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Grieg (1843. 6. 15. ~ 1907. 9. 4. )
스칸디나비아의 쇼팽[1]
노르웨이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1 생애
1843년에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1849년에 6살 때 악보읽기와 짧은 피아노 연습곡을 배웠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었는지 일기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노 연습에 염증을 느꼈다.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피아노를 배웠더라면 음악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썼다. 1859년에는 노르웨이 바이올리니스트 오울 볼이 그리그와 만났는데, 그는 그리그에게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라이프치히 음악원으로 간 그리그는 실망했다.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교육환경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피아노곡을 작곡했는데,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 3개의 피아노 소품(1860), 4개의 피아노 소품 Op.1(1861)이 있다. 1864년에는 같은 출신의 작곡가 노드라크 [2]를 만났다. 노드라크는 그리그에게 민족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해에 사촌동생이었던 니나와 약혼을 했는데, 그 때 나온 작품이 가곡 '그대를 사랑해' Op.5-3이다.
노드라크와 그리그는 민족음악의 발전을 약속했으나, 2년 뒤인 1866년에 노드라크는 요절하고 말았다. 이 때에 나온 작품에 '노드라크를 추억하는 장송행진곡 A단조'가 있다. 그리그는 노드라크와의 약속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말년에 그것을 지키게 되었다. 노드라크에 대하여 그리그는 “노드라크는 음악을 뛰어넘어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그리그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리그는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에게 극장의 일을 부탁한다. 그러나 극장주 비외르손은 거절한다. 이 사건은 노르웨이 국민주의 음악의 발전을 늦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드라크가 사망한 해인 1866년에 그리그는 노르웨이 음악만을 위한 연주회를 갖는데, 이 때 나온 작품이 바이올린 소나타 1번 F장조였다. 이 작품은 리스트가 극찬을 했다. 그 후 리스트는 그리그를 후원해 주었다. 1867년에는 니나와 결혼했다. 2년 뒤인 1869년에는 노르웨이 민요의 악보 “고금의 산중음악”을 입수하였다. 이것을 연구한 그리그는 이후 진정한 민족음악을 작곡하는데 유용하게 쓰기 시작했다.
1870년에는 그리그의 유일한 협주곡인 피아노 협주곡 A단조[3]를 작곡하게 된다. 이 작품을 보고 리스트가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대로만 계속 하십시오."라고 칭찬을 했다.
1874년에 입센으로부터 페르귄트에 들어갈 연주용 음악을 의뢰 편지를 받았다. 그리그는 이 난해한 희곡에 대하여 상당히 고민했으나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이 부수음악 페르귄트였다. 그 후 1876년에 이 부수음악을 가지고 각각 4개의 곡을 가진 2개의 모음곡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작품이 초연을 할 당시에는 입센과 그리그 모두 초연 때 모두 불참하였으나 이후 이 곡이 성공하자 입센은 그리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 곡은 후에 그리그를 평생 먹여 살리는 곡이 되었다.
1877년에는 현악 4중주 G단조를, 1883년에는 첼로소나타 A단조를 작곡하는 등 실내악 부분에서도 작곡을 진행하였다. 2년 뒤인 1885년에는 현악합주곡 '홀베르크 모음곡'을 작곡하였다. 1887년에는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를 작곡하였다.
이 때 즈음에 그리그는 훈장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훈장은 정말 쓸모 있는 물건이야. 집 가방 위에 훈장을 올려놓으면, 세관원들이 친절하게 대하게 해준다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훈장을 좋아했다.이건 비꼬는 말 아닌가?
1894년에는 자신의 피아노 작품인 서정 소품집에서 발췌하여 관현악으로 편곡한 서정 모음곡을 작곡하였고, 1896년에 피아노곡 19개의 노르웨이 민요들을 작곡하였고, 1898년에는 베르겐 음악제 감독에 취임했다. 그리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뽐내게 되었고, 같은 해에 피아노곡 3개의 피아노 소품, 관현악곡 교향적 춤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 1901년에는 합창곡 “올레 불에게”, 1906년에는 합창곡 “오래된 노르웨이 교회 멜로디에 의한 4개의 시편”을 작곡하고 1907년에 사망하였다.
2 작품 성향
노르웨이의 쇼팽이라 불릴 정도로 피아노곡을 많이 썼으며, 실내악, 관현악, 합창곡, 가곡 등에서도 성과를 드러내었다.
3 주요 작품
3.1 관현악
- 교향곡 C단조 [4]
- 연주회 서곡 ‘가을에’
- 노드라크를 기억하는 장송행진곡 A단조
- 피아노협주곡 A단조
- 부수음악 ‘페르귄트’ Op.23[5]
- 현악합주곡 홀베르크 모음곡
- 페르귄트 모음곡 1번 Op.46[6]
- 페르귄트 모음곡 2번 Op.55
- 3개의 관현악 소품 Op.56
- 교향적 무곡
3.2 실내악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F장조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A단조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G장조
- 피아노 3중주 안단테 콘모토 C단조
- 현악 4중주 1번 G단조 Op.27
- 첼로소나타 A단조
-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 현악 4중주 2번 F장조(미완성)
3.3 피아노
- 3개의 피아노 소품 EG105
- 4개의 피아노 소품 Op.1
- 유머레스크 Op.6
- 피아노 소나타 E단조 Op.7
- 서정 소곡집 1~10권
- 노드라크를 기억하는 장송행진곡 A단조(피아노가 원곡)
- 25개의 노르웨이 민요와 춤곡 Op.17
-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 G단조 Op.24
- 두 개의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즉흥곡 Op.29
- 오래된 노르웨이 멜로디에 의한 변주곡
- 19개의 노르웨이 민요 Op.66
- 노르웨이 농민 춤곡 Op.72
3.4 가곡
- 마음의 선율 Op.5
- 아이들의 노래 Op.61
- 6개의 노래 EG177
- 연가곡 산의 요정 Op.67
3.5 합창
- 홀베르크 칸타타
- 올레 불에게
- 오래된 노르웨이 교회 멜로디에 의한 4개의 시편
- ↑ 혹은 노르웨이, 북유럽의 쇼팽이라고도 한다.
- ↑ 1842~66
-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절망상황에서 나오는 노래가 이 노래중 1악장이다
- ↑ 작곡가가 악보에 " 연주 금지 "라고 썼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연주되었다.
- ↑ 이 곡의 두번째 악장인 '오제의 죽음'은 박정희 대통령 10.26 사건 이후 TV에서 사용되었다. 2005년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주요 등장인물의 죽음 장면마다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 ↑ 유명한 곡인 산왕의 궁전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그 분이 아니다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