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량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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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으니(以食爲天), 군량미부터 확보하라." - 한고제의 참모 역이기

군대에서 장병들의 식량으로 사용하는 쌀 따위의 곡물이자, 삼국지연의에서는 허구헌날 불타고 빼앗기는 숨은 주역이다. "적군에게 군량을 빼앗겼습니다!"을 일컫는 말이다. 무기와 함께 보급품 제 1번이면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고 부피가 컸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운송에 어려움이 많이 따랐던 품목이었으며, 일반적으로 근대까지의 군대가 전투병보다 더 많은 보급병을 운용해야 했던 원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수양제의 고구려 원정을 살펴보면, 전투 병력은 백만이었지만, 각종 무기와 군량을 포함한 군수품을 운송하는 병력은 오십만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유가 있다면 적의 군량을 불태우는 것 보다는 탈취하는 편이 훨씬 좋다. 손자병법에서 전쟁에 필요한 물품은 적국에서 취하라 하였으니,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었고 나아가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탈취하려 했던 일본군은 병법의 정석대로 용병을 한 것이고, 앞서 수양제의 대군을 맞아 청야전술을 사용했던 고구려는 대륙으로부터 원정왔던 수나라 군대의 취약점을 잘 알았던 셈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모 지휘관처럼 '우리는 풀만 뜯어먹고 살 수 있으며 필요한 자원은 약탈로 충당하면 된다.'는 망상을 하다가는 끝장이다. 왜냐하면 적군이 청야전을 계획했을 수 있으며, 약탈로 필요한 군량을 충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도 점령지의 민심획득이 싸움이 끝난 후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할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량미에서 군이 의미하듯, 군대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는 어휘이고, 역사적으로 보통 근대까지의 기록에서 언급된다. 군대 1종 창고에 있는 쌀포대들에는 군량미라고 인쇄되어 있다. 다만 위키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한민국 장병들은 짬밥이라는 은어를 쓰기 때문에 군량미는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사극 등의 역사물에서 전투 식량은 쌀만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벼농사가 발당하지 못했던 과거의 시대상을 감안하면, 백미보다는 잡곡이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군량미(米)라는 이름 때문인지 사람들로 하여금 밥만 먹고 전투하는 거냐는 의문을 갖게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몽골이나 흉노 등의 유목제국들은 보르챠처럼 가축을 도축해 말린 고기를 주로 사용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진격 속도가 더 빨랐다고 한다.

시대나 배경에 따라 달랐겠지만, 잡곡밥과 함께 먹는 찬거리는 별로 없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쌀밥만 먹기에는 맛이 없고, 하루종일 전장에서 고생하며 땀을 비오듯 흘렸을 장병들에게는 짭짤하고 맛깔난 반찬이 반드시 필요했겠지만, 이것은 잘 언급되지는 않는 편이며 사서에서는 군량미에 포함되어 언급되는 것 같다. 사극이나 사서에 부식에 대한 표현이 없는 이유는 이를 굳이 기록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종이가 아닌 비단이나 죽간 혹은 쪼갠 나무에 기록을 했던 고대에는 이러한 물건들이 지녔던 부피 때문에 책의 권수가 수레로 옮겨야 할 만큼 많았다. 때문에, 고대의 문집들은 핵심내용만 간략히 추려적었으며, 그러한 습관이 종이가 발명된 후에도 이어졌고, 인류가 이러한 습관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손자병법만해도 내용이 상당히 짧고 간략하다. 시시콜콜한 자세한 설명 따위는 없다. 이렇기에 어떠한 문헌의 내용에 주석을 다는 학문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서에 시시콜콜한 반찬이나 기타 부식이야기 따위는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여기는게 타당하다. 삼국시대에 제갈량의 군대는 무와 순무를 반찬으로 먹었다고 서신이 남아있고(아마 단무지처럼 염장한 순무가 아니었을까 한다. 촉한은 정염을 국가적인 산업으로 삼고 있었을 뿐더러, 우리의 김치처럼 순무도 소금으로 절이면 보존성이 월등히 높아진다.), 원술의 군대가 강에서 채집한 물풀과 다슬기를 끓여 먹었다는 기록 정도다. 그러나,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를 떠나 장병들이 먹은 주된 반찬이자 부식은 소금이다 소금 이외에 간장이나 된장 같은 조미료도 반찬의 일원이었으며, 베나 덩굴 등에 절였다가 식사 때 물에 풀어 사용하기도 했다. 특별식으로 가축이나 멧돼지등을 잡아 술과 함께 장병들에게 공급했지만 이런 특혜는 싸움에서 크게 이겼을 경우나, 중요한 전투에 앞서 장병들의 체력을 증진시키고 사기를 고무시키려는 목적을 지녔거나, 혹은 진중에 기쁜 일(적장 투항)이 있었을 경우에 해당되었다. 반대로 진중에 완전히 군량미가 떨어졌을 경우에 더 멋진 식사가 장병들에게 제공되었는데, 이는 성내의 가축들이나 군용 말을 잡아서 먹는 것이였다. 당시 전투에서 군용말이 오늘날의 탱크와 같은 역할을 했고, 또한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군용말을 잡아 군량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장병들이 정말 굶주림에 허덕여 어쩔 수 없을 때 감행되었다.

국가의 정규군이자 조위가 정촉호군이라는 기병대를 따로 운용해 상대할 정도로 정예병이었던 촉한의 군대나, 원소에 이은 거대 군벌이였던 원술군의 전투 중의 식생활이 이런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다른 군벌은 좋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지 더 나았던 식생활을 영위 했을리는 없다. 실제로 삼국시대보다 1300년이나 뒤인 일본전국시대의 병량이 쪄서 말린 현미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순무나 다슬기를 반찬으로 삼는 것은 어느정도 경제력이 받춰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전장에서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을 배급받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정규군이 아닌, 의병이 전투시에 고두밥, 말린 어패류, 시래기 등을 가지고 다녔다는 일본측 기록도 있는 것을 미루어 전시 중에 현지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식자재를 보급했던 것 같다.

그나마 제대로 식자재를 관리하고 조리할 수 있는 진중에서는 그나마 제대로 밥과 반찬을 해먹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군대에서 육류 보급을 위해 가축을 도축하거나 사냥 등을 했고, 이것을 따로 관리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해안가 쪽으로 가면 청어, 명태, 조기 등등 다양한 생선과 김, 미역, 톳 같은 해조류도 비교적 잘 해 먹었다. 장병들 입장에서도 먹는 것은 사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제대로 기풍이 잡힌 군대라면 가능하면 군사들을 잘 먹이는 것은 당연하다. 한나라 때 비장이라 불리던 명장 이광도 사냥한 짐승을 모든 병사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정유재란 발발 당시 보급상황이 극도로 나빠진 상황에서도 무짠지에 보리밥, 쇠기름 뜬 무국을 저녁식사로 냈으며, 인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여 된장을 푼 생선탕을 군사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군량미는 곡식이었으므로 보관기간이 긴대다가 화폐 대신 교환물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므로, 고대·중세 시대에는 쓰임새가 다양한 귀한 물품이었다. 그래서 군량미를 횡령하는 관리도 빈번했다. 비슷한 개념으로 조선시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었던 환곡제도를 생각해보라. 조조가 군량 담당을 벤 역사적 사례는 군량미가 떨어졌음을 알게 될 병사들이 느낄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한 것도 마찬가지로 원소의 병사들이 당장 며칠 먹을 식량은 지니고 있었겠지만, 긴 교착상태를 견뎌낼 자신감(이겨도 굶는다)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조조는 허유가 투항했을때 그의 면전에서 '군량이 아직 며칠 분은 남아있다.'며 연거푸 거짓말을 했다. 군벌들이 군량미 확보에 목을 맨 것도(연의 초반부를 보면 병량을 빌려주네, 빼앗네 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군대의 유지와 사기 문제도 있었겠지만, 식량확보를 함으로써 이를 이용하여 전란에 흩어진 유랑민을 군대로 흡수하고 세력을 불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초한지에서는 진승과 오광의 반란군을 토벌한 장한이 승전 후 진채에 밥을 지어두고 죄수병사들에게 "먹고 싶은만큼 실컷 먹어라."라고 한 것만으로도 사기가 크게 올랐다는 장면도 나온다.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고대에 하층민들에게는 그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국민소득 1,000달러 미만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그래도 밥은 제대로 주는 군대에 입대하려는 빈곤층의 사람들이 넘쳐난다. 응?

당연한 소리지만 먹을 게 없으면 아예 싸울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지연의의 관도 전투.

전래동화로 「군량미 도둑」이란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