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라 나오히로

상위 항목 : 축구 선수,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이름다카하라 나오히로 (高原 直泰, Takahara Naohiro)
생년월일1979년 6월 4일
국적일본
출신지시즈오카 현 미시마 시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 조건181cm / 72kg
소속팀주빌로 이와타 (1998~2002)
보카 주니어스 (임대, 2001~2002)
함부르크 SV (2003~2006)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6~2007)
우라와 레즈 (2008~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임대, 2010)
시미즈 에스펄스 (2011~2012)
도쿄 베르디 (2013~2014)
SC 사가미하라 (2014~2015)
오키나와 SV (2016~)
국가대표57경기 23골

1 데뷔

주빌로 이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보카 주니어스에 임대된 한시즌을 제외하고 세 시즌 동안 105경기 58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로 임대되었지만 크게 활약하진 못했다.

2 독일 진출

2002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맹활약한 다카하라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Hamburger SV)로 2003년 1월에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 후 연속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던 바이에른 뮌헨(Bayern Munich)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2003/04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2골 밖에 득점하지 못하며 주춤하기도 했으나, 2004/05 시즌에는 31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득점하여 함부르크 팀내 공격수 중 최다골을 기록하며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21경기에 1골이라는 매우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함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함부르크에서 퇴단한 다카하라는 2006년 5월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Eintracht Frankfurt)로 팀을 옮겼다. 이적 후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과 평가전에서 다카하라는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프랑크푸르트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월드컵 종료 후 소속팀으로 복귀한 다카하라는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득점에 성공하였고 2006년 12월 3일에 있었던 알레마니아 아헨(Alemannia Aachen)과 경기에서는 일본인 최초로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을 성공하기도 했었다. 2007년까지 득점 행진을 이어간 다카하라는 시즌 11골을 득점하며 분데스리가 진출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 기록하며 팀의 분데스리가 잔류에 기여하였고 프랑크푸르트 서포터들이 선정한 시즌 MVP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이적 후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여 다음 시즌에도 전망이 밝아 보일 것 같은 다카하라는 2007/08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초반부터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 원했던 감독과 전술상 차이가 발생하게 되면서 8경기 1골을 끝으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하계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3골을 기록하였고, 그 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5골을 기록하여 이동국에 이어 득점 2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부상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하였다. 2006년 12월 3일, 그는 분데스리가 리그 경기에서 알레마니아 아헨을 상대로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2008년 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방출되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이때 180만¥이라는 이적료가 들었다고 한다. (약1만7천달러).

그는 2007 아시안컵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6경기에 출전, 4골을 넣어 이라크의 유니스 마무드,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세르 알카타니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4 우라와 복귀, 수원 임대

2008년 1월 11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우라와 레즈로 이적료 1억 8500 만엔, 연봉 1억 8000만엔에 3년 계약으로 J리그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무릎 부상 후유증과 적은 경기 출전으로 실전 감각이 떨어져 우라와 레즈에서 주빌로 이와타 시절 만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또한 2009년 우라와의 감독으로 취임한 폴커 핑케(Volker Finke, 1948.03.24 ~ ) 감독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다카하라는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우라와 레즈에서 자리를 잃은 다카하라는 폴커 핑케 감독의 전력 구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었고, 겨울부터 이적을 모색한 끝에 2010년 7월에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다카하라는 일본 복귀 후 계속되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찾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원도 외국인 선수인 헤이날도의 실패와 차범근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신사퇴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윤성효 감독을 선임한 상태로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분위기 반전을 생각한 수원은 다카하라와 같은 검증된 공격수가 필요했었던 것이 상호간 의견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K리그 데뷔는 2010년 7월 31일 광주 상무와의 홈경기에서 이루어 졌다. 이적 후 평가는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가 대부분으로 냉담한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다카하라는 이후 리그를 꾸준히 출전하며 실전 감각을 빠르게 회복하였고, 2010년 8월 28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데뷔골과 추가골을 폭발시키며 맹활약을 펼치며 경기 MVP에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 후에는 강원 FC와 광주 상무 원정 경기에 득점하여 총 12경기 4골로 2010년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시즌 후 총평은 네임벨류에 비해서 아쉽다는게 대부분 이었지만 실전감각이 떨어졌던 것에 비해 성실한 플레이와 다카하라 특유의 공격 센스는 인상적이었다는 평. 다카하라는 2010 시즌을 마치고 본인 홈페이지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만족 스럽게 평가하고 수원에서 있었던 자신에 대한 지지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5 이 후 행보

2010년 반시즌 활약하며 폼을 회복한 다카하라는 2011년부터 수원에서 J리그의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였고, 계약 만료로 방출된 뒤에는 2013년 J2리그의 도쿄 베르디로 이적하였다. 도쿄 베르디에서는 11골을 기록하여 팀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도쿄 베르디의 자금난에 이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소속팀의 재정난에 방출 대상이 되어버린 다카하라는 2014년 J3리그의 SC 사가미하라로 임대이적하였다. 2015년에는 완전 이적하여 주장으로 선임되어 33경기에 출전하여 6득점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15년 11월을 끝으로 SC 사가미하라와 계약이 만료된 다카하라는 2016년부터 자신이 대표로 새롭게 창단한 오키나와 3부리그 소속의 오키나와 SV에서 현역 선수로 플레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