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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영진 (李永鎭 / Lee Young-Jin) |
생년월일 | 1963년 10월 27일 |
국적 | 대한민국 |
포지션 |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69cm |
프로입단 | 1986년 럭키금성 황소 |
소속팀 | 럭키금성 황소/LG 치타스 (1986~1995) 오이타 트리니타 (1996) 안양 LG 치타스 (1997) |
지도자 | 안양 LG 치타스 트레이너 (1997)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코치 (1998~2005) FC 서울 수석코치 (2007~2009) 대구 FC 감독 (2010~2012) 청주대학교 축구부 감독 (2013~2014) 대구 FC 감독 (2015~2016) |
국가대표 | 51경기 2골 |
199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기근 | FW 고정운 | ||||||||||
MF 김현석 | MF 이영진 | MF 김주성 | MF 최강희 | MF 이상윤 | |||||||
DF 정용환 | DF 박현용 | DF 테드 | |||||||||
GK 김풍주 |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 해 팀이 준우승을 거두는 데 공헌하였다. 이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와 안양 LG 치타스의 트레이너 및 코치, FC 서울의 수석코치를 거쳤다.[1] 2009년 시즌 후 세뇰 귀네슈 감독이 물러나면서 FC 서울을 떠났으며, 뇌물수수 스캔들로 사임한 변병주의 후임으로 대구 FC의 감독에 취임하였다.
선수 시절 별명은 '악바리'였다. 중앙에서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뛰어다니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중앙미드필더로 94미국월드컵에도 출전했으며 그 전후로 국대의 중원에서 주전급 활약을 펼쳤다.
1991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미드필더)으로 선정되었고 1995년에서 1996년 사이에 황보관이 뛴 팀이기도 한 일본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친정 팀인 FC 서울만 만나면 펄펄 나는 경향이 있다. 2011년만 해도 FC 서울에게 홈, 원정에서 가리지 않고 모두 승리했다. 부족한 전력, 승부조작 파동 속에서도 꿋꿋이 대구 FC를 이끌었으나, 2011 시즌 후 구단의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대구 FC는 강등의 나락으로...가는가 했는데 그 다음에 온 감독이 무려 모아시르 페레이라 ㄷㄷㄷ
이후 유럽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와 청주대학교 축구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대구 FC에 조광래가 대표이사 겸 단장으로 부임한 후, 조광래 단장의 부름을 받아 2014년 11월 24일에 대구 FC의 감독으로 재선임됐다. 2011년 시즌을 마치고 해임되어 팀을 떠난 이래, 3년 만에 8대 감독으로 돌아와 대구 FC에서 못다 이룬 꿈에 재도전하게 되었다.
감독 복귀 첫 해에 챌린지 1위까지 달리며 승격의 꿈에 부풀어올랐으나, 막판에 상무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끝내 홈에서 열린 승격 PO에서 조덕제 감독의 수원 FC에 패해 아쉬운 복귀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6 시즌에도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승격을 노리고 있었으나, 8월 12일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다. 당시 3위로 충분히 클래식 승격이 열려 있던 상황이었지만,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못해 사임을 결심하게 된 듯. 일단 손현준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으며, 안정화를 우선하여 남은 시즌은 손현준 감독대행 체제로 계속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