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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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cd 435화 'Purity'

1 설명

還元主義
reductionism

어떤 높은 단계의 개념을 더 낮은 단계의 요소들로 분할하여 정의하고자 하는 철학적 흐름. 보통 데카르트를 그 시초로 본다.

화학에서 말하는 산화의 반대개념 "환원" 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며,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의 "환원" 이 약간 더 여기서의 환원에 근접해 있다. 사실 무엇이 더 높은 단계인가 낮은 단계인가에 대해서도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정말 거칠게 말해서 "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정도로만 알아두어도 되겠다. 오컴의 면도날과는 전혀 다르니 유의.[1]

특히 과학에서는 반형이상학적 흐름을 바탕으로 그 어떤 추상적 의미나 가치를 배제한다. 그러나 단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험주의적 현상주의와 물리주의[2]적 언어를 함께 채택하고 있다. 과학철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환원주의는 논리 실증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에서 지나가듯 언급되는 "방법론적 일원론" 역시 환원주의와 접점을 갖는다.

일단 어떻게든(…) 더 높은 단계와 더 낮은 단계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식자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계층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각종 사회과학
▼ (환원) ▼
심리학[3] (특히 사회심리학)
▼ (환원) ▼
신경과학, 뇌과학[4]
▼ (환원) ▼
생리학
▼ (환원) ▼
생물학 (특히 분자생물학)
▼ (환원) ▼
생화학
▼ (환원) ▼
화학 (특히 유기화학)
▼ (환원) ▼
물리화학
▼ (환원) ▼
물리학 (특히 양자역학)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이 도식을 좋아합니다

아무튼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모든 사회과학은 심리학으로 환원되고,[5] 심리학은 다시 생물학, 특히 신경생리학으로 환원될 것이며, 생물학은 세포의 단위로, 다시 분자의 단위로 환원되고, 나중에는 생화학을 거쳐서 종국에는 가장 미시적인 입자 수준의 물리학으로 환원되어 설명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환원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각 학문들 사이의 계층구조이다.

이렇다 보니 모든 학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좀 더 복잡한 물리학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소리. 언뜻 보면 광역 어그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각 분야별로 공부를 하다 보면 서로간의 영역이 많이 겹치고 언어도 나름 비슷하고, 학제 간 협력도 활발히 일어나기 때문에 과격하다고 투덜거릴 수는 있어도 아주 부정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 한 분야에서 안 풀리던 문제가 옆 동네 분야에서 손쉽게 풀리는 일도 있다더라 실제로도 현대 생물학의 발전은 델브뤽을 비롯한 몇몇 물리학자들이 바이러스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에 상당부분 빚지고 있다. 그래도 어쨌건 위의 계층구조를 두고 이건 웬 물리부심(?)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나무위키에서는 위키백과가 아니므로 환원이라는 과정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더라도 충분할 듯하다.[6]

이와 같은 환원주의의 특성 때문에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J.폴킹혼 경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 문장에 대해 수긍할 수 있다면 자신이 환원주의자라고 생각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인간이란 단지 무수히 많은 쿼크와 글루온, 전자 등이 모여 있는 집합체일 뿐이다."

여기서 "단지 ∼ 에 일 뿐이다"(nothing but ∼ ) 화법에 주목하라. 이것은 환원주의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환원주의자들은 다른 식자들에게 약간의 위트를 넣어서 "nothing butter" 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매사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결국 그것도 단지 ∼ 일 뿐이지요." 라고 말을 끝맺기 때문.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면, 모든 환원주의자가 다 위와 같은 것은 아니다. 환원주의에는 "존재론적 환원주의""인식론적 환원주의" 의 두 가지가 있는데, nothing but 화법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해당한다. 사실 그들은 환원주의 내에서도 가장 과격한 흐름이기 때문에 일부드립이 의의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환원주의의 얼굴마담 격으로 취급받는 것도 사실. 반면 인식론적 환원주의는 일종의 오컴의 면도날의 확장 버전이라서 학문 간의 위계서열을 나누는 것까지는 찬동하지만, nothing but 화법에는 납득하지 못하는 편이다.

철학계의 대표적인 환원주의자로는 논리실증주의의 대표 인물 중 하나인 루돌프 카르납이 있다. 그 외에도 일명 통합과학(unity of science) 운동을 펼치면서 물리학의 이름 아래 모든 과학을 포섭하려 했던 인물인 오토 노이라트 또한 환원주의자에 포함된다.

과학계의 대표적인 환원주의자로는 노벨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크릭(1916~2004)[7]이 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생물학의 궁극적 목적은 사실상 모든 생물학을 물리학과 화학의 용어로 설명하는 것" 이라고 한다.[8] 다른 네임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역시 환원주의에 우호적이며, 생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G.에델만(1929~2014)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마음의 기초를 이루는 물리적 물질은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약간의 금속과 함께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유황, 과 같은 화학원소들 뿐" 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9] 이 맥락에서 보면 사랑 역시 그저 옥시토신(oxytocin)을 바탕으로 한 신경세포들 간의 의사소통에 불과하다는, 지극히 환원주의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10]

환원주의는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마치 "부분과 전체 논쟁" 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사회 명목론 또는 사회 유기체설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전체는 단지 부분의 합에 불과하다" 와 같은 논변과도 멀지 않아 보이기 때문. 즉 숲은 나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숲은 단지 나무들의 집합일 뿐이다. 물론 바로 이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복잡계 이론인데, 환원주의에 대한 반박들 중에도 복잡계 이론의 창발(emergence)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결합의 오류와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는 셸든 리 쿠퍼가 대표적인 환원주의자...아니, 물리학우월주의자(…)로, 물리학 외의 모든 학문들을 업신여기거나 내지는 지적 활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회과학은 대부분 엉터리" 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감히 공학 따위가 과학(science)이라는 이름을 받을 수 있다고?" 라고 하면서 씩씩거리기도 했다. 한번은 "똑똑하지 않은 사람과 연애를 한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 "프랑스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과 한 적은 있다" 고 대답할 정도.(…)

2 환원주의의 가치?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다."

"I can calculate the movement of the stars, but not the madness of men."

아이작 뉴턴 극단적 환원론의 위험성을 주식시장에서 몸소 겪으신 물리학의 본좌

이와 같은 환원주의적 접근법이 현실을 잘 설명한다면 좋겠으나, 환원주의의 반대자들은 환원주의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환원주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경험적으로 저런 설명이 그다지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하와 같이 그 대상이 인문 현상일 경우에는 웃지 못할 결과가 나오게 된다.

  • 음악단지 한 종류의 공기의 떨림에 불과하다.
  • 모나리자단지 그 화학적 구성이 알려진 페인트 조각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단지 흰 종이의 섬유 위에 붙어 있는 검은 잉크의 반점들에 불과하다.(…)
  • ......

결국 환원주의의 한계점이라면 미시적 관점을 지나치게 거시적 세계에 그대로 대입하려 할 때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용하게 쓰일 만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환원주의는 분명 복잡해보이는 현상에서 그 현상을 이루는 구성요소와 구성요소 끼리 상호작용하는 규칙을 파악하는데는 유용하다. 하지만 구성요소와 상호작용 규칙만으로 원본 현상을 쉽게 예측하면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원주의자의 입장에서 고전역학의 응용 문제에 불과해야 할 삼체 문제는 질량이 있는 물체 3개와 중력만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계이지만, 이런 계는 안정된 일반해가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된 지 100년이 지났고, 특수해도 고작 16가지 군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이런 특수해를 벗어난 초기 배열은 수치 해석으로밖에 접근 방법이 없는 카오스 이론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물체의 갯수가 더 늘어나면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 규칙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상호작용의 결과 나타나는 현상의 복잡도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환원주의 그 자체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복잡도를 설명하고 복잡한 현상을 예측할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환원주의를 통해 밝혀낸 요소와 규칙을 조합해서 일상 현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제품을 직접 만드는 야근 일감이 기다릴 뿐이다.

위에서 든 모나리자의 예로 돌아가보자. 모나리자를 종이와 페인트, 더 나아가서 종이와 페인트를 이루는 원자와 각 원자간의 결합으로 이론적으로 분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분해한 원자와 원자간 결합 법칙만 가지고서 원본 모나리자를 완벽하게 똑같이 복구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고를 들인다면 유사한 결과물은 여럿 만들고서 결과물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겠지만[11], 그런 결과물 중 원본 모나리자가 존재할 확률은 0으로 수렴한다.

만약에 원자를 완벽하게 재조합해서 원본 모나리자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하더라도, 원본 모나리자 속에서 나타나는 화풍, 화가가 의도한 부분, 작품 전후의 상황 맥락적 이야깃거리 등, 환원주의에 의해 구성요소와 상호작용 법칙이라는 분류에 담기지 않는 정보는 분해 과정에서 소실될 수 밖에 없고, 이런 무형의 정보를 지니지 못한 모나리자 2는 아무리 원본 모나리자와 똑같다고 해도 위작으로 분류될 수 밖에 없다.[12]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생략되는 정보는 인문학의 입장에서 오히려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어쩌면 환원주의는 하나의 접근법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즉, 다층적인 접근을 통해 보다 완전한 설명을 도모할 수 있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으며, 작곡가의 의도와 지휘자의 성향, 각 악장들의 구조적 오케스트레이션의 분석에 대한 지식들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본 주파수를 바탕으로 하여 각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배음(하모닉스)에 대한 물리학적 지식 역시 음악을 감상하는 정신적 풍요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인문 현상도 그러하다면, 보다 엄밀하고 학술적인 영역에서의 환원주의는 그 가치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환원주의 비판론자들로서 몇 명을 꼽아 보자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반박한 생리학자로 유명해진 D.노블(1936~)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생명의 음악》에서 시스템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이에 곁들여서 환원주의적 생물학의 이해를 논박한 바 있다. 또한 물리학자 P.W.앤더슨(1923~) 역시 이미 "모든 것을 단순한 근본적 법칙들로 환원시키는 힘은 그런 법칙들로부터 시작하여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한편 진화심리학자이자 성심리학자인 길리언 브라운은 진화생물학자 케빈 랠런드와 함께 진화론의 적용영역을 총망라하는 《센스 앤 넌센스》 라는 책을 썼는데, 사회과학각종 영역들에서 생물학적 이론들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려는 경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까댔다. 즉 사회과학의 여러 문제들을 무작정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사회생물학자들은 진화론에 열광한 나머지, 잠시 멈춰서서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발전시키거나, 사회과학 문헌을 읽거나, 대안이 될 만한 설명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즉흥적으로 옮겨 다니며 피상적인 이야기만 지어내기 일쑤였다... (중략) ...즉, 사회생물학에는 모름지기 '모든 유형의 사회는 가능하며, 하위 집단 간의 모든 행동 차이는 제거될 수 있다' 고 가정하는 출발점, 즉 귀무 가설(null hypothesis)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생물학자들이 가설검증 기준을 좀 더 까다롭게 유지했다면, 진화론적 설명이 남용될 여지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 《센스 앤 넌센스》, p.146

한편 장대익 교수가 네이버에 추천하기도 한 서적인 《DNA 독트린》 에서, 저자 리처드 르원틴은 주의 깊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개인적인 공격성과 국가의 공격성을 혼동하는 것은, 개인이 남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 느끼는 급격한 호르몬 분지와 전쟁의 원인인 자연자원, 교역 통로, 농산물 가격, 노동력의 가용성 등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정치적 의제를 혼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개인들의 실수가 사회를 좌지우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간 본성 내용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 《DNA 독트린》, p.167

노벨화학상 수상자 로얄드 호프만도 환원주의 비판자이다. 그의 대표적 서적인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에서는 한 목차 전체를 환원주의자들의 논리, 그리고 그 논리의 문제점과 환원주의적 행태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서술하고있다.
  1. 굳이 따지자면 인식론적 관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환원주의의 핵심 포인트는 오히려 존재론적 관점이기 때문에 오컴의 면도날과는 무관하다.
  2. 물리주의에 대해서라면 역시 이에 얽힌 심리철학적 논쟁이 빠질 수 없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주제까지 다루지는 않기로 한다.
  3. 정신물리학이라는 지름길이 있다.
  4. 이것도 신경화학이라는 지름길이 있다.
  5. 실제로 이와 같은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경경제학 및 신경사회학.
  6. 더 궁금한 것이 있는 위키러들은 Nagel(1961/1982), Kuipers(1990) 등을 참고할 것.
  7. 제임스 왓슨과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연구결과를 가지고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그 사람이다.
  8. F.Crick, 1966.
  9. G.Edelman, p.36.
  10. 한때 신경과학자이자 저술가인 S.해리스가 영혼에 대하여 "그저 한 다발의 뉴런일 뿐이죠 뭐"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또한 심리철학과 물리주의의 가장 핫한 떡밥들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1. 시뮬레이션이나 수치해석이 이런 목적으로 수행된다. 물리 법칙을 통해 현상을 모사하고 응용 방안을 찾을 때는 현상을 완벽하게 재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상과 완벽하게 똑같지 않고 일부 생략이 포함된 시뮬레이션 모델만으로도 현실 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
  12. 만약 모나리자를 정말로 가지고 싶어했던 외계인 창조주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던 시절의 지구를 쿼크 하나까지 완벽하게 똑같도록 복원해서 지구2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2가 모나리자 2를 그리도록 한다면 이 모나리자 2는 원본 지구와 지구2의 거주민의 입장에서 원본 모나리자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삽질은 환원주의를 주창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 넘어설 것이다.