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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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씨는 現 달라이 라마의 이름 뗀진 갸초(땐진 갸초), 아래는 달라이 라마(딸래 라마).

現 달라이 라마 14세. "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1] 1935년 7월 6일생.

<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1988 - 유엔 평화 유지군달라이 라마1990 - 미하일 고르바초프

1 소개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사실상 수장[2]이자 최고 수장을 가리키는 세습명.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티베트의 국가원수이자 실질 통치자이기도 하다. 천주교에 비유하자면 교황+황제의 의미를 가지며, 세속국가의 지배자이자 티베트 불교 교단의 최고위급 성직자이기도 하다. 다만, 2011년 8월부터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는 총리에게 이양한 상태이다. 참고로 현 뗀진 갸초 달라이 라마는 14대다.

'라마(བླ་མ་, bla-ma)'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하며, 그 어원적 의미에서는 산스크리트어 '구루(गुरु)'와 동일하다. '달라이'란 칭호는 몽골어로 '큰 바다(대양, 大洋)'라는 의미이며, 달라이 라마는 '큰 바다와 같은 넓고 큰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의미가 된다. 참고로 티베트어로 '바다'는 '갸초(རྒྱ་མཚོ, Gyatso)'이다(그래서 그런지 모든 달라이 라마의 이름 끝엔 '갸초'가 붙는다).[3]

2 계승과 대우

불교윤회설과 결합하여, 그 지위의 승계에 있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선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하면 윤회에 의거하여 달라이 라마의 영혼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기에, 밀레시안 아바타?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그 뒤를 이을 계승자가 될 아이를 승려들이 찾아[4], 적법한 심사를 거쳐 환생자로 판명되면 즉시 후대 달라이 라마로 선출되었다. 즉, 달라이 라마는 보살의 화신으로 티베트와 다른 모든 중생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금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출된 경우 보통 아주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들의 치세는 대단히 길게 이어진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어릴 적에 선출되어 현재까지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6~20세에 정식으로 즉위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인 권한은 정부와 섭정[5]에게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과는 다르게,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는 꽤 합리적인 면이 있어 이런 신화적인 내용을 거부하며 과학적인 논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자신도 어떤 특별한 신화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개 불교 수행자로서 여긴다. 그의 가르침 또한 무조건 믿는 방식의 믿음보다는 공부, 수행, 논리, 자비를 강조한다.[6]

모든 달라이 라마들은 티베트를 수호하는 보살인 관세음보살[7]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때문에 티베트인들에게는 지극히 고귀하고 존귀하며 영성(靈性)이 뛰어난 성스러운 존재로 숭앙받는다. 이런 환생자를 통틀어서 티베트어로 '린뽀체(རིན་པོ་ཆེ་)'라고 하며, 환생자 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환생자는 '뚤꾸(སྤྲུལ་སྐུ)'[8]라고 한다.

역대 달라이 라마들과 판첸 라마는 대부분 형식상으로는 중국 황제들의 스승[9]으로 황실의 초청을 받아 중국으로 가기도 했다.

이렇게 청나라 황제들이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티베트 불교의 수장들을 극진히 예우한 까닭은 티베트, 몽골[10] 지방의 정치적 안정 때문이었으며, 박지원 역시 열하일기에서 이 점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대의 중국 정부와 달라이 라마와의 관계와는 180도 다른,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11]

3 현 14대 달라이 라마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중공티베트를 강제점령한 1959년 이래 인도 공화국에 망명하여 50여년째 다람살라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파급시킨 공로자이다. 망명 당시 사진.

그럼에도 폭력노선을 지양하고 비폭력운동을 전개했는데, 그때문인지 19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다만 2008년 티베트 유혈사태에선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한계를 보여 티베트 진영내에서도 티베트 독립 혹은 자치를 위한 노선을 놓고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다.

2014년에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4대를 마지막으로 환생하지 않겠다(=후계자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달라이 라마가 계승하려면 환생자를 찾아내고 이를 공인할 판첸 라마가 꼭 필요한데, 중국 공산당 정부가 자신이 승인한 판첸 라마를 연금시키고 자기네들이 판첸 라마를 옹립한 이상, 달라이 라마 사후에 지들의 입맛에 맞는 친중 꼭두각시를 옹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이에 반발해,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를 통해 "現 달라이 라마가 환생제를 갖고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달라이 라마 개인을 믿는 게 아니라 환생제 그 자체를 믿는 것, 우리는 다음에 환생할 달라이 라마는 이전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룰 것이며 조국을 사랑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승려가 될 것이다." 라고 비판했다. 거기에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중앙정부가 수백년간 달라이 라마를 책봉했다는 성명을 내면서 現 달라이 라마 사후 후계 문제에 개입할 뜻을 밝혔다. 근데 환생한다는 본인이 안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는 걸까

그리고 2015년 4월에는 한술 더 떠서 "달라이 라마 개인이 환생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중국 정부의 소관인데 달라이 라마가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는 개드립까지 하는지경이 되었다.중국 정부의 능력이 드디어 염라대왕의 영역까지 도달했다. 남들의 윤회까지 좌지우지(...)

어처구니없는게 중국 공산당은 무신론을 주장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앞장서서 환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형태. 달라이 라마 자신이 환생 안하겠다는데 오히려 환영하기는커녕 환생하라고 마치 압박하는 듯한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미국뉴욕타임스는 "마르크스가 이 사실을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 이라며 비웃었고, 영국 <인디펜던트>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던 공산주의자들이 환생 운운하는 게 우습다"며 실컷 조롱했을 정도.

4 역대 달라이 라마

역대 달라이 라마 항목 참조.

5 트리비아

  • 달라이 라마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존경과 헌신은 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경 달라이 라마가 법회자리에서

"불교도라면 생명을 존중하기 위하여 동물의 모피로 된 옷을 입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정말 추운지역이거나 어쩔 수 없이 모피를 입게 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장식으로써 값비싼 모피를 입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발언을 하고 3시간 뒤 티베트 본토(중국에 속한)의 티베트인들이 각자의 마을 광장에서 집안의 모피옷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인도 공화국에서 달라이 라마가 한 단 한마디에 티베트 본토의 사람들이 단 3시간만에 움직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12] 티베트에서도 재산 1호로 여겨지는 모피, 특히 호랑이표범가죽 등의 옷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것은 티베트인들이 얼마나 달라이 라마에게 헌신적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이다.

  • 공식적으로 달라이 라마는 환생전승의 형태로 세습되지만, 이에 대해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엄밀히 말해서 대외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다. 정말로 자신이 부처의 환생이 맞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선대 달라이 라마와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적이 있으며, 설령 자신이 입적하더라도 후대 달라이 라마는 환생전승이 되지 않고 중생이 더이상 달라이 라마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대가 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선 상술했듯 14대 달라이 라마가 합리적인 사람이라 환생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적인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판첸 라마의 사례를 보았을 때 자신이 죽으면 중국에서 임의로 달라이 라마를 지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것을 사전방지하고자 정치적 제스처로 취한 행동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중국계 미국인 저널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 전생에 대한 질문을 맞추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릴 때는 자의식이 약해 전생에 대한 기억이 거울처럼 훤히 보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자의식이 강해지기 때문에 전생에 대한 기억이 차차 흐려져서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 흑역사로 1980년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다.# 달라이 라마 입장에서는 일본이 티베트 독립 등에 관심가져주는 것에 대한 호의로 참배한 것일테지만, 어쨌거나 전범들이 안치된 곳이니만큼 평소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모습과 비교하면 모순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르고 했을 확률도 높지만 어쨌든 경솔했던건 사실이고 좋게 봐야 이용당한 셈. 마오쩌둥한테 이용당했던 것도 서럽구만
  • 199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희생자를 최소화한다면 전쟁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2차 대전 당시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하며 나치의 무기에도 관심이 많다고 고백. 밀덕후 스님
  • 2011년 11월 6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위로하기 위해 직접 후쿠시마 현(!)에 갔었다. 주변에서 건강과 노령의 나이(올해로 76세)를 걱정해 만류했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그들을 만나고 희망을 주는 것은 의무라며 가기로 결정했었다고. 오오 대인배 오오
  • 스스로 자신이 113세까지 살고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예언과 같은 법문을 한 적이 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봐야 알 일.
  • 113세까지 살기 위해 건강유지를 위해 반신욕을 하고, 수행자의 옷차림으로 러닝머신(…)을 달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가톨릭교황이 여러가지 별칭을 가진 것처럼, 달라이 라마에게도 여러 존칭과 수식어가 붙는다.

- 겔와 린뽀체 : (번뇌에 대하여)보배로운 승리자

- 이신 노르부 : 마음속의 여의주
- 쩬레식 : 관세음보살

이 외에도 '모든 보리심의 주인', '흰 연꽃을 든 자' 등의 수식어가 있지만 달라이 라마 자신은 이 모든 수식어를 거부하고 '석가비구(석가여래의 제자)'라는 수식어만을 사용한다. 자신은 평범한 비구(승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다. 아주 가끔씩 티베트의 전통적인 종교적 서한에만 "흰 연꽃을 든 자라고 불리는 석가비구 뗀진갸초"라는 서명을 사용한다고.

  • 생불(生佛)이라는 달라이 라마에게 있어서도 성욕은 수행자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크나큰 걸림돌인지 한 인터뷰에서 "성욕이 일어날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달라이 라마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고 대답했다. 또, "당신이 구도의 길을 가는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하복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아아
1954년. 다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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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1950년대마오쩌둥이 자신을 친아들처럼 대했고, 자신도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식 만찬이 열리면 마오는 자신을 옆자리에 앉혔으며 직접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여주기도 했으며 옆자리에서 골초인 마오가 콜록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걱정했다고 한다. 물론 망명하는 1959년 전까지의 일이다. 마오쩌둥은 면전에서 "당신의 태도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종교독약과 같습니다. 첫째, 비구승이나 비구니독신이기 때문에 인구를 감소시킵니다. 정작 한자녀 정책을 시행한게 어디더라 둘째, 그것은 물질적인 발전을 도외시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그런 핀잔에도 오히려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만큼 자신을 신뢰한다고 여겼다고 한다.[13] 당시 중국과 티벳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글.
  • 한국 인터넷에서 "중국에서는 사망했다가 정부의 허가없이 부활하면 불법"이라는 법률이 딜라이 라마의 환생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떠돌고 있다. 위에서는 정부에서 환생을 강요한다면서
  • 한국의 국제부 기자 사이에서는 절대 비판하면 안되는 2명의 아시아인 중 하나라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아웅산 수지. 실제로 이런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기사도 있다. 당연하지만 위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부분처럼 이들도 인간이니만큼 실수를 할 수 있고, 비판할 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문율이 떠도는 이유는 이들이 강력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자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면 자유와 인권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설픈 비판을 하다가 되려 근거가 부족해 역공을 당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굳이 비판을 한다면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한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또 물론 이런 비판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기본적 업적인 자유와 인권을 위한 행동까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사람들 안까도 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 판국이니
  • 알고보면 시덕후. 수집은 취미가 아니지만, 선물받은 파텍 필립롤렉스를 잘 차고 다니며 자가수리가 가능할 정도의 소양을 가지고 있다카더라.

5.1 조선사절단과 달라이 라마

박지원열하일기판첸 라마와 마주친 기록이 있다. 건륭제의 환갑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조선 사절단이 열하에서 판첸 라마와 마주친 것. 건륭제의 지시로 라마를 접견한 조선 사절이 무려 4단의 통역[15]을 거쳐 인사를 올리니, 판첸 라마는 목제 불상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 사절단이 판첸 라마와 만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지원열하일기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며, 중국티베트,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매우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자면, 일단 조선 사신들은 판첸 라마와 만나야 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충격과 공포를 느꼈으며, 심지어 황제의 명으로 판첸 라마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자 양반부터 하인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판첸 라마를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 통역관은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며 팔뚝질(…)을 해댔다고 한다.[16][17]

결국 판첸 라마와 대면하는 순간, 사절단을 이끄는 박명원이 모른 척하고 절을 안 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런 조선 사신들의 태도를 본 건륭제는 결국 삐져서(…) 조선 사신들의 일정을 당겨 예상보다 일찍 열하에서 돌려보냈다. 사실 이는 굉장히 다행스럽게 사태가 종결된 것인데, 박명원은 목숨을 내놓고 황제의 명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황제를 쌩깠다. 그래서 박명원의 8촌 동생이었던 박지원은 극형까진 몰라도 십중팔구 귀양살이를 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지원은 그 상황을 즐거워했다! "이런 기회에 남들 못 가보는 지역 가 보게 되니 아싸 조쿠나!"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열하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말이다.

사실 숭유억불을 국책으로 하는 조선 양반의 입장으로, 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단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심각한 정치 비화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18]

이때 받은 불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열하일기에 나오지 않지만, 이전 사례처럼[19] 처리한 듯하다.

5.2 대중문화 속의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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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에 관한 영화로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Kundun)이 대표적이다. 둘 다 1997년작. <티벳에서의 7년>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20]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달라이라마의 유년 시절과 중국의 티벳 침공, 달라이라마의 즉위까지를 다루었다. <쿤둔>은 달라이라마의 유년시기로 시작해서 마오쩌둥과의 회동도 묘사했고, 달라이라마의 인도 망명하는 씬으로 마무리.

국내 무협소설에서는 포탈라궁의 궁주로 세외제일고수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중원일통을 위한 흑막의 전투력 측정기로 나와서 순식간에 털리는 경우가 다반사.

심슨 가족에도 등장을 했다. 호머 심슨이 파이그릇을 얼굴에 쓴 히어로 '파이맨'으로 활동하다가 번즈에게 걸려 약점이 잡힐때 요구받은게 스프링필드에 강연을 온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져 망신을 줄 것이었다.[21] 그러나 그때 강연장에서 불교 신자인 리사 심슨을 보고 갈등을 한 끝에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지지 않는다. 이 전개를 본 달라이 라마는 마무리를 하고선 다음 도시를 향해 날아간다. 여담으로 파이를 던지려 했던 호머는 그를 보고선 "미안해요 말하는 라마!!"라고 말한다(...).

대체역사물 스탈린의 편지에서는 달라이 라마 14세가 동아연방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6 관련 문서

  1. 달라이 라마들은 출가할 때 승단으로부터 공식적인 이름을 받는다. 티베트의 옛 전통에 이름이 길수록 그 사람의 지위가 높다는 뜻이 있어 현재는 고위승려들에 한해서만 위와 같은 긴 이름을 받는다. 보통 이 공식적인 이름은 달라이 라마를 위해 행해지는 기도의식 중에서만 사용된다(공문서에도 안 쓴다. 너무 길어서…). 여담으로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거장 감독이신 장 자크 아노의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이름에 담긴 의미가 언급된다.
  2. 엄밀히 말하자면 달라이 라마는 황모파(겔룩파)의 수장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당연히 겔룩파에 국한되지 않는다.
  3.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 외에도 티베트인들은 존경의 의미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달라이 라마를 부르는데, "걜와 린뽀체(རྒྱལ་བ་རིན་པོ་ཆེ་, 고귀한 지도자)", "꾼뒨(སྐུ་མདུན, 고귀한 존재)" 등이 있다. 실제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기보다 "걜와 린뽀체"라고 더 많이 부른다.
  4. 고승들과 섭정이 달라이 라마를 보호하는 여신인 빨덴 하모(དཔལ་ལྡན་ལྷ་མོ།)의 성지인 하뫼 라초(ལྷ་མོའི་བླ་མཚོ།, 여신의 호수)에 가서 기도와 명상을 하면, 호수에서 이미지가 보인다고 전한다. 보통 티베트어 단어나 사원, 태어난 집 등을 보여준다고 한다.
  5. 고위 승려 1명, 속인(세속의 인간) 1명으로 이루어지며, 달라이 라마가 정식 즉위하기 전까지 정치와 종교 전반을 관리한다.
  6. 달라이 라마와 현각스님과의 대화 영상. #1 #2 #3 #4 #5
  7. 티베트어로 '쨴레식(སྤྱན་རས་གཟིགས།)'
  8. 린포체들 중에 죽기 전에 자신이 태어날 곳, 태어나는 시간, 부모의 이름 등을 써서 편지로 남기거나 제자들에게 일러주고 열반에 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냥 다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기에 '뚤꾸'라 하여 존경받는다. 그 외에도 달라이 라마와 같은 고위 승려의 환생의 경우엔 그냥 다시 태어나도 '뚤꾸'라고 칭할 때도 있다.
  9. 원나라 때부터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또 스승이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당시 중국 문화권에 있는 나라 중 유일하게 황제와 똑같은 높이 혹은 그보다 아주 약간 낮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10. 몽골 역시 예나 지금이나 티베트 불교를 믿는 지역이다.
  11. 현대의 한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불교계에서 몇 번이고 달라이 라마를 한국으로 초청하려고 했지만(중국 정부의 눈치 때문인지) 한국 외교통상부에서는 막상 허락하지 않았다고.
  12. 본토에서 달라이 라마가 나오는 위성방송 등을 봤다간 그대로 온 가족 철창행.
  13.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P.403 참조.
  14. 아웅산 수지의 경우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차별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
  15. 한국어중국어만주어티베트어.
  16. 다행히도(?) 조선 사람들끼리 있을 때 팔뚝질을 했다. 만약 공개석상에서 했다면 자기 목뿐만 아니라 삼족의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17. 그런데 열하일기의 기록 속에는 판첸 라마가 보는 앞에서 팔뚝질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지간히 간도 크다 한국어로 욕해서 통역이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18. 반대 당파에서 "저 놈들 에게 절했대요. 데헷~ 이거 나라망신 ㅋㅋ"(...) 이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더군다나 유교 윤리에서는 자기 목숨 보전하자고 신념을 굽히는 것을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19. 열하일기 기록에 따르면 이전 사신들은 억지로 받았던 불상압록강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청나라 땅에서 버렸다가 걸리면 황제에게 모가지 당할 것이고(…), 조선까지 가져가더라도 왕이 진노하거나 반대파에게 꼬투리 잡히면 모가지 당할 것이니(…), 조선도 아니고 청나라도 아닌 국경 지대에서 조용히 처리한 것. 지난한 얘기지만, 만약 저 불상이 현재에도 남아 있었다면 못해도 보물급 문화재다. 에이, 아까비
  20. 나치 부역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개봉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 내에서 주인공의 독백 대사 중에 나치로써 일을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21. 중국 지배자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