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김평일(슬램덩크)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image/022/2007/05/09/mb0510-1-2011.jpg
모자쓴 사람. 왼쪽에 있는 사람은 김평일의 아들(김인강)과 딸(김은송). 김은송은 결혼하여 평양에 살고 있다는 말이 있다. 한 중국 여배우를 닮았다반어법?
파일:Attachment/김평일/KimP2.jpg
파일:Attachment/김평일/KimP3.jpg
[1]
이름 | 김평일(金平日) |
본관 | 전주 김씨 |
가족 | 아버지 김일성, 이복 형 김정일, 슬하 1남 1녀 |
학력 |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 |
출생 | 1954년 8월 10일, 평양 |
1 소개
북한 주체코 대사.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의 아들. 김정일과 이복형제 사이이다.
2 개요
젊었을 적 김정일과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인 적이 있으며, 결국 김정일에게 패배해 권력다툼에서 밀려났다. 동시에 김평일의 어머니인 김성애까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곁가지[2]흑역사 취급. 김일성 사망 직후에는 갑자기 생활비도 대주지 않아 죽은 듯이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정일은 김성애와 그녀의 자식들을 곁가지로 취급했었다. 김정일은 김성애를 한번도 어머니라 부른 적도 없고 마주치기조차 싫어했으며, 김경진, 김평일, 김영일을 친형제로 여기기는 커녕 형님이나 오빠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3] 또한 늘 '수령님에게는 아들 하나, 딸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1991년 김경희가 중앙당 경공업부장이 되었을 때 '수령님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니 잘 도와주라'라고 했다고 한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는 누나 김경진과 동생 김영일. 동생 김영일은 독일 주재 대표부의 참사관으로 나가있다가 2000년 간질환으로 죽었고, 누나 경진은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 김광섭의 아내로 빈에 살고 있는데 이 누님이 키크고 날씬한 서구형 미인이라고. 그래서 풍만함을 최고로 치는 전통적인 미녀상을 물려받은 김정일의 유일한 여동생 김경희와는 아주 대조적이라는 말이 있다. 김일성의 첫번째 부인이자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이 키 작고 동글동글한 스타일이었는데, 2번째 부인인 김평일의 어머니인 김성애는 서구형 미녀였기 때문에 이렇게 신체적 특징을 물려받은 것이다.
김정일에 비해 김일성을 매우 닮았으며(특히 외모나 목소리), 키도 180cm위너에 미남형에 성품도 원만하여 숙부 김영주를 비롯해 혁명 1세대 원로들의 호감을 샀다. 그들은 김평일을 보면 김일성이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다고 아주 좋아했다. 그리하여 다들 다음 후계자 자리는 김평일이 이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4].
그러나 김일성의 환갑 때 항일 빨치산 1세대 원로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김일성이 "나의 아이들이 있는데, 누가 다음을 이어야 할 지" 넌지시 묻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확실히 후계자를 낙점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김평일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대다수의 원로들이 침묵을 하고 있는 와중, 가장 김일성이 총애하고 아꼈던 최현[5]이 입을 연다. "당연히 다음 대에는 형님 장손이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자가 있는데 다른 누가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말을 들은 김일성이 고개를 한참 끄덕인 후, "그래요? 다른 의견 없습니까?"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가장 친밀한 좌상인 최현이 김정일을 대놓고 지지하는데, 어느 누가 감히 나서서 "아닙니다, 안돼요. 그만두고 김평일이 합시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후계자 문제 잘못 거론했다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간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확정되었다.[6] 그렇게 북한판 조식이 탄생하였다
물론 김평일이 후계자의 위치에서 밀려난 일의 원인이 그 것 뿐만은 아니었다. 여기에는 김평일의 어머니인 김성애가 김일성과의 사이가 점차 틀어졌던 점도 작용했던 것 같다. 과거에 김일성이 인민대학습당 건축을 위해 선정해둔 부지가 있었는데, 그 곳에 김성애의 남동생인 김성갑이 집을 짓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김일성이 김성랍을 불러내서 꾸짖었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김성애가 김일성에게 이에 대하여 거칠게 항의하였다. 이로 인해 김일성의 기분이 크게 상해있던 틈에 김정일이 이를 노리고는 김성애 일가의 비리를 낱낱이 조사해서 김일성에게 보고해버렸다. 이로 인하여 김일성이 김성애는 물론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김평일도 멀리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김평일이 평양 남산고급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의 성적은 같은 학교 출신인 형 김정일보다 도덕, 일반 학과, 예술, 체육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높았다. 엄친아? 그래서 그 학교 졸업생들과 교사들은 언제나 김평일을 김정일보다 높이 평가하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믿고 있었다[7]. 이 사실을 감지한 김정일은 참을 수가 없어서 남산학교의 모든 학사기록을 소멸하기 위해 하수인을 시켜서 그 학교를 폭파해버렸다(…) 카더라. 이후 북한의 육군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 종합군사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 지휘관으로 복무한 경력도 있다. 대학 재학중이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군 입대를 독려하는 연설을 한 뒤 자신부터 인민군에 자진입대했다는 사실은 꽤나 유명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군경력이 전무한 김정일[8]이 이복동생에게 심한 컴플렉스와 질투심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9].
이렇게 어렸을 적엔 김정일보다 우세한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김일성도 김평일이 어렸을 적엔 자신의 후계자로 김평일을 낙점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생모가 일찍 요절한 김정일의 입장으로서는 계모 김성애가 마음에 들 리도 없을 것이고(…). 그 후 김성애가 정식 부인이 되어 정치적으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을 격하시키는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에 김정일은 성장 후에도 김일성과 김성애에게 큰 반감을 가졌다. 김평일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을 것이다. 후계자로 공인되고 권력을 잡은 김정일은 김평일의 존재를 두려워하였으며, 차후 그의 후손 및 세력이 북한에서 권력다툼의 씨앗이 될 것을 우려하여 김평일을 정치권에서 세력을 키우지 못하게, 외교관으로 임명해서 외국으로 쫓아 버린다. 1979년 주 유고슬라비아 주재 무관으로 발령난 이후부터 귀국하지 못하고, 가족들과 계속 유럽을 떠돌고 있다.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를 거쳐서 2015년 1월 체코 대사로 전보됐다.
3 여담
위에 언급했듯이 해외(주로 동유럽) 주재 대사 자리를 계속 돌고 있으며 사실상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유배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김정일은 김평일에 대해 느끼는 적대감이 강했다고 한다. 누가 김평일과 한 마디라도 수상한 대화를 한 일이 김정일의 귀에 들어가는 경우 북한에서는 곧바로 그 사람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탈북한 한 북한 관료는 "파티에서는 항상 김평일 주위에 1m의 공백이 있었다. 아무도 그와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여담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립되는 것을 싫어하는지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자꾸 다가와서 이야기를 하거나 내부 행사때 싫은 티를 내도 무조건 끼어들어서 참석하는 바람에 대사관 직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와 얼굴만 마주쳐도 몇분 몇초 단위로 무엇을 했는가 철저하게 보고해야 하는데다가 이상한 오해라도 생기면 바로 큰일이 나기 때문인데, 김평일은 그래서 직원들에게 천치 취급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안습. 그나마 숙부 김영주의 보호막이 없었더라면 김평일은 물론 그의 형제들과 친모 김성애까지 어떤 비참한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고 한다.
여러모로 보이지 않는 흑막의 이미지가 강한 김정일 정치 스타일에 비해 전격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타입.
탈북 귀순 연예인 김용은 그의 책 《머리를 빠는 남자》에서 김평일이 김정일보다 더 능력있다고 쓴 바 있는데 이 책에선 그가 김정일보단 평화적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회술했다.
2011년 7월 1일 가택연금 상태라는 뉴스가 떴다. 5월에 입북해서 현재까지 가택연금중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2011년 10월 폴란드에 체류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둘 중 하나는 오보였던 모양.
그리고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으로 인해 중대한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신지도부에 의해 잠재적 위협으로 낙인찍혀 더더욱 요주의 대상이 될 수도, 반대로 북한 내부 혼란을 틈타 새로운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될 수도 있는 것. 김일성 직계이면서 삼촌관계인 김정일의 아들들보다 더욱 정치적으로 경륜이 있기 때문에 향후 그의 행보를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북한판 연정토? 변수는 북한 군부의 동향.
2013년 11월 현재 여전히 겉돌이쩌리 신세이다. 2013년 초엔 폴란드 대부업체한테 돈 빌린 거 갚으라고 북한 대사관이 소송까지 걸렸다. 법원에서 기각하긴 했지만. # 여름에 한두달 정도 북한에 돌아와 지낸다고. 앞으로도 권력에 가까워질 일은 없어 보인다. 북한에서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외교관으로 인생 마칠듯[10].
2015년 2월 3일, 체코대사로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관련 기사
지난 2015년 7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대사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36년 만의 첫 평양 입국이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으로 인해 '곁가지'로 낙인찍혀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한 김평일을 36년 만에 평양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 김일성의 친동생 김영주까지 북한지방선거장에 등장한 모습을 공개했다 .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현재 진행되는 공포정치를 통해 통치기반을 잃을 것을 우려한 김정은이 이 두 인물을 통해 정통성을 인정받고 정권안정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탈북자출신 기자 강철환은 조선일보에 7월 22일 기고한 칼럼을 통해 북한내에 정치적 기반을 두지 못한 김평일을 활용해야 할 정도로 김정은의 권력은 허약하다고 보고있다.- ↑ KBS 대기획 '김정일'
- ↑ '김정일과 그의 참모들'이라는 책에 따르면 북한에서 '곁가지'라는 어휘에는 '이색적이며 분파적인 요소를 비겨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 ↑ 다만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쓴 '대동강 로얄패밀리'에서는 어렸을 땐 그래도 어린 동생들을 꽤 귀여워했고 후에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세 이복동생들을 대놓고 탄압하게 되었다고 한다.
- ↑ 여기에 김평일은 김정일보다 후계자로서의 위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러시아태생인 김정일과는 달리 김평일은 북한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백두혈통의 우위에 있었다.
- ↑ 최현은 김정은 체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군총정치국장 최룡해의 아버지이다. 민간인 출신 최룡해가 갑자기 대장계급을 달고 나올수 있었던 것은 바로 최현이 김일성의 첫째심복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최현은 교육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 빨치산 세대들 중에서도 무식한 것으로 중평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같은 원로중에서도 조금 따돌림을 받던터, 다만 김일성과 아주 친밀감이 있어서 일성이 걔라고 이야기해도 될 정도였다고.
- ↑ KBS 김정일 사망 다큐 <김정일> 편에서.
- ↑ 심지어 집에서 받은 대우도 달랐다고 한다. 김평일이 당시 고위 공직자들이 쓰던 소련제 고급 승용차로 등교했던 반면 김정일은 일반 승용차로 등교했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 ↑ 김정일의 군경력은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중에 단기군사훈련을 받은 것이 전부이다.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않고 대충대충 땡땡이 치면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훈련때 땡땡이치고 영화보다가 삼촌 김영주한테 걸려서 싸대기를 쳐맞았다는 말까지 있으니 뭐... 참고로 이 시절의 북한은 지원병제였기 때문에 법률적으론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에서 고위층으로 출세하려면 군경력은 사실상 필수고, 더군다나 수령의 장남이 군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론 분명한 약점이다.
- ↑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을때 대세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뒤를 잇는 다는 것이었지만 일부에서는 김정일의 후계자 등극에 의문을 표시하는 일이 많았는데 바로 김정일은 군의 기반이 약해 북한 정권의 한 몫을 지탱하는 군부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란 그들의 추측 때문이었다.
- ↑ 사실상 북한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설령 돌아온다 하더라도 지지세력들이 없는 상황에서 권력주변에 가깝게 가기는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김정은이 통치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북한으로 돌아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