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레쑤언 왕의 동상[1]
1 개요
สมเด็จพระนเรศวรมหาราช (솜뎃프라나레수안마하랏),
สมเด็จพระสรรเพชญ์ที่ II (솜뎃프라산펫 2세)
1555년 4월 25일 ~ 1605년
나레쑤언은 태국 원어 발음을 한국어로 최대한 가깝게 적은것이고, 한국어로는 나레수안이 표준발음. 여담으로 중국어로는 纳瑞宣(Nà ruì xuān)이다.
왕자시절의 이름은 나렛. 왕자시절 흑태자라고 불리기도 해서 흑태자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 동생은 백왕자고 누나는 금공주인걸 보면 색깔이름으로 맞춘듯. 나레쑤언의 경우에는 에드워드 왕세자와 달리 생전부터 흑태자라 불렸고, 왕이 됐다.
2 생애 및 업적
태국사의 최고 먼치킨. 버마에게 수도 아유타야를 점령당하고 속국이 되면서 약소국이 되어가던 아유타야를 독립시킨 것도 모자라 캄보디아-란나-버마로 연이은 원정을 해서 아유타야를 단숨에 대륙부 동남아의 최강국으로 만든 태국사의 레전드. 현재 동남아시아의 강대국인 태국의 위상을 사실상 혼자의 힘으로 만든 인물이다.
나레쑤언은 1555년 아유타야 북부의 요지이자, 일시적으로 수도이기도 했었던 피싸눌록에서 마하 탐마랏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하 탐마랏차는 당시 아유타야의 왕이었던 마하 차크라팟의 즉위를 도운 반정공신이자 쑤코타이 왕가의 후예였고, 그의 어머니 위쑤티 까싸뜨리는 마하 차크라팟과 수리요타이의 딸이었다.
어린시절 남동생 에카톳싸롯과 함께 버마에 인질로 잡혀가, 다른 나라에서 인질로 온 왕자들과 함께 포르투갈식 군사교육을 받았다. 나레쑤언이 훗날 어떻게 버마를 발라먹었고 에카톳싸롯이 얼마나 형을 잘 보조했는지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호랑이를 키운 격.
7년간의 인질생활 후 형제의 누나인 수판깐라야가 당시 버마의 왕이었던 버인나웅의 후궁이 되는 조건으로 귀환한다. 근데 버인나웅의 손자였던 민치스라가 나렛의 인질시절 라이벌이었다고 전해지니 버인나웅과 수판깐라야 공주의 나이차는...
3 여담
젊은시절에 천연두를 앓았다고 한다. 근데 나레쑤언을 묘사한 그림이나 동상에서 곰보가 아닌게 많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제목의 그를 새긴 석상을 발견하는 퀘스트가 있다.
태국에는 당연히 이분의 업적을 기리는 영화가 있다. 그것도 시리즈물로. 그런데 나레쑤언 역을 맡은 배우(맨 위의 인물)가 역시나 곰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