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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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트 나프트 아바단 No.6
김귀현 (金貴鉉 / Kim Gwi-Hyeon)
생년월일1990년 1월 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남도 신안군
출신학교남해 해성중 중퇴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신체조건170cm / 60kg
프로입단2010년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아르헨티나)
소속팀CA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팀 (2005~2010)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2010~2012)
대구 FC(2013~2014)
경주시민축구단 (2015)
알 나스르 S.C.S.C.[1] (2015~2016)
사나트 나프트 아바단 (2016~)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2003년 아르헨티나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팀에 20만대 1의 경쟁을 뚫고 입단. 약 5년간의 유소년팀 생활을 거쳐 벨레스 사르스필드 프로팀에 계약을 맺어 활동했었다.

본격 대한민국 최초 남미 1부리거. 현지에서는 제2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라고 불린다고 카더라. 하지만 현재 리저브팀에 있으며 1군 데뷔는 아직 못하였다.

그러나 최근 CA 벨레스 사르스필드의 공식 홈페이지의 1군 스쿼드에는 김귀현의 사진과 신체 정보가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등번호가 아직 입력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1군 리그 정식 출전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귀현의 1군 데뷔가 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 법이 바뀌면서 2009년부터 스포츠 비자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김귀현은 그간 정식경기에 뛸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2012년 4월에 마침내 영주권을 얻음으로써 정식으로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 경기에서 즉시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등번호는 31번.

그의 플레이 특징은 역시 포지션에 어울리게 뛰어난 수비력과 패싱 능력. 청각장애인 부부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축구 선수로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남 김해에 위치한 축구교실에 들어갔으나 2년도 되지 않아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자신을 지도해주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코치로부터 성장 가능성을 인정 받고 2003년에 아르헨티나로 진출했다.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팀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과 리더쉽을 인정받아 주장까지도 해냈다. 이렇다보니 국내 축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손흥민과 더불어 굉장한 기대주로 알려지고 있었으나 그간 청소년 대표팀에는 한 번도 발탁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대한축구협회를 까기도 했으나...사실은 2008년 U-19 청소년 대표팀의 조동현 감독이 소문을 듣고 그를 테스트하기 위해 국내로 불러들였으나 귀국하자마자 치른 연습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부딪혀 무릎 인대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결국 제대로 테스트도 받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로 떠나야만 했다.

김귀현은 2011 시즌 K리그와 인연도 맺을 뻔 했다. 2010년 12월 대구 FC이영진 감독이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일대를 돌다 김귀현의 소문을 들은 것. 그의 활약 동영상을 살펴본 이영진 감독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이 때도 부상으로 인해 실력 발휘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인사만 나누고 해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국내팬들에겐 베일에 싸인 선수로만 남게 되는가 했더니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홍명보 감독은 수비력 부족에 대한 선수수급에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었던 상황인지라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11년 올림픽 대표팀 선수로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2011년 3월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 출전하여 전반 12분 정확한 로빙 패스를 성공시키며 김동섭의 선제 결승골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날 홍명보 감독은 김귀현에 대해 "김귀현이 함께했던 시간이 많지 않아 팀플레이가 부족했지만 본인의 기술은 잘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2012년 9월부로 벨레스 사르스필드와 계약이 끝났다. 현재 소속팀이 없는 상황이었으나 12월 17일 대구 FC에 입단했다.

2013시즌은 초라했다. 오프시즌에 허벅지 부상을 당해서 시즌 준비를 제대로 못했고, 이후엔 송창호, 안상현 등에게 밀려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다.

2014시즌에는 반 주전으로 뛰었으나 특출난 활약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시즌 끝나고 계약 해지로 팀을 나갔다.

2015시즌 K3리그 경주시민축구단으로 이적하였고, 9월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오만 프리미어 리그 알 나스르와 1년 계약을 맺었다.

2016년 6월 이란 프로리그 팀인 사나트 나프트 아바단으로 이적했다. 2012년 페르세폴리스로 이적했던 권준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는 2번째의 이란 진출이다. 다만 권준은 부상으로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기에 그가 최초로 이란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2 그외

그의 부모는 모두 청각장애인에다가 아버지 김직[2] 씨는 만성 폐질환으로 인해 시한부 삶을 사셨을 정도로 가정 환경이 불우한 편이다. 김귀현이 처음 대표팀(올림픽대표지만)에 발탁되어 3월 27일 중국과 평가전을 울산 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르게 되자 그의 부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경기장에 찾아와 직접 관람했다.

파일:Attachment/kimguihyun parents.jpg

울산 경기장까지 전남 임자도 고향 사람들이 찾아와 열띤 응원도 펼쳤고 이에 김귀현은 감사의 큰절을 올려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kimguihyun cheer.jpg
  1. 사우디의 그 팀이 아니다. 오만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팀.
  2. 아버지는 2013년 9월 22일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