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1965년)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민정당/민주당(1963년)민중당(1965년)신민당(1967년)

1965년 5월 3일 민정당, 민주당[1] 양당이 통합하여 창당된 정당이다.

창당 이후 지도위원의 선출을 둘러싸고 민정당계의 윤보선계와 민주당계의 박순천계 간의 갈등을 드러냈다. 그리고 양 계파 간의 갈등은 민중당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노출되어, 결국은 분당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일협정의 비준, 대한민국 국군베트남 전쟁 파병 동의안 처리에서 비롯되었다.

1965년 7월 14일 임시국회에서 민중당이 비준 동의안의 발의를 막지 못한 것을 문제삼아 윤보선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일부 세력은 탈당을 꾀하였다. 반면에 대표최고위원 박순천을 중심으로 한 당주류계는 윤보선계의 이와 같은 행동을 이적행위로 단정하고 해당분자들에 대한 징계조처를 취할 방침을 세웠다. 한일협정비준저지방안에 대한 강경노선 지지자들은 원외투쟁을 전개할 태세였고, 온건노선 지지자들은 국회투쟁을 통하여 정부 및 여당과 싸우는 것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협정비준예비심사를 맡은 여야 합동의 한일협정특별위원회는 8월 11일 정부가 제출한 한일협정비준안을 공화당의 강행에 의하여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민중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의원직을 총사퇴하기로 의결, 사퇴서를 일괄하여 국회의장 이효상(李孝祥)에게 제출하였으나, 국회는 9월 13일 본회의에서 민중당 소속 53명의 의원직 사퇴서를 일괄 반려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내 강경파와 원외측은 이 방침에 크게 반발, 양파의 다툼은 ‘선언 없는 분당’의 상태로 굳어져갔다. 강경파는 온건파에 대한 와해공작을 펴는 한편, 탈당의원인 서민호, 정일형 등이 주동이 되어 윤보선을 당수로 한 신한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중당의 대통령 후보 유진오와 신한당의 대통령후보 윤보선은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에서 통합을 추진하게 되었다. 1967년 2월 7일 양당의 통합 및 신당창당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신민당으로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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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당 신파가 5.16 군사정변 이후 다시 모여 창당한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