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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7세 노인의 패션센스다. 가히 비범하다.
高亨坤
1906년 04월 26일 ~2004년 06월 25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철학자. 2002년 불교신문 인터뷰. 아들 고건의 부친 회고. 회고가 아주 상세하다. 호는 청송(聽松)
2002년 가족사진. 다복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전라북도 옥구(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 1933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38년에 연희전문학교에 부임, 1944년까지 연희전문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99세까지 장수한 분.
8.15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51년부터 학술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도미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철학계에 서양철학을 소개하였다. 195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59년에 전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학술활동에 힘썼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서 국회의원(민정당-민중당-신민당)을 역임하였다.
여담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의 아버지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 수업에 부자가 같이 있는 진풍경도 벌어졌는데, 공과 사를 구분했기 때문인지 수업 중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2 여담
- 고형곤 박사에 대한 에피소드들. 출처. 금강삼매경론 번역 일화.
- ◈ 에피소드 1. 모르는 영어 단어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봤다고 한다. "나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너희가 가르쳐 달라"고.
- ◈ 에피소드 2. 당시 서울대 문리대는 동숭동 캠퍼스에 있었다. 어느 날 김진규씨와 김지미씨가 동숭동 대학로에서 영화촬영을 했다고 한다. 고형곤 박사는 수업에 들어와서 "자! 모두들 영화촬영 보러가자. 아주 멋진 러브 스토리라는데 그게 수업 보다 더 중요한 거야"
- ◈ 에피소드 3. 그 날도 야외수업한다는 핑계로 철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막 비가 그친 참이었는데, 물에 젖은 땅위로 지렁이들이 한 뭉터기 기어나와 꿈틀거리고 있더란다. 고 박사 왈 "와! 저 지렁이들의 기쁨에 넘친 환희의 몸짓을 봐라!" 그 때 한 학생이 고 박사의 말씀에 초를 쳤단다. "저게 어떻게 환희의 몸부림입니까? 악착같이 살아 남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이지요." 그때, 고 박사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게 바로 관점의 차이란다. 오늘 철학 수업 끝" 하셨다고.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63 |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 민정당 | - |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