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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운데에 있는 사람 . 왼쪽은 인천야구 관련 기록 최다 보유자인 짠물야구 운영자 김훈희, 오른쪽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을 쓴 소설가 박민규.
이름 | 김재현(金在峴) |
생년월일 | 1959년 3월 3일 |
출신지 | 인천광역시 |
학력 | 동산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2년 원년 멤버 |
소속팀 |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4) 청보 핀토스 (1985~1986) |
등번호 | 19번(1983~1986) |
오랫동안 김재현 항목에 추가되지 않았던 선수. 장명부와 임호균이 입단하기 전이었던 원년 삼미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원년 올스타 중 한명이기도 하다.[1]
데뷔 첫해에 6승 19패 1세이브 6.13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를 폄하할 수 없는것이 혼자서 무려 192⅓이닝을 소화했는데 [2] 이는 리그전체로 봐도 노상수(232⅓이닝), 박철순(224⅔이닝), 황규봉(222⅓이닝)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거기에 당시 삼미 슈퍼스타즈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영입이 한해 늦춰지는 바람에 24인 엔트리를 못맞춰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입단 테스트를 실시할 정도였다는 점[3]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비진의 도움을 아예 못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 무리한 혹사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다시는 100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했고, 1986년 시즌 도중 은퇴했다. 은퇴 후에 동산고 투수코치를 맡았다. 자세한 근황을 아는 분은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