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테 시게자네

伊達成実
(1568 ~ 1646)

다테 사네모토의 아들. 센다이 일문의 제2석인 와타리 다테 가의 시조이다.

어머니백부 다테 하루무네의 딸이기 때문에 다테 마사무네와는 외가 쪽으로 따지면 사촌 관계이고 친가쪽으로 따지면 오촌 관계이다.

무용이 뛰어난 맹장으로 카타쿠라 카게츠나가 지(智)에 있다면 다테 시게자네는 무(武)에 있다는 말이 있다. 투구에는 지네 장식을 달고 다녔는데, 이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테 마사무네를 따랐으며 1585년 히토토리바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이 공으로 니혼마츠에 3만 8천석의 영지가 주어진다. 그 후 1589년 스리아케하라 전투에선 다테 군이 무너져 갈 때 아시나군의 본진을 급습하여 전투의 향방을 결정짓는 맹활약을 한다.

그러나 1595년 임진왜란 참전에 대한 은상이 적다는 이유로 불만을 터뜨리고 급기야 출분, 고야산에서 칩거한다. 이 사건으로 츠노다는 몰수당했을 뿐만 아니라 가신단은 뿔뿔이 흩어지고 처자는 츠노다 성을 접수한 야시로 카게요리에 의해 몰살당했다고 한다.[1]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을 때는 아이즈우에스기 카게카츠로부터 가신단에 합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본래 가신이었던 집안엔 임관할 생각이 없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년 가을, 루스 마사카게, 카타쿠라 카게츠나로부터의 권유가 있어 다테씨에 복귀하여 1603년엔 와타리 군을 영지로 받는다.

1637년 마사무네가 죽은 다음 해, 번 내의 하천이 크게 범람하여 수확물을 거의 쓸어가 버리자 에도 막부에서 구조금으로 은 5천 관을 차용받는다. 1638년 해에 있었던 차용 건에 대하여 사례를 하기 위해 에도에 올라갔다. 향응을 베푸는 자리에서 오우의 군담을 들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자 히토토리바시 전투를 실감나게 풀어나가는 중, 발을 친 채 듣고 있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감동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파일:伊達成実.jpg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다테가 최강의 장수로 등장.

경계선상의 호라이즌에서 다테 나루미라는 여성이 이 인물의 이름을 습명한다.
  1. 하지만 처자 몰살에 대해선 당시 시게자네에게 처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