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자와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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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 마리노스 No.22
나카자와 유지 (中澤 佑二, なかざわ ゆうじ, Nakazawa Yuji)
이름나카자와 유지 (中澤 佑二, なかざわ ゆうじ)
생년월일1978년 2월 25일
국적일본
출신지요코하마
포지션센터백
유소년 클럽아메리카 미네이루 (1996-1997)
소속 팀도쿄 베르디 1969 (1999-2001)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2-)
국가대표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10), 110경기 17골
2013 J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오쿠보 요시토
FW
오사코 유야
FW
카와마타 켄고
MF
나카무라 슌스케
MF
야마구치 호타루
MF
가키타니 요이치로
MF
아오야마 토시히로
DF
나스 다이스케
DF
모리시게 마사토
DF
나카자와 유지
GK
니시카와 슈사쿠

1 소개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축구 선수로서 황혼기인 나이에도 변함없이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요코하마의 레전드

일본의 현역 축구선수다.

2 플레이 스타일

수비 위치선정이 매우 탁월하고 상대 공격수들이 페널티 에어라인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도록 압박해 공을 빼내는 기술이 훌륭하다. 특히 공중볼 다툼이 매우 뛰어나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상대 공격수를 상대로 공중볼을 따내 위기를 모면시키는 능력도 뛰어나며, 또한 리더십이 훌륭해 동료 수비수들에게 일일이 수비 위치를 잡아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다만 주력이 좀 느려서 발빠른 단신 공격수를 놓쳐 위기를 초래하곤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최대 장점은 꾸준함이다. 그는 선수 생활 초창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불굴의 의지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삼아 J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거듭났고 몸 관리 또한 완벽하게 소화하여 축구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핵심 센터백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일본 축구 대표팀에서 활약했을 때, 일본 축구 대표팀은 공격 면에선 기복이 심했지만 적어도 수비만큼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그가 2010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일본 축구계는 그를 대체할 센터백을 구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중요도를 알 수 있다.

3 선수 경력

3.1 초창기

유지는 1978년 2월 25일 요코하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른 축구 선수들에 비해 늦은 나이인 12살에 축구를 시작했다. 유지는 사이타마 현립 미사토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해 축구부에서 활동했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브라질에 축구 연수를 가기로 하고 1996년 18살에 브라질 축구 클럽인 아메리카 미네이루 유스팀에 입단해 1년간 축구 연수를 받았다. 이때 그는 유스팀에서 주축 세너백으로 활약하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비자 연장이 안되는 바람에 일본으로 귀국했다가 브라질 행을 포기하고 J리그 프로팀을 물색했다.

그러나 어느 J리그 축구 팀도 별볼일 없는 고등학교 팀에서 활동하다가 브라질로 가서 1년간 활동한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유지는 할 수 없이 미사토 공업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축구 스킬을 훈련하며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렇게 1년을 보내던 중, 1998년에 미사토 공업 고등학교와 도쿄 베르디 유스팀과의 연습 경기가 열렸다. 이때 유지는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이를 주목한 도쿄 베르디 측은 그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유지는 연습생으로서 도쿄 베르디에 입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일개 연습생일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 후 그는 J리그의 전설로 거듭난다.

3.2 J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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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베르디 시절 유지

1999년, 유지는 J리그에 전격 데뷔했다. 이때 그는 등번호 22번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 2002년 요코하마로 이적한 후 잠시 38번을 쓴 걸 제외하면 현재까지 등번호 22번을 고수하고 있다. 유지는 첫 시즌에 리그 28경기, 컵대회 5경기에 출전해 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거듭났고 1999년 신인상을 수상했고 J리그 베스트 11에 뽑히기도 했다. 그후 유지는 2001년까지 도쿄 베르디에서 종합 95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하며 매시즌 풀타임을 소화하는 맹활약을 선보였다.

유지는 2002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했다. 이후 그는 2003년과 2004년에 2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이와 동시에 3연속 전후기 리그 우승도 달성했다.(2003년 전기 리그 우승, 2003년 후기 리그 우승, 2004년 전기 리그 우승) 또한 그는 2004년에 J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으며 2006년엔 올스타 팀에 뽑혀 프리킥 골을 기록, J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수비수로서 올스타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렇듯 유지는 2000년대 중반 J리그 최고의 센터백으로 군림했다.

3.3 요코하마의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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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J리그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한 후 팀동료들에게 헹가래를 받는 유지

이후 유지는 자신의 진가를 매시즌마다 꾸준히 보여줬다. 그는 매시즌 거의 풀타임 출장하며 30~40여 경기를 소화했다. 그는 잔부상을 거의 당하지 않고 매 경기를 선발 출장해 팀의 리더로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고 급기야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리그 34경기를 3연속 출장하는 대기록을 장식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35~37세로 축구 선수로서 황혼기를 넘긴 지 오래인 점을 감안하면 실로 경이롭다고 박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는 2016년에도 부상 선수가 늘어난 상황에서 유일하게 리그 모든 경기에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맹활약했다.

그런데 요코하마 측은 시즌이 끝난 뒤 유지에게 현재 받는 연봉의 50%에 가까운 금액을 삭감했다. 팀 관계자는 "극단적인 일을 만들 생각은 없다. 베테랑 선수도 중견급 선수도 중요하지만 힘든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향후 협상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유지는 "35세가 넘은 선수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이 마리노스에게는 보탬이 되지 않은 것 같다. 팀에서 나가달라는 수준"이라고 말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현재까지 계약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계약이 성립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3.4 국가대표 경력 :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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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8일, 유지는 이란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이후 그는 2000년 AFC 아시안컵 멤버로 뽑혀 싱가포르와의 경기에 출전해 데뷔골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 대표팀에도 차출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1년 이후 잠시 슬럼프에 빠져버린 바람에 2002 한일 월드컵 엔트리에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절치부심하여 2003년부터 요코하마에서 대활약을 선보이며 다시금 주목받았고 그 결과 일본 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서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04 아시안 컵 대회에서, 그는 수비수로서 2골을 기록하고 대표팀의 대회 총 실점을 3골로 묶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고 일본 축구 대표팀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아시안 컵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는 등 일본 축구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였고 2010년 동아시안컵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100번째 A매치를 기록했다. 유지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로서 110번째 출장 기록을 달성했고 통산 17골을 기록했다. 그후 유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수상

4.1 클럽

J리그 우승 : 2003년, 2004년

천왕컵 우승 : 2013년

4.2 국가대표

AFC 아시안컵 우승 : 2000년, 2004년

AFC 아시안컵 4위 : 2007년

4.3 개인

J리그 신인왕 : 1999년

J리그 베스트 11 : 1999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8년

일본 올해의 축구 선수 : 2004년

AFC 올스타 팀 선정 : 1999년

동아시아 컵 베스트 수비수 : 2008년

AFC 아시안컵 베스트 11 :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