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1 Pianist

1.1 정의

피아노 치는 것을 직업으로 연주하는 사람.

1.2 개요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는 진입장벽이 낮지만 계단형식으로 발전하는 실력과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노력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진입장벽은 타 악기에 비하여 상당히 높다.

피아노의 진입장벽

  •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누르면 건반 액션을 통해 해머가 피아노 현을 강하게 때리면서 소리가 난다! 하지만 바이올린 같은 경우 깨끗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 손으로 활을 올바르게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냥 활을 잡고 현에 긁었다간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단식으로 발전하는 실력

  • 입시, 전공, 취미생 사이에서 에튀드는 연습할수록 미스가 난다. 라는 농담조가 있을 정도로 피아노의 실력향상은 상승곡선이 아닌 계단형이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부분을 포기하고 다른 곡을 연습하다 다시 돌아오니 안 되던 부분이 자연스럽게 연주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많은 테크닉들 중에 아직 접해보지 않은 테크닉을 연습하다 벽에 부딪혀 포기하고 다른 쉬운 곡에서 같은 테크닉을 접한 뒤 손이 익숙해져 안 되던 부분이 쉽게 넘어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서양에선 체르니와 하농이 주 교재로 쓰이지 않는다. 테크닉은 작품 속에서 만나서 익히고 점차 레파토리를 늘려가는 것이 피아노 실력 향상의 지름길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3 피아니스트가 하는일

"당장 작품(곡) 하나를 완성시킨다" 라는 것은,

  1. 1차원적으로 악보를 읽으면서 손에 익히고 외운(암보)후, 스타카토, 레가토 등의 기호적 표현(아티큘레이션), 작곡가가 의도한 멜로디 표현(프레이징, 구절법), 건반터치 방법, 팔과 손목의 움직임, 몸의 움직임, 건반 상에서 손가락의 위치,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번호등을 완성한다.
2. 2차원적으로 작곡가가 원하는 의도대로 강약조절 즉 크레센도, 데크레센도 등(다이나믹), 작곡가가 의도한 빠르기 등을 완성한다.

<보통 여기까지 오면 작곡가의 의도대로 음악이 해석됐기에 들어줄 만한 음악이 나온다.>

3. 3차원적으로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여 그 심상을 음악에 적용하는 것. 가장 난해한 부분으로 여기서부턴 연륜, 재능의 영역이라 위 부분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상당히 추상적이다. 어느 정도로 추상적이냐면 손가락이 마치 건반에 붙은 것처럼(스케일할 때 중요하다), 건반이 뜨거워서 손가락이 데이는 것처럼(스타카토할 때 중요하다), 이 부분은 마치 바이올린으로 켜듯이(월광소나타3악장 한부분에서), 폭풍이 닥치기 전의 고요함(pp 피아니시모표현) 등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은 레스너마다 가르치는 것이 다르고 피아니스트마다 표현하는것이 다르다. 따라서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피아니스트마다 다른 느낌이 나는 이유. 이 부분이 특출나면 조금 모자란 테크닉 정도는 커버가 된다. 결국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 음악을 음악답게 연주하는 것

(실제로 테크닉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일본과는 다르게 서양에선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친다. 사실 음악적으로 표현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이 절대적으로 따라줘야한다. 결국 음악적인 요소에 더 중요점을 두어 연습한다면 테크닉 또한 자연스럽게 연마된다는 것이 정설.)

결국 작품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의식적으로 행하는 연습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무의식속으로 집어넣는 것이 바로 피아노 연습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연습을 하기위해선 충분한 숙면을 통한 맑은 정신상태, 연습 중 상당한 집중력, 손끝과 청각의 감각 극대화 등 상당한 육체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30분 가량이 지나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간단한 소곡(왈츠등)같은 경우 개인의 능력차에 따라 몇 시간, 하루이틀, 1주일 이내 등으로 걸린다. 하지만 대곡(루트비히 판 베토벤 / 소나타등) 또는 한 작품의 시간이 매우 긴곡(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은 한두 달을 넘어 년 단위로 갈수도있다. 오버함

콩나물 대가리와 건반을 일대일 대응시켜 단순히 손가락의 움직임에 만족했던 사람들도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연주에 한번 영혼을 불어넣어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런데 그게 쉽게 되야 말이지..

1.4 성장과정

과거에 위대한 피아니스트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조기교육을 받았으며 십대의 나이에 이미 피아노 테크닉을 통달하고 대곡을 작곡하는 등의 천재성을 보인다. 조기교육이 중요한 이유? 사실 피아노에서 조기교육은 절대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훈련된 손가락은 나중에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는데 손가락의 힘이나 유연성, 독립성에서 늦게 배운 사람과는 차원이다르다. 하지만 늦게 시작했다고 못 할 것도 없다. 초등학생때 잠깐 1년 배우고 공부하다가 대학생 때 배우기 시작해서 국제 콩쿨에서 입상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40살까지 의사로 살다가 피아니스트로 꿈을 전향하여 콩쿨에서 우승한 사람도 있다. (수정바람)

1.5 유명한 피아니스트 목록

1.5.1 근현대 피아니스트

1.5.2 현대 피아니스트

2 책/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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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의 포스터.

2차세계대전의 참상을 여실히 알려준 명작 중 하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의 저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로만 폴란스키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영화. 폴란드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침공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그렸다. 영화는 2002년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 주연상 그리고 각본상 수상.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3] 국내에선 2003년 1월 3일 개봉. 내용은 실화에서 상당히 각색되어서 감독 본인(과 그 가족)이 겪었던 부분을 섞었다.

홀로코스트인종차별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는 홀로코스트 영화의 수작. 폴란스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편향적으로 유대인은 희생양으로, 폴란드인은 나라를 잃은 애국자들로, 나치 독일은 무조건 전범으로 비춰주는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르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상을 균형있게 비추려고 노력했다고.[4] 물론 나치의 만행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도 잊지 않았다.

2015년 6월 18일 한국에서 재개봉했다.

2.1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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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덱 슈필만이 폴란드 공영방송에서 쇼팽의 야상곡 C# 마이너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슈필만과 그 가족들은 바르샤바에 고립된다. 처음, 슈필만의 가족들은 독일의 침공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 방송을 들으며 환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폴란드에 직접적 군사개입을 하지 않았고,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시작된다. 바르샤바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부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다비드의 별 휘장을 달도록 지시한다. 슈필만은 한 폴란드인 첼리스트 도로타[5]과 가까운 관계가 되어가나 찾아가는 카페마다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심화하여 바르샤바에 대규모 게토를 조성해 3년 동안 그들을 격리하고 차츰 고사시킨다. 슈필만은 당시 추려놨던 물건을 팔다가 게토 내 식당에서 피아니스트로 근무한다.

어느 정도 인원이 추려지자 나치 독일군은 노약자부터 먼저 아우슈비츠로 보내 처리한다. 슈필만도 가족들과 함께 끌려갈 처지였지만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경찰이었던 친구 이츠학의 도움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빠져나오게 된다. 게토로 도망가서 노역을 하던 슈필만은 유대계 폴란드인들이 게토 안의 나치를 습격하기 전에 게토를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6]들의 도움으로 숨어 산다. 그러나 그들도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되고, 슈필만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게 되는데 바로 도로타의 남편이었다. 슈필만은 도로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갖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만다. 이후 도로타와 남편의 도움으로 새로운 도피처를 마련하나 도로타 부부의 부탁으로 슈필만을 돕기로 했던 안텍은 그의 도피자금을 횡령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감자에 핀 꽃까지 떼어 먹을 정도로(...) 먹을게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 하는 등 고생을 겪는다.

이후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고 자신이 숨던 곳이 독일군에게 공격받자 슈필만은 그곳에서 빠져나와 파괴된 병원으로 이동한다. 바르샤바 봉기가 진압된 이후 독일군이 건물에 불을 지르기 시작하자 그는 예전에 간신히 빠져나왔던 게토로 다시 들어간다.

그 이후 게토의 폐건물 다락방에 숨어서 허기와 추위를 견디며, 게토를 뒤져가며 먹을것을 구해서 살던 중 폐허가 된 집에서 발견한 큼직한 통조림을 발견한다. 그 이후 통조림 따개가 없어서 힘들여 따는도중, 벽난로 사용할때 쓰는 도구로 통조림을 따려다가 떨어트린 바람에 통조림이 바닥을 굴러가는데, 통조림 옆에 호젠펠트의 군화가 보이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슈필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호젠펠트는 슈필만이 유태인 도주자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누구냐고 묻는데, 그의 질문에 '피아니스트였다'[7]라고 답한다. 그러자 호젠펠트는 "피아니스트?" 라는 대사를 한번 하더니[8], 슈필만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켰고, 슈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생에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연주로서 쇼팽의 발라드 1번 G 마이너를 연주한다.[9] 폐허속에서 창가로 들어온 빛을 받으며 몰골의 상태로 필사적으로 연주하는 그 시점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슈필만의 입장과 호젠펠트의 입장을 복장으로 대조를 이루는것 뿐만 아니라, 폐허가 된 게토에서 연주되는 피아노라는 점과 초반에 말끔한 양복과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로 연주하던 슈필만의 입장, 동시에 걸리면 안되는 숨어사는 입장에서 그토록 치고 싶었던 피아노를 살기위해서 연주해야한다는 아이러니 등[10] 여러가지 의미에서 대조와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명장면이다.

슈필만이 연주가 호젠펠트의 마음을 움직였는지[11] 다른 나치와 달리 호젠펠트는 유대인인 슈필만을 즉결처형하지 않고, 그 이후로는 직설적으로 여기서 숨어사는 유태인이라는 것을 물어보고, 맞다고 대답하자 어디서 숨어사는지, 먹을것은 있는지만 확인하고 가버린다.

그 이후부터는 호젠펠트가 슈필만의 은신처에 들려서 식량을 지원해주며 숨겨준다. 그러다가 점차 소련군의 공격이 점점 거세지며 독일군은 퇴각하게 되는데, 호젠펠트는 슈필만을 마지막으로 만나고는 식량을 넘겨주며 퇴각 사실을 알렸다. 이 때 슈필만이 감사함을 나타내자 신께 감사하라며 말한 뒤 추워보이는 슈필만에게 자신의 코트를 넘겨주었다.

호젠펠트: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할건가?

슈필만: 다시 연주를 해야겠죠. 국영방송에서
호젠펠트: 이름이? 꼭 한 번 들을려고
슈필만: ... 슈필만입니다
호젠펠트: 슈필만이라...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로군

하고는 이렇게 호젠펠트와 슈필만의 마지막 만남이 끝이난다.

특이한 점은 나치가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을때에도 상황이 최악까지 악화되었기보다는 서서히 가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여러가지 연출을 통해서 시사하고 있다. 첫번째로는 슈필만의 복장이 처음엔 말끔하다가 서서히 지저분하고 몰골처럼 바뀌어간다. 처음에는 양복에 넥타이에 머리 스타일도 아주 깔끔하게 유지하다가 복장이나 머리 스타일이 여러 차례를 거쳐 지저분해져간다. 피아노 역시도 그러한데, 처음에는 좋은 환경에서 치다가 그 다음에는 식당에서 치고 중간에 시끄럽다는 요청때문에 잠깐 연주를 멈추거나 해야하는 환경에서 친다. 그 이후로는 피아노에 손도 못대고 허공에서 건반만 치거나 주변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면 거기에 귀를 대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나, 나중엔 음악이나 악기도 없이 그냥 상상만 하며 허공에다 건반치는 식으로 악화되는 느낌.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호젠펠트를 만날때는 그야말로 바닥 중 바닥. 수염은 덥수룩한 털보 수준으로 못 깎았고 옷은 심하게 헤지고 지저분하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는다.

독일군이 떠나고 소련군이 바르샤바로 온 걸 보고 숨어 지내던 생존자들이 하나둘 나온 걸 보고 슈필만도 밖으로 나와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잠겨 사람들을 막 껴앉는데, 이 때 독일군 코트를 그대로 입고 있었던지라(...) 이때 관객들은 배드엔딩을 상상했다. 다 산판에...독일군으로 오해받아 소련군이 총을 쏴대는 바람에 하마터면 총 맞고 죽을 뻔 한다. 총격을 간신히 피한 뒤 자신이 폴란드인이라고 소리쳐 확인받고 겨우 오해를 푼다. 몇 안되는 개그씬 통조림 힘들게 따다 만났다며 호젠펠트가 통조림 따개를 주는 장면도 있긴하다

슈필만: "쏘지 마요! 폴란드인이에요! 나 폴란드인이라고요!"

소련군 1: (사격 중지 후) "나와 봐!"
소련군 2: (슈필만의 얼굴을 보고) "... 독일인 아닌데?"
소련군 1: "독일군 옷은 왜 입고 있어?" What is the f**king coat?
슈필만: "...추워서."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인민공화국에서 피아니스트로 다시 활동하게 된 슈필만은 동료 음악가로부터 호젠펠트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과거 자신을 도왔던 호젠펠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그 독일군 수용소를 찾아갔으나, 호젠필드는 이미 다른 수용소로 이송된 뒤였기 때문에 슈필만을 만나지 못하고 사망한다.

2.2 연출의도

음악에의 열정으로 가득찬 음악가나 비극의 유대인 주인공이 아닌, 전쟁을 맞닥뜨린 평범한 인물을 그려내려 한 영화.

감독은 나치 독일은 무조건 전범으로 비춰주는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른길을 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상을 균형있게 비추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중 하나인 슈필만은 어떠한 강력한 힘 또는 다수의 집단 앞에 맞서싸우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우리라는 인간상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들처럼 독일군의 부당한 대우, 핍박당하고 파괴당하는 유대인을 과장하여 표현하지 않고 모두가 가진 경험, 당면한 부당한 일에 대해 어떠한 의의제기나 해결을 하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경험을 슈필만이라는 인물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2.3 평가

사실 이 영화가 상을 받게된 건 기존에 있던 시나리오 구성에서 많이 벗어나는, 그 당시엔 매우 신선한 연출법으로 뻔할 수 있는 소재와 주제를 현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 서술한 주제를 뒤에 숨겨놓고 피아니스트란 제목의 위장과 마지막 피아노 연주 하나로 살짝 포장을 해, 영화를 읽는 시각이 부족한 일반인들로 하여금 왠지 재미없다고 하면 내 자신이 수준이 떨어지는 것 처럼 받아들여지게 되는 영화를 만들어놔 "정말 감동적이다", "재미있다.", "음악의 열정을 보여준 영화" 하는 말을 하게 만들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관객들을 주제와 엮어 한번 더 돌려까기를 선사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국내 리뷰 외국 리뷰

신가하게 정말 감독의 의도대로 전반적인 관객의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고 오직 영화를 볼 수 있는 소수의 평론가들이 정말로 감독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높은 점수들을 준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2.4 등장인물

2.4.1 브와디스와프 슈필만

그의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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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에이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 1973-)가 분했다. 원래는 폴란드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였고[12] 게토에서도 초창기엔 피아니스트로 일했으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간 뒤에는 일반 노동자로 일했다. 3년이 넘게 도피생활을 했다. 브로디는 이 역할로 만 29세에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생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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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했던 슈필만은 위와 같다. 1911년에 태어나 2000년에 별세.

2.4.2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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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헨리크(Henryk). 블라덱의 동생으로 영국 배우 에드 스토파드[13](Ed Stoppard, 1974-)가 분했다. 유대인들이 대규모 강제이주를 당한 이후론 등장하지 않는다. 정황상 트레블링카[14]로 끌려간 것으로 보이나 생존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게토에서 강제이주 당하기 전에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샤일록이 한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찌르면 피가 나오고 간지르면 웃음이 난다." 나치도 싫어하지만 나치에 협조하는 유대인 경찰을 싫어한다. 유대인들이 무장 봉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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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가족들: 전부 트레블링카로 끌려간다. 블라덱과 유렉 말고도 레지나와 할리나라는 딸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맡은 배우는 영국인 프랭크 핀리(Frank Finlay, 1926-2016)와 같은 영국인 모린 리프먼(Maureen Lipman, 1946-). 레지나와 할리나를 맡은 배우는 줄리아 레이너(Julia Rayner)와 제시카 케이트 마이어(Jessica Kate 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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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차크 헬러(Itzak Heller). 배우는 로이 스마일스(Roy Smiles)로 영국가수 겸 극본가, 극작가인데 가끔 배우도 겸업한다. 적절한 이미지가 없어 배우 본인의 사진으로 게재한다. 작중에서 블라덱의 친구로 유대인이나 나치에 협조하는 유대인 경찰로 나온다. 게토 후에 등장하지 않는다. 유대인 경찰이긴 하지만 뼛속까지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본인도 먹고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며 다른 유대인들은 죽게 해도 친구인 블라덱만큼은 가스실 행을 면하게 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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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타(Dorota). 블라덱의 연주를 보러 블라덱의 친구인 오빠 유렉을 졸라 방송국에 왔던 첼리스트. 블라덱이 호감을 갖고 연락해 데이트를 하나, 유대인들이 게토로 끌려간 사이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유렉은 블라덱이 게토에 있던 사이에 사망했다. 도로타의 남편은 슈필만이 도주하는 걸 돕는다. 슈필만 자신이 애정을 품고 있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에 슈필만의 표정속 복잡한 감정은 영화의 백미중 하나이다. (처음에 슈필만을 돕는 여자는 도로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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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영국 출신의 에밀리아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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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름 호젠펠트 대위(Captain Wilm Hosenfeld).볼프강 폰 슈트루커 독일군 대위로 블라덱을 숨겨주고 먹을 걸 챙겨주기도 한다. 후에 소련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다가 1952년에 스탈린그라드에서 사망한다. 배우는 독일군 전문 배우로 불리는 토마스 크레치만(Thomas Kretschmann,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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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은 이렇다. 1895-1952. 원래는 선생이었는데 전쟁이 나면서 독일 육군에 왔다. 사회정의를 강조하는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고 당시 불던 독일의 애국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고민을 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아내 안네마리에게 평화주의적 영향을 받게 됐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17년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철십자 2등 훈장을 받았다. 1939년 다시 징집되어 전선으로 나갔는데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전까지 히틀러와 나치독일에 대한 충성심은 변치않았다고 한다.그는 폴란드어를 배우기 위해 폴란드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금지된 행위임에도 성당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다. 포로수용소를 짓는 임무를 맡은 동안엔 자기 직권을 남용하여 폴란드인들이 가족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정해진 형기보다 일찍 내보냈다. 그리고 유대계 폴란드인인 블라덱 슈필만이 숨는 걸 도와줬다. 1945년에 소련군에게 붙잡혀 25년형을 선고받고 고문도 당했고 고문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1952년 사망했다. 폴란드인들이 그가 한 행동을 알려 탄원했지만 소련독일군에게 자비가 없었다. 슈필만의 아들인 안제이 슈필만(Andrzej Szpilman)이 호젠펠트를 이스라엘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솀(Yad Vashem)에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이니 세계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15]에 추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09년 추가되었다.

3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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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ianiste
영화 《피아니스트》의 포스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합작영화로,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쓴 '피아노 치는 여자'[16]가 원작이다. 감독은 미하엘 하네케.[17] 냉철한 완벽주의자이지만 조금은 뒤틀린 성적 욕망을 가진 중년의 독신 교수 에리카 코후트와, 젊고 잘생긴 제자 발터 클레머의 불온한 관계를 그리고 있다. 설정만 본다면 사랑과 전쟁 스타일의 3류 성인영화스럽지만 치밀한 심리 묘사와 호연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이사항은, 국내에서 위의 《피아니스트》와 거의 동시에 개봉(2002년 12월 20일 개봉, 대략 2주 차이)했는데, 이름이 아예 같아 사전정보만으로 예매했다 낚이는 경우가 있었다. 2의 반전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3의 관능영화로 오해받고 백안시 당한 사람들에게 묵념. 그 반대는? 게다가 둘 다 칸 영화제 수상작이어서 더욱 헷갈리기 쉬웠다.

영어권에서는 1.은 피아니스트 그대로, 2.는 《피아노 선생(The Piano Teacher)》로 개봉했다. 일본에서는 1은 전장의 피아니스트戦場のピアニスト로, 2는 피아니스트ピアニスト로 개봉.
  1. 표준 중국어 표기에 따르면 리윈디
  2. 표준 중국어 표기에 따르면 왕위자
  3. 다만 폴란스키 감독은 시상식에 불참했다. 자세한 내용은 로만 폴란스키 항목 참조.
  4.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숨어지내는 같은 유대인의 음식을 뺏어먹는 유대인과 슈필만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쳐보게 한 뒤 몰래 도와주는 독일군 장교인 빌름 호젠펠트. 이 분은 실제로도 슈필만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몰래 도와준, 인간의 양심을 지킨 군인이었다. 폴란드가 침공당하자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 기뻐하며 만찬을 즐긴 주인공 가족의 모습과, 이후 독일군이 폴란드를 거침없이 점령해버린 모습을 허탈하게 비추는 장면도 인상깊다. 영프 연합군은 선전포고 후에도 특별한 무력행동을 하지 않았고, 사실상 폴란드는 배신당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장면.
  5. 공영방송국이 포격당할 당시 소개 받은 여성으로, 슈필만과 매우 가까웠던 친구의 여동생이다.
  6. 폴란드계 레지스탕스
  7. 현재형인 Ich bin으로 말하기 시작하다 멈칫하더니 이윽고 과거형 시제인 Ich war ein Pianist로 정정한다. 기나긴 전쟁과 도피생활로 흔들리는 슈필만의 심리를 미묘하게 표현한 대사. 그 뿐만 아니라 깔끔한 장교복과 군화를 입고 있는 호젠펠트와는 달리 누더기에 가까운 옷과 깎지 않은지 한참 된 수염으로 뒤덮힌 슈필만이 완전히 반대라는 점을 연출한다.
  8. 마치 '니가 그 모양 그 꼴로 피아니스트라고?' 라는 비꼬는 것으로 해석될수 있는 태도로 연출된다. 노골적으로 비꼬는 태도는 아니라 어느 정도 중의적인 느낌의 태도인데, 호젠펠트가 생사여탈권을 사실상 쥐고 있다보니 온 신경을 그의 태도에게 집중하고 있었을 슈필만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한번 다시 말해본것이라고도 생각할수도 있는 태도지만, 영화에선 호젠펠트의 태도에 카메라를 집중한 상태이다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비꼬는 듯하게 받아들여진다.
  9. 실제로 슈필만이 장교 앞에서 연주한 곡은,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만한 쇼팽 야상곡 C# minor였다고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10. 작중 중간에서 슈필만은 눈앞에 있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만 소리 때문에 칠수 없기 때문에 건반을 누르지 않고 건반 위의 허공에서 누르는 척만하며 치는 연출이 나온다. 그 이후에 숨어다닐때도 허공에다가 피아노를 치는 자세를 취하는 연출로 그가 얼마나 피아노를 치고 싶었지만 살기위해서 치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다.
  11. 실제 호젠펠트는 다른 유태인들도 많이 도와준 사람이지만, 자서전에서 묘사되는 당시 슈필만의 입장에서 호젠펠트가 유태인을 살려주는데 도움을 줄려는 사람인지는 알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그 시점에서는 알수 없다.
  12. 국영 방송에서 메인으로 피아노를 칠 정도이니 꽤 유명한 수준의 피아니스트인듯하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자네는 너무 유명해" 라는 듯한 발언이 있으며, 그 뿐 아니라 안텍이 삥땅을 쳤다지만 그의 이름으로 모금을 했을때 상당한 금액이 모였을 정도이니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꽤 명성이 있는 듯.
  13. 영국 드라마 Upstairs Downstairs의 홀랜드 경을 연기했던 배우이다.
  14. 아유슈비츠에 밀려 잘 안 알려져있지만 아우슈비츠 다음으로 많은 유대인이 죽은 곳이다.
  15. 유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홀로코스트 당시에 유대인을 구하는데 참여한 사람들
  16. 영화 제작 후 3년 뒤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7. 하네케 감독은 《피아니스트》로 54회 칸 영화제(2001)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62회 영화제(2009)에서 《하얀 리본》으로 황금종려상을, 65회 칸 영화제(2012)에서도 《아무르》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