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축구 연맹(AFC)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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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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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라오스
레바논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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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몽골
몰디브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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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방글라데시
베트남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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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리아나 제도
북한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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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시리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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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예멘
오만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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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이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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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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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쿠웨이트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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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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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호주
홍콩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サッカー日本代表
정식명칭サッカー日本代表[1]
FIFA 코드JPN
협회일본축구협회 (JFA)
연맹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감독바히드 할릴호지치 (Vahid Halilhodžić)
주장하세베 마코토 (Hasebe Makoto)
최다출전자엔도 야스히토 (Endō Yasuhito) 152경기
최다득점자가마모토 구니시게 (Kamamoto Kunishige) 80골
홈 구장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Saitama Stadium 2002)
첫 국제경기 출전VS 중화민국 (0:5 패), 일본 도쿄 (1917년 5월 9일)
최다 점수차 승리VS 필리핀 (15:0 승), 일본 도쿄 (1967년 9월 27일)
최다 점수차 패배VS 필리핀 (2:15 패), 일본 도쿄 (1917년 9월 10일)
별칭사무라이 블루 (サムライ・ブルー)
월드컵출전 5회, 16강 2회 (2002, 2010)
컨페더레이션스컵출전 4회, 준우승 1회 (2001)
아시안컵출전 8회, 우승 4회 (1992, 2000, 2004, 2011)
코파 아메리카출전 1회 (1999)
동아시안컵출전 5회, 우승 1회 (2013)
올림픽출전 9회, 동메달 1회 (1968)
유니폼어웨이
상의군청하양
하의군청하양
양말군청하양

1 상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대 라이벌.

일본축구 국가대표팀을 다루는 항목. 감독은 바히드 할릴호지치이다. 야타가라스(삼족오) 모양의 축구협회 마크와 파란색 유니폼으로 유명하다. 파란색인 이유는 열도라서.

이웃나라이기에 대한민국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겨루는 팀이기도 하고, 대한민국과의 대결인 한일전은 아시아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한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일본 축구 역대 최다 실점 패를 안겨준 나라가 바로 필리핀이라는 사실이다. 뭐 100년전인 1917년에 9월 10일에 일본에서 열린 극동컵 대회 경기에서 무려 15:2로 필리핀에게 졌는데 이는 당시 필리핀에 스페인계 혼혈인 파울리노 알칸타라(1896~1984)가 맹활약했기에 가능했다.[2]

이 굴욕을 잊지 못한 일본은 딱 50년 뒤인 1967년 9월 27일에 일본에서 가진 친선경기로 필리핀을 15-0으로 이겼는데, 이는 일본 (국대)축구 역대 최다 득점 기록(필리핀에게도 최다 실점 패 기록)이다.[3]

월드컵에서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고 줄곧 지역예선에만 머물렀으나,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는 숙적과도 같은 한국에게 첫 승리를 거두고 이 기세를 몰아서 이라크를 꺾고 본선에 진출할 듯 했으나... 하지만, 옴란 자파르의 동점 헤딩 골로 인해서 이라크와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골득실에서 한국에 밀리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에서는 또 다시 한국과 만났으나, 도쿄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야마구치의 골로 승리를 예상했으나 하지만 후반전에서 서정원과 이민성의 골로 인해 2:1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서울에서 열린 2차전에서 겨우 승리하였고 B조 2위를 기록하며 A조 2위인 이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된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치러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전반 36분 나카야마가 선취골을 뽑아냈으나, 후반 25초 이란은 다에이의 패스를 받은 아지지가 동점골을 뽑아내며 추격을 시작했고, 후반 14분에는 다에이가 헤딩골로 뽑아내며 역전에 성공한다. 패색이 짙어지던 찰나 후반 31분 나카다의 패스를 받은 쇼지가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원점이 되었고, 연장 후반전 13분에는 오카노의 중거리 슛이 성공하여[4] 골대로 들어가 3:2로 승리하면서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일본에서는 조호르바루의 환희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본선에서는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 자메이카와 함께 H조에 배정되었으나 3전 전패로 조 최하위에 머물며 탈락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1위로 16강에 진출하면서, 세계무대에서도 그럭저럭 통할 수 있는 전력이라는 것을 증명했지만, 한국의 4강 진출에 완전히 가렸고, 홈그라운드였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큰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역시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졸전 끝에 조별예선 4위로 탈락.[5]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유럽예선을 1위로 통과한 덴마크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에투가 버티고 있는 카메룬을 둘 다 쳐 잡는 위엄을 선보였다.[6] 이 특히 덴마크는 아예 3-1로 압살했는데 그나마 실점도 페널티킥이었다. 16강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파라과이를 8강 진출시켜줬다.

반면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과 더불어 승점자판기 신세로 다시 돌아간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인 대표 팀은 아니지만, 20세 이하 대표팀은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오른 바 있다.[7] 그리고 사실 성인 대표팀도 AFC 국가로서 처음으로 FIFA 주관대회 남자 성인대표팀 우승을 달성할 뻔했다.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간발의 차이로 결승전에서 프랑스에게 지며 준우승을 했기 때문.[8]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전력이 아직 강하지 않을 때는 한국 K리그 팀의 기념 평가전 상대를 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클럽과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는 흔했다. 바르셀로나가 브라질 대표 팀과 맞붙은 적도 있고, AC밀란이나 유벤투스가 1996년에 한국에 와서 한국대표팀과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개막 직전에 대구에서는 월드컵 개막 기념행사로 포항 스틸러스[9]와 카메룬 대표 팀과 경기를 했었다.

피파 시리즈 게임에도 클럽과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 때문. 하지만 이후 피파에서 클럽VS국가대표팀의 경기는 지양하면서 현재는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 직전에 하는 연습경기를 제외하면 흥행으로 하는 친선전은 전무한 상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번개같이 아기레 감독을 영입했었다. 그런데 영입한 아기레 감독이 스페인 축구팀 맡았을 때 승부조작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아기레 감독의 혐의가 인정되면 감독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게 틀림없고 일본 대표 팀의 상황도 꼬여버린다.

가비가 레알 사라고사 시절 레반테와의 최종전에서 구단의 요청을 받고 승부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당시 레알 사라고사의 감독이었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책임도 피할수 없게 되었다.

현재 아기레 감독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 대표 팀 지도를 계속하는 중이다. 하지만 10월 10일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에서 (상대의) 자책골로 간신히 1: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브라질한테는 네이마르한테 4골을 내주며 0-4로 맥없이 패했다. 11월 a매치에서는 온두라스를 6-0으로 꺾고 호주에도 2-1로 승리했는데, 이는 하세베 마코토, 우치다 아쓰토, 엔도 야스히토, 곤노 야스유키 등 원래 2014년 월드컵 후 국가대표 팀에서 은퇴하려고 했던 선수들이 결정을 번복하고 돌아오면서 거둔 성적들이라 일본 내에서는 세대교체가 더 늦춰지게 됐다고 우려하는 팬들도 있는 모양이다[10].

2015년 3월, 새로운 감독으로 바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2-4 참패를 안긴 전 알제리 국가대표팀 감독인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선임되었다.

우리에겐 한국 깬 감독으로 알려져 후덜덜하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성질이 드세고 고집이 세서 실제로 협회나 구단, 선수들과 마찰이 심해서 여러 팀을 오고갔다. 그나마 가장 오래 감독으로 역임한 릴 OSC에서 3년 8개월을 있던 게 가장 오래 있었고 다음이 3년 1개월 동안 있던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여하튼 성격이나 여러 가지 때문에 일본에서도 서둘러 감독을 구하느라 별다른 비전 없이 차기 감독을 뽑아버렸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만, 한국 축구팬들이 두려워하고 우려하는 건 단순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겨서가 아니라, 한국을 이기기 위해 K리그 경기까지 챙겨보면서 분석을 했다는 점 때문에 우려하는 게 더 크다. 결국 일본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 슈틸리케 감독이 J리그 경기까지 꼼꼼히 챙겨보면서 일본 팀을 분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을 거란 예상이 되기 때문에 우려하는 것이다. 당장 우즈베키스탄의 미르잘랄 카시모프 감독도 K리그 분석까지 하면서[11] 한국을 상대했기 때문에 2015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가고 한국이 어려운 경기를 해야 했다. 실제 그 경기에서도 카시모프 감독과 우즈벡 팀은 전술적으로 준비를 잘 해서 왔다. 다만 그 경기는 연장전에서 2:0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바히드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의 목표를 3위로 잡았다. # ##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패기 좋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2006년의 지코 감독이나 2010년의 오카다 감독, 2014년의 자케로니 감독[12]도 목표는 월드컵 4강이었다. 일본에서는 2002년 한국의 4강을 몹시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입장이기에 매 대회마다 4강의 성적을 부르짖곤 해서 저 발언을 정말 바히드 감독이 했는지, 협회 측의 발언인지, 일본 언론의 설레발인지 따져볼 일이다. 정말 감독이 한 발언이라면 아직 부임 초라서 일본 축구를 제대로 모르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개인기와 패싱력, 거기다 선수들은 감독 말 잘 따르고 전술 이해 능력도 높으니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경기가 의도대로 안 되거나 꼬이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게 일본 축구의 전통적인 문제였다.[13] 바히드 감독이 이 문제를 언제 알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보완을 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참고로 2007년부터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제외하면 축구게임에 수록하는 것이 금지되어[14] 있다. 그 때부터 코나미와 독점 계약을 채결한 상태이고, 2013년부터는 일본판 위닝일레븐이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러나 월드컵 시리즈만은 예외를 둬서 내준다.

2015년 6월 FIFA에 대한 비리가 대대적으로 적발되어 수사되는 과정에서 스페인 언론이 2000년 당시 일본 축구 협회장인 나가누마 겐 회장이 남미축구연맹에 2002년 월드컵 유치 사례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폭로했다. 사실 대회 유치 결정은 그 전에 결정이 났지만, 일본은 현재 카타르처럼 1998년 자력 진출이전에 월드컵에 출전한 사례가 없기에 명분 적으로 한국에 밀리는 상황이었다[15]. 일본 측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지만, 돈이 오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도 있으며 그 서류에는 돈을 받은 당사자인 레오스 전 남미축구연맹 회장과 아내의 서명이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져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2016년 1월 31일, AFC U-23 챔피언십 결승에서 한국을 꺾었다.

2016년 9월 1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 홈에서 UAE에게 역전패했다. 역대 최종예선 1차전 패배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사례가 없다는 징크스 때문에 일본 축구계는 멘붕상태...

2 플레이 스타일

미드필드를 중요시하는 숏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주를 이룬다. 20세기 초부터 약 100년간 그 스타일을 이어오는 중.

또한 일본에서는 이 숏 패스 플레이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육받는다. 일본의 모든 축구부와 주니어/시니어 클럽이 이 숏 패스 플레이를 하고 있고, 그렇게 숏 패스 플레이를 몸에 익힌 선수들이 프로에 데뷔. 이렇게 어려서부터 똑같은 플레이를 배운 선수들이 모이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뽑히더라도 팀에 녹아드는 것도 빠르고, 굉장히 조직력 있는 축구를 구사하게 된다. 다만 연계와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탓인지 선수 개개인의 과감성은 떨어지는 편. 충분히 해볼 만한 공격기회에서도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는 노력보다는 옆 사람에게 패스하기 바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것도 피지컬의 열세 극복이지만, 역으로 이것이 약점이 되어 강하고 거친 압박축구를 활용하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의 플레이가 티키타카라는 소리도 있지만, 일본의 그 누구도 자신들의 축구가 티키타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전형적인 티키타카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편. 점유율을 중시하는 티키타카에 비하자면 일본 축구는 좀 더 속도 중시다. 티키타카가 숏패스를 돌리는 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기 위함이라면, 일본 축구가 숏패스를 돌리는 건 단순히 '앞에 찔러줄 사람이 없네.'의 차이. 점유율은 그냥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대 일본 국대 감독들이 강조한 부분도 대부분 '스피드', '공격성', '조직력' 등이지, 딱히 점유율에 비중을 두진 않았다.

굳이 비슷한 스타일을 찾자면 브라질 축구. 1980년대 브라질 최고의 미드필더였던 하얀 펠레 지쿠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보내다가 은퇴했다. 지쿠의 유려한 패싱플레이는 일본 축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나중에 일본 대표 팀 감독도 역임했다. 구체적으로는 개개인의 피지컬과 테크닉이 딸리는 브라질 축구고, 그 부분을 조직력으로 커버하고 있다. 다만 대대로 세계 최정상급의 골잡이가 있던 브라질과는 달리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만년 골게터 부족에 허덕이는 중. 클럽 팀으로 따지자면 아스날 FC와 비슷하다는 소리도 듣는데, 덕분에 일본의 축구팬들은 끊임없이 아르센 벵거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고, 실제로 벵거의 일본 대표 팀 감독 부임설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정작 벵거 본인은 아스날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는지라 벵거가 일본 감독을 맡는건 아스날에서 잘린 다음에나 가능할 듯. 그 외에도 벵거는 아스날 감독 부임 전에 잠깐 나고야 그램퍼스감독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여 일본 축구팬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고, 벵거 자신도 선수 식단 관리의 중요성 등 이후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여 일본축구에 우호적이다. 이나모토 준이치미야이치 료의 아스날 진출도 이 때 얻은 일본통에 의한 것. 단순히 아스날과 일본팀의 유사성을 넘어, 벵거 본인이 일본축구와 인연이 있고, 벵거의 축구 스타일이 일본 팬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에 감독설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벵거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안 맡는다는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일본 국대든 프랑스 국대든 그가 감독을 맡는 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이야기다.

수비에서는 좋게 말하자면 굉장히 깔끔한 축구고, 나쁘게 말하자면 수비를 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압박을 하긴 하는데 거친 몸싸움에는 소극적. 수비에서도 개인 능력보다는 수비연계를 우선하는 스타일이다. 아시아 팀들 중 체격이 왜소한 축에 드는 팀이니만큼 몸싸움에서는 어떻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

이 부분은 한국 대표 팀처럼 80~90년대에 수비 스타일이 정립이 된 건데 한국은 독일의 수비스타일을 표방하면서 바이에른 뮌헨 식 앵커가 끼는 3백을 메인으로 홍명보로 대표되는 든든한 앵커맨의 수비 지휘를 믿고 행동대장에 가까운 파이터 스타일의 투 스토퍼로 아시아 축구에서 강력함을 뽐냈다면 일본은 당시 최선의 수비전술인 존 디펜스를 이식해 아시아축구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켰다. 90년대부터 4-4-2를 도입했고 윙백의 적극적인 측면 오버래핑을 활용한 빌드업으로 수비수가 최전방까지 공격에 올라온다는 축구 흐름을 몰랐던 한국 대표 팀을 엄청나게 괴롭혔다. 당시 일본의 양 윙백라인은 항상 한일전 때마다 최고 요주의 대상이었을 정도.

일본 수비라인의 중심에 아시아 탑 축구지능의 소유자인 센터백 이하라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도 한국처럼 이하라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는데 센터백의 파트너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수비를 조율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센터백의 자질이 당시 기준으로 쓸 만하면 나머지는 이하라가 알아서 다 해줬던지라 당장 월드컵 진출에 매달렸던 상황에서 한국만 피하면 나머진 알아서 잘 되겠지 싶었고 실제로도 그랬는데 프랑스 월드컵이후 이하라의 은퇴 뒤에 존 디펜스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한국의 스타일도 예전만하지 못하게 되자 탈 아시아를 선언했는데 너무 성급했던 감이 크다. 간단히 말해 일본이 잘나기 보단 한국이 일시적으로 정체했던 것. 거기에 존 디펜스는 수비 조율과 커버링, 그 커버링을 위한 왕성한 체력 이외에 일대일 수비능력이 하다못해 한국공격수나 호주 공격수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하더라도 물고 늘어지는 실력이 기본적으로 있어야만 탈 아시아 급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일본은 이 뒤쳐지는 부분을 커버링과 협력수비로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만 판단했는데 그건 아시아에서나 통하지 정작 탈 압박이 좋은 팀을 만나기만 하면 고전했으며, 특히 4-4-2를 메인으로 썼던 시대에 4-4-2를 썼던 팀치고 중원에서 무시무시한 활동량과 투쟁심으로 상대 미들 진을 압박했던 홀딩 미드필더가 없었던 팀이 없었는데, 일본 대표팀은 나카타 히데토시를 중앙 미드필더로 쓰면서 나카타의 약점을 메꿀 홀딩 미드필더를 제대로 둔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상대가 중앙에서 피지컬로 찍어 누른다면 답이 없었을 정도.

일례로 J리그 최고의 파이터로 평가받던 인민 루니 정대세는 분데스리가2 시절 그냥 '발이 빠른 선수'로 불렸었다. 거친 압박이 대세인 K리그에서 뛰던 국내 공격수들이 J리그로 가면 하나같이 득점이 올라가는 게 압박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조재진.[16]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크리스티안 비에리아드리아누, 아사모아 기안, 디디에 드록바처럼 공격을 개시하는 순간부터 수비진을 과격하게 부셔버리는 공격수와 그 공간을 활용하는 전술을 가동하면 그냥 정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브라질 월드컵 당시 코트디부아르가 반목하지 않고 단결이 잘 되어서 야야 투레드록바가 제대로 협력했다면 아시아의 개망신은 한국과 나눠 가졌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이런 피지컬 문제를 할릴호지치 감독이 뜯어고치겠노라 선언하며 선수들 체지방 체크까지 해서 언론에 공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서 시일이 걸릴 것 이다. 사실 일본이 최근에 유소년대표부터 피지컬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드리블이나 패스를 중시하기 시작한 우리 유소년 축구 입장에선 황당하다는 반응. 이유야 당연히 피지컬과 체력은 기본인데 왜 이제서야 피지컬을 강조하냐는 것. 급기야는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보듯이 철퇴축구를 따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과 다르게 체격적인 문제는 개선하기 까다롭다.

한국과 역대성적은 78전 40승 23무 15패로 한국이 앞서있을 만큼 가장 많이 국대 경기를 벌인 나라이다. 그러나 2000년대 와서 예전처럼 크게 이겨본 적은 없으며 2010년 이후론 한국에 티키타카를 이식하겠다며 무리수를 일삼은 조광래와 아예 함량미달 감독이었던 홍명보를 연달아 거치며 4년을 갈팡질팡 한 탓에 전적이 더 나빠져 2승 2무[17] 3패를 기록 중이다.

우리나라가 에닝요라돈치치의 귀화 및 대표 팀 발탁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과 달리 외국인의 귀화 문제에 자유로운 듯하다. 사실 일본은 이민문제에 소극적이고 지금도 일반적으로 귀화가 힘든 나라로 여겨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축구 국가대표 팀에는 비교적 일찍 귀화 선수들을 발탁해왔다. 도하의 비극 현장에도 있었던 라모스 루이[18]를 비롯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표로 뽑혔던 로페스 와그너, 그리고 한일 월드컵독일 월드컵 대표였던 알렉스[19]등이 있다. 그리고 리 타다나리 역시 일본으로 귀화한 사례이다.

3 역대 전적

3.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34위
⑯⑯

년도결과순위승점경기득점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기권
1950 브라질 월드컵출전 금지
1954 스위스 월드컵예선 탈락
1958 스웨덴 월드컵불참
1962 칠레 월드컵예선 탈락
1966 잉글랜드 월드컵불참
1970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74 서독 월드컵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예선 탈락
1982 스페인 월드컵예선 탈락
1986 멕시코 월드컵예선 탈락
1990 이탈리아 월드컵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예선 탈락[20]
1998 프랑스 월드컵조별리그31위0300314
2002 한일 월드컵16강9위7421153
2006 독일 월드컵조별리그28위1301227
2010 남아공 월드컵16강9위7421142
2014 브라질 월드컵조별리그29위1301226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합계16강 2회5/20[21]16174491422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대한민국의 영원한 숙적이자 라이벌이 된 일본. 그에 걸맞게 1998년 대회부터 내리 5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했고, 4승 4무 9패 14득점 22실점으로 아시아 2위, 통산랭킹 34위에 올라와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브라질 1패(2006), 아르헨티나 1패(1998), 네덜란드 1패(2010), 러시아 1승(2002), 벨기에 1무(2002), 파라과이 1무(2010), 덴마크 1승(2010), 콜롬비아 1패(2014), 크로아티아 1무 1패(1998, 2006), 카메룬 1승(2010), 터키 1패(2002), 코트디부아르 1패(2014), 호주 1패(2006), 튀니지 1승(2002), 그리스 1무(2014), 자메이카 1패(1998)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2승 3무 3패, 남미 1무 3패, 북중미 1패, 아프리카 2승 1패, 오세아니아 1패를 기록중이다. 대체로 유럽과 아프리카에 강하고 남미에 약세를 보인다. 유럽 전적은 겉보기에는 우리보다 훨씬 좋아보이지만 상대한 나라들의 체급차이도 있고, 2002년 이후 성적이 2승 3무 2패로 호각세인 점은 대한민국과 동일하다. 아프리카에 전승행진을 달렸지만 2014년 코트디부아르에 1:2로 역전패하면서 이 기록도 무색해졌다.

일본에 패배를 안긴 나라는 아르헨티나(1패), 크로아티아(1패), 자메이카(1패), 터키(1패), 호주(1패), 브라질(1패), 네덜란드(1패), 코트디부아르(1패), 콜롬비아(1패)로 총 9개국이다. 아직 일본이 2패를 당한 나라가 없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월드컵 진출, 경기 횟수가 적어서 일어난 현상이다. 월드컵 무대에서 두번 만난 크로아티아를 제외하면 모든 나라와 한번씩 붙었다.

그래서 일본이 우세한 팀들도 러시아, 튀니지, 카메룬, 덴마크로 승리 갯수와 동일하게 네 팀이다. 대한민국이 우세를 보이는 국가의 수와도 같다. 호각세를 보이는 팀들은 벨기에, 파라과이, 그리스 세 팀이며 나머지는 모두 열세이다.

최다 득점기록은 2010년 조별리그 덴마크전으로 3:1로 승리해 한국보다 한경기 득점수가 앞선다. 최다 실점기록 역시 2006년 조별리그 브라질전 1:4 패, 2014년 조별리그 콜롬비아전 1:4 패로 한국의 9실점보다 월등히 낮은데, 이는 세계와의 격차가 현재보다 더 컸을 당시 일본이 전혀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던 이유가 크다.

3.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년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
1992 사우디 컨페더컵예선 탈락
1995 사우디 컨페더컵조별리그6200218
1997 사우디 컨페더컵예선 탈락
1999 멕시코 컨페더컵예선 탈락
2001 한일 컨페더컵준우승2531161
2003 프랑스 컨페더컵조별리그6310243
2005 독일 컨페더컵조별리그5311144
2009 남아공 컨페더컵예선 탈락
2013 브라질 컨페더컵조별리그7300349
2017 러시아 컨페더컵예선 탈락
2021 카타르 컨페더컵????????
합계준우승 1회5/9165291925

3.3 올림픽

3.4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대회 순위 : 3위

년도결과순위경기득점실점승점
홍콩 1956기권
대한민국 1960기권
이스라엘 1964기권
이란 1968예선 탈락
태국 1972기권
이란 1976예선 탈락
쿠웨이트 1980기권
싱가포르 1984기권
카타르 1988조별리그10위4013061
일본 1992우승1위53206311
아랍에미리트 19968강5위4301739
레바논 2000우승1위651021616
중국 2004우승1위642013614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4강4위62311179
카타르 2011우승1위642014614
호주 20158강5위43108110
아랍에미리트 2019?????????
합계우승(4회)8/164124125803884

아시안컵 진출 횟수 8번, 최고성적은 우승 4번, 총성적은 24승 12무 5패, 80득점 38실점으로 아시안컵 순위 3위에 올라있다. 첫 진출은 1988년으로 동남아, 중동 국가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1992년 자국 대회 우승을 기점으로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이후로는 아시아 최강[24]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기존 진출국들의 순위를 무섭게 따라잡으며 현재는 3위까지 올랐고, 일본에 승점이 앞서는 나라는 이란과 한국 뿐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이란 1승 2무(1988, 1992, 2004), 한국 2무 1패(1988, 2007, 2011), 중국 4승(1988, 1996, 2000, 2004), 사우디아라비아 4승 1패(1992, 2000(2번), 2007, 2011), 쿠웨이트 1패(1996), 이라크 2승(2000, 2015), 아랍에미리트 1승 2무 1패(1988, 1992, 2007, 2015), 우즈베키스탄 2승(1996, 2000), 호주 1승 1무(2007, 2015), 카타르 1승 2무 1패(1988, 2000, 2007, 2011), 시리아 2승(1996, 2011), 바레인 1승(2004), 요르단 1승 2무(2004, 2011, 2015), 태국 1승(2004), 북한 1무(1992), 오만 1승(2004), 베트남 1승(2007), 팔레스타인 1승(2015)이다.

일본에 패배를 안긴 적이 있는 나라들은 한국(1패), 아랍에미리트(1패), 카타르(1패), 쿠웨이트(1패), 사우디아라비아(1패)로 총 다섯 나라다. 전부 1패씩밖에 당하지 않았고, 이 중 3패가 첫 대회인 1988년 카타르에서 얻은 것이다. 결국 1992년부터 지금까지 최근 7개 대회에서 2패밖에 당하지 않은 것. 전세계 모든 메이저 대회를 통틀어 가장 높은 패배 방어율 기록이다.

지역별 상대전적으로는 동북아시아 4승 3무 1패, 서아시아 14승 6무 4패, 중앙아시아 3승 2무, 동남아시아 3승 1무를 기록중이다.

일본이 승리를 거둔 적이 있는 나라들은 중국(4승), 사우디아라비아(4승), 우즈베키스탄(2승), 시리아(2승), 이라크(2승), 이란(1승), 카타르(1승), 오만(1승), 태국(1승), 바레인(1승), 아랍에미리트(1승), 베트남(1승), 호주(1승), 팔레스타인(1승), 요르단(1승)을 기록중이다. 중국과의 상대전적은 박빙이지만 의외로 아시안컵에서는 네번 붙어 네번 다 이겼다.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매우 강하지만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을 상대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이 열세를 보이는 나라들은 한국, 쿠웨이트로 단 둘뿐이고,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들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북한 세 팀이다. 나머지 국가들에는 전부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2000년 조별리그 우즈베키스탄전 8:1 승리로 무려 여덟골을 몰아넣었고,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88년 조별리그 카타르전 0:3 패배로 세 골을 허용했다.

3.5 코파 아메리카

  • 1999년 대회에 초청받아 출전하였다.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25]하였다.

3.6 아시안 게임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3세 이하)

3.7 청소년 대표팀

3.7.1 FIFA U-20 월드컵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다.

2009년, 2011년 대회는 한국에게 져서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3.7.2 FIFA U-17 월드컵

자국에서 열린 1993년 FIFA U-17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8강에 진출했다. (16개국 본선 진출 체제)

2001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회는 나이지리아에 0-4, 프랑스에 1-5로 시원하게 털리며, B조 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7년 한국 대회도 D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4개국 본선 진출 체제)

2009년 나이지리아 대회는 B조 4위로 탈락.

2011년 멕시코 대회는 8강까지 진출했다. (최종 순위 : 5위)

2013년 아랍에미리트 대회는 16강전에서 탈락했다. (최종 순위 : 9위)

2015년 FIFA U-17 월드컵(칠레) 아시아 지역 예선 8강전에서 이승우(축구선수)에게 골을 먹히면서 0-2로 져서 본선에 못 나갔다.

4 역대 유니폼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유니폼 참고.

5 주요 선수

5.1 현재

5.2 레전드

  1. 일본어 : 삿카닛폰다이효(Satka Nippon Daihyō)
  2. 이 알칸타라는 FC 바르셀로나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갖고 있었던 대단한 선수다. 357경기 357골이라는 평균 득점 1점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이다.
  3. 여담으로 한국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스웨덴 전 0-12 패가 최다 실점 패, 최다득점 기록은 2003년 아시안컵예선 네팔전 16-0.중국은 없고 역시 안습
  4. 실제로는 나카타의 슛이 이란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온 공을 오카노가 슬라이딩으로 밀어넣은 골이었다.
  5. 첫 경기였던 호주 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종료 6분을 남기고 3골을 연달아 먹어 1-3으로 역전패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2차전인 크로아티아 전에서는 그 유명한 신칸센 대탈선슛이 나오는 등 한심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0-0 무승부를 거두고, 최종전인 브라질 전에서는 선제골을 넣는 등 나름 선전했으나 결국 내리 4실점하여 1-4로 압살 당한다.
  6. 네덜란드에게 0-1로 패하긴 했으나, 네덜란드는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전통의 강호로 평가받는 만큼 나름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회 전의 여론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
  7. 당시 결승에서 스페인에게 0-4로 참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8. 참고로 AFC에서 남자 대표팀이 FIFA 주관대회에서 우승한건 1989년 U-17 월드컵에서 우승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하다. 일본은 위 U-20와 이 대회의 성적인 2번의 준우승이 최고성적이고 한국은 1983년 U-20 월드컵과 2002년 월드컵에서 거둔 2번의 4위가 최고성적.
  9. 이 당시 대구FC는 없어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포항 팀을 불렀다.
  10. 사실 우치다 아쓰토 같은 경우는 국가대표를 은퇴하기에는 워낙 어린 나이라서 번복할만했다고 쳐도, 엔도와 하세베 같은 경우는 일본팀의 허리라인을 지난 10년간 책임져왔던 선수들이라 은퇴의 임팩트가 더욱 더 컸었고, 실제로 일본은 월드컵 후 이들이 없는 A매치 경기들에서 매우 안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허나 엔도는 2014년 당시 이미 34세였고, 하세베도 2014년으로부터 4년 뒤인 2018년에는 34세의 노장이 되기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이들이 대표 팀에서 뛸 만큼의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1. 이전에 분요드코르 감독을 맡으면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과 경기를 했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전부터 K리그 경기를 보면서 분석해왔을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12. 한국전 2승 1무로 유일하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못이겨본 감독이다. 우리에게 있어 악몽같던 2011년 삿포로 참사와 2013년 동아시안컵을 이겼던 명장이며, 그나마 박지성 선수가 현역으로 뛰였던 2011 AFC 아시안컵 1무가 있지만 그마저도 승부차기에서 0-3으로 졌다. 사실상 한국 상대로는 3승인 셈이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천적이였다고 볼 수 있다.
  13. 한 예로 일본은 월드컵에서 역전승을 거둔 경기는 단 1번도 없는 반면, 역전패를 당한 경기는 3경기나 된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역전패를 당한 건 1경기 뿐이지만 역전승을 한 건 2경기가 있다.
  14. 비 라이센스라면 상관없음.
  15. 실제 대회 유치 직전의 기사를 보면 나가누마 축구협회장과 유치위원회 오구라사무총장의 마지막 해외활동 일정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의문이 큰 상황이다.
  16. 하지만 압박이 거의 없고 패싱게임 위주의 J리그에서 뛰다가 몸싸움 능력이 퇴화하는 국내 공격수와 미드필더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어린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
  17. 2011 아시안컵에서 비겨서 승부차기로 한국이 0-3으로 4강전에서 졌다.
  18. 1977년부터 요미우리 즉 현재의 도쿄 베르디에서 활약한 일본 최초의 외국인 축구 선수. 영화 <버블로 GO!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에서 1990년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이 사람과 마주하는데 디스코장에서 춤추고 있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이 도하에서 후반전 추가시간에 코너킥에 주의하라고 조언해준다.
  19. Alessandro dos Santos
  20. 예선 때 도하의 비극이 일어났다.
  21.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
  22. 3/4위전에서 멕시코를 이겼다.
  23. 3/4위전에서 대한민국에게 패했다. 자세한 것은 카디프 대첩 항목 참조.
  24. 라이벌인 우리로서는 굉장히 불쾌한 이야기지만 아시안컵에 한정하면 일본이 아시아 최강이다. 1992년 이후 20년동안 열린 6번의 대회 중 4번이나 우승했기 때문. 이 기간동안 승무패와 골득실 모두 한국에 월등히 앞선다. 대신 한국은 월드컵 전적이 앞서지만, 2002년을 제외한 네 번의 대회에서 똑같은 결과와 거의 비슷한 승점을 얻어서 월드컵으로 우위를 나누기도 민망해진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축구국가대표팀의 성적평가는 월드컵이 제일 우선이라는건 변함이 없고, 아시안컵 우승의 가치를 월드컵과 비교했을때에는 세계축구와 아시아축구의 격차를 알고있다면 16강보다도 높게 평가받기 힘든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국가대표팀 계약기간을 월드컵시기에 맞추는 이유가 왜겠는가? 대륙선수권 성적만으로 대륙최강을 논한다면 남미 최강은 우루과이고, 아프리카 최강은 이집트가 된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에 어불성설
  25. 이 대회에서 일본은 3패를 하게 되는데, 죠 쇼지를 비롯한 기존의 국가대표 멤버들이 1999년 나이지리아 청소년 월드컵에서 준우승한 황금세대로 대부분 물갈이 되었다. 살아남은 건 공격수인 나카야마 정도. 이렇게 물갈이 된 일본대표팀을 트루시에가 시드니 올대를 겸해서 단련시켜서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을 우승하는 등 ㄷㄷㄷ한 전력으로 올려놓지만, 기대했던 2002년에는 딱 16강만 하고 터키에 덜미가 잡혀서 낙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