착어 '한'에서 유래된 말인 "한소"가 변해서 된 말이란 주장도 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고려가요 정석가에 "무쇠로 한쇼를 디여다가~"란 구절이 나온다. 네이버 국어사전는 황소를 순 우리말로 간주 하였지만, # 이와 관련된 동의어는 황우(黃牛)로 지칭한다. 항우 장사라는 말의 어원이 초나라 항우가 아닌 황우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설을 따르든 황소는 덩치 큰 수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얼룩빼기 황소", 심지어 "검은 황소"도 가능하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Cow아닌 Ox나 Bull이 될 것이다. 덩치가 크다는 의미이므로 왜 덩치가 큰 개구리를 누렇지 않아도 황소개구리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 황소는 상승세를 상징한다. 하락세는 곰.
파이터즈 히스토리에서는 히든보스로 황소 한 마리가 등장한다.
1.1 관련 문서
2 중국 당말의 반란지도자 황소
대제의 역대 황제 | ||||
건국 | ← | 초대 황소 | → | 멸망 |
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성 | 황(黃) |
휘 | 소(巢) |
생몰기간 | 835년 ~ 884년 |
재위기간 | 881년 |
당나라 말기의 반란자. 황소의 난을 일으켜 당나라의 멸망 원인을 제공했다. 이름이 1번과 가끔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본래 직업은 소금 밀매상인(鹽梟)이었다. 원래는 과거를 준비하던 사람이었지만 낙방되었다. 황소는 알고 있었다. 당시 과거는 재력과 인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황소는 당 왕조에 대해 비판,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국화시를 지었다. 국화시는 3수가 있지만 여기서는 2수만 읊어본다.
國花1 颯颯西風滿院裁 가을 바람은 스산하게 부는데, 정원 가득히 심어져있는 국화 蕊寒香冷蝶難來 꽃도 향기도 모두 차가워 나비도 가까이 날아들지 않네. 他年我若爲靑帝 언젠가 내가 꽃을 다스리는 청제가 된다면 報與桃花一處開 복숭아꽃과 같이 좋은 계절에 같은 곳에서 피도록 해주련만. |
國花2 待到秋來九月八 어디, 가을이 오고 중양절만 가까워 와 봐라. 我花開後百花殺 내 꽃 피면 모든 꽃은 죽어간다. 沖天香陣透長安 온 하늘에 가득한 국화향기는 진을 이루어 장안을 쳐들어갈 거고 滿城盡帶黃金甲 온 성은 어디가나 황금갑옷 입는다네. |
이후 황소는 소금밀매업을 시작했다. 당나라 때 소금은 안사의 난이래 국가의 전매사업으로 독점상품이다보니 당연히 공식 가격은 많은 마진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소금은 생활 필수품이기도 했으니 당연히 민중들에게는 큰 손해였다. 그래서 사적으로 제조한 소금이 암암리에 거래되었으며 이런 소금장사들이 활약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불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국가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으며 사적인 무력으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그래서 당시 말로 좋게 하면 협객. 요즘 말로 하면 조폭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미 백년 이상 당나라의 통제력이 크게 약화된 이후였던 상황이었다. 때마침 기근이 돌자 친구 왕선지를 따라 황소도 반란을 일으켰고, 군대를 둘로 나눈 뒤 친구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치고 빠지는 게릴라를 바탕으로 세력을 점점 모았다. 끝내 낙양 태수의 항복을 받은 황소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까지 함락시키는 위엄을 떨치친다. 황제 희종은 오전에 장안을 나와 촉 땅으로 피난 가고 황소군은 오후가 지나 밤이 될 무렵 장안에 입성했을 정도.
장안에 도착한 황소는 스스로 황제에 오른 뒤 항복한 관리와 군인들을 적극 기용하며 제국을 굳히고자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황소 정권에겐 경제적 기반이 전무했고, 실질적인 지배지역도 장안 근교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촉 땅으로 피신한 당나라 대신들은 중원 각지의 병사들을 징발해 황소를 공격했고, 황소의 부장이자 나중에 후량을 세운 주전충[2]마저 배신하는 바람에 결국 고립되자 장안을 잃고 퇴각해야 했다. 황소는 추격하는 각지의 절도사들의 공격을 받아 결국 패퇴하였고, 끝내 야산에서 자살하였다.
황소의 난은 성과를 맺지 못하고 끝났으나 당나라의 실권은 갈기갈기 찢겨 절도사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사실 안사의 난 이후에도 위태로이 국가를 운영하던 당나라는 황소의 난을 통해 완벽한 무능함을 보여주면서 절도사들의 군신관계 리미트를 해제시켜버렸고, 환관의 정치와 각지의 절도사들이 사실상 독립 상태로 썩어가던 당나라가 직접적 멸망의 길을 걷는 결정타가 되었다.
여담인데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신라 학자 최치원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란 글을 썼는데 이 글을 본 황소가 놀라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조선시대에 편찬된 역사서인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등에 전한다.동국통감 헌강왕 11년[3][4][5]
뒷날 씌여질 수호전에서도 언급, 송강이 쓴 한시에 이름이 들먹여지며 농락이나 당한다.
3 후한 말의 황건적
黃劭
(? ~ 196)
후한 말의 황건적으로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 잔당으로써 남아 유벽, 하의, 하만 일행과 함께 각각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초평 연간에 원술에게 귀부했다가 손견에게 귀부했다. 그러나 196년에 영천이 조조에게 공격을 받자 조조군을 야습하다가 우금에게 격파되어 사로잡히자 참수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소(黃邵)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하만이 조홍에게 사망한 후 이전의 공격을 받아 사로잡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시카고 불스의 마크로 나오는 황소로 나와 적들을 지켜보다가 전위의 칼에 맞아 전사했다. 그런데 딱 한번 나온 장면이 바로 죽는 장면으로 보통은 죽기 전에 소개하는데, 이 쪽은 죽고 나서 소개문으로 나왔다.- ↑ 현 K리그클래식의 FC 서울의 전신인 팀으로 서울(동대문)을 연고지로 하는 LG그룹의 축구단이었다.
- ↑ 당시 이름은 주온. 전충이란 이름은 당에 투항하고 나서 받은 이름이다.
- ↑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삼국사기에 해당 기록이 있다고 적고 있는데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에는 고변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지은 글이 전한다는 정도의 내용밖에 없고 링크에서도 삼국사절요의 내용을 주석으로 달아놨다. 위키백과에 해당 서술이 들어간 경위 등에 대해 잘 아는 위키러가 있다면 확인바람
- ↑ 만일 중국쪽에 전해졌다면, 애초에 저 토황소격문 공식 발표자 이름은 최치원이 아니라 토벌군 사령관 고변이었으니 고변의 글을 읽은 황소가 라는 식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 ↑ 최치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고전소설인 최고운전에 나온다는 서술이 있었는데 최고운전은 아예 황소가 격문을 보고 항복했다는 내용이다. 진위에 관계없이 해당 소설에서 유래한 내용이라 보기는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