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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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제1공화국제2공화국
허정곽상훈허정백낙준박정희
제4공화국제6공화국
최규하박충훈고건황교안-
역대 대한민국 전라남도 도지사
17대 허련18대 고건19대 장형태
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21대 김용래22대 고건23대 박세직
30대 조순31대 고건[1]32대 이명박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협의회 설립초대 고건2대 이명박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문민정부국민의 정부
29대 이수성30대 고건31대 김종필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34대 김석수35대 고건직무대행 이헌재
36대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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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참여정부 국무총리 재직 당시)

髙建
1938년 1월 2일 ~


1 소개

한국의 전 관료, 정치인, 교육자.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특히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보통 대통령의 정치적 방패로 자주 사용되는 한국의 국무총리 포지션이지만 고건은 국무총리 재직시에도 관료로서 본인의 정무적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1938년 1월 2일 철학자 고형곤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2]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37세에 전라남도지사[3]에 취임했다.

1979년 박정희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 제2수석비서관이 되었는데, 이후 1980년 5.17 내란날 군정에 반대해 사임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가 완전히 들어서자 다시 장관으로 들어왔고 민주정의당에 들어갔다.[4]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김봉욱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채영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노태우 정부의 관선 서울특별시장을 지내고, 뒤이어 명지대학교 총장직에 있다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호남계 인사이면서, 군사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했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넓은 인맥을 가졌으면서, 부패에서도 자유롭다는 점 덕분에 민주화 이후로도 중용되었다.

1998년에는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으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당선되어 4년간 시정을 이끌었다. 군부-YS-DJ-노무현정부까지 좌우 가리지 않고 중용된 나름 화려한 실적(?).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직무를 수행하던 중 2004년 3월 12일 16대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였다. 시기상으론 2개월이라는 짧은 시기이긴 했지만, 이 기간 동안 이라크 파병 문제나 경제, 4.15 총선의 공정한 관리 등 여러 국내외 굵직한 사안들을 큰 무리없이 수행했다는 평을 받았다. 4.3 사건 특별법 제정 및 진상조사위 구성시에도 참여했는데, 두꺼운 보고서를 총리직 수행 와중에도 전부 읽고 참여하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또한 사스가 창궐하던 당시, 신속한 대응으로 사망자가 한국 땅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도록 만들었다.[5] 이에 따라 WHO에서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대략 10년 후, 강산이 변해서인지 이와 반대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처를 얼마나 잘 했는지 보여주는 사례.


2.1 유력대권주자

탄핵 기각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후 2004년 5월 24일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여러 정치 세력에서 일한 점과 특히 대통령 대리임무 수행을 성공적으로 이행한 점을 인정받아 유력한 여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다. 오죽하면 2006년까지만 해도 차기대권주자 여론조사상 1등이 이명박, 박근혜가 아닌 고건이었을 정도였는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2006년 고건 총리의 지지세력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일명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당'(약칭 한미준)이란 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나, 이름 참 기네 일본의 모 정당이 생각난다 고건이 스스로 '한미준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당'이라고 부인하는 소동이 있기도 했다.[6]

하지만 그런 입지에도 불구하고 2006년 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를 사실상 [실패한 인사]라 평해[7]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고,[8] 이후 얼마 안가 2007년 1월 16일 스스로 대통령 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해 지지자들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당시 기사]. 그리고 3년 뒤 정계도 은퇴하며 야인으로 돌아간다.

이후 2013년 중앙일보에 자신의 공직자 시절을 비롯한 불출마 뒷이야기 등을 회고록으로 묶어 연재하였는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한 이유를 민주당계 정당 후보는 영남에서 어느정도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는데, 자신이 호남 출신[9]이라 그런지 여론조사상 그 영남에서 지지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보여 포기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이런 얘기를 들은 고건의 한 지지자가 고향이 호남인데도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 불출마 철회를 요구하자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불사조 팀킬러 이인제가 있어서 당선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한다. 졸지에 무시당한 DJP연합 김종필 안습 하지만 이후 17대 대선 과정을 보면 15대랑 똑같이(...) 보수가 분열해 이회창이인제 후보가 죄다 출마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동영 후보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거란 점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소한 표는 더 받았겠지 만약이지만 고건+이회창 크로스가 이뤄졌다면 호남+충청 제2의 DJP연합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그 외 5.17 내란 직후 사임한 것에 대해 5.18에 대한 폭력 진압을 보고는 청와대에 남아서 학살을 막았어야 했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3 트리비아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이양하 교수의 수필 중 <경이, 건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고건과 그의 형 고경 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썼던 1940년 당시 동아일보에 [실제 연재]되었으며, 세월이 흘러 국무총리에 지명된 1997년 같은 신문을 통해 [다시 회자되었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시·옥구군)민주정의당67,179 (49.7%)당선 (1위)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 군산시)민주정의당28,118 (35.5%)낙선 (2위)
1998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새정치국민회의1,838,348 (53.5%)당선 (1위)
  1. 뒤에도 서술하겠지만 22대는 관선. 31대는 민선.
  2. 김우중, 이종찬, 신구 등과 같은 학교 동창 사이이다.
  3. 당시는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각 지방단체의 장은 관선이었다.
  4. 이 점 때문에 훗날 민주세력에 들어온 고건을 일부 안티들이 까기도 했다.
  5. 감염자는 4명 발생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4명밖에 발생 안 한 거지만.
  6. 참고로 '한미준'은 4년뒤 친박이 뜨자 이번엔 박근혜의 지지세력을 자처하면서(...), 당의 이름도 국가재건친박연합으로 개명하고 2010년 지방선거에 참여한다. 도대체 정체가 머냐 니들은... 정치권을 맴도는 정치낭인들이 선거 때마다 만드는 군소정당이라고 보면 된다. 고건이 뜨니까 고건 이름을 팔고, 이후 친박이 먹히니까 친박 간판을 단 것이다. 그리고 이후엔 반기문??
  7. 좌우대립 속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길 기대해서 좌우 여러 진영을 거친 그를 총리로 지명한 것인데, 그 부분에서 실패하고 고립된 것 같아 아쉽다고 평했다.
  8.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한명숙 총리를 차기 대권주자로 염두해뒀기 때문에 고건 전 총리를 견제한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동영이 뽑힌게 함정.
  9. 본인은 서울특별시 출신이지만 본적지 즉, 아버지의 고향이 군산시이다. 지금이야 고향이라고 하면 출생지를 우선하지만 90년대~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 '고향'이라고 하면 본적지를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