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사진.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찍은 사진.
Daniel Dennett
대니얼 데닛
1942.03.28.- (2016년 기준) 75세.
1 생애
1942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의 철학과를 거쳐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자이지만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과학철학(그중 생물철학)과 인지과학분야에서 유명하다. 미국 터프츠대학의 인지연구소에서 장대익교수를 가르치기도 했다. 콰인으로부터 교수지도를 받았으며, 그의 인식론, 의미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비트겐슈타인을 자신의 대학 시절의 영웅이라 여겼으나, 진화론이나 뇌과학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이후에 터프츠 대학교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독자적인 연구를 이어나가게 된다. 이후 터프츠대학의 인지연구센터 소장과 철학교수를 겸하고 있다.
2 견해
같은 신 무신론자인 샘 해리스와 자유의지에 관해 견해 차이로 논쟁을 벌였다. 데닛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서로 양립할 수 있다고 여기며(자유의지양립론), 샘 해리스는 자유의지가 없다고(결정론) 단언한다. 데닛의 경우 의식은 오로지 뇌의 물리적 구조에만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물리주의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은 이색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진화론이 그 이전에 존재해온 대부분의 사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여 만능산(뭐든지 녹여버린다)이라고 여겼다. 자유의지나 의미, 의식들이 진화의 산물이므로, 진화론에 의해 새로운 철학 이론을 정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윌슨의 통섭에 우호적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환원주의는 경계한다. 탐욕스런 greedy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까는 중. 왜냐면 그에게는 의미나 내용이 환원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검은 잉크와 흰 종이로 소설을 설명할 수 있지만, 소설의 '의미'는 그런 것들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예시가 자주 쓰인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편의적인 논리이며 - 환원주의를 동원하더라도, 소설은 잉크와 흰 종이 이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 다른 방식의 환원주의를 방어할 수는 없다)
과학을 강조하고 생애에 과학자들과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으나, 철학이나 철학사를 배울 것을 종용하였다. 철학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자신이 어떠한 철학적 '실수'를 하고 있는지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철학은 인간의 사고 역사이며, 잘못된 사고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것. 이에 따라 과학자들이 가끔 너무 단순한 가설, 사고를 보인다는 점을 경계했다. [1]
미국의 분석철학에 비판적이다. 그리하여 유럽에서 태동한 후설의 지향성 이론을 일부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에 활용했다. 그에 따르면 지향적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물리적 태도 2. 설계적 태도 3. 지향적 태도 가 그것이다.
물리적 태도는 말그대로 물리학 같은 것이다. 돌맹이나 바람의 물리적 성질을 지향하는 것. 설계적 태도의 예로는 자명종이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에 대한 태도가 해당된다. 지향적 태도는 '존재하는 무엇'을 합리적 행위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존재하는 무엇 자체가 꼭 살아있는 행위자일 필요는 없다. 그저 그렇게 느끼면 된다. 우리가 그런 태도를 갖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 바람이 살에 스치자 귀신이 지나갔다고 오해했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는 지향적 태도를 취하여 바람=귀신으로, 행위자로 인식한 것이다.
3 저서
- 《주문을 깨다》 :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
- 《자유는 진화한다》 : 자유의지 양립론 옹호
-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고 하는가》 : 공저, 16인의 저자
- 《마음의 진화》 : 마음(정신)에 대한 진화론
-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 의식이론, 지향계 이론 제시
- 《직관펌프》 : 자신의 이론을 '직관펌프'라는 사고실험으로 정리하여 망라함
- 《이런, 이게 바로 나야!》 :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와 공저
4 여담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를 도킨스의 애완견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데닛은 도킨스보다는 굴드와 함께 연구한 게 더 많다고 한다.
도킨스는 "대닛은 나의 지적인 영웅이다." 라고 했다. (나이는 도킨스가 1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