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

(나가르주나에서 넘어옴)

1 用水

농업(관개), 공업 등 여러 목적을 위하여 이용되는 을 뜻한다.

2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이다. 이나 을 거르는 데 쓴다.

3 스님(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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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보살을 묘사한 조각상.#

龍樹

인도에서 대승 불교가 나타나던 시대의 승려. 대략 2세기경의 인물이며, 흔히 용수보살로 불린다.

용수는 이름 '나가르주나(Nagarjuna)'를 한역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법문할 때 항상 얘기하는 '나가르주나'가 바로 이 용수보살이다.

나가는 인도 신화에서 말하는 나가(Naga)로 '용龍'으로 한역되었고, 아르주나는… 마하바라타의 영웅이며, 아준 전차의 어원도 된 그 아르주나다!(…)

중관파의 시조이며,[1] 반야부 경전 등에서 나타나던 공(空)의 개념 등에 대하여 체계를 세웠다.

그의 인생에 대하여 산스크리트어본의 전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한역으로 된 용수보살전과 티베트어본 용수보살전이 남아 있다.

용수보살전에 의하면, 그는 본래 브라만 출신으로 학식이 뛰어나 모든 제례와 의식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부가 다 끝났으니 이제는 쾌락을 즐길 차례라고 생각하여, 친구들과 같이 산에 들어가서 몸을 숨기는 은신술을 배웠다.

용수와 친구들은 은신술을 써서 궁전에 들어가, 왕궁의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범했다. 왕과 대신들도 처음에는 어쩔 도리를 몰랐지만, 왕의 처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여자들이 임신하게 되자 꾀를 내어, 밀가루를 바닥에 뿌려 은신술을 쓴 용수와 친구들의 발자국을 쫓아갔다. 용수는 살아났지만 다른 친구들은 모두 추적해온 군대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용수는 이 사건으로 모든 화의 근본은 색욕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출가한 그는 경, 율, 논, 삼장을 독송하고는 또 다른 경전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히말라야에 들어가 한 늙은 수행자로부터 대승 경전을 전해 받고 즐겨 암송하고 그 뜻을 이해했으나 아직 완전히 통달하지는 못했다.[2]

용수는 불교의 교리도 빠르게 배웠으며 거의 모든 교리를 배우자 자만하게 되었다. 그는 불교의 논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때 용왕(나가)인 대룡보살이 나타나 그를 해저로 데려가서, 석가모니가 남겨서 용왕 종족이 보관하고 있던 불경을 보여주게 된다. 이것을 보고 용수는 자만하였던 것을 반성하고 지상으로 올라와 자신이 배운 바를 퍼트리게 된다 참고로 이때 용왕이 보여준 경전이 반야부의 경전이고 가져온 경전이 화엄경이라고 전한다.

어느 왕국에서 불법을 퍼트릴 때, 모든 바라문이 개종하였으나 한 명의 바라문 만은 불법을 거부하고 용수에게 재주를 겨루자고 했다. 그 바라문은 연못 위에 연꽃을 피게 하고 그 위에 앉아 용수를 비웃었다. 그러자 용수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하얀 코끼리로 변신하여 연못에 뛰어들어 바라문을 내팽겨쳤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용수가 남인도의 봉인된 철탑에서 기도하여 밀교의 경전을 내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밀교의 시조로 보는 경우도 있다.

용수의 최후는 상당히 비참했는데. 어느 교만한 어린왕자가 그와 논쟁을 바랬고 이에 용수가 철처하게 관광시켰는데 이에 화가난 왕자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용수의 목을 치려했다. 용수는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이렇게 죽게되는 결과가 젊은날에 지은 죄업과 전생에 개미 한마리를 낫으로(그 쪼그만 개미의 목을 어떻게 정확히 맞췄는지는 넘어가자...) 목을 베어죽인 과보임을 알고 순순히 목을 내어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른 일화로는 한 소승불교의 승려가 용수보살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는데, 한번은 용수보살이 그에게 "당신은 내가 오래 살기를를 바랍니까?"라고 묻자 그가 아니라고 대답해 버리자 이 말을 들은 용수보살이 조용한 방에 혼자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아, 제자들이 들어가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어 놓은 듯이 죽어 있었다고 한다.(참조) 왕자든 상좌 불교 승려든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지는...[3]

나가르주나가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지났는데 남인도의 여러나라에서는 그를 위해 묘를 짓고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며 섬기고 있다.[2]

참고로 지금의 달라이 라마 14세는 용수를 자신의 스승으로 생각하며 모신다고 한다.

신라시대의 인물 김용수(신라)는 여기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 당시 적극적인 불교국가화 정책을 펼치던 신라 왕가는 왕족들의 이름도 불교에서 이름을 따 오는 경우가 많았다.

3.1 저서

용수(나가르주나)가 저술한 책은 대부분 불교에 대한 논서들이다.[2]

  • 중론송
  • 십이문론
  • 공칠십론
  • 회쟁론
  • 육십송여리론
  • 대지도론 - 대품반야경의 주석서
  • 십주비바사론
  • 대승이십송론
  • 보리자량론
  • 인연심론
  •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Suhrllekha)
  • 라트나발리(Ratnavali;보행왕정론)
  1. 중관이라는 말 자체도 용수의 사상에서 따 온 용어이다
  2. 2.0 2.1 2.2 서정형, "철학 텍스트들의 내용 분석에 의거한 디지털 지식자원 구축을 위한 기초적 연구, 나가르주나『중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3. 참고로 고승을 해치는 것은 대승불교 오역죄 중 하나로, 지옥 중 제일 끔찍한 무간지옥(아비지옥)에 떨어져 가죽이 벗겨지고 쇠꼬챙이 꿰뚫리며 불에 달궈지는 벌을 받는다. 심지어 극락에 왕생한다 한들 12대겁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