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일본의 축구 리그
구분명칭
1부J1리그
2부J2리그
3부J3리그
4부JFL
J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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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메이지 야스다 생명 J리그
영문명칭J.League
창설년도1993년 (J1리그)
1999년 (J2리그)
2014년 (J3리그)
참가 팀 수18팀 (J1리그)
22팀 (J2리그)
13팀 (J3리그)
리그 구성J1리그 (1부)
J2리그 (2부)
J3리그 (3부)
타이틀 스폰서메이지 야스다 생명
웹사이트[[1]]


새롭게 재편된 J리그 로고의 바리에이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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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 출범 20주년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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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 디비전 1, J리그 디비전 2 로고


1 소개

아시아에 몇 안되는 자금과 인프라가 탄탄한 리그

1993년에 출범한 일본의 프로 축구 리그. 정식 명칭은 "일본 프로 축구 리그"이며 J리그는 약칭이다. 주로 J리그라 하면 1부 리그로 받아들이곤 하는데 정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 듯이 J리그는 프로 축구 리그를 통칭하는 명칭이며 1부 리그는 J1리그, 2부 리그는 J2리그, 3부 리그는 J3리그로 구분한다. 1993년 단일 리그로 출범하여 1999년 2부리그인 J리그 디비전 2(현재의 J2리그)를 창설해 승강제를 도입했고, 2014년 J3리그를 출범시켜 3부리그 체제를 확립했다. J리그와 J3리그는 검은색, J1리그는 빨강색, J2리그는 녹색을 사용한다.

브라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외국인선수도 브라질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감독마저도 브라질 출신이 많았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가시마 고문 및 총감독을 거쳐 후에 일본 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은 바 있는 하얀 펠레 지쿠가 이 계열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적인 명장인 아스날 FC아르센 벵거도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을 지낸 바 있으며, 초창기에는 게리 리네커같은 왕년의 스타를 영입하기도 했었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4년간 클럽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서 J리그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할 필요도 없이 바로 클럽 월드컵에 직행했다. 이는 개최국 어드벤티지로서 2009년과 10년 대회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렸는데 대륙 클럽 대항전 1위 팀 + UAE 리그 우승팀 알 알리가 출전한다.(포항 스틸러스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자격으로 아시아 대표로 출전) 더욱이 2008년 감바 오사카와 2007년 우라와 레즈의 경우는 당당히 AFC 우승 자격으로 출전했고, 이 때문에 개최국 티켓 1장은 당해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팀들에게 돌아갔다.

자금력이 뛰어나 K리그나 여타 다른 아시아 리그에서 뛰던 특출난 선수들을 많이 사들여 보유하는데다가 풋볼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하는지라 유럽 클럽들의 스카우터들이 항상 주목하는 리그다. 정작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은 적은 편이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일본 선수들의 유럽(특히 독일) 진출이 상당히 늘었다. 이는 J리그 사무국과 분데스리가 사무국이 선수 정보를 공유하기로 제휴 협약을 맺었기 대문이다. 그래서 계약상 독일과 맺은 제휴 협약으로 인해, 자유계약 신분으로 이적하는 선수가 많아 이적시 이적료를 못 받고 있다. 여하튼 2012년 현재 유럽리그에서는 한국의 3배 정도인 4~50명 가량의 일본 선수들이 뛰고 있다.

반면 J리그 득점왕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중동의 오일머니를 쫓아 떠나버리는 상황이 점점 늘고 있다. 그래도 돈은 엄청 받고 판다.[2]

시작부터 브라질 축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밀조밀한 패스 플레이가 발달했고, 이를 바탕으로한 미들진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K리그보단 피지컬과 압박이 떨어져서 J리그에 있다가 K리그로 온 선수들은 K리그가 너무 거칠다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3] 특히 어린 나이에 J리그에 진출한 한국 유망주들은 C급 계약으로 박봉[4]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타향살이에 힘겨워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혀 다른 리그 스타일에 적응 못해 헤매는 겪곤 한다.

선수자원도 풍부하고, 재정난에 허덕이는 K리그 팀들에 비해 자금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 까일만한 수준의 리그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 돈을 충당하는건 스폰서 뿐만 아니라 입장료와 마케팅으로 버는 수입이다.[5] 인기나 규모 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봐도 출중한 편.

FM과 피파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던 리그. J리그와 코나미의 독점계약 때문에 J리그는 위닝일레븐[6] 외 타 게임에는 못나온다. 반면 K리그는 돈이 없어 라이센스 계약한 리그가 별로 없는 SI社의 풋볼 매니저에도 나올 정도로 안 나오는 게임이 없다. 그러나 코나미가 리그 파트너십 계약을 포기하고, 오히려 EA가 그 자리를 차지하며 피파에만 등장하는 리그가 될 일만 남았다.

2010년부터 유럽형 시즌제인 추춘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K리그도 추춘제 도입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겨우 약간 더 따뜻한 기후로는 추춘제 도입은 솔직히 어렵다. 일본북해도 근방을 비롯한 북쪽은 무지하게 춥다. 게다가 눈까지 쌓이면 헬게이트 오픈(...) 덕분에 홋카이도를 연고지로 둔 팀들은 결사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삿포로돔구장이 있잖아? 아마 K리그는 안 될거야.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리그가 한달 반동안 중단되었다. 이미 아시안챔피언스리그에선 가시마 앤틀러스를 비롯한 팀들은 홈경기를 전면 연기했으며, 아예 가시마는 지진으로 경기장이 심하게 파손되어 복구공사에만 3달 가까이 걸린다는 결과에 약 3달동안의 임시 해산을 해버려 소속된 해외선수 및 코치진들은 죄다 자국으로 귀국했다. 그 밖에 베갈타 센다이와 여러 팀들도 3, 4월 경기가 불투명해졌다. 또, 이것 때문에 원래 1999년 이후 12년만에 한 번 더 초청국 자격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특별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이 기간동안 지진으로 연기된 경기를 치렀다.

2 역사

1964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올림픽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코치로 영입된 데트마르 크라머[7]가 올림픽 8강이라는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고서 독일로 귀국하며 '대표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리그가 필요하다'라고 조언. 이에 1965년 일본 사커 리그(JSL)가 시작된다.

이후 올림픽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일본 내에서 축구의 인기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며 점차 열기가 식어가고, 이에 리그 관계자들이 다시금 축구 열기에 불을 붙여줄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 이와중에 FIFA월드컵 최초의 아시아 개최지로 일본이 어떻겠냐는 의향을 일본 협회에 전하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여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뛰어듬과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JSL을 프로리그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일본 사커 리그가 1992년 프로 리그로 전환된 것이 일본 프로 사커리그. 리그의 약칭으로는 계획 설립과정에서 프로젝트의 가칭으로 사용되던 'J리그'가 정식으로 채용된다.


3 리그 시스템

단계구분리그
1프로J1리그
18개 팀
2프로J2리그
22개 팀
3프로J3리그
13개 팀 + U-23팀 3개팀
4세미프로JFL
18개 팀
5/6아마추어9개의 지역리그
129개 팀
6/7이하아마추어도도부현 리그

최상위 리그는 보통 J리그라 불리는 J1리그로, 총 18개 팀이 소속되어 있다. 하위 리그로 J2리그(22팀)와 J3리그(13팀)를 포함하고 있다. 승강제는 이뤄지지 않지만 JFL 아래에는 일본 전국을 9개 지역으로 나눈 지역리그로 4부리그를 구성하며, 그 아래에 수십개의 도도부현 리그가 존재한다.

출범후 2004년까지는(1996년 제외)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각각에 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을 치루어 우승팀을 가렸다.(한팀이 전후기리그 모두 우승하면 종합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은 치루지 않음)

2005년 부터 총 34라운드 단일리그로 경기하며 별도에 플레이오프는 치루지 않으며 리그 1위가 곧 우승팀이다.리그가 다 끝난 뒤 J1 리그 최하위 세 팀은 J2 리그로 강등되고 J2 리그 최상위 세팀은 J1 리그로 승격된다. 그리고 여지껏 해왔던 J1 리그 16위와 J2 리그 3위의 J리그 교체전은 2009년부터 실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2012년부터는 J2의 팀 숫자가 22개로 늘어난 관계로 잉글랜드의 챔피언십처럼 2부리그 1, 2위팀은 승격 3위부터 6위팀까지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격팀을 가리게 된다.

J2리그 팀이 22팀까지 늘어나면 JFL(일본실업리그 우리나라로 치면 내셔널리그)을 기반으로 J3 출범을 계획하고 있으며 2012년 22팀이 되자 최하위 강등, 21위는 강등 플레이오프를 도입 JFL과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다.

2014년 부터 J3리그가 12팀으로 출범하였고, 기존 3부리그 역할을 하던 JFL은 자동적으로 4부리그가 되었다.

리그 이외에 대회로는 J1구단들만 참여하는 리그컵(나비스코컵),프로와 아마가 모두 참여 가능한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통칭 천황배 또는 일왕배), 리그 우승팀과 천황배 우승팀이 겨루는 슈퍼컵, 남미의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팀을 초청해서 리그컵 우승팀과 겨루는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팬들의 투표로 팀을 편성해 대결하는 올스타전이 있다.

2015년부터 전·후기리그제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계획안에 따르면 2004년 전까지 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누적 승점이 가장 높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및 준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하는 방식. J리그의 인기가 날로 시들해지자 흥행을 위해 포스트시즌 부활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런데 결국 JFA 이사회에서 확정되었다.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사안이 통과됨에 따라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 [해당 기사(일어)]

그리고 기존의 춘추제에서 추춘제로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J리그도 유럽 시즌 일정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피셜이 아니라서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참패로 J리그에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듯 하다. 근데 안 그래도 추운 윗동네에서는 축구 어떻게 하려고? 돔구장이 있다.


4 인기

일본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있는 스포츠

일본에서 9백만명이 관람하는 리그[8]
2015년 기준 아시아에서 평균관중수 6위 (경기당 17,803명)[9][10]

J리그의 관중 동원력. [출처]

1993년 출범후 일본의 국기(國技)라고까지 불리는 프로야구의 인기마저 누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 언론에서조차 꽤 비중있게 다뤄질 정도였다. 그러나 95년부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동시에 평균 관중수도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998년 월드컵 진출로 반짝 특수를 얻기도 하지만 잠시 뿐. 급기야 1999년엔 J리그 클럽 원년멤버에 상위권이였던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경영난으로 인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에 흡수 합병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마지막 경기였던 천황배 결승에서 시미즈 에스펄스를 꺾고 우승)

이에 따라 J리그 연맹은 대대적인 리그 개편을 선언하고 선수들의 연봉, 리그 환경, 마케팅, 자금내역 등에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시작하고 1999년 J2(2부리그)를 발족하여 승강제를 만들어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결실은 2002년 월드컵으로 이어져 J리그는 매년 관중증가와 흑자구단 증가 등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 리그로 평가 받는다. 현재 J2의 평균관중만 봐도 무려 K리그 클래식 수준이다. 게다가 J2 역시 전부 유료관중이라는 걸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K리그보다 높다고 할 수 있으며 그만큼 지역이랑 잘 밀착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11]

평균관중은 1만 9천명정도로 전부 유료관중이다. 현재 무료관중은 거의 없으며 있어도 관중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12] 다만 일본이 워낙에 야구 인기가 높다보니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야구 못지 않게 관심 받고 있다.

하지만 관중은 2008년 평균관중 1만 9천명 돌파 이후로 조금씩 하락세이다.[13] 일단 일본은 축구보다 야구에 관심이 더 많은 나라고, 일본 국적의 선수들이 해외 유명 리그에 진출한 경우가 별로 없어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편. 거기에 경기침체와 일본 대표팀의 부진도 한 몫을 했다. 때문에 관중 수는 아직 그대로여서, J리그 사무국측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반전의 기회로 삼을려고 했으며 일본이 월드컵에서 예상 외에 활약을 하며 J리그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걸로 보였다. 하지만 가가와 신지를 포함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진출,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결국 2011시즌 평균 관중 수는 기존 연도에 비해 약 20% 정도가 감소했고, 이는 J2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14]

다르게 생각해보면 세계 프로축구 중 1만 9천명 이상 관중을 동원하는 리그는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걸 생각해 볼때 관중 동원력이 좋은 리그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평균관중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볼순 없다.[15]

2012년에는 반전에 성공하며 1만 7천명에 평균관중을 기록했다.

2013년 J리그 경기, 사업 총괄 본부장인 나카니시 다이스케가 한 인터뷰에 따르면 J리그가 2008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걸어왔고 특히 신규 유입되는 관중이 전혀 없어서 J리그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J리그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이 때문에 구단에 지급되는 배당금을 줄이는데 이로 인해 파산될 구단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원문] [번역본]. 앞서 말한 '전·후기리그제의 부활'도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보인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일본 축구 국대의 나름 충격의 16강 탈락으로 인해 관중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1만 7천명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전년보다 다소 상승한 1만 8천명 가까이 보면서 흥행몰이를 했다. J1, J2리그는 전년보다 3%씩 관중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J3(3부리그)는 나온지 1년 밖에 안됐는데 무려 8%나 증가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16] [관련 기사]

J리그는 2017시즌 이후 중계권과 관련해 영국의 디지털 스포츠 콘텐츠 유통 회사인 퍼폼그룹(Perform Group)과 10년간 약 2,100억엔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5 국내에서의 인식

국내에서는 J리그의 인프라는 인정해도 실력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A3 챔피언스컵 2006 대회에서 J리그 우승팀인 감바 오사카가 K리그 우승팀인 울산 현대에게 6:0으로 대패하는 바람에 이러한 인식은 더욱 커졌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2007년 우라와 레즈,[17] 2008년 감바 오사카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꽤나 주가를 올렸었지만 2008년 8월 2일에 도쿄에서 열린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에게 3:1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사실 J리그 올스타가 더 짜임새 있는 축구를 구사했지만, 어찌됐건 골을 못 넣었기 때문에 J리그 팬들에게 욕만 줄창 먹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09년 인천에서 열린 2회 조모컵에서는 1-4로 스코어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18] K리그를 캐박살 내버려 이젠 실력도 K리그를 앞서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해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팀이 바로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인데, K리그 올스타가 J리그 올스타를 압살했던 2008년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J리그에서 나왔고, 그 반대로 J리그 올스타가 K리그 올스타에 완승을 거둔 2009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K리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뭔가 아이러니한 부분.

2007년을 기점으로 K리그와에 상대전적을 끌어올려 총전적은 35승 19무 31패. 물론 K리그 관점으로.(2012 시즌까지의 기록)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19]를 제외하곤 J리그 팀들이 모두 조별 1위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16강, 8강에서 팀킬로 감바 오사카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떨어지고, 스리위자야 FC고춧가루 덕에 턱걸이로 간신히 16강에 올라 원정길에 나선 FC 서울이 놀랍게도 원정 승부차기의 악조건 끝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승리. 최종적으로 나고야 그램퍼스가 4강에 올랐으나 "아시아의 깡패" 라 불리는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에게 2:6(원정), 1:2(홈) 도합 3:8이라는 압도적 스코어로 자취를 감췄다. 나름대로 J리그 팀 중 하나는 결승에 올라올 것을 자신해서 도쿄 국립 경기장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장소로 유치한 J리그 사무국과 일본축구협회는 결국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는 수모를 당한다.[20]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예선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탈락하고 16강에서는 중국 슈퍼 리그허난 젠예가 감바의 발목을 잡지만 않았어도... 감바 오사카가 K리그성남 일화에게 0:3 대패, 또한 J리그 3년 연속 우승팀인 가시마 앤틀러스는 놀랍게도 3일전에 감독을 해고하고 코치가 팀을 맡은 포항 스틸러스에게 0:1로 패배 함으로서 전원 16강도 못 뚫고 광탈해버렸다.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도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걸 생각하면 일본 입장에서는 2년 연속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는 상황. 참고로 위의 2팀 외에 K리그 나머지 팀(수원, 전북)도 각각 중국과 호주 클럽을 꺾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K리그가 싹쓸이 했으며, 그리고 우승컵은 K리그의 성남 일화 천마가 공수해왔다.

2011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모처럼 일본 참가팀 4팀(가시마 안틀러스, 감바 오사카, 세레소 오사카, 나고야 그람퍼스)이 16강에 올랐지만 내실을 보면 좀 실망이었는데 나고야는 한국 구단인 FC서울 원정을 이기곤 약체급인 알 아인과 항저우 그린타운 원정에서 죄다 지는 통에 조 2위로 밀려났고 나머지 세레소 오사카와 가시마도 각자 전북과 수원에게 밀려 조 2위로 진출했다. 결국 16강전에서 일본 팀(감바 오사카와 격돌)끼리 맞붙어 8강에 오른 세레소 오사카를 빼고 나고야와 가시마는 각자 FC서울과 수원 삼성 원정에서 완패하여 8강에선 한국은 3팀 모두가 올라온 반면, 일본은 겨우 1개팀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1개남은 세리소 오사카조차도 8강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1승 1패를 주고받았으나 원정에선 이동국에게 4골을 헌납하며 무려 6:1로 참혹하게 탈락했다.[21] 3년전만 해도 아챔 연속 우승에 아시아 무대는 별 거 아니다고 큰 소리치던게 허무할 지경.

게다가 2012년 구정컵에서는 2011시즌 J리그 10위 시미즈 펄스와 성남일화의 경기에서 주장 사샤가 빠진 성남이 시미즈를 5:1로 크게 이겼다. 그런데 2011년 2월에 열린 이 대회에서 울산은 4-0으로 텐진에게 능욕당했었다. 뭐 정작 텐진은 아시안 챔피언시리즈에서 전북 현대에게 3:0으로 16강에서 덜미를 잡혔지만

그리고 K리그가 부진한 2012 시즌의 ACL에서마저 8강에 한팀도 올려보내지 못했다.[22]

2013 시즌은 ACL 우승을 노렸으나 가시와 레이솔 한팀만이 4강에 올랐다. 그마저도 알 샤바브(사우디아라비아)에게 2무 골득실 우위로 겨우 올라갔고 준결승에서 광저우 헝다에게 2패 그것도 8실점 1득점이라는 참패로 탈락해버리면서 J리그는 2008년 감바 오사카가 호주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한 이후 5년 연속으로 ACL 결승 구경도 못 하고 있다.

2014 시즌에도 ACL 8강에 한 팀도 올라가지 못한 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FC 서울에 패배하였다.

ACL에서 K리그가 전적이 비슷한 세 리그 중 하나다. 다른 둘은 우즈벡 리그와 이란 리그이나 이들과 맞대결 경우는 토너먼트 경우 외엔 없어 전적 자체가 많지 않으나 J리그와는 61경기에서 25승 13무 23패를 기록중이다.[23]

2015 시즌은 그나마 2008년 이후 J리그가 가장 선전한 시즌인데 감바 오사카가 4강, 가시와 레이솔이 8강까지 진출하였다. 나머지 가시마 앤틀러스우라와 레즈는 조별리그 탈락.

2016년엔 우라와 레즈, FC 도쿄, 감바 오사카, 산프레체 히로시마가 참가했고 이중 우라와 레즈와 FC 도쿄가 16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두 팀 모두 각각 FC 서울상하이 상강에게 발목 잡히며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5.1 J리그 진출에 대한 인식

과거 90년대만 해도 정상급 한국 선수들이 실질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외 무대였다. 일단 그 당시에는 일본과 한국의 국민소득(1인당 GDP)이 4~5배 정도 차이가 났기 때문에 기본 연봉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K리그와 주는 돈의 격차가 너무나 컸다. J리그 창립초에는 많은 돈을 들여 이름값 높은 황혼기 선수를 사왔지만 그게 전력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돈을 들여 30대에 막 들어선 아직은 쓸만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24] 이 당시 한국 선수들은 당연히 이런 스타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이름값도, 경력도 후달렸지만 황보관, 노정윤등 초창기 J리그의 한국인 선수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팔팔한 현역이고 동양문화에 익숙해 적응이 빠른 한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 선수들이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등 세월이 많이 지난 현재에 와서도 당당히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급에 들만한 선수들이었으니....그 결과 90년대 각급 한국국대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J리그가 무조건 사갔다. 그리고 그렇게 사재기한 한국 정상급 선수들이 상당수가 기대에 걸맞게 맹활약을 해주면서 J리그의 한국국대 사랑은 2000년대 초기까지 계속 되었다.[25] 당시 한국 정상급 선수들도 사실 유럽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실력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 등 여러가지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K리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면서 고국과도 가까운 J리그는 매력적인 리그였다. 그래서 박지성,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하석주, 최용수, 노정윤, 윤정환, 김도훈, 최성용, 고정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90년대 한국 레전드들은 대부분 J리그에 진출했다.

이에 K리그의 유력 선수들을 빼간다며 위기의식이 있었고 심지어 J리그를 돈으로 선수를 사가는 악의 축 마냥 언론이 몰아가고 J리그에 진출한 선수를 비애국자마냥 몰아붙이던 과거도 있었다. 프로선수가 돈많이 주는데로 가는게 뭐가 이상한가요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명성이 올라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한국 선수도 유럽 진출이 수월해졌고 무엇보다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이 더해져 위상이 올랐고 이청용, 기성용 등 K리그 출신도 맹활약하면서 K리그에서 잘하면 유럽에 갈 수 있는데 굳이 상위리그도 아닌 J리그에 갈 이유가 없어져 옛날보다 진출이 줄어들었다. 대상이 J리그에서 유럽이나 중동, 중국으로 변했을 뿐 여하간 K리그는 최상급 선수가 팔려나간다. 그래도 아시아 쿼터제 등이 생겨나며 현재도 청대, 올대 등 유스급 주요자원들, 즉 어린 선수들이 J리그에 진출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상술한 1990~2000년대초는 K리그가 실력은 차치하더라도 인프라 측면에서나 연봉에서나 J리그보다 뒤쳐졌던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술된 황선홍감독의 기사에도 나타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K리그가 발전을 거듭하여 J리그의 인프라와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특히 K리그의 상위권 팀, 즉 포항, 서울, 수원 등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높은 수준이다. 이에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코치였던 이케다 세이고 코치는 아예 유망주들은 J리그를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홍명보 감독도 주전을 차지할 수준의 실력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J리거였던 황선홍 감독조차도 2000년대 초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인프라 차이도 없는데 연봉 1, 2천만원 더 받으려고 J리그 가는게 이해가 안되며 일일히 지도를 받는 게 싫어서 가는거라면 멍청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

최근엔 왕서방이나 기름장사들의 돈질에 밀려서인지 J리그 붐이 주춤해졌다. 뭐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선수들이 뭣도 모르고 건너가는 경우는 여전하지만, 과거처럼 국가대표 급 선수가 가는 경우는 상당히 줄었다. 대부분 돈 더 많이 주고 중국이나 중동으로 가는 중. 김창수가 뜬금없이 J리그 가서 팬들 어이없게 만든것도 다 그 때문이다.[26]

또다른 함정을 찾아본다면 환경이 달라지고 명확한 각오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선수가 갑자기 외국인 선수로 바뀌면서 겪는 문제점이다. 이 당시 유망주들은 EPL이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꿈이 높아졌는데 K리그는 당시 존재했던 드래프트 제도 때문에 원하는 팀을 쉽게 선택하지 못했고, 또 제아무리 유망주라고는 해도 당시는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팀 수가 비교적 적던 시절이라 드래프트에서 확실히 선택받을지도 불확실했고, 신인의 신분으로 당돌하게 입단 첫 해부터 연봉 협상을 나누기도 어렵기 때문에 두각을 드러내던 유망주들이 J리그로 엄청나게 진출했다. 실제로도 김보경, 김영권, 김진수, 장현수, 조영철, 한국영 등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유망주들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J리그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하부 리그나 실업 리그까지 치면 J리그의 팀수는 K리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며, J리그 역시 청소년 대표팀 유망주였던 박지성 영입의 신화와 더불어 그동안 유상철, 황선홍 등 한국 축구의 전설로 추앙받는 선수들이 쌓아놨던 좋은 인상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J리그는 용병이 아시아 쿼터까지 해서 4명이 아니라, 4명 출장 5명 보유이기 때문에 부상을 대비해 보험급으로 박지성 신화를 바라며 싼맛에 하나 구입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런 탓에 각 팀마다 K리그 유망주 하나 정도의 자리가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출장도 못했다. 즉, 환경 다르고 음식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서 K리그 소속의 한국인 선수가 아닌, 다른 나라 리그 소속의 외국인 선수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도박성이 강한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외국인 선수는 즉전감이어야 하고, 외국인 선수도 클럽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정 문화 위주의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연습시간도 짧고 끝나면 다 헤어져서 개인 숙소에서 생활한다. 이 때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고, 코치들이 욕하고 갈구더라도 나름대로 알뜰살뜰 훈련과 챙김을 받던 한국 유망주들은 일본 선수들이 집단 훈련 끝나고 개인 훈련이나 피지컬 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르고, 알고 나서도 훈련 장소나 방법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면서 홀로 밥 지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생활하기 일쑤다. 그러나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도 J2리그에 입단하는 신인 선수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인지라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27]


6 외국인 선수 제도

기본적으로 외국인선수 3명에 AFC 소속선수 1명 총 4명을 보유할 수 있고 출전도 4명까지 가능하다. 다만 여기에 추가로 재일국적 선수 1명과 출전시간과 계약금 등에 제한이 걸려있는 C계약 선수 2명을 추가로 보유할 수 있다. 2014년부터 동남아 쿼터가 추가된다. 1~3부리그 클럽은 1명씩 동남아 출신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 총 5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2009년부터 도입된 아시아쿼터제로 인해 한국인 선수 영입이 보다 활발해졌다. 당초에 동남아나 중동의 유망주를 발굴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대부분 구단들은 가성비가 좋은 한국 선수들을 선호하고 있다. 2009년 J1과 J2에 속해 있는 아시아 쿼터제 선수는 28명. 이 중에 2명만 호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2010년엔 한국인 선수 진출이 더욱 심화되어 한국인 35명이 J1, J2에서 뛰게 된다. 호주선수는 고작 4명.

문제는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통한 일본 국내 선수의 실력 향상을 이루기보다, 결과적으로 자국 선수의 입지만 좁아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과도한 외국인 의존이 리그의 경쟁력까지 갉아먹은 상황.EPL??이런 문제점은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나서 "일본국대 = 피지컬 안습 + 스트라이커 부재" 라는 공식이 근 20년간 지배하다가 21세기 들어서야 가까스로 나아졌다.[28]

예전에는 유상철, 황선홍, 홍명보같은 정상급 선수들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젊은 유망주들이 뭣 모르고 J리그 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29] 이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으로 자칫 선수 개인의 인생까지 좀먹을 위험이 있다. J리그 진출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 지는 여기를 참조하자. [#]

홍명보 감독 말마따나 K리그에서 정상급 아니면 J리그 가봐야 성공하기 힘들고 그렇다면야 한국에서 따뜻한 밥 먹고 지내는 게 낫다. 선수들의 무지와 에이전트, 부모들의 욕심과 무책임한 행동이 한국 축구와 선수 개인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 이러한 엑소더스 때문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드래프트 점진적 폐지 발표와 함께 "데뷔를 K리그에서 하지 않는 선수는 최초 프로계약 이후 5년간 K리그 팀으로 이적하지 못 한다" 라는 룰까지 제정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긴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J리그보다 거지라며 K리그를 깐다.(...)[30]

2015 시즌 종료후 J리그의 몇몇 팀들이 실력있는 골키퍼들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나섰다. 한국의 국가대표 골키퍼들이 영입대상에 올랐는데, 김승규빗셀 고베, 퐈이야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로의 이적설이 나왔다. 또 일본과의 경기에서 신들린 선방을 보여준 싱가포르 골키퍼도 J리그 팀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7 K리그가 J리그 이름을 따라했다?

출범 당시에는 상당히 독창적이었던 '이니셜 + 리그' 식의 명칭법은 현재 S리그(싱가포르), K리그(한국), A리그(호주) 등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영향력을 인정해 줄 수도 있으나, 실상 아시아에서 자국 리그를 이런 식으로 부르는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흔히 M리그(1989년부터 실제 쓰여왔다)라고 하는 말레이시아 축구 리그는 2004년부로 슈퍼리그라는 이름인 Liga Super로 바꿨다. 그 밖에 흔히 우리가 '이니셜+리그'로 부르는 아시아 각종 리그들의 실제 명칭은 이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의 축구 리그를 흔히 C리그라고 부르지만 이는 K리그라는 명칭에 익숙해진 국내의 축구팬들이 임의로 부여한 명칭에 불과하며, 실제 중국의 축구 리그의 이름은 中超聯賽이고 영어로 표기하면 Chinese Super League, 약칭 CSL이다. 이전에도 중국 슈퍼 리그는 1부 리그라는 뜻으로 甲級A組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스스로 C리그라 칭한 바는 없다. 영문 사이트의 경우 간혹 중국 슈퍼 리그를 C League라고 표기한 곳이 있으나 이는 한국 축구팬과 같은 오인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A리그의 경우 이미 미국에 동일한 명칭의 리그가 존재했던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J리그의 영향으로 보기 힘든 점이 있고, K리그만 해도 그것이 정착된 과정을 고찰해 보면 '과연 이것이 J리그를 흉내낸 이름인가'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연맹이 아무런 설명도 안 하고 어물쩡 K리그라는 명칭을 정착시켰기 때문에 결국은 따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31] 일 좀 하자 연맹


8 시민구단

구단명에 모기업명이 없기 때문에 전부 다 시민구단이라고 착각하고 기업명이 잔뜩 들어간 K리그[32]를 까는 혐한들이 많은데, 사실 J리그도 실업리그가 기반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 기업이 최대 주주인 팀들이 많다. 또 당장 독일 같은 경우에도 분데스리가의 세계적인 축구팀인 바이어 레버쿠젠만 봐도 팀 이름과 로고에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바이엘이란 사명이 떡하니 붙어있다.

예컨대 J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알려진 우라와 레즈의 경우 미쓰비시가 100% 출자하는 기업구단으로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애칭 자체가 모기업의 로고에서 유래한 것이다. 팀 이름에 기업명이 들어가지 않는 건 실업축구에서 프로축구로 전환할 때 실업팀들에게 프로팀 같은 이름을 지어서 쓰라고 연맹에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단, 법인명 등록시 기업명을 넣기도 하며 오미야, 이와타, 고베, 가시와가 이에 해당된다. 때문에 열받은 요미우리는 축구팀 스폰서를 포기하였다. 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연고지 이름인 도쿄가 안 붙어 있는 지 생각하면 쉽다. 일본 언론사 중에서도 꼴통 중에 꼴통인 요미우리는 스포츠 구단 운영에도 특유의 보수성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33]


8.1 각 구단 별 기업과의 관계

이렇게 배경이 탄탄하니 팀과 자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9 구단의 명칭에 대한 고찰

J리그 구단들의 이름은 찬찬히 뜯어보면 세계의 수많은 축구 구단들의 단순한 이름[34]과는 달리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실업구단이었던 팀들에게 연맹이 프로팀 같은 이름을 지어서 쓰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역 특색을 활용하거나 '가라오케'같은 합성어를 사용하여 일부러 멋을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 가시마 앤틀러스 - 앤틀러스(antlers)는 '사슴뿔'이란 뜻의 영어로, 사슴섬이라는 뜻을 가진 연고지 가시마에서 따왔다.
  • 가시와 레이솔 -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레이(rey)와 '해'를 뜻하는 솔(sol)을 합성하였다. 모기업인 히타치를 상징한다.
  • 가와사키 프론탈레 - 프론탈레(Frotale)는 '앞'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 가이나레 돗토리 - 시마네 현 동부와 돗토리 현 서부에 걸쳐 쓰이는 방언에 '크다'는 뜻을 가진 가이나(がいな)와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뜻하는 스페라레(sperare)를 합성한 것이다.
  • 감바 오사카 - '힘내라'의 뜻을 가진 일본어 간바루(頑張る)와 이탈리아어로 '다리'를 뜻하는 감바(gamba)에서 따왔다. '축구의 힘은 다리에서 나온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같은 연고지의 세레소 오사카와 라이벌 관계이다.
  • 교토 상가 FC - 상가(サンガ)는 산스크리트어의 "sangha"에서 온 말로 동료라는 뜻이다. 불교 도시 교토를 상징한다.
  • 기라반츠 기타큐슈 - 원래 이름은 뉴웨이브 기타큐슈(New Wave Kitakyushu)였으나 J2리그 승격시 저작권 문제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기라반츠는' 해바라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Girasole'와 전진하다를 뜻하는 'Avanzore'의 합성어로 기타큐슈 시의 시화인 해바라기를 상징힌다.
  •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 그램퍼스(grampus)는 영어로 '돌고래, 범고래'를 뜻하며, 에이트는 나고야 시 표장에 있는 숫자 8과 모기업 토요타 자동차의 브랜드를 상징한다.
  • 도치기 SC - Tochigi Soccer Club.
  • 도쿄 베르디 1969 - Verdy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을 뜻한다. 녹색은 도쿄 베르디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 도쿠시마 보르티스 - Vortis는 이탈리아어로 '소용돌이'란 뜻 Vortice와 도사 국,이요 국, 사누키 국의 앞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와 시코쿠를 대표하는 팀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 로아소 구마모토 - 이탈리아어로 '붉다'를 뜻하는 Rosso와 '에이스'를 뜻하는 Asso의 합성어로 아소산을 상징한다.
  • 마쓰모토 야마가 FC - Matsumoto Yamaga Football club
  • 몬테디오 야마가타 - 이탈리아어로 '산'을 뜻하는 몬테(monte)와 '신'을 뜻하는 디오(dio)의 합성어로 '산들이 신처럼 수호한다'를 상징한다.
  • 미토 홀리호크 - 홀리호크(HollyHock)는 영어로 접시꽃이란 뜻이며,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이다.
  • 반포레 고후 - 프랑스어에서 바람을 뜻하는 반(Vent)과 숲을 뜻하는 포레(forêt)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유명한 사자성어인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에서 따왔다.
  • 베갈타 센다이 - 직녀성을 뜻하는 Vega와 견우성을 뜻하는 Altair의 합성어로 센다이 칠석제 중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상징한다.
  • 비셀 고베 - 비셀(Vissel)은 영어 'Victory'(승리)와 'Vessel'(배)의 합성어로 항구도시인 고베 시를 상징한다.
  • 사간 도스 - 일본어로 사암(砂岩)이란 뜻이다. 유일하게 일본어로만 된 팀명을 사용한다. 사가 현 방언으로 '사가 현의 도스'란 뜻도 갖고 있다.
  • 산프레체 히로시마 - 일본어에서 숫자 3을 뜻하는 산(三,サン)과 화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레체(frecce)의 합성어다. 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모략가였던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한 명언인 '셋 중에 조금이라도 불화가 있어 틈이 가게 되면, 곧바로 세 사람 다 멸망한다고 알아라'에서 따왔다.
  • 세레소 오사카 - 오사카의 시화(市花)인 벚꽃을 스페인어로 한 세레소(cerezo)를 그대로 팀명으로 사용했다.
  • 쇼난 벨마레 - 라틴어로 'bellium'(아름답다)과 'mare'(바다)의 합성어로 쇼난 지역을 상징한다.
  • 시미즈 에스펄스 - S는 시즈오카, 시미즈, 사커를 의미하고, 펄스(pulse)는 팀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의 심장고동을 뜻한다.
  • 아비스파 후쿠오카 - 스페인어로 꿀벌(avispa)이라는 뜻으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에서 따왔다.
  • 알비렉스 니가타 - 백조자리 베타성의 이름인 Albireo와 라틴어로 왕을 뜻하는 rex의 합성어다.
  • 에히메 FC - 그냥 풋볼 클럽(Footbal club).
  • 오미야 아르디자 - 아르디자(Ardija)는 '다람쥐'를 뜻하는 스페인어 Ardilla를 일본인이 발음하기 쉽게 바꾼 것이다. 다람쥐는 오미야와 오미야 공원의 상징이다.
  • 오이타 트리니타 - 트리니타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영어 trinity 또는 이탈리아어 trinità에서 따온 말이다. 팀을 이끄는 시민, 기업, 지방 자치 정부를 의미한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F.는 1999년에 흡수 합병한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뜻하고[35] 마리노스(marinos)는 '선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항구도시 요코하마를 상징한다.
  • 요코하마 FC - 플뤼겔스의 흡수합병에 반발한 서포터들이 독자 창단하였다.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미쓰비시 그룹의 로고에서 따왔다.
  • 자스파구사츠 군마 - 군마 현의 구사츠 온천을 상징한다. '자스파'는 영문으로 표기하면 The Spa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 제프(JEF)는 JR동일본(JR East), 후루카와 전기(Electric Furukawa)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 주빌로 이와타 - 주빌로(Júbilo)는 포르투갈어로 '환희'라는 뜻이다.
  • 카탈레 도야마 - '이기다'의 도야마 방언인 勝たれ 또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라는 뜻의 'Cantare'와 프랑스어로 '가다'를 뜻하는 aller의 합성어로 '서포터와 함께 나가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콘사도레 삿포로 - 홋카이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한자 道産子(도산코)을 거꾸로 한 단어 '콘사도'와 스페인어 단어 'Ole'를 합성한 단어다.
  • 파지아노 오카야마 FC - 파지아노(Fagiano)는 이탈리아어로 '꿩'을 뜻하며, 전설의 캐릭터인 모모타로에서 따왔다.
  • FC 기후 - 그냥 풋볼 클럽(Football club).
  • FC 도쿄 - 그냥 풋볼 클럽(Football club).
  • FC 마치다 젤비아 - 시의 상징인 느티나무를 뜻하는 'zelkova'와 살비아를 뜻하는 'salvia'를 합성한 단어다.
  • V-파렌 나가사키[36] - V는 Victory의 앞글자, Varen은 '항해'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이다. 항구 도시 나가사키의 지역적 특색에 맞춰 '승리를 향해 항해한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10 콜라보레이션

애니메이션의 국가(?)답게 여러 구단이 애니메이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맺고 있다.


11 소속 클럽

  1. 영문 로고는 한자로 된 스폰서 부분이 영어 MEIJI YASUDA로 바뀐다.
  2. 중동으로 떠난 J리그 브라질 용병들의 이적료는 대체로 5~10억엔 정도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3. 양 리그의 피지컬과 압박차이는 용병들이 빠지는 국대간 A매치에서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4. 흔히 J리그에서 뛰면 K리그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다고 편견을 갖기 쉬운데,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격이다. C급 계약의 경우 연봉 480만엔 이하에 일정 이상 J리그 경기를 뛸 경우 B급 이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사실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둘째치고 기존 비싼 용병들(외국인3+아시아쿼터1)의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 J리그 용병들의 평균 연봉은 4000만엔대로, 만약 C급 계약을 한 유망주가 확실히 낫지 않다면 당연히 비싼 용병을 더 쓰게 된다(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즉, 확실한 메리트가 없으면 그저 망했어요. 괜히 홍명보가 주전 못될거면 가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5. 사실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흑자 구단이 많지 않다. J리그가 돈빨이란 것 또한 편견인데, 오히려 거품을 빼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시기가 있었다.
  6. 그것도 일본 내수판에서만 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발판이나 수출용 PES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단,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팀은 사용 가능.
  7.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진 '일본 축구의 아버지'라 불린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챔피언스 리그 2회 연속 우승 경력을 보유한 인물. 1991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 대한민국이 영입한 첫 외국인 감독이기도 했으나, 훈련방식을 놓고 한국 코칭 스탭들과 마찰을 빚은 끝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8. J1~J3리그 총합.
  9. 2015 시즌 종료 후 평균관중을 보자면 인도 프리미어 리그(31,750명 / 크리켓), NPB(28,248명 / 야구), 인도 슈퍼 리그(27,11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에 이어 6위.
  10. 전세계 기준으로 J리그보다 상위 5개로는 리가멕시코(24,73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 MLS(21,574명 / 축구), NBA(17,809명 / 농구)에 이어 17위.
  11. 재정문제로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 FC를 제외하면 현재 K리그의 시민구단은 제대로 돌아가는 구단은 하나도 없으며 낙하산 사장, 무능한 프런트, 방만한 경영, 티켓 강매 등등 억지로 세금을 박아서 생긴 기형구단이다.
  12. 다만 2010 시즌 말미에 오미야 아르디자의 간부들이 관중수 조작을 했다 적발되었다. 구단에 벌금 2000만엔이 부가되었으며, 관중수 조작을 주도한 간부 2명이 해임되고, 사장이 사임하는 여파가 있었다.
  13. 2012년 평균관중은 17000명대 유지
  14. J리그 2011년 평균관중은 15000명 후반
  15. 하지만 일본을 존폐 위기로 몰고 왔던 도호쿠 대지진은 어쩔 수 없었다.
  16. 현재 평균관중은 K리그 챌린지보다도 많다. 즉 지역밀착을 잘 한다고 볼 수 있다.
  17. 8강에서 전북, 4강에서 성남을 꺾고 우승했다. J리그를 잘 모르던 전북과 성남의 팬들에게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18. 후반 유효슈팅수 0이였다 .1골도 PK로 넣었지만 PK 주기에는 애매한 판정이였다. 보고 있던 J리그 선수들도 그냥 준거라고 생각했는지 박수까지 치며 웃어버렸다.
  19. 마지막 가와사키 홈경기에서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게 2:0으로 실신당하면서 조2위로 내려앉았다.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북한 축구대표팀 wiki:"정대세" 선수가 뛰던 적이 있다.
  20. 유치할 때는 안달이었으면서 막상 결승은 남의 집 잔치-포항 스틸러스 vs 알 이티하드-가 되어버리자 일본 언론의 관심은 시큰둥해졌다. 그리고 나고야를 크게 이긴 알 이티하드를 포항 스틸러스가 2:1로 승리하고 우승컵을 한국으로 공수해갔다.
  21. 다만 팀에 핵심이였던 김보경이 초반에 전북에 박치기 거친 수비로 큰 부상으로 교체된게 컸다. 조별리그 2경기나 홈경기에선 엇비슷했다. 근데 조별리그 원정은 전북이 2군이 나왔다는게 문제
  22. 한편 부진했던 K리그에선 울산 현대 1팀만 8강에 올라갔는데, 그 울산 현대가 우승했다.
  23. 최근 조별 리그에서는 거의 비슷하거나 J리그가 살짝 앞서는 전적을 보이지만 토너먼트에서 K리그 팀에게 자주 패하며 전적을 깎아먹고 있다.
  24. 둥가만 보더라도 98 브라질 월드컵 주장까지 할 당시 J리그 선수였고, 이렇게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여전히 현역으로 손색이 없을 수준의 선수들도 많았다.
  25. 사실 박지성의 경우는 당시 그렇게까지 큰 주목을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허정무의 박지성 올대 발탁은 이례적인 발탁으로 꼽혔고, 당시 올림픽 대표에서의 평도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그런 선수에게 연봉 5000만엔(당시 6억)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를 제안하고, 또한 그 이상의 선수로 자랐으니....이후 J리그 팀들이 대한민국의 유망주를 마구 빼간 이유 중 하나가 박지성같은 선수 하나 걸리길 바라며 복권 긁는 심정으로 데려가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이다.
  26. 이 문단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1. K리그에서 데뷔하지 않고 해외 리그에서 데뷔 시 5년간 K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룰이 생겼고 2. 아시아 쿼터제가 시행된지 5년이 지난 현재 J리그에 진출한 유망주들 중 확실한 주전 이상급까지 올라온 선수가 지금까지 5명 정도로(박주호, 조영철, 김민우, 김진현, 김보경 정도.) 1년에 1명 꼴에 불과하다 보니 J리그 드림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다. 김창수의 경우는 조광래감독의 1군(이라 쓰고 해외파라고 봐도 좋은) 절대 우선 정책 때문에 국가대표 데뷔도 늦은 편이었고, 그 후에도 부상으로 부침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해외 진출을 서둘렀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중국이나 중동으로 가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김창수보다 커리어가 좋은 편이다.
  27. 이는 바로 위의 각주에서 설명된 K리그에서 데뷔하지 않고 해외 리그에서 데뷔 시 5년간 K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룰과도 연관이 있다. J리그에 입단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해외에서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
  28. 외국인 선수 영입이 리그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대표팀도 황선홍과 박주영 사이 10년 가량이 좀 애매한 시기인데, 이는 아테네 올림픽 세대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때문이다. 반면 지금 흥하는 지동원 등은 유소년 축구교실 세대다.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지 외국인 선수 영입 하나만으로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29. K리그에서 자유계약제도가 사라지고 드래프트 제도가 부활한 것이 이를 부추겼다.
  30. 일단 국내에서도 K리그의 인기가 야구보다 아래고, 결정적으로 선수의 연봉공개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인식이 생길 수 밖에... 참고로 전 세계적으로 협회나 연맹 차원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곳은 거의 없다. MLS는 선수 협회가 발표하고 있으며, J리그는 닛칸스포츠에서 발간한 J리그 플레이어즈 명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외국인 선수 연봉이 제외되어 있거나 수당 등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유럽 축구 리그의 선수 연봉 정보도 몇몇 초대형 스타 플레이어의 연봉을 구단에서 발표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언론이 발표한 수치로, 100% 정확도를 장담할 수는 없다.
  31. 이걸 부채질한 개쌍놈이 신문선이다. 80년대에는 슈퍼 리그, 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코리안 리그'라는 이름이 있는 한국 프로축구를 중계석에 나와서 계속 K리그라고 나발 불어던 것. 이 인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 축구의 100년지 대계 운운하며 협회 관계자들을 번번히 깠는데, 정작 협회에서 진행중인 유소년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32. 사실 잔뜩 들어갔다고 하기에는 K리그에서도 팀 이름에 기업 이름이 들어가는 팀은 몇 안 된다. 시민구단이 많이 창단되면서 기업구단 자체가 희소해진 이유도 있지만, 서울이나 제주, 전남, 포항처럼 기업구단임에도 모기업명을 붙이지 않는 팀들도 있다. K리그판에서 연고명이 아닌 기업명으로 팀을 호칭하는 건 욕설과 비슷하게 통할 정도다.
  33. 요미우리가 스폰서를 해 주던 축구팀은 現 도쿄 베르디다. 이 구단의 모체는 요미우리 FC. 요미우리의 그룹 산하 닛테레(NTV)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에는 재일동포 최창량 씨가 운영하는 도쿄 홀딩스가 구단 최대주주로 있다.
  34. 지역명 + FC 같은.(또는 반대로) 주로 유럽이 많이 쓰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런 팀명을 보기 힘들다.
  35. 플뤼겔스(Flügels)는 독일어로 날개라는 뜻이다.
  36. 2013년 J2 참가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