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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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성애(金聖愛)
본관전주 김씨
국적북한
출생지평안남도 강서군
배우자김일성
학력평양여자사범학교 중퇴
생년월일1924년 12월 29일~2014년 9월(?)

1 개요

북한의 국가 주석이었던 김일성의 3번째 아내였다.
자신의 아들 김평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했고,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써 지미 카터와 김일성의 회담 등 공식 석상에 자주 나타났으나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은퇴 상태로 살았다.
2014년 8월 말-9월초 정도에 사망했다고 한다.#

2 생애

한국전쟁 시절 2번이나 포로로 잡힌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사람에게.
첫번째는 개전 3일째인 6월 28일 미아리 고개에서 행군중 소변보러 쳐졌다가 후퇴중 뒤쳐져 있던 한국군 이기봉에게 붙잡혔다. 소속은 4사단 18연대 문화부 소속이며 계급은 없고 분대 선전지도원이라고 밝혔고 따발총과 함께 군인증과 공산주의 정치 선전문, 김일성 개선기, 김일성 유격대 전사초 따위의 소책자를 갖고 있었다. 이때 자신은 고향은 평안북도 강계이며 외가가 있는 평안남도 순천 순천여자사범전문 재학중 조국해방전쟁에 참여 하였다는 말도 하였다. 군인증과 김일성 소책자를 돌려 달라고 하다가 안된다고 하니 "그럼 안녕하라요, 그리구 기 책 잘 간직하구 수령님 항일혁명 투쟁사 깊이 녕구하라요!"라고 하며 그데로 산속으로 도주 하였다.

두번째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장호원에서 이기봉이 10여명의 포로를 잡았는데 그중 하나가 한쪽 어깨에 피를 철철 흘리던 김성애였다. 그러나 이천극장에서 수용중 새벽 2시쯤 변소를 가는척 하다가 복도 경비를 맡고 있던 치안대 한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달아 났다.[1]

휴전 후 북한 호위국 여비서로 발탁되었다가 김일성과의 불륜으로 김평일을 임신하여 1957년 김일성과 결혼했다. 그후로 계속 권력의 정점에서 있다가 1973년 벌어진 인민대학습당 사저신축사건[2]으로 권력이 축소되고 몰락하고 만다. 여맹조직 역시 김성애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포조직들을 해체하여 김성애가 가질 수 있는 권력은 없어지고 야인이 되게 된다.

이후 해외 우방국가 원수들의 북한 방문시 김일성과 함께 영접에 나섰으나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보도용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나오지 않는 굴욕을 겪게 되었고, 이는 김일성이 맞은 마지막 외국 귀빈인 지미 카터 부처의 방문때도 이어졌다. 이후 김일성이 사망하였을때 장의위원회에 "미망인 김성애 동지"로 이름을 올린 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김성애의 이름은 북한 정계에서 사라지게 된다.

3 가족관계

배우자김일성
아들김평일, 김영일
김경진
오빠김광협
동생김성갑

4 이력

평안남도 평양여자사범학교 중퇴
조선인민군으로 한국전쟁 참전 [3]
북한 국가주석 영부인 자격으로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 역임

1998년 조선민주녀성동맹 위원장 직에서 해임
  1. 이기봉, <서울이 울던밤> 에서 발췌
  2. 1973년 김성애의 아들들을 나락으로 몰아내는 사건이 터지는데 김일성이 해방 직후부터 아껴두고 또 아꼈던 인민대학습당을 건설하려던 부지를 김일성이 방문했는데 호화로운 저택이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김일성이 놀라서 "뭐이야. 이게? 누구네 집이야?"라고 묻자 저택을 지키던 보초가 "해군사령부 정치위원 당비서, 김성갑 동지의 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곧 '인민대학습당 사저 신축 사건' 으로 번졌다. 김일성은 대노했고 당사자 김성갑을 불러서 매우 혹독하게 비판하고 질책했다. 그날 밤 지친 김일성이 관저로 돌아가서 김성애에게 "밥이나 먹자."라고 하자 한성격했던 김성애는 김일성을 구슬러도 모자랄 판에 바가지를 긁었고 "당신 가시어머니(장모)가 그런 집에서 한번 살면 당신 뭐 잘못 되는 거 있어?"라고 소리지르며 밥상을 뒤엎었다. 난데없이 뜨거운 국과 밥을 다 뒤집어 쓴 김일성은 폭발했고 그날 밤 둘이서 미친듯이 싸웠다고 한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김정일김성애와 그녀의 친족들, 친지들, 그리고 김성애의 아들인 김평일의 비리를 김일성에게 낱낱이 보고했고 다시 강도 높은 검열과 사상 검증을 실시했다. 그 결과로 이들 대부분은 숙청되어 권력의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3. 복무기간은 1950-1953년. 최종계급은 상사. 복무지는 북한 국가원수 집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