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첩

空名帖. 조선시대에 있었던 매관매직 제도의 일종. 공명(空名)은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는 의미이고 첩(帖)은 "임명장"을 의미한다. 즉,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임명장이 된다. 정확히는 이 임명장을 부유한 사람들에게 팔아서 국가의 재정을 보충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다.

보통 국사시간에는 임진왜란으로 국가의 재정이 후달리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공명첩을 팔았다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임금 시절에 논상의 목적으로 공명공신(空名空身)을 발행하자는 상소가 올라온 적이 있엇다. 공명공신이 이름과 신분을 쓰지 않고 발행하는 첩이었던 것을 보면 조선 초에도 공명첩 제도를 운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관리들이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곡식의 상납을 독려하고, 만약 누군가가 돈과 곡식을 바치면 즉석에서 "아무개"란 이름을 써서 첩을 내려주는 형태로 운용됐다. 이때 주는 첩은 벼슬을 내리는 고신첩(告身帖), 천인양인으로 면천시켜 주는 면천첩(免賤帖), 향리들에게 역을 면제하는 면향첩(免鄕帖)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명첩을 통해 받는 벼슬은 말그대로 명예직이었기 때문에 실권은 없었다. 하지만 벼슬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해당 지역에서는 목에 힘주고 이런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어느정도 가치가 있었다. 요새로 치면 대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명예 박사 학위 등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논상의 목적으로 발행하기도 했고, 곡식을 확보하려고 발행한 사례도 많다. 실제 실록의 기록을 보면 구휼의 목적이나 군량 확보를 위해 발행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공명첩 더 발행해주세요 ㅠㅠ"란 상소가 올라온 적도 있고,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발행했으니 이제부터 발행하지 맙시다"는 상소도 있는 점을 보면 발행량이 어느정도 수준에서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지방에서 난이 발생하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공명첩 발행량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공명첩은 중앙에서 발행하고 관리하는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엄격하게 관리됐다. 이 공명첩을 위조했거나 관리들이 몰래 훔쳐서 내다팔았다가 적발될 경우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가재정이 파탄났기 때문에 후기로 갈수록 공명첩이 대량 발행된 듯 하며 폐해를 논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관리도 좀 엉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매관매직이 조장되었으며 조선후기 신분제가 붕괴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더불어 강제로 상납받은 정황도 있어 높으신 분들도 이 문제를 인식했는지 "우리 좀 자제합시다"란 논의를 했을 정도였지만 빠르게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보니[1] 잘 지켜지지는 않은 듯 비슷한 논의가 끊이지않고 반복됐다.

현대에도 공명첩을 파는 나라있다 카더라.
  1. 이 점은 중세 유럽의 면벌부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