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2019년 AFC 아시안컵을(를) 찾아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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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시안컵 | ||
정식 명칭 | AFC 아시안컵 | |
영문 명칭 | AFC Asian Cup | |
창설 연도 | 1956년 | |
참가 자격 | AFC에 등록된 축구협회 대표팀 중 개최국 팀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12개 팀 아시안컵 예선[1]을 통과한 11개 또는 12개 팀[2] | |
최근 우승팀 | 호주 (2015) | |
최다 우승팀 | 일본 (4회) | |
웹사이트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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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보유 중인 제 1회 AFC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3] 등록문화재 제493호 | 제 16회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4] | AFC 아시안컵 우승 패치[5] |
AFC 축구 대회 | ||||
남 | AFC 아시안컵 | U-23 | U-19 | U-16 |
여 | AFC 여자 아시안컵 | U-19 | U-16 |
목차
1 개요
AFC ASIAN CUP. 아시아 최고의 축구 국가대표팀이 누구인지 자웅을 겨루는 대회.
아시아 축구 연맹(AFC)이 주관하는 축구 국가대항전이며, 우승국은 아시아 대표로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할 수 있다. 만약 우승한 국가가 직전 월드컵 우승국이거나 차기 월드컵 개최국인 경우 준우승국이 승계한다.[6] 그리고, 결승에 올라간 국가가 모두 해당된경우 3, 4위전에 승리한 팀이 승계한다.
1956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고 유로컵이 1960년부터 개최되었으니, AFC 아시안컵이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초창기 초대 대회 당시, 본선 출전국가는 겨우 4개국에 불과했고 예선을 포함한 전체 참가국 숫자도 크게 적었으나 현재는 명실상부한 AFC 최고 권위의 대륙대회로 성장했다.
AFC 참가국가의 최대규모와 명성과 권위에 걸맞지 않게 우승상금이 전혀 없는 순수한 명예 타이틀 매치이다. 열정만으로 뛰는 대회.[7] 대한민국이 그동안 AFC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이유도 우승상금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KFA에서는 본선진출만 해도 수십억원의 출전수당이 보장되는 FIFA 월드컵[8]과 종합대회로써, 군면제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에 더욱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2015년 대회부터는 1000만 달러의 상금을 부여하기로 계획했지만, 상금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함마드 빈 함맘 전 회장이 퇴출되면서 흐지부지됏는지 대회 개막 후 취소되었다.#
AFC 아시안컵의 우승팀 국가에게는 컨페더레이션스컵 출전권이 주어지며, AFC와 FIFA가 공인하는 대륙컵에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그 대륙의 최강국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승 자체만으로도 이미 메리트는 충분하다. 유로컵의 우승국을 차기대회까지 유럽의 축구 최강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면, AFC 아시안컵 우승국의 지위도 그와 같다.
AFC 아시안컵을 논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대회가 바로 컨페더레이션스컵인데 FIFA 월드컵이 열리기 바로 1년 전 부터 월드컵 개최국에서 각 대륙컵 우승국들과, 월드컵 전 대회 우승국, 그리고 개최국이 FIFA 월드컵의 전반적인 운영에 대한 점검 및 그리고 대회의 관심을 미리 높이기 위한 프레월드컵으로 치뤄진다. 바꿔 말하면, 타국에서 열리는 FIFA 월드컵에 쟁쟁한 참가국들과 함께 출전해서 미리 개최국의 환경을 경험해 볼 수 이득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대륙의 대륙컵 우승국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월드컵 전에 엄청나게 요긴한 평가전을 실력이 검증된 상대와 치룰 수 있다. 그것도 평가전이 아닌 우승 트로피가 걸려있는 실전이다! 게다가, FIFA 랭킹을 산정하는 데 있어서 "대회계수"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쉽게 말하자면 대회의 가중치다. 친선전 1, 월드컵과 대륙컵 예선 2.5, 대륙컵과 컨페더레이션스컵 본선 3, 월드컵 본선 4로 가중되어 FIFA랭킹 산정에 계산된다.
그리고 월드컵 개막을 1년 앞두고 타 대륙 우승국과 개최국 그리고 전 대회 우승국들과 대회를 치루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니, 다음 월드컵 개최국이거나 월드컵이나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불가능하다.[9] 이것이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진정한 가치이다.
이렇듯, FIFA 월드컵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전초전으로서의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아시안컵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컨페더레이션스컵을 통해서 1년 전에 현지 경험을 미리 한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성적과, 1년 뒤 월드컵 본선 성적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례이다. 물론, AFC 아시안컵 우승과는 별개로 FIFA 월드컵 지역예선을 먼저 통과를 했다면 말이다. 어디까지나 이 경우는 예선통과했을때의 이야기이므로 아시안컵이나 컨페더를 우승했다고 다음 월드컵 가는것은 아니니 착각하면 안된다. 당연하지만 월드컵 예선통과를 못 했다면 그냥 컨페더레이션스컵 참여,또는 우승으로 대리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FIFA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이 대한민국 축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그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 AFC 아시안컵의 우승은 중요한 조건이다. 아시안컵을 FIFA 월드컵에서의 우수한 성적을 위한 통과의례[10]로 연결짓지는 않더라도 AFC 아시안컵 그 자체의 명예와 역사 그리고 권위는 충분하다. FIFA 월드컵에서의 출전횟수와 성적, 아시아의 축구강국들 사이의 상대전적으로 아시아 축구 최강국가의 지위를 자부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주장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60년 가까이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하는 동안, 현실은 최근 4개 대회 동안 3회 우승, 총 4회 우승의 일본이 아시아 대륙의 최강 타이틀을 걸고 있다.[11] 같은 기간동안 상대적으로 FIFA 월드컵에 무게중심을 두었던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8회 대회 연속진출을 했고 그 중 4강 1회, 16강 1회의 성적을 냈으며 일본의 경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첫 진출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5회 대회 연속으로 진출하고 있다. 16강 2회의 성적이다. 확실히 FIFA 월드컵에서의 성적과 참가횟수는 일본을 앞선다. FIFA 월드컵 진출 DNA 한국 국제대회 중에서 현실적으로 유일하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대회가 바로 AFC 아시안컵이다. 물론, 1956년 초대 대회, 1960년 제 2회 대회의 우승으로 2연패를 달성한 이후, 55년이 넘어가는 2015년 현재까지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AFC는 2015년 이후부터 AFC 아시안컵의 출전국가를 기존의 16개국에서 2019년 대회부터 24개국으로 확대를 하기로 했다.기사[12] 그리고, 별도 예선은 폐지하고 FIFA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성적에 따라서 최종예선 진출팀은 자동적으로 AFC 아시안컵 출전권을 부여하고 13위~36위까지의 국가에 AFC 아시안컵 예선진출권을 부여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더욱 박 터진다. 10→12개국 확대.AFC 아시안컵, 2019년부터 24개국 참가로 확대.
물론, AFC 아시안컵의 본선 성적과 FIFA 월드컵 출전권은 여전히 무관하지만, 최정예전력이 출전하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성적과 연동해서 2019년 AFC 아시안컵 출전팀이 정해지기 때문에 대회의 관심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대신 축구 약소국들의 아시안컵인 AFC 챌린지컵은 폐지된다.
본선 최다 출전국가는 대한민국과 이란으로 대한민국은 2011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여 2015년 대회의 3번 시드를 확보함으로서 13회 진출했다. 3위는 11번의 중국이다. 최다 우승국은 4회 우승한 일본(1992, 2000, 2004, 2011), 공동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1984, 1988, 1996), 이란(1968, 1972, 1976)으로 각각 3회 우승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우승 횟수가 2회이며 그것도 1회, 2회 대회 연속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참가국가도 많지 않았으며 대회도 4팀의 리그 방식이었다. 대한민국은 예전부터 FIFA 월드컵 지역예선과 홈에서만 강하다는 평을 자주 들어왔는데, 이러한 세간의 인식에는 AFC 아시안컵의 부진한 성적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담으로, 아시아의 전통강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꺼리는 듯 하다. 한국은 1960년 대회 이후로 단 한번도 신청권을 낸 적이 없고, 이란도 1976년 이후 개최를 한 적이 없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경우는 돈이 많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단 한번도 개최를 한 적이 없다. 일본도 1992년 이후로 개최 시도조차 한 적이 없다. 그나마 AFC에 2000년대에 새로 들어온 호주가 2015년 토너먼트를 개최했다. 아무래도 아시아 대회는자국팀의 경기를 빼고 흥행을 하기 쉽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23년 AFC 아시안컵은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이 유치 신청을 했다. 24개국 출전으로 대회 규모가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아시안컵의 위상이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2 태극전사의 1956년, 1960년 두 번의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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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 직후 경무대(현 청와대)를 방문한 이유형 감독과 손명섭·함흥철(왼쪽부터) 선수가 이승만의 환영을 받고 있는 사진이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1회 대회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경기 당일 새벽에 대만 타이페이를 경유하는 홍콩행 비행기를 탔고, 오전에 홍콩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후 4시 홍콩과의 첫 경기에 임했다. 전반에 두 골을 허용했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진행된 후반전에 2골을 만회하면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 후, 2차전 이스라엘(2-1승)과 3차전 남베트남(5-3승)을 꺾고 초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두 번째 AFC 아시안컵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이었던 1960년 대회의 우승 사진이다.[13] 그러나 이 사진이
1960년 제2회 대회는 대한민국에서 열렸다. 1959년 유치가 확정되자, 이승만의 지시로 서울 효창운동장이 AFC 아시안컵을 개최하기 위해서 건설되었다. 언덕을 깎아서 관중석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공사기간은 단 4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제대로 된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규격 경기장이었다. 1차전 자유월남(남베트남)전은 5-1로 승리했다. 2차전 이스라엘은 3-0으로 승리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경기장 담벼락이 무너졌고, 그 여파로 20여명의 부상자가 생겨서, 경기 중단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관중이 너무 많은 탓에 선수들은 라커룸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라운드에서 코치진의 작전지시를 받았다. 3차전 최약체 대만에게는 의외로 고전했지만, 가까스로 1-0으로 승리하면서 1960년 10월 23일, 3전 전승으로 AFC 아시안컵의 2연패를 달성했다.
여담으로, 2015년 1월 기준으로 현재 당시 1956년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선수 중에서는 박경호 옹과 1960년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선수 중에서는 박경화 옹, 김선휘 옹, 이은성 옹. 이 4명만 남고 모두 고인이 되었다.
3 역대 대회 본선 진행 방식
- 1956년(1회) ~ 1964년(3회) : 본선 출전국 4개국. 토너먼트 없이 리그전만으로 순위를 가림.
- 1968년(4회) : 본선 출전국 5개국. 토너먼트 없이 리그전만으로 순위를 가림.
- 1972년(5회), 1976년(6회) : 본선 출전국 6개국. 3개국 2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끼리 4강 토너먼트.
- 1980년(7회) ~ 1988년(9회) : 본선 출전국 10개국. 5개국 2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끼리 4강 토너먼트.
- 1992년(10회) : 본선 출전국 8개국. 4개국 2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끼리 4강 토너먼트.
- 1996년(11회), 2000년(12회) : 본선 출전국 12개국. 4개국 3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과 각 조별 3위팀 중 상위 두 팀끼리 8강 토너먼트.
- 2004년(13회) ~ 2015년(16회) : 본선 출전국 16개국. 4개국 4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끼리 8강 토너먼트.
- 2019년(17회) ~ : 본선 출전국 24개국. 4개국 6개조로 나누어 리그전 후 조별 상위 2팀+각 조별 3위팀 중 상위 4팀이 16강 토너먼트.
4 역대대회 개최국/우승국
- 우승횟수
횟수 | 국가 | 우승연도 |
4회 | 일본 | 1992 2000 2004 2011 |
3회 | 사우디아라비아 | 1984 1988 1996 |
이란 | 1968 1972 1976 | |
2회 | 대한민국 | 1956 1960 |
1회 | 이라크 | 2007 |
쿠웨이트 | 1980 | |
이스라엘 | 1964 | |
호주 | 2015 |
5 개최국 성적
횟수 | 연도 | 개최국 | 성적 |
1회 | 1956 | 홍콩 | 3위 |
2회 | 1960 | 대한민국 | 우승 |
3회 | 1964 | 이스라엘 | 우승 |
4회 | 1968 | 이란 | 우승 |
5회 | 1972 | 타이 | 3위 |
6회 | 1976 | 이란 | 우승 |
7회 | 1980 | 쿠웨이트 | 우승 |
8회 | 1984 | 싱가포르 | 조별 리그 |
9회 | 1988 | 카타르 | 조별 리그 |
10회 | 1992 | 일본 | 우승 |
11회 | 1996 | 아랍에미리트 | 준우승 |
12회 | 2000 | 레바논 | 조별 리그 |
13회 | 2004 | 중국 | 준우승 |
14회 | 2007 | 인도네시아 | 조별 리그 |
말레이시아 | 조별 리그 | ||
타이 | 조별 리그 | ||
베트남 | 8강 | ||
15회 | 2011 | 카타르 | 8강 |
16회 | 2015 | 호주 | 우승 |
17회 | 2019 | 아랍에미리트 | |
18회 | 2023 | 개최지 미정 |
6 국가별 최고 기록
우승 |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일본, 쿠웨이트, 호주 |
준우승 | 미얀마, 아랍에미리트, 인도, 중국 |
3위 | 대만, 타이, 홍콩 |
4위 | 바레인, 남베트남, 북한,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
8강 (1R 통과) | 베트남, 요르단, 카타르 |
조별리그 | 레바논,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시리아, 싱가포르, 남예멘, 오만, 인도네시아, 투르크메니스탄, 팔레스타인 |
7 주요 기록들[20]
- 팀
- - 최다 진출팀 : 이란, 대한민국 - 13회
- - 최다 연속 진출팀 : 이란 1968년 ~ 2015년 - 13회 연속
- - 한경기 최다 득점차 : 1976년 이란 8-0 남예멘 - 8득점차
- - 한경기 최다 득점 : 2000년 일본 8-1 우즈베키스탄 - 9득점
- - 한대회 최다 득점팀 : 2000년 일본 - 21득점
- - 한대회 최다 실점팀 : 1980년 방글라데시 - 17실점
- 선수
- - 한 경기 최다 득점자 : 1980년 베흐타쉬 파리바(이란) 방글라데시전(7-0 승), 1996년 알리 다에이(이란) 대한민국전(6-2 승), 2011년 이스마일 압둘라티프(바레인) 인도전(5-2 승) - 4골
- - 한 대회 최다 득점자 : 1996년 알리 다에이 (이란) - 8골
- - 대회 최다 득점자 : 알리 다에이(이란) - 14골
- - 대회 최다 참가자 : 아드난 알 탈리아니(이라크), 리밍(중국), 메디 마다바키아(이란) - 4회
- 통산승점 상위 10개국
- - 1. 이란(129점) - 13회 출전, 62전 37승 18무 7패 119득점 45실점
- - 2. 대한민국(112점) - 13회 출전, 62전 32승 16무 14패 100득점 62실점
- - 3. 일본(81점) - 8회 출전, 41전 24승 12무 5패, 80득점 38실점
- - 4. 중국(73점) - 11회 출전, 51전 21승 13무 18패 81득점 58실점
- - 5. 사우디아라비아(70점) - 9회 출전, 44전 19승 13무 12패 63득점 45실점
- - 6. 쿠웨이트(55점) - 10회 출전, 42전 15승 10무 17패 47득점 51실점
- - 7. 아랍에미리트(48점) - 9회 출전, 36전 12승 8무 16패 32득점 48실점
- - 8. 이라크(46점) - 8회 출전, 35전 13승 7무 15패 38득점 42실점
- - 9. 우즈베키스탄(36점) - 6회 출전, 24전 11승 3무 10패 35득점 44실점
- - 10. 호주 (33점) -3회 출전, 16전 10승 3무 3패 34득점 10실점
8 역대 MVP
연도 | 수상자 |
1956 | 없음 |
1960 | 없음 |
1964 | 없음 |
1968 | 없음 |
1972 | 없음 |
1976 | 없음 |
1980 | 없음 |
1984 | 자슈취안(중국) |
1988 | 김주성(대한민국) |
1992 | 미우라 카즈요시(일본) |
1996 | 호다다드 아지지(이란) |
2000 | 나나미 히로시(일본) |
2004 | 나카무라 슌스케(일본) |
2007 | 유니스 마흐무드(이라크) |
2011 | 혼다 게이스케(일본) |
2015 | 마시모 루옹고(호주) |
2019 |
9 역대 최다득점자
연도 | 수상자 | 득점 |
1956 | 나훔 스텔마치(이스라엘) | 4 |
1960 | 조윤옥(대한민국) | 4 |
1964 | 모르데하이 슈피글레르(이스라엘) 인더 싱(인도) | 2 |
1968 | 호마윤 베자디(이란) 기오라 슈피겔(이스라엘) 모셰 로마노(이스라엘) | 4 |
1972 | 박이천(대한민국) 호세인 칼라니(이란) | 5 |
1976 | 나세르 누레이(이란) 골람 후세인 마즐루미(이란) 파티 카멜(쿠웨이트) | 3 |
1980 | 베타시 파리바(이란) 최순호(대한민국) | 7 |
1984 | 자슈취안(중국) 나세르 모하메드 카니(이란) 샤로흐 바이아니(이란) | 3 |
1988 | 이태호(대한민국) | 3 |
1992 | 파하드 알 비시(사우디아라비아) | 3 |
1996 | 알리 다에이(이란) | 8 |
2000 | 이동국(대한민국) | 6 |
2004 | 알라 후바일(바레인) 알리 카리미(이란) | 5 |
2007 | 유니스 마무드(이라크) 야세르 알 카타니(사우디아라비아) 다카하라 나오히로(일본) | 4 |
2011 | 구자철(대한민국) | 5 |
2015 | 알리 맙쿠트(아랍에미리트) | 5 |
2019 |
10 대한민국과 이란의 악연
이 사실 하나로 설명이 끝난다. 5개 대회 연속 8강 조우.
사실 두 팀이 AFC 아시안컵 우승과 멀어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로 싸우다가 진을 빼니 4강 토너먼트로 넘어가면 약팀인 이라크나 중국도 꺾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 됐고, 당연히 탈락. 그래도 우승후보다 보니 3-4위전에서 4위로 밀려난 상대적으로 약한 팀을 제압하고 3위에 머물렀던 것이다. 반면 일본은 토너먼트 조편성이 잘 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2011년 대회 그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1]
1996년 아시안컵은 이란 쇼크[22] 2-6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참패하였고, 2000년 대회에선 연장 골든골로 2-1 신승[23], 2004년 대회에선 난타전 끝에 3-4 패배[24], 2007년 대회에선 120분간 무득점 이후 승부차기에서 4-2로 꺾었다.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도 8강에서도 만나 이번에는 연장전 끝에 1:0 승리. 공교롭게도 정규시간 내에 끝난 승부는 이란이, 연장까지 간 승부는 한국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긴 팀도 오버페이스의 영향으로 모두 4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지면 병신, 이겨도 병신이 되는 병림픽스러운 매치가 되어버렸다.[25]
이것이 한국과 이란 한정으로 AFC 아시안컵 징크스이기도 하다. 거의 AFC 아시안컵 속의 흥행법칙이 되어버린 느낌인데, "한국은 8강 전에서 이란을 꼭 만난다."는 법칙이 있고 "조 2위로 진출한 팀이 조 1위로 올라온 팀을 이기고 4강 간다."는 법칙, "두 팀 중에서 승리를 한 팀은 4강전에서 반드시 패배한다."라는 파생법칙이 있다. 마치 슬램덩크의 말 따라... 이란 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거짓말처럼 발이 멈추고 상대에게 무너졌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2011년 대회에서도 어김없이 이 악몽같은 징크스는 계속 적용되었다. 본래 두 팀이 '패배-승리'가 반복된다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2011년을 기점으로 깨졌다. 다만, 조 2위를 차지했던 팀이 1위로 8강에 올라온 팀을 100% 이기고 올라갔기에, 호주에게 밀려서 2위로 올라간 대한민국이 무난히 조 1위를 차지한 이란을 꺾었으므로 이 징크스는 그대로 이어졌다.
1996년 : 2:6 패배, 이란, 사우디에 패배하여 4강전 탈락. (사우디 우승, 이란 3위)
2000년 : 2:1 승리, 대한민국, 사우디에 패배하여 4강전 탈락. (일본 우승, 한국 3위)
2004년 : 3:4 패배, 이란, 중국에 패배하여 4강전 탈락. (일본 우승, 이란 3위)
2007년 : 0:0 승리(pk), 대한민국. 이라크에 승부차기 패배로 4강 탈락. (이라크 우승, 한국 3위)
2011년 : 1:0 승리(연장), 대한민국, 일본에 승부차기 패배로 4강 탈락. (일본 우승, 한국 3위)
사실, 2011년의 징크스는 미리 막을 수가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C조에서 호주와 조 선두를 놓고 다투고 있었으며, D조에서는 이란이 이라크라는 복병이 있었으나 무난히 조1위를 할 것 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바레인과의 첫 경기를 2:1로 승리하고 2차전 호주와 1:1로 무승부를 거둔 상황에서 호주가 1차전인 인도와의 경기를 4:0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한국은 베스트일레븐을 선발 출전을 시킬 수 밖에 없었다. 호주를 미뤄내고 조 1위를 해야만 D조 1위로 유력한 이란을 피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베스트 멤버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게 1실점 하여 4:1로 승리를 거두었고 골득실차에 밀려서 C조 2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여지없이 이란과 조우했다. 이란과의 8강전은 시종일관 우세하게 진행되었으나,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연장 후반 윤빛가람의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이란을 꺾고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인 일본은 경기일정 덕분에 하루를 더 쉰 데다, 만만한 카타르와 붙은 덕택에 별다른 체력감소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거의 2.5일만에 뛰게 된 4강 일본전에서는 대한민국은 현저한 활동량 감소를 드러내고 이란을 상대로 보여준 압박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발이 멈춰져 일본의 오버래핑에 그야말로 탈탈 털려버렸다. 2:1로 끌려가고 있던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어떻게든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박지성의 염원이었던 우승 도전은 커녕, 승부차기에서 3:0으로 일본에 굴욕적으로 참패하고 한국은 3/4위전으로 밀려났다. 결승전에 갔더라면 호주가 AFC 아시안컵 결승 등 대형 대회에 약한점을 고려하면 일본처럼 우승도 가능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우 아쉬웠다. 아니, 그냥 결승전에 가기만 했어도 당시 기준으로 23년만에 결승전을 간 것이었다.
2011년의 대표팀이 2004년의 우왕좌왕 대표팀이나 2007년의 부상병동 대표팀보다 선수 구성상 훨씬 수월했던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아쉽다. 2004년은 오만쇼크 등 여러모로 헤매던 시기였고, 2007년은 핵심 선수인 박지성 차출불가, 설기현과 이영표 부상, 이동국 부상 후유증 등으로 인해 영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3위까지 한 것이 용할 정도였다. 2011년은 조광래 감독 본인이 어린 유망주 선수들만 뽑아서 그렇지, 필요한데 못 뽑은 선수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소위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 즉,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전략이 대표팀에 녹아 내리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 당시 대표팀의 경기력은 단연 우승후보다웠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인 호주와의 경기도 경기 결과는 1:1이었지만, 시종일관 호주의 수비진을 잘게 잘라가며 경기를 풀었으나 지독하게 골운이 없었다. 한 가지 이론은 당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달성했던 성공적인 대표팀의 틀을 깨고 새로운 대표팀을 만들어 출전했기 때문에 오히려 월드컵 당시 감독이었던 허정무가 계속 지도를 했다면 다른 결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알렉스 퍼거슨의 밑에서 시즌 말로 갈수록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는, 박지성의 마지막 대표팀 우승 도전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쉬운 결론이다.
결국, AFC 아시안컵의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겨도 다음 라운드에서 필패가 확실하고 지면 그대로 짐을 싸는 이란과의 지겨운 8강전을 그만 볼 수 있는 대진운이 어느 정도 따라줘야 한다. 이제는 결과가 우승이 아니라 이란과의 8강 조우를 피하고 싶다는 마음 이전에 그냥 지겹다(...).
2015년 호주에서 개최하는 AFC 아시안컵에서는 한국은 A조, 이란은 C조에 속하게 되면서 한국과 이란의 8강 악연은 끝을 맺었고, 이란이 이라크에게 연장전과 승부차기 끝에 패배해 탈락하면서 아시안컵 연속 대결은 5회로 막을 내렸다.
11 다른 대륙의 대회
아시안컵에 해당하는 다른 대륙의 대회는 다음과 같다.
12 이야깃거리
- 후술하듯이, 대한민국은 6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이 대회 우승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접도 못한 건 아니고 4강은 꾸준히 진출한다. 2000년부터는 4회의 대회에서 3위(2000, 2007, 2011)를 세 번 차지. 덕분에 축구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나오는 떡밥중에서는 "과연, 내가 죽기 전에 AFC 아시안컵을 우승하는 것을 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떡밥들도 상당히 많다. 그만큼 수많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오랜 숙원 중에 하나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7년 대회부터 AFC 아시안컵의 출정 슬로건을 "왕의 귀환"같은 풍으로 달고 나가고 있다. 그리고 2007년, 2011년에는 한국이 본의아니게 "아시안컵 우승으로 가는 길목의 수문장"같이 되어버렸다. 비록, 한국은 두 번이나 3위를 했지만 대한민국을 이긴 팀이 우승했다.
아시아의 독일??그래도 독일은 유로컵 최다우승국이다한편, 중동의 전통강호이자 마찬가지로 AFC 아시안컵이 열릴 때마다 항상 우승후보로 거론될 자격이 있으며 우승횟수도 더 많고 한국보다 FIFA 랭킹도 높은 이란은 2000년, 2007년, 2011년, 2015년 모두 우승은 커녕 4강도 못가고 8강에서 주저앉았다.4번 중에 3번이 대한민국 상대인게 함정
- 원래 1956년부터 4년 주기의 짝수연도마다 열리는 대회였으나, 올림픽도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기 때문에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국들은 전력 분산이 되어 AFC 아시안컵에 정예를 동원하기 힘들었다.[26] 따라서 14회 대회부터는 1년 앞당겨서 2007년에 개최 된 후, 4년 주기의 홀수연도로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월드컵 진출국들이 아시안컵 예선과 월드컵 대비 강화 일정이 겹쳐서 많은 불만이 나오고 있다. 물론 2011년 대회에 이미 자동진출권을 확보한 한국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하계올림픽 때문에 수많은 대회의 개최 시기가 변경되었다. 그리고 개최시기도 보통 10월~11월 정도였으나, 이 시기에는 유럽에서 뛰는 A급 선수들의 차출이 힘들기 때문에, 흥행을 고려해서 7월~8월 정도로 변경되었다.
- FIFA 월드컵처럼 개최지역이 어디인지에 따라 우승팀의 지역도 영향을 많이 받는데, 역대 서아시아에서 개최된 8번의 대회는 2000년 레바논에서 일본이 우승, 그리고 2011년 카타르에서 역시 일본이 우승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서아시아팀이 우승하였고, 동3아시아에서 개최된 4번의 대회는 모두 동아시아팀이 우승하였다. 이외 동남아시아에서 개최된 3번의 대회는 모두 서아시아가 우승을 차지했다. 동아시아팀이 동아시아 외의 지역에서 우승한 경우는 2000년과 2011년의 일본이 두 차례 기록하고 있다.
- 그동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AFC 아시안컵에 신경을 안 썼다는 통념이 있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이 대회에 1군 멤버들을 모두 출전시켰다. 당시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만 봐도 차범근, 최순호, 김주성, 황선홍 등 전혀 신경을 안 쓴 멤버도 아니었다. 7~80년대만 해도 극심한 롤러코스터스러운 성적을 보여주긴 했지만 한 대회 건너서 결승전에 3번이나 진출하는 등,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FIFA 월드컵에 연속으로 진출하게 되는 1990년대 이후부터 월드컵과 올림픽같은 세계대회에 더 관심이 쏠려서 상대적으로 AFC 아시안컵에 소홀하게 되었다. 따라서 1992년에는 실업/대학 선수 위주로 출전시켰으나 지역예선도 통과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1988년을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결승전 진출은 맥이 끊겼다. 그 뒤 2000년대 들어서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유로컵에 영향으로 AFC 아시안컵에 관심도 높아지게 되자 다시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올림픽 축구 성적이 좋다보니 아시안컵은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선 제3대회로 격하되고 말았다.(...)
- 1984년 대회 이후부터 자국 감독이 우승시킨 경우는 한 차례도 없다. 감독 국적과 우승팀이 같았던 경우는 총 6회로 1956년과 1960년의 한국, 1968년, 1972년, 1976년의 이란, 1984년의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재미있게도 가장 많이 우승국을 배출한 감독의 국적은 AFC 소속이 아닌 브라질이다. 1980년 쿠웨이트,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 2004년 일본, 2007년 이라크로 총 4번의 우승국의 감독이 브라질 국적이었다.
- 2004년 대회는 결승전이 중국 vs 일본이었는데, 당연히(?) 중국이 이길 줄 알고 있던 중국의 관중들은 경기에서 패배하자, 패배를 순간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욕설이 난무하며 격한 반응이 터져서 훌리건으로 돌변해버렸다. 당시,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을 정도였다. 당 대회는 중국선수들의 매너보다는 관중 때문에 흑역사급이 되었다. 이 경기도 우승후보로 불리던 한국과 이란이 상호 데스매치 속에 8, 4강에서 탈락한 덕택에 일본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이 쉽게 돌아갔다. 2011년 대회도 대한민국과 이란의 8강 데스매치 덕택에 쉽게 잡았다. 만일, 대한민국과 이란이 만나지 않았다면 결승전조차도 못 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참고로 대회가 끝나고 이란의 감독을 중국언론이 인터뷰했는데, "준우승은 홈빨로 얻어진 행운이라며 중국은 아시아 2류다. 앞으로 AFC 아시안컵을 보면 잘 알 것이다."라고 대놓고 까댔다. 그런데 정말로... 그 다음부터는 8강도 2회 연속 못 가고 있다(...).
- 대한민국 축구의 여러가지 흑역사들이 상당수 이 대회 예선이나 본선을 치르던 중에 발생하였다. 1992년 예선에서는 대표팀을 대학 11명, 실업 9명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예선에 보냈다가 태국한테 패배하면서 광탈 크리... 일본에서 열린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당시 김우중 축구협회장의 지위가 흔들렸고[27] 결국 다음 해 도하의 비극이 될뻔한 극적인 사건으로 망신의 정점을 찍고 결국 정몽준으로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이 새롭게 바뀌게 된다. 더불어, AFC에서 앞으로 아시안컵에 1진급을 안 보내면 여러가지 벌칙이 주어진다는 법안까지 생기게 했다. (FIFA 월드컵 참가에도 불이익이 간다든지...) 1996년 본선 8강에서는 이란에 2-6으로 역전패를 (일명 씩스투 참사) 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으며, 2004년 예선에선 베트남에 0-1로 패배하더니, 이어지는 오만전에서도 1-3으로 패배하면서, 아직까지 2002 한일월드컵의 단꿈에 젖어있던 대한민국의 붉은 악마들을 연타로 경악을 하게 만들었다. 자세한 것은 오만 쇼크를 참고하자.
- 그리스의 유로 2004 우승과 비슷한 결과가 2007년 대회에 발생했으니, 그것은 이라크의 AFC 아시안컵 우승. 하지만 그리스가 시종일관 수비축구로 일관하여, 스타일상 경기력을 높게 평가해주긴 힘든 반면 이라크는 경기력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냈다. 호주, 한국, 사우디를 상대로도 경기 장악력이 전혀 밀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세한 모습조차 보여주었다. 당시의 이라크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위에 이어, AFC 아시안컵마저 우승을 차지하면서 충격을 주었으나, 정작 2010 월드컵 지역예선은 홈 경기를 열지 못하는 것이 디버프였는지는 몰라도 3차 예선에서 호주와 카타르에 밀려서 최종예선도 못 올라오고 탈락을 했다.
이러니 중국이 맥도 못 추고 탈락할 만했다.
- 2007년 대회 3, 4위인 대한민국과 일본. 대한민국의 핌 베어벡 감독은 AFC 아시안컵 3위를 했으나 바레인 쇼크 사건 등 흑역사를 보이면서 결국 자진사임을 빙자하면서 사실상 경질되었다. 여론이 핌 베어벡 감독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자신도 언론과의 싸움에서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바레인 쇼크의 영향도 컸다. 일본에서는 4위를 한 이비차 오심 감독은 계속 재임했다. 이후 이비차 오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뇌경색으로 인해 이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그 자리를 "월드컵 목표는 4강"을 외치는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차지한다. 대한민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자국 감독인 허정무가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 2007년 한국은 3위를 했으나, 3-4위전까지 펼쳐 가장 많은 경기를 했음에도 겨우 세골 넣고 3위를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핌 베어벡이 짤린게 이해가 될 정도다. 3골 모두 조별리그에서 나왔으며 8강, 4강, 3-4위전은 모두 0-0 무승부에 승부차기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인도네시아전에서 전반 34분 김정우가 골을 기록한 이후 월드컵 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곽태휘가 전반 43분에 골을 기록할 때까지 장장 549분간 무득점이었으며 비슷한 시기 무실점 기록은 510분까지 이어졌다. 쉴드를 쳐보자면 당시 대표팀은 해외파가 없고 국내파. 그것도 1.5군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다만, 이후 조광래가 대량으로 실점을 하면서 어느 정도 재평가를 받았다.
- 2007년 호주는 첫 AFC 아시안컵에 참가한다. 당시 우승할 것이라고 자신하더니 첫 경기 오만과 1:1 무승부. 2차전 이라크에게 3:1로 떡실신. 3차전 타이에게 4:0 승리. 겨우겨우 8강전에 진출했지만 일본에게 승부차기로 패배를 하면서 쓸쓸히 짐을 싸고 호주로 돌아갔다. 2011년에는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경험부족에 따른 미숙으로 일본에게 무너졌다.
- 2015년은 결승까지 간 대한민국은 55년만의 우승이 아쉽게 좌절되었다. 상대는 이미 예선에서 이겨 본 호주였으나 호주는 이번 경기의 홈팀이였고 그걸 누르진 못했다.
- 또한 이번 대회는 무려 전 대회 우승이였던 일본이 8강에서 탈락하는 큰 이변이 생기기도 했다.
- 대한축구협회는 1956년 제1회 아시안컵을 우승한 이후 받은 우승 트로피를 분실해버렸다. 9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치면서 오랫동안 애타게 찾아왔는데, 알고보니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한국체육박물관에 12년째 전시되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는 1985년에 대한체육회에 트로피를 기증하고서는 그걸 까먹고 있었고, 2000년부터 트로피를 전시한 대한체육회도 별다른 설명문을 달아놓지 않은채 저런 안습한 모습으로 우승 트로피만 덩그러니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박물관 측에서는 그 허름한 트로피가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 지금은 등록문화재도 되었고, 보존 처리를 마쳐 맨 위의 사진에도 나오듯 본래의 은빛을 되찾았다.
- 한편,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1960년 제2회 AFC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의 행방은 아직 알 수 없다. 초대 우승 트로피도 좋지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받은 그야말로 값진 것임에도...
- 국대에서는 유명하나 의외로 신경쓴것 치고는 내임밸류 선수가 잘 안나오는 케이스가 있다. 안정환은 04년 대회를 제외하면 페루자이적 기량 저하로 못나오고 최용수는 아예 기량이 절정일 2000년대에도 빠졌다.(96년은 국대차출이 아직이었고 2004년은 이미 은퇴했다)박주영은 05년부터 국대 차출돼었으나 07년은 기량저하와 부상으로 2011년은 세레머니
언제다칠줄 알았다하다 부상. 15년은 기량저하로 탈락됐다. 황선홍도 96년 외에는 뽑힌 적이 없다.
- ↑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한 28개국 중 하위 4개국을 제외한 24개국이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두고 벌이는 예선이다.
- ↑ 개최국의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여부에 따라 변동된다.
- ↑ 진품은 아니고 순은으로 된 복제품이다. 보존 처리를 마쳐 번쩍번쩍한 모습.
- ↑ 트로피의 기둥 부분에 대회부터의 우승국과 준우승국의 국명이 새겨져있다.
- ↑ 2015년 AFC 아시안컵 챔피언인 호주가 차기 2019년 대회에 부착한다.
- ↑ 그나마 가능성 있던 사례로는 2000년 아시안컵에서 해당됐으나 일본이 그대로 출전.
- ↑ 다만, 상금만 없을 뿐이지. 축구라는 종목 특성상 당연히 어마어마한 돈이 굴러간다.
- ↑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 본선 출전 수당만 800만달러(약 81억원)였다.
- ↑ 물론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아시안컵 우승국이 월드컵 우승도 했을 경우, 준우승을 했더라도 출전이 가능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다다음 세대에나 가능할듯 싶다. 혹은 월드컵을 개최하면 출전 가능하다. 같은 이유로 대한민국은 2002월드컵 개최국의 자격으로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해 2승1패를 거뒀다.
- ↑ 이제는 아시안컵 예선과 월드컵 예선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통과의례가 되었다. 그렇게 아시아팀 상대로 이겨서 얻은 월드컵 출전권으로 조별리그 3경기+를 하게 되면 4년 농사 끝. 사실상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이 치르는 공인 A매치의 절대다수는 아시아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 일본의 경우, 2011 아시안컵 우승국의 지위로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해서 A조에서 브라질에게 3:0패, 이탈리아에게 4:3패, 멕시코에게 2:1패 총 3패로 광탈했다. 그러나 정예 멤버로 출전한 이탈리아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훌륭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3골은 스페인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브라질 월드컵을 대비한 매우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3연패지만, 브라질에서 A매치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어디가 더 좋은 모의고사를 치뤘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 ↑ 유로컵도 2016 차기 프랑스 개최대회부터 참가국을 기존의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했다.
- ↑ 1956년 AFC 아시안컵은 이승만이 집권하던 시기였고, 1960년 AFC 아시안컵은 10월에 열렸기 때문에, 4.19 혁명이 일어난 뒤 이승만이 하야하고 장면 총리가 격려를 하는 것이 보인다.
- ↑ 원래 AFC 소속이었으나 중동과의 정치적, 외교적 마찰때문에 1974년에 축출되어 이후 한동안 OFC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1991년에 OFC를 탈퇴하였고, 1994년에 다시 적을 옮겨 UEFA에 가입한 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 ↑ 현재는 중화 타이베이로 출전.
- ↑ 현 미얀마
- ↑ 현 캄보디아
- ↑ 4개국 공동개최
- ↑ 현재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이 대회 유치 의사를 표명했다.
- ↑ 2015년 대회까지의 기록
- ↑ 대표적인 경우가 2011년 아시안컵. 일본은 이 경기에서 무난히 예선을 통과한 뒤 카타르를 잡았고, 이란전에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하고 온 한국을 승부차기로 밀어냈다. 호주의 경우는 결승진출이 처음이라 미숙한 점을 잘 이용했고. 만일 한국이 아시안컵 예선에서 1위를 차지. 이란을 만나지 않고 통과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다. 물론 모든 대회가 다 그랬던 것만은 아니지만...
- ↑ 농담이 아니라 이란 사람과 축구 얘기를 하게 되면 십중팔구는 씩스투라는 말부터 먼저 꺼낸다. 기회가 된다면 확인해 보시길.
아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우려먹을 것이다. - ↑ 0-1상황에서, 후반 48분에 동점골, 연장전에서 역전 골든골(이동국이 득점)을 넣은 명승부다.
- ↑ 이 경기 이후, 당시 감독이었던 조 본프레레 감독은 "보통 3골을 넣으면 이기는 데 이번 경기는 특이했다." 라고 인터뷰한게 지금도 가끔 우스갯소리로 인용된다.
- ↑ 한국와 이란이 5개 대회 연속 8강전에서 만나서 단두대 매치를 하는 동안 서아시아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강국이자 이란과 한국의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은 각각 우승 1회와 준우승2회, 우승3회를 자국의 것으로 가져갔다.
- ↑ 원래 올림픽 축구는 1984년까지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진 아시아 국가 중 제대로 된 프로축구 리그를 갖춘 나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므로 아시아에서는 올림픽대표 = 국가대표라고 봐도 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엔 특례조치가 있어서 '월드컵 경험이 있는 유럽과 남미 프로선수'에게만 참가의 제한을 두었고, 1992년 대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나이제한이 생겨난 것이다. 대신 프로선수에 대한 제한은 완전히 없어졌다.
- ↑ 당시 축구협회 이사였던 신문선이 선수 선발을 주도했으나, 광탈하면서 축구계 선배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씹혔다."는 카더라가 있다. 선수 은퇴이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위를 따는 등 공부하는 신세대 축구인 이미지가 강했던 신문선을 김우중 회장이 상당히 총애해서 많은 조언을 들었으나 이 광탈사건 이후 신문선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카더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